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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론을 기다리며

한국문인협회 로고 송경하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봄호 2025년 3월 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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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사람 환자가 들어왔다. 휠체어에 앉은 환자는 오랜 병마에 시달린 듯, 고개를 모로 박고 미동도 없었다. 여명 시간이 얼마일까, 환자를 보는 순간 떠올려진다. 여명 시간이 짧은 순서대로 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대기자 명단에 올려놓고 차례가 되기 전에 운명을 하기도 한단다.

이곳 호스피스병동으로 오는 환자 대부분이 치료가 무의미하고 연명, 즉 모르핀이나 펜타닐에 의지해 고통을 잊고, 생의 마지막 시간을 평온하게 갖기 위해 들어오는 게 대부분이다. 가족들 그리고 그간 살아온 생과의 아름다운 이별, 이승을 존엄하게 떠날 준비를 위해… 태어나면서 약속 받은 유한 시간을 존엄하게 갈무리하고 아름답게 떠난다는 건 어떤 것일까.

젊은 남자가 휠체어를 밀고 병실 침상 앞까지 들어왔다. 창가 쪽 침상이다. 그 침상에 있었던 환자가 임종실로 옮겨간 후 청소 담당 봉사자들이 달려들어 소독과 청소를 하더니 대기하고 있었던 듯, 바로 또 이 환자가 들어온 것이다.

임종실로 옮겨간 환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시 병실로 돌아오지 않은 걸 보면 운명을 하고 영안실로 갔거나, 장례를 치르기 위해 가족들에게 인계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곳 환자들 대부분이 이승을 하직하는 수순이다.

호스피스 병동은 삶과 죽음 사이에 가로놓인 아케론 강을 건네줄 늙은 뱃사공 카론을 기다리면서 잠시 머무는 플랫폼이다. 병동의 존재를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규모가 큰 병원 내, 여러 병동 중에서 지정을 하지만 어느 병동인지는 의료종사자 외에 아무도 모른다. 출입자도 엄격히 관리해 지정한 요양보호사와 법적보호자로 제한한다.

지금 이 환자도 생명유지장치를 달고 휠체어에 태워져 들어왔지만, 여명의 시간마저 소멸되고 나면 사라진 시간과 함께 주검이 되어 하얀 시트를 덮은 이동 침대에 실려서 정해진 수순대로 한 줌 재가 되거나, 가족 묘지에 묻히거나 하겠지. 살아온 모습은 다를지라도 마무리는 대부분 비슷하다.

젊은 남자가 침상 머리맡에 휠체어를 멈추어 놓는다. 그때까지도 환자에게서는 살아 있다는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호스피스 전문 간호사, 간호조무사, 그리고 이송 담당의 젊고 건장한 체격의 남자 직원이 달려들어 휠체어에서 환자를 빼내려 하지만 시체 같은 중환자를 침상으로 옮기기가 무척 힘이 드는 모양이다.

침상으로 옮겨진 환자는 편안하게 눕혀 자세를 잡아준다. 그때서야 환자도 고통스러운 듯,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들이 쉬는 숨소리가 거칠다.

간병인이 손에 환자복을 들고 들어왔다. 호스피스병동 로고가 새겨진 환자복이다. 깡마른 몸피에 환자복이 헐렁했다.

잠시 뒤 주치의가 들어와 환자의 상태를 살핀다. 의료진 모두 마스크로 얼굴을 절반이나 가리고 눈짓으로 무언가 주고받는다. 꺼져 가는 생명의 불꽃을 바라보는 눈빛치고는 퍽 건조해 보인다. 환자에게는 생과사의 갈림길이지만 그들에게는 일상이니까, 생의 끝자락에 닿아 있는 그들 앞에서 자신들의 일상을 이어갈 멘탈을 붙잡으려는 그들만의 전략인지도 모른다.

