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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이 주는 메아리

한국문인협회 로고 윤영남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봄호 2025년 3월 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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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의 절기를 무색할 정도로 영하의 날씨다. 성에가 창문에 낀 아침인데, 다른 때보다 흰 성에에 눈길이 머물렀다. 짧은 바늘 끝처럼 예리한 것들이 별 같기도 하고 눈송이처럼 그 모양이 신비롭다. 어린 영혼이 작은 손바닥을 펼치면서 세상을 향해 만사가 찰나의 순간이라고 알려주려는 듯하다.

지난 구정에 긴 연휴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이박삼일 간의 일정 동안 애들은 연신 맛집을 찾아다녔다. 최소로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리면서 우리 부부에게는 식당 앞에서 기다리는 일이 익숙하지 않다. 패딩을 입은 젊은이들이 줄지어 선 모습들은 마치 까마귀 떼가 구불구불 줄을 선 것 같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검정 옷만 입은 줄에서 흰 점퍼를 입은 여대생이 눈에 들어왔고, 더 예쁘게 보였다. 검정 사이에 흰색이라 뚜렷했으리라. 하지만 그 흰 점퍼의 여학생 표정을 자꾸 주목하게 되었다. 주머니에서 뺀 손등, 얼굴에서 피어나는 미소와 함께 드러난 정렬된 치아까지도 그녀가 발을 동동 구르며 호호 내뿜는 입김이 살아 있음을 증언하듯 순수한 생명의 흰 숨결이 아닐까.

얼마 전 사두었던 한강 작가의 작품집을 가방에 챙겼던 기억이 났다. 가방을 뒤졌더니, 시적이고 수필처럼 진솔하며 짧은 토막으로 엮은 『흰』 책이 손에 잡혔다. 구석진 곳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다. 막간을 이용해 읽을 책은 아니지만. 읽다가 하늘 한 번 본 후, 다시 읽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렇다. 소설은 하나의 이야기라 하겠지만, 그녀는 곧 나요, 나의 침묵 속으로 일체감을 주었다. 한 문장마다 투시의 메시지는 펜촉처럼 날카로운 자각을 주는 듯 강렬했으므로.

마침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정말 빛이 되기 직전의 눈이 무엇인지를 실감하면서 시력의 한계 앞에서 보고 또 보며 묵상했기에, 흰 눈에 대한 어떤 표현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 한강의 문장은 각자의 삶에서 깊게 응시하는 특별한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길을 발견한 듯했다. 그녀가 만나고 찾아간 도시도 어쩌면 그녀의 영혼이 부른 소리를 들었을지도.

그렇다고 보면, 어떤 작가의 작품 탄생도 인간의 생명처럼 소중한 만남, 어느 장소나 때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마침내 팔월 말, 작가는 당시엔 만 열네 살이던 아이와 각자 이민 가방 하나씩을 끌고서 커다란 배낭들을 메고, 새롭게 엮어질 삶의 여정을 폴란드로 떠났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거대한 매듭의 속으로 불쑥 들어서는 것 같은 막막함으로.

그녀가 머물고 있던 그 도시에는 바르샤바 항쟁 박물관도 있기에, 참혹한 전쟁의 참사를 감지할 수 있으니, 그 도시의 운명을 닮은, 파괴되었으나 끈질기게 재건된 사람을, 그녀의 몸과 삶을 빌려줌으로써만 그녀를 되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였다. 이 책 『흰』을 쓰기 시작한 그때, 한강은 먼저 죽은 언니의 삶으로 되돌아가듯 소설의 주인공으로 일인칭 자신의 상상과 상징, 은유로 사색의 깊은 강물을 젓기 시작했으므로.

작가의 두 손엔 페인트 통과 붓을 들고 있다. 엉거주춤 서서, 수백 개의 깃털을 펼친 것처럼 천천히 낙하하는 눈송이의 움직임을 그녀는 지켜보고 있었다고, 여기서 페인트는 세상의 온갖 상처와 아픔을 가재로 덮듯이 칠하는 도구로 활용하면서, 붓은 작가의 글을 쓰는 모습이 아닐까. 낙하하는 눈송이의 움직임을 보면서 깃털 같은 유한한 생명의 환희와 찰나의 의미를 눈이 녹는 시간으로 작가만이 승화시키는 놀라운 사유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하리라.

결국 태어나지 않게 된 나 대신 지금까지 끝끝내 살아 주었다면, 당신의 눈과 몸으로 어두운 거울을 등지고 함께 나아가 주었다면, 이런 가설이 성립되지 않았으리라. 수의와 소복, 연기, 언니, 작별을 통해 세상의 모든 흰 것들에 속에서 당신이 마지막으로 내쉰 숨을 들이마실 때를 암시했다. 작가는 독자를 통해 질문을 던지며 해답도 동시에 날려준다는 것까지도. 삶과 죽음의 경계도 허물며 생명을 품고 어루만지는 조용한 위무를 느꼈다.

이젠 가족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지만, 가슴속에서는 계속 어떤 울림이 이어졌다. 우리말 형용사에 ‘하얀’과 ‘흰’이 있는데, 그 말이 주는 암시는 무척 달랐다. 흰 것에 대한 묵상을 다시 했다. 창가에 성에를 무심하게 봤던 때보다 오늘 본 성에가 너무나 다르듯, 내 삶을 향해 울리는 메아리를 엄숙하게 듣는다. 지금 영하의 날씨도 흰눈을 녹이며, 숭고한 봄을 잉태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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