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봄호 2025년 3월 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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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은 검증받기 위해 쓰는 것 아닙니까?
미친놈. 누가 그걸 모르나? 순진한 건지, 답답한 건지, 미련한 건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인간이 바로 이런 놈이다. 나는 정의로운 척하거나, 순수한 척하거나, 양심적인 척하는 인간이 싫다. 세상이란 특히 군대란 상식이니 양심이니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조직이다. 총알이 빗발치듯 쏟아져도‘돌격! 앞으로!’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금 나가면 죽습니다. 못 가겠습니다. 이런 항변이 통하지도 않고 통해서도 안 된다. 군대는 상명하복하지 않으면 유지되지 않는 특수한 조직이다. 전장이라면 지휘관은 이따위로 항명하는 부하를 즉결 처분으로 사살해도 된다. 군기를 잡기 위해 죽여야 한다. 이순신 장군도 탈영병을 처형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녀석은 논문은 검증받기 위해 쓰는 거 아니냐며 고개를 빳빳이 들고 말했다. 녀석의 다음 말이 두려워 나는 바로 산회를 선포했다. 두렵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 나는 녀석이 조금도 두렵지 않다. 다만 녀석에게 동조하는 사람이 늘어날까 두려웠다. 녀석이 조금만 유연한 태도를 보였더라면 협박 같은 건 하지 않았을 거다. 내가 논문 재심사 회의에 국군방첩사령부 중령을 부른 건 녀석에게 겁을 주기 위해서였다. 지금 네가 말 한마디 잘못하면 방첩사령부로 불려가서 조사받을 수도 있다는 암시를 주고자 했다.
회의 참석자들이 흩어진 이후 나는 녀석을 데리고 내 방으로 갔다. 그리고 방첩사 중령이 왜 왔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녀석은 방첩사령부가 논문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머리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녀석을 방첩사로 보내 조사받게 할 수 있다. 혐의가 있건 없건 상관없다. 그냥 보내서 한동안 ‘조사’라는 절차를 거치게 하면 된다. 사람들은 특히 군인 가족들은 방첩사라는 말만 들어도 두려워한다. 50여 년 전 방첩사령부 사령관(예전 명칭은 보안사였다)이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더 그랬다. 그런데 녀석은 방첩사령부라는 나의 말에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머리가 텅 비어가는 느낌이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방첩사니 국정원이니 하는 단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협박이 통하지 않으니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어디든 네가 원하는 곳으로 보내 줄 테니 의무사령부 게시판에 올린 글을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정말이지 군에 몸담은 이후 부하에게 이런 부탁을 한 적이 없었다. 녀석은 입을 꾹 닫고 앉아 있었다. 아무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서 더 화가 났다. 침묵은 금이 아니다. 사람을 열받게 할 뿐이다. 대령이 질문하면 대위는 대답해야 한다. 여기는 군대니까.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당번병이 들어왔다.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했는데 왜 들어왔느냐고 짜증을 냈더니 전화 좀 받으셔야겠다고 대답했다.
녀석의 어머니라고 신분을 밝힌 여자가 내 아들이 왜 조사를 받고 있는지 이유를 알고 싶다고 말했다. 녀석은 언제 엄마에게 전화했을까? 그러지 않아도 통화하고 싶었는데 잘된 일이었다. 나는 간단하게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녀석이 게시판의 글을 삭제하고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만 하면 없었던 일로 해 주겠다고 했다. 그러지 않으면 방첩사령부로 가서 조사를 받게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여자의 반응이 참으로 이상했다. 무반응인 녀석보다 더 이상했다. 신기하리만큼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변호사를 사서 법적으로 대응할 테니 보내고 싶으면 보내라고 말했다. 낭패에 낭패가 겹친 꼴이었다. 나는 녀석을 귀대시킬 수밖에 없었다. 한미 합동 군사훈련 중이라 녀석을 더 붙잡아 두기도 어려웠다. 지금은 그 누구도 훈련에서 빠질 상황이 아니었다. 나 역시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지 여러 날이 되었다. 피곤한 가운데서도 논문이라는 두 글자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논문. 논문. 논문에서 이 모든 파장이 시작되었다. 군대에서 군인들이 논문 가지고 이 난리를 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군의관들은 2년마다 무조건 복무지를 바꿔야 하는데 이걸 교류라고 부른다. 공중보건의와 군의관은 병역 의무를 다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많은 점이 다르다. 공보의는 보건복지부 소속의 민간인이고 군의관은 국방부 소속의 군인이다. 공보의는 비번일 때 어디든 갈 수 있지만, 군의관은 휴가 때가 아니면 다시 말해 외출이나 외박 시에는 위수지역(부대가 질서와 안전을 유지하려고 장기간 머무르면서 경비하는 지역)을 벗어날 수 없다. 대위로 임관하는 전문의들이 가장 기피하는 곳은 복무기간 내내 환자 한 명 보지 못하고 행정 업무만 하는 부대이고, 가장 선호하는 곳은 대형 군 병원과 서울 근처 의무대다. 아버지가 투 스타인 채 대위가 ‘교류’가 아니라 대형 군 병원 ‘잔류’를 선택한 게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상명하복의 군대에서 아들을 잔류시키라는 장군의 명령을 내가 어떻게 거부한단 말인가.