그런 다음 링거거치대에 링거병을 걸어 놓고 연명치료장치인 인공호흡기를 바꿔 씌어준다. 들어오자마자 고통스러워하는 환자에게 의사의 지시에 따라 간호사가 통증완화제(모르핀)와 수면제를 주사해 준다. 그러면 대부분 환자는 통증을 잊고 편안하게 잠을 잔다. 이번에 들어온 환자의 잠든 모습은 야위어서 윤곽이 뚜렷해진데다 창백한 뺨이 소년처럼 애잔하게 보이기도 했다. 환자가 잠이 들자, 휠체어를 밀고 왔던 아들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퍽 담담한 시선으로 환자를 내려다본다. 그러다 의료진들이 밖으로 나가자 따라 나갔다.

환자는 희미하게 호흡 소리를 내면서 진통제의 효과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옥분은 아까부터 잠든 환자의 모습에서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기시감에 사로잡혀 눈을 뗄 수가 없다. 옥분의 침상과는 대칭을 이루는 창가 쪽 구석진 자리 침상이다. 침상 사이에 칸막이 커튼이 있지만 낮 시간대에는 한쪽으로 밀어 놓은 채 열려 있다. 커튼을 밀고 당길 때 발생하는 소리마저도 꺼져 가는 생명줄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환자들에게는 거슬리는 소음일 수 있고 또 굳이 가려야 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

의료진이 병실을 나간 후 간호사와 요양보호사가 다시 들어오고 따라 나갔던 젊은 남자도 따라 들어와 잠든 환자 곁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담당 간호사가 전 병원에서 넘겨받은 의료 차트를 보면서 요양보호사에게 이것저것 환자의 상태를 알려주고 돌봄에 필요한 사항들을 일러준다. 특히 병원에서 제공해주는 환자식과 물 공급은 레빈 튜브를 통해 섭취시키는 것에 대해 세밀하게 설명하고 있다. 휠체어를 밀고 왔던 청년이 말없이 요양보호사와 간호사를 번갈아 쳐다보며 주고받는 말을 경청하듯 듣고 서 있다. 아들이 법적 보호자로 지정이 됐나 보다.

말을 마친 간호사는 환자의 신상이 적힌 라벨을 침대 옆구리에 붙여 놓고 나갔다.

창문을 가리는 흰 커튼을 투과해 들어온 희미한 빛이 창백한 환자의 얼굴 위에다 그늘을 만든다. 움푹하게 들어간 눈자위, 뭉개지지 않고 모양을 지키고 있는 콧방울. 옥분은 한참을 넋 나간 듯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 침상 머리맡에 걸려 있는 환자의 이름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름 이웅철, 성별 남, C34 carcinoma(폐암), 옥분은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하면서 야릇한 기분에 휩싸인다. 기시감 있는 얼굴에 분명한 이름, 얼굴에서 변하지 않고 웅철이라는 확신을 갖게 하는 건 여전히 원형 보존이 잘 되어 있는 그의 둥그스름하게 맺힌 콧방울이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이 야위어진 얼굴이지만 콧방울만은 주저앉지 않고 그대로였다. 옥분은 기억 속에서 떠오르는 한 사람, 고향 마을에서 남몰래 함께 사랑을 키워왔던 그 첫사랑 웅철이오빠, 라는 확신이 들자 병마에 찌들고 녹이 슨 감성이 새롭게 작동하듯 마구 뛰기 시작한다. 옥분은 잠깐의 고통을 잊은 채 지난 시간 속으로 빨려든다.

시골마을에서 유일한 고등학교인 옥분이 다녔던 학교는 남녀공학이었다. 그리 크지 않지만, 근동에 있던 서너 마을의 또래 학생들이 모여든 학교였다. 옥분이 갓 입학했을 때 웅철이 3학년이었다. 채 중딩 티가 가시지 않았던 옥분에게 고3 오빠는 제법 늠름해 보였다. 사유와 지성미가 있어 보였다. 웅철은 퍽 사색적이고 문학적이었다. 도서관에서 자주 마주치던 웅철과 옥분, 마을에서는 집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웅철의 집은 마을길이 끝나는 뒷골이었다. 별로 만나지 못했었는데, 급진적으로 친하게 된 건 문학반 동아리였다. 당시 동아리에는 신입생이 옥분뿐이었다. 웅철이 옥분을 유난이 챙겼다. 등교 때는 웅철이 옥분 집 담장 밑에서 옥분이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같이 갔고, 올 때는 옥분이 먼저 수업을 마치면 도서관으로 가서 웅철을 기다렸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어느새 우정인지 풋사랑인지 모를 감정이 커가고 있었다.

