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봄호 2025년 3월 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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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게 흘러갔다. 되돌릴 수만 있다면 되돌리고 싶은 세월, 내 유년의 시절은 춥고 배고픈 기억밖에 없다.
아릿한 내 상념을 깨고 들려온 목소리, 힘이 없어 여전히 가랑가랑한 가엾은 노인, 내 어린 시절 어머님 모습 같다. 기력이 부족해서 저러는 게 아니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신은 그렇게 너그럽지 않을 것만 같다.
“아저씨, 도라지 반 근만 줘!”
“조금씩은 안 팔아요. 할머니.”
도라지 반 근(300g)을 달라는 할머니와 너무 적어서 팔지 않겠다는 내가 근무하는 가게 직원 김 기사와의 실랑이다. 눈을 찡긋해 보이며 드리라고 했다. 연세 많은 분이 시장 나오기도 힘든데 다른 가게로 보낼 수는 없었다. 김 기사가 마지못해 깐도라지를 담아서 드리자 이번에는 양이 적다며 더 달라고 하신다. 거의 생떼에 가깝다고 해야 할 정도이다. 이번에도 더 드리라고 했더니 입을 삐죽거린다.
가끔 시장에 오는 할머니! 올 때마다 많이도 아니고 한 근 아니면 반 근을 사 가시는 노인이시다. 김 기사는 할머니가 들어오면 어김없이 귀찮은 기색을 보인다. 일은 바쁜데 실랑이를 해야 하니 짜증내는 것도 일면 이해가 된다. 하지만 내 눈에는 꼭 살아계실 때의 어머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해진다. 도라지를 사러 나온 할머니의 당당한 모습과는 달리 어깨를 움츠린, 도라지를 팔기 위해 시장을 배회했을 어머님의 모습이 겹쳐진다.
반세기 이전, 보릿고개 넘기가 저승 가는 길보다 더 무섭게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 라면도 없었느냐고 되묻지만, 정말 라면도 나오기 전이었다. 춘삼월 긴긴 해가 넘어가고 단오 무렵 보리가 패기 시작한다. 어서 푸른 기가 가시고 누런 황금빛이 돌기를 바라지만 그리 쉽사리 익지 않는 게 보리 이삭이다. 매일 보리밭을 기웃거리다가 조금이라도 누런빛이 들었다 싶은 곳에 있는 보리 이삭을 잘라다가 밥솥에 쪄서 말린다. 쪄서 말린 것을 기계 방아도 아닌 절구나 디딜방아에 찧어서 보리밥을 해 먹곤 했다. 그것이나마 배불리 먹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헐벗고 굶주림에 지친 사람들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들로 산으로 다니며 나물을 뜯고 칡뿌리도 캐어 오곤 했다. 허리가 한 움큼도 안 되는 어머님도 다래끼를 메고 아침에 나가면 해가 설핏해서야 돌아오시곤 했다. 다래끼 속에는 나물이랑 도라지, 더덕 등이 들어 있었다. 도라지와 더덕은 물에 담그고 산나물은 바로 삶는다. 미처 우려내지도 않은 것에 된장을 넣고 무친 다음, 바가지나 큰 그릇에 찬밥을 넣고 비벼주면 밥알은 오다가다 눈에 띄어도 그 맛은 꿀맛 같았다.
이튿날 어머님은 나물 다래끼를 메고 나가면서 우리 형제에게 학교에 갔다 와서 어제 물에 담가놓은 도라지 껍질을 벗기라고 하셨다. 물에 불은 도라지와 더덕은 다듬잇돌이나 댓돌 위에 올려놓고 방망이로 자근자근 두드리면 납작해진다. 그러면 껍질 벗기기가 한결 수월하다. 하지만 초등학교 4∼5학년의 여린 손은 이내 손톱이 아프기 시작한다. 그보다도 다른 친구들은 밖에 나가서 뛰어노는데 집에 붙잡혀 일해야 한다는 게 더 싫었다.
아직도 껍질을 벗겨야 할 도라지는 많이 남아 있고, 하기는 싫고 나는 동생에게 남은 도라지를 들고 나가 뒤꼍에 있는 감나무 밑에 묻으라고 했다. 동생은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그런 사정도 모르는 어머님은 우리 형제가 까놓은 도라지를 들여다보며 수고했다는 말을 잊지 않으셨다.
껍질을 벗긴 더덕은 고추장을 발라 구우면 훌륭한 반찬이 되었고, 잘게 쪼개어 말린 도라지는 똬리만 한 크기로 엮어서 시장에 내다 팔았다. 한 뭉치에 얼마를 받았는지는 기억에 없다. 다만 도라지를 판 돈으로 쌀이 아닌, 보리쌀이나 국수를 사 오신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단지 껍질 벗기기 힘들다는 이유로 힘들게 캐 오신 도라지를 감나무 밑에 묻었으니 어머님께서 그 사실을 알았다면 얼마나 허탈해하셨을까. 지금 생각하면 목이 멘다.
당신도 배가 고파 연신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자식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기 위해 당신의 밥을 아낌없이 덜어주시던 어머님, 지금까지 살아계신다면 고기반찬에 흰 쌀밥 따뜻하게 지어 삼시 세끼 양껏 드실 수 있도록 해드릴 수 있건만 세월은 이 못난 자식이 불효 씻을 기회를 주시지 않았으니 그저 야속하고 원망스럽다.
오늘따라 찬 바람이 더 매섭게 불고 있다. 싸락눈도 날린다. 조금씩 사가는 할머니께서 올 때가 한참 지난 것 같다. 가랑가랑하던 음성으로 미루어 탈이 나신 건 아닐까. 부디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