채 대위가 잔류하는 방법은 딱 두 가지뿐이었다. 병원장의 추천을 받은 진료부장 또는 의료관리실장은 2년 이상 초과근무가 가능하다는 예외 조항을 적용하거나,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개인자력점수가 좋으면 된다. 개인자력점수란 표창, 훈련, 논문 게재 등을 통해 개인이 획득하는 점수를 말한다. 채 대위의 개인자력점수는 낮았다. 아버지를 믿고 그랬는지 몰라도 점수를 따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예외를 인정하려면 포괄적으로 해야 한다. 채 대위에게만 적용하면 특혜가 된다. 모든 의무 부대에 예외 조항을 적용하기 위해 사전 조사를 했는데 반발이 심했다. 보고를 받은 장군은 빨리 다른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안 되면 되게 하라. 그게 대한민국의 군인정신이다. 그러니 나는 어떻게든 되게 해야 했다. 내게 주어진 장군의 지시 사항이었고 반드시 이루어야 할 임무였다.
채 대위의 개인자력점수를 높여야만 했다. 개인이 한 번에 받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점수는 2점이다. 장관급 표창 2점, 특정 훈련을 받거나 특정 자격증 획득 2점, 학술지 논문 게재 2점. 장관급 표창을 받는 건 정말 어렵고 특정 훈련이 있는 시기도 아니었다. 남은 수단은 논문이 유일했다. 대한군진의학회지 또는 동등 이상의 국내외 학술지에 제1저자로 논문을 등재하면 2점을 주는데 의학논문 쓰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교류 희망지역을 제출하는 12월까지 넉 달 남짓 남아 있을 뿐이었다.
아무리 어려운 임무라도 주어진 과업을 완수하지 못한 적이 없는 나였다. 내가 머리를 짜내서 세운 계책은 이미 있는 유관기관 학회지의 제호를 변경한 후 논문이 실리면 2점을 주도록 하는 거였다. 2점을 줄 수 있는, 권위 있는 학회지를 뚝딱 만들어낼 수 없어서 만들어 낸 고육지책이었다. 유관기관 학회지는 대한군진의학회지만큼 유명하지는 않으나 그래도 오랫동안 논문을 게재하고 있었다. 보고를 받은 장군이 묘안이라고 말하며 무릎을 쳤다.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기안해서 당장 결재 올리겠습니다.
나는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했고, 9월 말 참모총장 명의의「군의관 인사운영지시」가 발령되었다. 나는 채 대위에게 빨리 논문 3편을 쓰라고 말했다. 4점만 더 받으면 되지만 혹시 모르니 6점을 받아야한다. 채 대위는 두 달 만에 논문 3편을 썼다고 보고했다. 보고를 받고 오랜만에 시내로 나갔다. 소주라도 한잔 마시면서 나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소주 한 병을 다 마시기도 전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서설이었다. 조짐이 좋았다. 첫눈이 나의 고심을 다 씻어주리라 믿었다. 첫눈을 맞이하기 위해 몰려나온 젊은이들로 거리는 시끌벅적했다.
채 대위에게 제호를 바꾼 학회지가 소속된 연구기관 홈페이지에 논문을 올리라고 알려 주었다. 격오지 군의관 한 명과 녀석이 채 대위의 논문을 비판하기 전까지 내 계획에 차질은 없어 보였다. 채 대위가 논문을 올린 다음날 당번병이 빨리 의무사령부 게시판에 들어가 보시라고 했다.