그 낌새를 맨 먼저 알아차린 건 집안의 규율부장 격인 옥분의 큰오빠였다.

“출생신고서에 잉크도 안 마른 것들이 연애질이야, 내 이 가스나를 요절을 내놔야지.”

사실 웅철의 집안은 이 마을에서는 난뎃사람이다. 김씨 성이 일촌을 이루고 사는 동네에 이씨 성을 가진 웅철이네가 들어와서 사는. 말하자면 뜨내기, 당시로서는 그걸 보고 근본을 알 수 없다거나 혹은 살던 마을에서 나쁜 짓을 저지르고 야반도주한 경우가 아니겠는가 하면서 의혹의 눈초리로 경원시했었다.

웅철은 고교 졸업 후 서울로 대학 진학을 했었고, 그 후로도 마을에 내려오면 옥분과 자주 만나서 꼭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로 진학하라고 응원도 해주고 애틋한 정을 표현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웅철 아버지가 죽자, 남은 가족들은 웅철이 있는 서울로 이사를 갔고, 마을과는 왕래가 끊어졌다.

옥분은 긴 시간이 흐른 지금 정의하기 어려운 미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병마에 잠식되어 허물어져 가는 육신으로 그를 마주하다니….

환자 웅철이 눈을 떴다. 그도 옥분을 보고는 자신의 얼굴에 머물러 있던 옥분의 시선을 느낀 것 같았다. 암 환자들은 순간순간 몰려오는 통증에 육신은 메말라 가지만 의식은 예민했다. 눈길이 옥분의 침상 머리 대에 붙어 있는 명패로 옮겨간다. 그리고 이름을 확인한 눈길이 다시 옥분 얼굴 위로 옮겨온다. 옥분 역시 여러 번 이어진 항암치료로 머리카락 한 올 없이 민들해진 머리에도 그는 옥분의 맑은 눈동자로 옥분을 알아보는 걸까. 거기다 이름까지 확인을 하고는 놀라움과 반가움의 표정이 엉킨다. 옥분도 긴 시간 속에서도 사위어지지 않고 남아 있는 웅철에 대한 연정으로, 부풀어 오른 가슴을 누르면서 고개를 끄덕여 반신반의하는 웅철의 기억에 확신을 주었다.

“맞아요 나 옥분이예요.”

마음 같아서는 끌어안고 감격의 통곡이라도 하고 싶지만 웃음기 머금은 얼굴로 반가움만을 전했다.

웅철이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분간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옥분을 향해 손을 내민다. 하얗게 야위고 뼈만 남은 웅철의 손, 옥분도 손을 뻗어 잡았다. 서로의 기억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손으로 전해지는 감각이 싸늘하다. 다 타고 꺼져버린 재의 밍밍함만큼이나 시들어버린 들풀처럼 버석거린다.

“오, 옥부니… 맞지, 어찌 된 일이오.”

웅철이 힘겹게 말을 건넨다. 옥분이 자신의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웅철을 바라보면서 반가움과 기억의 경이로움에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웅철의 양 눈에서 눈물이 조르르 흘러 배갯잇을 적신다.

“웅철 오빠는요.”

조우의 인사는 서로를 확인만 하는 것으로 옥분도 휑하게 커다래진 눈망울 사이로 물기가 어린다. 서로의 영혼과 영혼이 맞닿은 곳에서 마음을 뚫고 나오는 눈물이다.

환자가 그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때가 바로 진통제 약효가 떨어졌을 때이다. 그러고 나면 다시 참을 수 없을 만큼의 통증이 찾아온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주기는 짧아지고 죽음에 임박하면 진통제마저 효험이 없어진다고 한다.

호스피스 병동에 근무하는 간호사들은 일반 병실 근무자보다 더 노련하고 더 예민한 수간호사급이다.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진통제를 링거 약에 혼합해 사용한다. 그리고는 두 시간마다 링거병을 체크한다.

곁에서 웅철의 링거병을 바꾸어 걸던 김 간호사가 두 사람의 예사롭지 않은 모습에 눈길을 준다. 그리고는 곧 야릇한 표정을 보이더니 밖으로 나간다.

