천막촌을 울린 할아버지의 노래
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봄호 2025년 3월 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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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잠든 시간, 흰눈이 왈츠를 추듯 나풀나풀 내린다. 세상의 더러움, 지저분함, 허술함을 다 덮어 주려나. 삶에 지친 이의 설움, 아픔, 한숨을 위로해 주려나.
오늘은 천막촌에 가는 날이다. 명절마다 홀몸 댁에서 ‘시낭송 힐링 콘서트’를 해온 지 벌써 200회가 넘었다. 올 설날맞이는 천막촌 세 가정이다. 생필품과 식료품을 챙기고 그림을 곧잘 그리는 아홉 살 손녀의 그림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손 편지를 쓰면서 나태주 시인이 직접 그린 「행복」 시화를 복사하여 액자에 넣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르신의 상황에 맞는 시를 선택하여 시낭송 연습을 하고 회원들을 지도하는 일이다. 누가 시키지도, 부탁하지도 않지만 의미 있는 일이기에 꾸준히 하고 있다.
경기도와 서울시 사이 고갯마루 대로변에는 수방사가 있고 맞은편 남태령역 골목으로 들어가면 전원마을 단독주택 옆에 공동체인 천막촌이 있다. 이곳은 1980년대부터 지역 철거민들이 모여 살고 있는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 70대 중반이 넘은 기초생활수급자들이 많다. 천막집은 얼기설기 나무를 덧대어 검은색 차광막을 얹거나 비닐로 덮여 있다. 서울에도 이런 집이 있나 싶을 정도다. 난민촌 같다. 입구에는 ‘전원마을 울타리 안전 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달팽이가 기어가는 모습이다. 1은 1-5번까지, 3번은 3-4번까지, 17번은 17-6까지 60가구가 붙어 있다. 고달픈 삶이 엿보인다.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보니 작년에는 화재 사고가 크게 났고 수해로 집 안이 침수되었다. 방바닥은 축축한 데다가 곰팡이가 피고 하수가 역류 되어 변기 물이 올라와 말이 아니었다. 칠십 중반의 노부부 집을 방문했다. 허름한 비닐 안으로 들어가니 기업체에서 후원해 준 연탄이 어른 키만큼 가득 쌓여 있다. 살을 에는 추위를 따뜻하게 덥혀주고 여름철 장마철에 습기로 생긴 곰팡이와 벌레를 막아주는 일용한 연탄들이다. 얼마나 고마운가.
검은색 운동복을 입은 할아버지는 눈 밑이 깊게 파여 삶에 찌든 모습이고 색 바랜 낡은 티셔츠를 입은 할머니는 알 듯 모를 듯한 옅은 미소를 짓고 있다. 힘듦을 견뎌내고 있다고나 할까. 겨우 세 명이 서 있을 만한 좁은 부엌에서 선물을 드리고 손편지를 읽었다. 그리고 여러 편의 시 낭송을 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낭송하면서 대화를 이어가니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특히 나태주 시인의 「행복」 시화를 노부부와 함께 읽으면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더욱 자연스러워졌다.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행복이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권력 명예 물질 학력에서 오는 것은 아니라 작은 꽃 한 송이에서 온다. 행복은 먼 데 또는 크고 화려한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소박하고 소소한 곳에서 오는 것이다. 해와 달과 별과 구름과 바람과 꽃과 새와 나무를 보면서 심장이 뛰고 있음에 감사하고 나무 그늘이 아름답다고 느낄 때 행복한 것이다.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저녁 때 등을 대고 누울 집이 있다는 것, 45년간 옆을 지켜준 아내가 있어 행복하시지요?”
“네, 그렇지요.”
외로울 때 혼자 부르는 노래가 있는지 여쭈었다. 그러자 가슴에 묻어둔 슬픈 가족사를 꺼내었다. 재혼한 어머니는 의붓동생을 편애하여 자신은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해 불행하다고 생각했는데, 결혼하여 얻은 초등학교 5학년 외아들을 불의의 사고로 잃게 되면서 그 뒤부터는 죄책감에 입을 다물고 살았다고 한다. 총각 때는 노래자랑대회에서 상을 여러 번 받기도 했지만 하늘나라로 자식을 보낸 아비가 무슨 낯짝으로 노래를 부르냐며 세상과 담을 쌓고 자책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한탄하고 통곡하면서 술로 살아왔다고 한다. 상처가 깊으면 영혼을 갉아먹는다고 했던가. 자신을 학대하면서 살아온 삶이 무척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이제는 상처를 지우고 예전에 노래를 불렀던 것처럼 마음껏 부르시라고 부추겼다.
그랬더니 갑자기 노래를 부르고 싶다며 <칠갑산>을 불렀다. 들숨 날숨 호흡 속에 간절함이 배어 있었다. 절절함이 느껴졌다. 그동안 얼마나 부르고 싶었던 노래였던가. 60년 만에 부른 노래. 가슴을 뜨겁게 적시었다. 노래를 부르고 나니 오래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 같다며 얼굴이 환해지셨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딱딱한 심장이 부드럽게 풀리면서 닫혔던 마음이 열리고 막혔던 혈관이 뚫린 순간이라고나 할까.
흑인 미국 여류시인은 「눈풀꽃」 시에서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라고 했다. 우리는 그 삶을 겪어보지 않았기에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할아버지가 다시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랬다. 할아버지 할머니 손을 잡고 빙 둘러서서 박두진 시인의 「해」를 목이 터져라 낭송했다. 노부부도 목청껏 힘껏 따라 했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해의 밝은 기운이 이 집 안에 비추기를, 소망의 내일이 어서 오기를, 희망과 광명이 어서 찾아오기를. 문 앞까지 배웅 나온 노부부는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할아버지가 불쑥 한마디 하신다.
“이제부터 화내지 않고 살게요.”
아! 찾아가는 시 낭송을 하면서 19년 만에 받은 최고의 선물이다. 어느새 겨울 햇살이 따라와 천막촌을 환하게 비춘다. 노부부의 집에도 햇살이 쏟아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