게시판에 격오지 군의관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듣도 보도 못한 잡지에 권위 있는 국내외 학술지와 동등한 자격을 부여해 개인자력점수 2점을 주는 건 심히 부당하다, 홈페이지 게시판에 논문을 업로드하라는 지시를 마감 3일 전에 내렸는데 군의관 대부분이 이 사실을 몰랐다, 3편이나 올린 사람의 논문 중 한 편은 미국 논문을 번역한 거던데 이건 표절이 아니라 도둑질이다, 무조건 철회시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동의한다는 댓글도 많이 달려 있었다. 4점만 따도 충분했으므로 채 대위에게 얼른 지적받은 논문을 내리라고 지시했다. 아, 진짜.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번역해서 그대로 올리면 되나?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급해서 그랬나? 적당히 짜깁기를 해서 표시가 안 나게 해야지 그대로 올리면 어쩌자는 건지. 하루 사이에 미국 논문을 찾아낸 군의관도 보통이 아니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아내가 깨지 않도록 살그머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하늘에는 아무렇게나 흩뿌려 놓은 모래알처럼 많은 별이 떠 있었다. 작은곰자리 속 북극성이 빛났다. 별자리 이름도 별 이름도 인간이 지었다. 신들의 이름조차 인간이 지은 것이다. 문명은 작위에 기초하고 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된다. 그러니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것이다. 이기자 정신으로 군 생활을 해 왔고 늘 이기는 게임만 했다. 군의관이 알바를 하다가 걸렸을 때도, 골프를 너무 자주 치다가 걸렸을 때도 내가 모두 해결해 주었다. 언론에서 아무리 시끄럽게 떠들어도 시간이 지나면 유야무야되게 마련이었고, 나는 방첩사령부와 잘 타협함으로써 군의관들이 처벌받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이따위 논문은 사건도 아니었다. 교류를 위해 쓴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을 것도 아니고, 노벨의학상을 받을 것도 아니지 않는가. 논문이 문제를 크게 일으킬 것이라는 예측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채 대위와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군의관 두 명도 논문을 올렸는데 그들은 자진해서 논문을 내렸다. 군의관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요즘 군대에서 상급자 노릇을 하는 건 정말 힘들다. 일반 사병조차 자신이 군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했는지 하고 싶은 말 다 할 뿐만 아니라 온갖 사유로 소원 수리를 한다. 소대장이나 중대장들이 못 해 먹겠다고 난리다. 사관학교 지원자나 간부후보생 지원자나 ROCT 지원자가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군의관은 전문의들이니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서 이래라저래라하기도 어렵다. 직업군인의 경우 강제 전역이 가장 큰 처벌이지만 전문의인 군의관들의 경우에는 오히려 가장 큰 유익이 된다. 일찍 나가서 개업하거나 취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채 대위의 전화를 받았다. 어젯밤 녀석이 채 대위에게 전화해서 내리지 않은 두 개의 논문도 문제가 많으니 모두 내리고 자기와 맞바꾸자고 했다는 것이다. 녀석이 복무하고 있는 곳도 서울 옆에 있는 1급지로 모든 군의관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이었다.
-자알 됐네. 그렇게 했지?
-아뇨, 거절했어요.
-왜?
나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채 대위는 왜 잔류를 고집하는가. 3년 차에는 모두 서울에서 가까운 곳에서 복무하기를 원한다. 대학병원의 임상 강사가 되려면 자주 병원에 찾아가서 교수에게 눈도장도 찍고 다른 스텝들하고도 관계를 잘 맺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채 대위는 서울로 가지 않으려고 하는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의문이었다.
-하여간 저는 여기 있을 거예요.
-도대체 왜? 너 연애하냐?
-…….
-맞구나, 여자 때문이구나.
-할 말 없어요.
채 대위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시건방진 자식 같으니라고. 사랑 때문이라고 해도 그렇지 지가 먼저 전화를 끊으면 되나? 사랑이 대체 뭐길래. 아낌없이 주는 거? 소유욕? 승부욕? 내게 사랑의 정의가 뭔지 묻는다면 이겨서 소유한 후 아낌없이 주는 거라고 답하겠다. 내가 그랬다. 진실한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 거짓을 먹고 꽃을 피우는 게 사랑이다. 거짓인 줄 알면서 속아주고 거짓을 행하면서 행복감을 느낀다. 그러니 사랑의 필요조건은 거짓인 셈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자신을 속이고 상대를 속인다.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제일 멋지다고 입버릇처럼 거짓말을 속삭이고, 맛없는 음식도 맛있게 먹어준다. 소유욕이야말로 사랑의 가장 큰 속성이다. 가지지 못하는 사랑이 무슨 가치가 있나. 사랑이기에 반드시 이겨야하는 것이다. 패배자에겐 좌절과 상실과 상흔만 남는다. 채 대위가 이해되면서도 화가 났다. 군대에서 부하가 상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저런 시건방진 자식들 때문에 나도 의사가 되었다. 국가는 장기군의관 양성을 위해(3년만 복무하는 군의관은 단기군의관이라 부른다) 사관학교 생도 중에서 성적이 우수한 생도를 뽑아 의대에 보내 주었다. 학비도 무료라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되었다. 의사 면허(일반의)를 따고서도 내가 군의관으로 복무하지 않은 이유는 병원보다 군대라는 조직이 내 체질에 더 잘 맞기 때문이었다. 의사 면허가 있어서 그런지 전문의랍시고 잘난 척하는 군의관들을 보면 배알이 꼴린다.