진통제가 혼합된 링거 약을 새로 교체 받으면, 그 약효가 유지되는 동안은 깊은 잠을 자거나, 쾌적한 기분으로 자신의 지난 삶을 정리하기도 하고, 자신의 종교 서적을 뒤적이면서 마약성 약물이 주는 평온의 시간을 갖는다.

호스피스 환자들은 가끔은 생명유지 장치를 제거할 만큼 호전되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대부분 처음부터 치료를 맡아왔던 주치의가 선고한 시한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 기한이 임박하면 임종기에 이른다. 주치의의 마지막 조치에 따라 모든 연명조치들을 제거한다. 그러면 환자는 조용히 미세한 호흡이나마 멈춘다.

앞 병실의 환자처럼, 그는 들어올 때는 다른 환자들과 달리 제법 기력이 있어 보였다. 대부분의 호스피스 병동으로 들어오는 환자들은 이승에서의 시간이 임박한 환자들이기에 주검처럼 휠체어에 쓰러져서 실려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앞 병실에 들어간 환자는 커다란 마스크를 눈언저리까지, 얼굴을 삼분의 이 가량이나 가리고 링거 거치대를 손으로 밀면서 휠체어 대신 자신의 발로 걸어서 들어왔다. 의아했다. 이 병동에서는 낯선 모습이기 때문이다. 입원할 환자가 자기 발로 걸어서 오다니…. 간호사와 간병인인 듯 중년의 여자가 뒤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불과 이틀이 지나자 그는 급속히 혼수상태에 빠져들었고, 사실상 주검처럼 변해버렸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이 예고 없이 일어나는 호스피스 병동, 거품처럼 꺼져 가는 마지막 생명의 불꽃들이 제 바람에 어느 순간 혹 꺼져버리기도 한다. 간호사, 요법치료사가 심각한 얼굴로 그의 침상 사이를 들락거리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간호사가 진정제를 놓아주고 요법치료사가 생명유지장치들을 걸었다. 링거 줄, 경관식 튜브, 소변줄, 환자는 눈을 뜨지 못하고 호흡을 하는지 멈추어 있는지 도무지 미동도 없고 신음 소리마저 멈춰 있었다. 불과 이틀 만에 상태가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생의 어느 지점에서 예고도 없이 찾아온 불청객, 병마와 맞닥뜨려 홀로 싸우기도 지쳐 신음 소리 낼 기력마저 소진되어 버렸는가. 의식은 없으면서 미세하게 맥박과 체온이 유지가 되는 상태다. 뇌는 죽었고 생명유지기관인 심장은 살아서 작동을 하는 경우다. 사망이라고 볼지, 생존이라고 보아야 할지 법적 문제가 대두되는 지점이다.

존엄사, 이번 환자를 두고 조심스럽게 존엄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는 말기 설암 환자였다. 설암, 혀에 암이 발생하는 흔치 않은 암이라고 했다. 암은 우리 몸 어디에라도 발생되는 병이지만 혓바닥에 생기는 경우는 드물단다.

왜 하필 혓바닥에 악성 종양의 씨가 발아되어 자라고 가지를 뻗어 혀 전체를 잠식해 버려 결국 혀를 잘라내는 수술을 했지만, 그 지독한 암세포가 다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가 몇 년 후 재발, 더 왕성하게 무한 증식을 해서 이와 잇몸을 잠식하고 입술 주위까지 뻗쳤단다.

목숨을 담보로 한 2차 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고, 제거해야 할 범위가 더 넓어져서 거의 턱 부위까지 제거를 하고나니 입 안과 입 주위가 동굴처럼 텅 비어 있는 상태였다. 통증을 호소하면 간호사가 와서 마스크를 교체해 주고 모르핀주사를 놓아주거나 산소 호흡기를 달아 주는 정도였다. 통증완화 조치만 하기에도 버거운 상태다. 실상은 별다른 조치가 무의미했다. 시간을 버틸 뿐이다. 저렇게 시간을 버티는 것은 차라리 형벌이다. 그는 법적 보호자도 없었다. 저러다 어느 순간 증후도 없이 호흡이 멎을 게 아닌가, 옥분은 괜히 그 환자가 불안하게 신경쓰였다. 죽음 앞에 서 있는 지금의 모습이 그가 살아온 시간의 완결판이라면 저 환자의 생이 그다지 의롭지 않은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생이 누구에게나 꽃으로 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면.