채 대위의 전화를 받은 다음 날 아침 의무사령부 게시판에 내리지 않은 두 편의 논문 중 하나와 관련해 또 다른 글이 올라왔다. 올린 사람은 녀석이었다. 녀석은 채 대위의 논문은 논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연구 가설도 세우지 않고 연구 방법도 제시하지 않은 채 의무사령부에서 내려보낸 공문에 서론과 결론만 붙인 잡문이라는 내용이었다. 육해공군 군의관들이 모두 녀석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댓글을 달았다. 채 대위 논문에 2점을 주는 건 도둑놈에게 표창장을 주는 격이라거나, 군바리들이 너무 무식하다거나, 웃대가리들이 문제라는 댓글이 1,000개에 육박하고 있었다. 나는 군바리들이 너무 무식하다는 문장을 읽는 순간 피가 머리로 솟구쳐 오를 만큼 심한 굴욕감을 느꼈다. 채 대위의 아버지인 장군도 불같이 화를 내며 나를 질책했다.
나는 채 대위에게 전화해서 녀석의 제안대로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다시 한번 물었다. 가장 쉬운 해결 방안이었다. 둘 다 일급지니 맞바꾸면 되는데 채 대위는 안 된다고 고집을 부렸다. 예상대로 채 대위는 연애 중이었다. 연애가 아니라 짝사랑 중이었다. 여자는 채 대위 병원에서 8km 정도 떨어진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였다. 외과 전문의인 그녀는 병원에서 콜이 오면 바로 달려가야 한다면서 늘 병원 2km 거리로 채 대위를 부른다고 했다. 지난번 첫눈이 내리던 날 파도 소리가 들리는 카페에서 바다 위로 떨어지는 눈을 그녀와 함께 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낙상이나 교통사고 환자가 들어올 수 있다면서 거절하더라는 것이다. 수면에 내려앉은 새들이 눈을 맞으며 물살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과 모래톱에 쌓인 눈을 파도가 쓸어가는 광경을 혼자 보고 있자니 눈 내리는 바닷가에서 커피 한 잔 못 마셔 주는 그녀가 자기를 보기 위해 먼 길을 올 리 없어서 잔류를 선택했다는 거였다.
-의사라며? 서울 병원에 취직하면 되잖아?
-지방대 출신이라 서울 가서 차별받기 싫대요.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를 하고 싶었는데 모두 떨어졌대요. 그래서 그냥 지방 병원에 있겠대요.
-그때는 그때고, 취직하는 건 다르잖아.
-제 맘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취직할 병원까지 알선해 주었는데도 싫다니 어쩌겠어요?
청춘의 불같은 열정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사랑 때문이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일이 편해서 같은 이유를 댔다면 진짜 화가 났을지도 몰랐다.
총장의 질책도, 육해공 군의관들의 비아냥거림도, 탄원서를 보낸 오지 군의관들의 불만도 모두 잠재울 복안이 있었다. 물론 녀석의 희생이 따라야 했다.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은 부당한 조치가 아니다. 군대를, 사회를,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필요불가결한 조치다. 그런데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논문 재심사 회의에 참석한 방첩사 중령이 툴툴거렸다. 도대체 자기를 왜 불렀느냐며 의아해했다. 논문 게재 기관인 산하 연구소 기관장도 냉소적인 눈빛으로 나를 보며 이런 일에 연루되기 싫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런 대접은 받아본 적이 없었다. 녀석의 마음이 바뀌도록 설득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야, 의무사령부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그냥 내려. 그러면 네가 원하는 곳으로 보내 줄게. 1년만 있다가 전역하면 되잖아. 논문? 논문이 그렇게 중요해? 너는 군진의학회지에 논문을 실었더구나. 그러면 됐잖아. 나는 진짜 네가 이해가 안 되거든. 도대체 왜 이리 일을 크게 만드냐? 홈피 댓글이 2,000개가 넘고, 총장 앞으로 날아든 투서가 수십 장이다. 어찌 책임질래?
-제가 왜 책임을 집니까? 지금이라도 채 대위가 논문을 내리게 하면 잠잠해질 일인데. 모든 군의관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니 댓글이 2,000개가 넘는 거 아닙니까? 첫 단추를 잘못 채웠다는 걸 깨달았으면 풀고 다시 잠가야죠. 저는 실장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학자로서 의사로서 군인으로서 떳떳해야 합니다. 몇 줄만 베껴도 표절인데 외국 논문을 번역하고, 공문에 서론과 결론만 붙이고,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을 적당히 고쳐서 1저자로 이름을 올리고,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누가 모르냐? 그거는 채 대위가 책임져야지. 일생 꼬리표가 될지도 모르는데도 지가 그리 하겠다잖아. 무슨 사연이 있을 거라고 이해해 주면 안 되냐?
-이해해 줄 게 따로 있지 논문은 영원히 남는 겁니다. 검증받기 위해 쓰는 거고.
-그래서 기어이 글 안 내리겠다는 거지?
-못 내립니다.
-네가 생각이 짧았다는 말도 절대 안 하겠네?
-저는 최선의 제안을 했습니다. 논문 내리고 저하고 맞바꾸자고요. 지금 전국적으로 전화가 오고 가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대안을 제시했는데 채 대위가 거절한 거잖아요. 그런데 왜 제게 글을 내려라, 생각이 짧았다고 사과해라, 이런 부당한 지시를 내리시는 겁니까? 실장님이 늘 강조하시던 군인정신과도 안 맞잖아요. 원칙대로 정의롭게 하는 게 군인정신이라면서요? 평소 실장님이 하신 말씀은 모두 빈말인 셈이네요.
이런 젠장. 말문이 막혀서 대답을 못한 채 전화를 끊었다.
이제 내 방식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녀석의 부대장에게 전화해 조금이라도 잘못한 게 있으면 처벌하라고 지시했다. 며칠 후 돌아온 대답은 처벌할 수 없습니다 였다. ‘처벌할 게 없습니다’가 아니라 ‘처벌할 수 없습니다’라니. 녀석의 근무 평점은 아주 우수했다. 의사로서도 실력이 있었고, 환자들에게도 친절했다. 다만 한 가지 잘못이 있기는 했다. 출퇴근 카드가 제대로 찍혀 있지 않았다. 문책 사유였다. 사유가 있는데 왜 그냥 두었느냐고 물었더니 퇴근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논문을 쓰고 공부하느라 진료실 침대에서 먹고 자고 했다는 것이다. 녀석의 일상을 아는 군의관들이 모두 들고 일어나는 통에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대답이었다.
냉정하고 이성적인 데다 성실하고 협박도 통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일수록 인정에는 약하지 않을까? 나는 녀석의 감성에 호소하기로 했다. 채 대위를 불러서 작전을 짰다. 월요일 아침 채 대위가 작전 성공을 알려 왔다.
-축하해. 뭐라고 했냐?
-논문 모두 내렸다고. 어떤 불이익이든 내가 다 받는다고. 그런데 부탁이 있다고. 게시판에 온통 나를 비난하는 댓글뿐이라 너무 괴로워서 잠도 못 자고 밥도 안 넘어간다고. 제발 부탁이니 삭제해 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한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이렇게 말했어요. 그랬구나. 음, 나도 미안하다. 학회에서도 계속 만나야 하고 평생 보고 살아야 하는 사이인데 전에 말했던 거처럼 너랑 나랑 맞바꾸자. 논문 없어도 네 아버지가 그 정도는 해 주실 거잖아, 라고요. 나는 그냥 고맙다고 했어요.