웅철은 이곳에 들어온 뒤로 간헐적으로나마 자가 호흡이 가능해질 정도로 차츰 회복세를 보였다. 그러자 인공호흡기를 제거했다. 인공호흡기 제거는 곧 사망에 이르렀을 때가 대부분인데, 웅철의 인공호흡기 제거는 자가 호흡이 가능할 만큼 호전되었기 때문이다. 기계의 도움 없이 자신의 폐로 숨을 쉬게 되다니. 그러다 또 급속히 호흡이 불안정해지면 간호사가 와서 인공호흡기를 다시 달아 주기도 했다.

웅철은 여기 오기 전 치료병원에서 주치의가 선고한 잔여 생명 유지 시간이 거의 소멸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상태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듯 보였다. 의료진들이 몰려와 웅철의 상태를 체크하면서 면밀히 살핀다. 가끔씩 아들이 찾아와 웅철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일상적인 얘기를 곧잘 했다. 그러면 아들은 아버지의 좋아진 상태를 보고는 고무되는 표정이 역력했다. 아버지가 조금씩이나마 차도를 보이는 게 기적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가느다란 희망을 품는 것 같다.

아들은 결혼을 했고 아내의 출산 예정일이 임박해 있는데, 아내의 출산과 아버지의 임종이 겹칠까 봐 조마조마하고 있었던 중이라 아버지가 인공호흡과 자가호흡을 반복하면서라도 생명연장이 되고, 손자가 태어날 때까지만이라도 살아 계셨으면 하고 실낱같은 기대를 하는 것 같았다. 웅철의 아들은 아버지와 만삭한 아내 사이를 오가며 시간을 조급하게 견디는 중이다.

옥분은 웅철 아들에게 아버지와는 같은 고향 친구였다고만 말해주었다. 아들에게 차마 서로 사랑했던 사이였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아직 다 사위어지지 않은 사랑의 잔불이 남아 있어서일까. 그의 아들에게 속마음을 풀어놓기가 왠지 쑥스러울 것 같았다.

하지만 아들은 이미 직감으로 알아차렸는지 두 사람이 단순히 친구를 넘어 연인 사이였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이곳 호스피스 병동으로 온 후로 분명 전 병원에서보다 오히려 표정이나 기분 상태가 가벼워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생의 끝자락에서 같은 병동에서 첫사랑을 만날 수 있을까, 기적 같은 일에 신기해하면서 옥분에게 퍽 친절했다.

일찍 가장이 된 아버지는 대학을 중퇴하고 고속버스 기사로 근무하다 병을 얻어 버스 기사 일도 중도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면서, 자기 위로 형이 있었는데 오토바이 사고로 죽고, 그로 인해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고, 자신의 가정사를 스스럼없이 아버지의 옛 연인인 옥분에게 풀어 놓았다. 벼랑 끝에서 만난 아버지의 옛사랑에 아들도 친밀감을 더 느꼈을까.

웅철이 간헐적으로 의식이 돌아오면 옥분을 불렀다. 옥분아, 옥, 부니…. 그리고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내민다. 옥분도 어느 순간부터 웅철을 예전처럼 오빠라 부르고 있었다. 병실 환자들은 의식이 있거나 없거나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어서인지 옛 첫사랑과 호스피스병실에서 조우하게 된 우연에 대해 행운이라거나 안타깝다거나 그다지 관심 갖지는 않는다. 곧 하직할 이승에서의 일에는 거의 마음이 떠난 중환자들에게는 그저 삭정이처럼 말라버리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얼굴, 하루하루 죽음의 시간과 맞닥뜨리는 고통만이 그들 앞에 있을 뿐이었다.