의무사령부 게시판에 들어갔더니 녀석의 글은 이미 삭제되어 있었다. 2,000여 개에 달하는 댓글도 모두 사라졌다. ‘앗싸’라는 환성이 절로 나왔다. 어리석기는, 얼마나 중요한 자료인데. 너무 쉽게 삭제되어 허전할 정도였다. 착한 놈 코스프레하는 인간 다루기가 제일 쉽다는 사실을 진작 알았더라면 머리를 싸매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나는 채 대위에게 당장 본부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나는 채 대위에게 미리 작성해 둔 고소장을 내밀었다. 김영란법 제8조 1항과 관련해 법리 검토까지 마쳐 두었다. 이 조항 위반자는 같은 법 제22조에 입각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채 대위는 자세히 읽어보지도 않고 바로 서명했다. 그리고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받았다. 고소장 접수와 고소인 조사가 동시에 이루어진 셈이다. 혐의 사항은 교류지를 맞바꾸는 조건으로 녀석이 채 대위에게 매달 백만 원씩 총 천이백만 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는 것이었다. 총장에게 결재를 올렸고, 투서 때문에 머리가 아프던 총장은 헌병대에 즉시 조사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헌병대는 7일 만에 녀석을 입건했다. 이제 채 대위의 잔류는 떼 놓은 당상 같았다. 문제는 녀석의 엄마였다. 녀석이 입건되자 녀석의 엄마가 정보공개 청구를 시작했다. 당해 연도와 전년도의 군의관 인사운영지시서, 유관기관 학술지의 논문 게재 기준과 심사 과정, 방첩사령부의 업무편람, 의무사령부 홈페이지 백업 DB에서 삭제된 녀석의 글과 댓글을 찾아서 보내달라 등등.
사건과 관련해서 이렇게 많은 전화를 받은 건 처음이었다. 본부 정보공개 담당자, 방첩사령부, 의무사령부, 논문발행처에서 항의가 쏟아졌다.「방첩사령부 업무편람」공개를 요청하는 바람에 왜 이런 청구를 했는지 묻는 과정에서 내가 녀석을 방첩사령부로 보내겠다고 협박한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 회의에 참석했던 방첩사 중령은 논문 재심사 회의에 왜 참석했는지 소명서를 냈고, 상부로부터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질책을 받았다. 의무사령부에서는 삭제된 녀석의 게시판 글을 백업 데이타에서 확인해 달라는 민원이 들어왔는데 백업을 안 한다고 하면 관리에 문제가 있다고 할 것이고, 백업한다고 하면 게시글을 줘야 하니 백업하지 않는다고 답변은 하겠지만 이런 일로 문제를 만들지 말라고 했다. 논문발행처는 채 대위의 논문이 업로드된 페이지를 닫았다고 했다. 하나를 주면 또 하나를 요구하는 식으로 정보공개 청구는 끝없이 계속되었다.
교류지를 발표할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다. 전문의인 군의관의 경우 결혼한 사람도 많아서 적어도 4주 전에는 교류지를 발표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에 휘말리기를 원치 않았던 인사처는 4주 전에 복무지를 발표하던 관례와 달리 신임 군의관은 7일 전에, 교류대상자는 3일 전에 복무지를 발표했다. 군의관 애인과 아내들 모임인 포털 사이트 카페에 이사는 언제 하느냐는 원성이 줄을 이었다.
개인자력점수가 낮은 채 대위는 잔류는커녕 행정 업무만 하는 곳으로 배치되었다. 녀석이 채 대위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인사과에서 함구령을 내린 덕분에 미리 손쓸 기회가 없었다. 예전 같으면 영창에 보내는 거도 일도 아니었는데 이제는 교류지역 하나 마음대로 조정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울화가 치밀었다. 어떻게 하면 녀석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줄지 고심하고 있는데 총장이 호출했다. 총장이 내 앞으로 내던진 건 녀석의 엄마가 보낸 내용증명이었다. 군의관 인사운영지시서 개정 과정 및 이유(교류점수가 낮은 채 대위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 인사운영지시서를 개정한 건 아닌지), 개정 주체가 누구인지, 총장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묻고, 내 아들이 1주일 만에 입건된 건 총장의 지시에 의한 특명 수사라서 그렇다던데 위에 열거한 사건도 특명으로 재조사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내가 녀석을 방첩사로 보내겠다고 협박한 통화 녹취록도 첨부되어 있었다. 언론에 보도된 제법 큰 사건의 경우에도 “똑바로 해” 정도로 한마디 하고 넘어갔는데 이번에는 총장이 화를 냈다.
총장은 녀석의 모친까지 포함해서 사건을 다시 수사하라는 지시를 헌병대에 내렸다. 의무사령부 게시판을 들끓게 하고, 총장에게 수 없는 탄원서가 날아들게 하고, 정보공개 담당자가 쉬지 않고 시달리도록 한, 교류 참사라고까지 불린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은 나일까, 채 대위일까, 아니면 채 대위의 아버지일까. 녀석이 무사히 전역한다면 내가 독박을 쓰는 셈이 된다. 의무실장으로서 맡은 바 책임을 소홀히 한 적이 없었다. 알바하다 걸린 군의관이나 골프치다 걸린 군의관이 처벌받지 않도록 하는 일도 나의 중요한 업무였다. 의무대장으로서 나의 권위는 무소불위에 가까웠다. 논문에 대한 녀석의 고집과 방첩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녀석의 엄마 때문에 나의 권위가 심하게 도전받고 있었다.
재수사가 시작되자 군의관뿐만 아니라 부사관들도 줄줄이 조사를 받았다. 재수사 결과는 채 대위에게 불리했다. 군의관들은 자신의 점수에 맞춰 1지망, 2지망, 3지망으로 희망 교류지역을 써서 낸다. 희망 지역을 써 내기 전 정보를 얻기 위한 군의관들의 전화가 전국적으로 오갈 때 채 대위가 잔류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주고받은 카톡 내용이 부사관 휴대폰에서 발견되었다.
수사를 마치고서도 헌병대는 사건을 군검찰로 이첩하지 않고 계속 쥐고 있었다. 이 사건의 판결이 어떻게 날지 내부의 관심이 지대했다. 녀석이 처벌받는다면 김영란법으로부터 자유로울 사람이 거의 없었다. 돈을 준 것도 아니고, 주겠다고 약속한 것도 아니고, 최대한 돕겠다고 했을 뿐이었다. 녀석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자료는 채 대위 카톡에 남은 메시지였다. 교류지를 바꾸자는 통화가 오갈 때 녀석은 아파트 전세가와 외식비와 문화 시설 같은 인프라에 대한 정보를 채 대위에게 주면서 맞바꾸기만 하면 최대한 돕겠다고 썼다. 나는 미리 작성해 둔 고소장에서 최대한 돕겠다는 말을 금전적인 보상을 하겠다는 의미로 이해했다고 적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여름날 채 대위의 아버지가 퇴역 장군이 되었다. 승진하지 못했으므로 옷을 벗는 수밖에 없었다.
9월 중순이 되어서야 헌병대는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군검찰로 이첩했다. 가을빛이 완연해야 할 개천절이건만 기온이 섭씨 31도까지 올라갔다. 한여름처럼 끈적거리는 날이 지루하게 이어졌고 아침저녁으로 안개가 짙게 끼었다. 검사는 10월 말이 되어서야 녀석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채 대위가 전화해서 강력하게 항의했다.
-기소유예 받게 하려고 제가 고소장을 낸 건 아니지 않습니까? 실장님이 하신 말과 완전히 다르잖아요. 나만 불이익을 받은 셈이잖아요.
-녀석의 엄마가 얼마나 끈질긴지 몰라. 끝없이 정보공개 요청을 하고 있어. 방첩사는 이제 좀 그만하시라고 그 여편네에게 전화해서 몇 번이나 사정사정했다더라. 나 스타일 팍 구겼다.
-연말에 전역하신다면서요. 나만 완전히 새 됐네요.
녀석은 키가 크고 귀티 나는 얼굴이었다. 홀어머니를 부양한다고 해서 가난한 집의 수재쯤으로 여겼는데 그 엄마의 자식 사랑이 보통이 아니었다. 과부인지 이혼녀인지 모르겠으나 외아들에 올인한 건 분명해 보였다.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못할 짓이 없는 존재가 엄마라는 사실을 간과한 게 패착이었나, 아니면 논문에 대한 녀석의 신념을 무시한 게 패착이었나. 채 대위의 좌절보다 내가 받은 타격이 더 크건만 저만 새 되었다고 하니 기가 찼다.
-뭔 말을 그리 서운하게 해? 나도 지는 건 질색이야. 너 같은 은수저는 온실에서 자라서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큰일 난 줄 알지? 폭풍우가 몰아칠 때는 말이야 피하려고 하지 말고 한가운데 우뚝 서서 비바람을 즐겨야 하는 거야. 죄는 있는데 기소하지 않는다는 게 기소유예잖아. 죄가 없으면 기각이 되었어야지. 죄를 지은 놈이니까 징계하라고 공문 내려보낼 거야. 나도 그 새끼 잘되는 꼴은 못 봐. 공문 받고 징계 안 할 부대장이 있나?