옥분과 웅철 본인들만 고향마을에서 물안개처럼 피어나던 사랑, 끝내 완성하지 못해 더욱 애틋하고 가슴 깊이 묻어 두었던 감성이 되살아나고 표현하기도 버거워 고작 손을 내밀고 맞잡아 주는 게 다지만, 가슴에서 일어나는 애틋한 정의 물결만이 조용히 파문을 일으킨다.

하필이면 이승과 저승 사이에 가로놓인, 죽음의 강을 건네줄 뱃사공을 기다리는 플렛폼에서 조우하게 될 줄이야. 몹쓸 병마에 시달려 망가지고 볼품없는 모습으로.

옥분도 유방암 재발 환자다. 옥분은 4차 항암치료까지 견디는 동안 머리가 뭉텅뭉텅 빠져 지금은 한 올도 남지 않아 마치 외계에서 온 ET 같다. 전 병원에 있을 때는 그래도 예쁜 모자를 쓰고 지냈는데, 이곳 호스피스로 온 후로는 거의 민머리로 지낸다. 머지않아 낡은 옷 벗듯, 벗어버릴 육신이기에 개의치 않았는데 웅철에게만은 예쁜 소녀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웅철이 들어온 후로는 가끔 예쁘게 화장을 하고, 예쁜 모자를 쓰고, 웅철이 모르핀 주사를 맞고 편안히 잠든 모습을 응시하기도 했다.

병세가 완화된 듯하다가도 어느새 곤두박질치듯 위험한 상태가 되는 게 말기 암 환자들의 특징이다.

길어야 두 달. 옥분이 이전 병원에서 받은 시한 기간, 짧으면 한 달 내에도 호흡이 멎고 심정지가 올 수도 있다고, 환자에게 삶을 정리하고 마음의 준비하라는 뜻에서 잔여 생존 기간을 알려준다. 옥분은 이미 두 차례나 심정지 상태를 겪었다. 그때마다 주치의가 달려와 인공호흡으로 숨을 끌어올려 이어 놨다. 참 질긴 게 생명줄이구나 생각하기도 하면서 꺼져 가는 생명의 빛을 붙잡고 버티는 중이다. 병마로 바짝 마른 몸을 봉사자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은 채 이곳 호스피스 병동으로 들어 온 지가 벌써 2주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처음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은 지점이 오십대 후반, 정확하게 쉰아홉살이었다. 그때까지 독신으로 살아온 옥분에게 유방암 3기라는 진단은 정말이지 청천벽력이었고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의사 네가 뭘 알아, 오진이야! 나 아직 미혼이라구! ’의사의 하얀 가운이 그렇게 무능해 보일 수가 없었다. ‘네가 뭘 알아’온통 의식을 사로잡은 생각이다. “암 조직이 한곳에 몰려 있지 않고 흩뿌리듯이 정상세포 사이사이에 점조직처럼 들어 있어 수술로 다 제거하기도 어려워요. 일단 유방을 지키는 쪽으로 치료 방향을 잡고 약물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병행하면서 지켜보자”고 의사가 말했을 때 옥분은 길길이 뛰며 분노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죄가 있어서 이런 벌을 받다니, 옥분은 미칠 듯이 억울했고, 분노에 몸을 떨었다. 신도 없어, 종교도 다 필요 없어. 옥분은 신실한 카톨릭 신자였다. 어렸을 적에는 수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부모의 지나친 기대와 아낌없는 지원을 받고 자란 옥분이 자신만의 희망대로 성녀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 특히 아버지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 말라고 심하게 만류를 했다. 그리고 부모가 제시해주는 방향대로 교사가 되었다.

자신의 직업에, 더 나아가 자신의 삶에 별 불만은 없었다. 늘 혼자만의 일상이 쾌적했고 그 나날들에 결혼도 잊고 안주했다. 그랬었는데 정년퇴임을 앞둔,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진단결과를 의사로부터 전해들어야 했다. “아니라고! 오진이라고.”머리를 쥐어뜯으며 억울해했다. “암은 누구라도 걸리는 겁니다.”의사는 최선을 다해 옥분에게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날이 조금씩 옥분도 분노를 소생에 대한 기대로 치환하면서 의사의 권유대로 치료에 협조했다. 머리칼이 뭉텅뭉텅 빠지고 온몸이 나릇하고, 팔다리가 부어서 피에로처럼 커지고, 입 안이 바짝바짝 마르면 밍밍한 물로 목을 적시면서 그 힘든 방사선 치료의 과정들을 견뎌냈다. 옥분은 자신에게 살고 싶다는 생에의 의지가 그렇게 충만해 있을 줄은 몰랐다. 병원에서 제시하는 모든 프로그램대로 따랐다.

그 결과 예후가 좋다고 했다. 암 세포들이 쪼그라들고 그 사이사이에 정상세포들이 자라나고 있다고 했다. 옥분은 생을 다시 얻은 것 같았다. 식이요법도, 운동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하면서 덤으로 주어진 시간을 알뜰히 챙겼다. 퇴직 후 여유로워진 시간을 성당 봉사와 적십자 봉사 등 주로 남을 위해 쓰면서 자신의 몸에서 이제는 암 세포는 완전히 소멸되었다고 안심 단계에 이르렀는데, 이상을 느껴 다시 찾은 병원에서 암이 재발했다는 선고를 받았다.

암에 대한 공포를 잊을 만한 기간, 10년 만에 다시 암이 재발을 한 것이다. 미혼 중년 여자의 몸에 애착을 부리듯이 암세포는 다시 더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유방암 재발, 또 한 번의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었다.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했다. 유방을 지키느냐, 목숨을 지키느냐의 갈림길이었다. 의사는 생명을 살려야 하지 않겠느냐며 수술을 권했고, 옥분도 의사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했다. 여성의 상징인 유방을 둘 다 모조리 들어내야만 했다. 밋밋해진 가슴이 허전해 몇 날 몇 밤을 울기도 했지만 사라져버린 유방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 자리에 남은 흉터가 여자로서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우울을 불러와 사우나도 가지 않는다. 옥분은 이제 이곳에서 치료가 아닌 통증완화 조치를 받는다. 나날이 체온이 식어가고 있음을 느끼면서 차분히 세상과의 이별을 기다린다.

웅철이 맥박이 잡히지 않고 불규칙한 호흡, 꺼져 가는 의식 사망 직전 상태에 이르자 임종실로 옮겨졌다. 임종실에서 웅철은 눈을 감은 채 응얼거린다. 그 소리는 오, ㄱ 브, 옥분을 부르는 것같이 들린다.

두 사람이 젊은 시절 첫사랑이었다고 병동 전체로 퍼져 알 사람은 다 안다. 간호사들이 이 두 사람의 사연을 알고 자신들도 마음 케어가 된다며 몹시 기뻐했다. 사랑에는 정녕 유효기간도 없는 걸까. 시간이 흘러도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누구에게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며 기쁨을 주어 피로감을 잊게 하는 묘약인지도 모른다.

죽음만이 일상을 지배해 온 호스피스 병동에서‘새롭게 피어난 첫사랑’이라고 태그를 붙여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 다음 생에서는 꼭 이루라는 뜻으로 빨간색이 아닌 노란 장미 한 송이씩을 웅철의 침상과 욱분의 침상 머리맡에 꽂아 주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임종실에서 이웅철 환자가 김옥분을 찾는다며 간병보호사 박 여사가 빙긋이 웃으면서 옥분을 데리러 왔다. 옥분과 웅철은 생의 끝자락에서 조우, 함께 죽음을 향해 가는 길동무, 아케론 강가에서 이승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응시하며 서 있는 한 쌍의 길손….

옥분은 서둘러 화장을 하고 눈썹도 초승달처럼 예쁘게 그렸다. 입술에는 분홍 립스틱도 발랐다. 모자도 쓰고…, 박 여사가 옥분의 휠체어를 밀고 와 웅철의 침대 앞에 멈추어 세운다.

웅철이 감긴 눈을 뜨고 옥분을 눈에 새기듯 빤히 바라본다. 눈동자에서 가느다란 실 같은 빛이 새어 나온다. 회광반조(해가 지기 전 하늘이 잠깐 밝아지는 현상) 상태에 이른다. 주름투성이 야윈 입가로 희미하게 미소가 번져간다. 그리고는 떨리는 손을 내민다. 옥분도 손을 뻗어 웅철의 손을 맞잡는다. 웅철이 입을 조금씩 움직이며 말문을 연다.