나는 채 대위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도대체 이놈은 반성의 기미가 없다. 빈말이라도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모든 문제가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인식 자체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연말에, 채 대위와 녀석은 내년 4월에 전역한다. 몇 달만 지나면 이 모든 일이 부대원들의 관심에서 사라질 것이다. 세월이 지난 뒤에 그런 시절이 있었지, 하며 웃어넘길지도 모른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녀석과 마주칠 수도 있다. 그런 날이 오면 반가운 마음으로 소주를 마시며 소회를 나눌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지금은 반드시 이겨야 했다.
전역하기 전 채 대위를 만나서 물어보고 싶었다. 너의 그 대단한 사랑은 어찌 되어가고 있느냐고. 나는 채 대위가 사랑의 승자가 되기를 바랐다. 진작 내게 털어놓았다면 이기게 해 줄 수도 있었는데. 사랑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진실보다 거짓에 기반한 게 사랑이니까. 녀석이 논문에 진심이었다면 채 대위는 사랑에 진심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사랑의 필요조건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채 대위 부대가 가까워지자, 아지랑이처럼 안개가 피어올랐다. 도로변의 산과 들이 수채화 속 정경처럼 아련했다.
오랜만에 보는 채 대위의 얼굴이 수척했다. 까칠한 얼굴이 안타까워서 네 사랑은 어찌 되었느냐고 차마 묻지 못했다.
-그 새끼 부대로 징계하라는 공문 내려보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앞으로 일은 네가 알아서 해.
-안개가 말입니다.
채 대위가 뜬금없이 안개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매일 안개가 끼어요. 을씨년스럽고 축축한 안개 속을 걸어서 출근하고 퇴근해요. 며칠 전 발밑도 보이지 않을 만큼 안개가 짙게 깔린 날이었어요. 그녀가 문자를 보냈어요. 제 관심이 부담스러워서 그만 만나고 싶다더군요. 달랑 한 문장으로 이별을 통보했어요. 전화도 받지 않고 카톡도 읽지 않아요. 당장 달려가서 이해를 구하고 싶은데 그녀를 설득할 자신이 없어요. 안개 속에서 매일 생각해요. 안개가 세상을 삼켜버리면 좋겠다고. 스티븐 킹의 <미스트> 아시죠? 영화도 있는데. 하얀 안개 속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가는. 그랬으면 좋겠어요.
정신 차리라는 말이 입안을 맴돌았으나 내뱉지는 않았다.
-미스트(mist)를 사전에서 찾으면 박무라고 나와 있거든요. 농무는 thick fog죠. 스티븐 킹은 미스터리와 발음이 비슷해서 ‘미스트’라고 제목을 지었나 봐요. 박무라는 제목과 달리 소설 속의 안개는 불투명하고 짙은 하얀 안갠데.
-실제 현상과 이름이 같은지 다른지는 중요하지 않아. 작가의 의도가 더 중요하지. 안 그래?
-아닙니다. 현상과 이름의 차이가 너무 크면 안 되죠. 헷갈리잖아요. 모든 게 혼란스러워요.
채 대위는 자신이 혼란을 자초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정보공개 청구에 얽힌 조직이 몇 개나 되는지, 투서를 쓴 군의관이 몇 명이나 되는지, 수사에 동원된 헌병은 몇 명인지, 부사관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조사를 받았는지 모른다는 말인가? 사랑이 이성과 판단을 가리나? 하기야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나도 그랬다. 그녀를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그녀의 직장과 집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우연을 가장해 마주치기도 했다. 하루 종일 그녀 생각만 떠올랐다. 훈련 중에도 수업 중에도 잠자리에 들어서도. 자유가 없는 사관학교 생도 생활이 견딜 수 없이 싫었다. 채 대위처럼 어이없고 허망한, 어쩌면 모욕적이기까지 한 이별을 맞았다면 탈영했을지도 몰랐다. 다행히 아내는 채 대위의 여자처럼 차가운 사람이 아니었다. 공감과 연민을 느끼면서도 채 대위를 위로할 수가 없었다. 내게 너무 큰 오점을 남겼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실패한 조정 작업이었다. 곧 사회에 나가니 마지막 실패이기도 했다. 새롭게 시작할 의사라는 직업이 군대에서의 과오를 잊게 만들지도 모른다. 이때까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의사 일도 훌륭하게 해낼 것이다.
어둠이 내리는 속도보다 안개가 짙어지는 속도가 빨랐다. 농무(濃霧)라는 단어가 실감날 정도로 짙은 안개가 몰려왔다.
채 대위는 멍때리고 앉아서 창밖의 안개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채 대위의 어깨를 한번 두드린 후 말없이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