“오, 옥, 부니, 여학생 때 넌 참 예뻤지. 너희 집 앞마당에 오래된 살구나무에 노란 살구가 시큼 달콤하게 익어갈 무렵이면 난 마당에 들어가 살구나무 꼭대기를 올려다보곤 했어. 그러다 너희 큰오빠와 맞닥뜨리는 날에는‘야, 웅철이 너 여기 왜 왔어? ’라고 소리치면 얼매나 무서웠던지.‘ 살구가 엄청 먹음직스럽게 익었네요’하면서‘뻘소리인지 아부인지 모를 말로 그 순간을 피했지.”어렵게 말을 잇는다.

“나도 오빠네 온 가족들이 서울로 떠난 뒤로 단 한 시도 오빠를 잊어본 적이 없었어. 보고 싶었어….”

옥분이 힘에 겨운 소리를 낸다.

“난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갑자기 나에게 안겨진 어머니와 두 동생들…. 돈을 벌어야 했어. 가장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게 나에게는 운전기사였어.”

웅철은 위급한 상황이 닥쳐 임종실로 옮겨왔는데, 지금 오히려 의식이 또렷하다. 정신이 돌아온 것이 느껴진다. 분명 회광반조의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곁을 지키고 있던 간병보호사 박 여사가 눈을 크게 뜨면서 놀라움을 표정에 담는다. 이렇게 감쪽같이 의식이 맑아질 수 있느냐는 표정이다.

거기에서 웅철은 말을 멈추고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물이다.

옥분은 왠지 모르게 가슴이 맞방망이질을 하는 것처럼 마구 뛰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통증이 가슴으로 밀려든다. 웅철을 바라본다. 웅철도 고개를 돌리다 옥분과 눈길이 엉키면 빙긋 웃는다.

웅철은 임종실로 옮겨지면 의식을 되찾고 안정이 되고,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해질 정도로 회복이 되었다. 그리고 옥분과 새록새록 기억을 되새김질하듯이 고향에서의 먼 기억을 불러내 이야기를 이어간다. 잠깐 육신의 통증을 잊고 찾아온 휴식 같은 영혼의 편안함…, 하지만 누구나 다 웅철처럼 회광반조 체험을 갖는 것도 아니다. 단 한 촌각도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임종에 이르는 환자가 대부분이다.

임종실로 옮겨진 후 의식이 맑아지고 호흡이 다시 안정되고, 회광반조의 현상이 찾아왔다. 조각조각 퍼즐 같은 기억을 떠올린다. 임종까지는 아직 이르다는 의사의 진단이 내려지고 봉사자가 들어와 웅철의 이동침대를 다시 원래대로 침상으로 옮긴다.

일반실로 옮겨온 웅철이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창밖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다. 의식이 좀 돌아온 걸까, 옥분도 웅철의 시선을 좇아 창 쪽을 바라본다. 웅철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핏빛 붉은 영산홍이 피어 있다. 그 옆으로 피었다 진 목련 가지에 돋아난 넓은 잎사귀가 푸릇하다. 보라색 라일락이 바람에 하늘거린다. 향긋한 내음이 스며들어와 병실의 공기와 섞인다.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 함께 떠날 옥분, 이승에 두고 갈 인연은 오직 작은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곧 태어날 손자, 생에 대한 아쉬움과 회환일까. 웅철의 아들은 아내가 아이를 낳았을까. 예정일이 임박해 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요 며칠 나타나지 않는다.

설암 말기 환자는 이곳에 들어온 지, 이제 선고 받은 여명 시간 2주가 조금 못되는데, 의식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고 앓는 소리도 멎어 있다. 이곳에서는 신음 소리가 유일한 생명의 소리다. 살아 있다는 신호인데, 아직까지 따듯하게 미세한 호흡과 몸의 체온만은 유지가 되고 있었다. 콧줄, 소변줄, 인공호흡기를 달고 연명치료로 버틴다. 이미 회복 불가능한 죽음의 단계에 들어 있다. 그래도 심정지가 안 된 상태이니 생명 유지에 필요한 물, 산소, 영양 공급은 이루어지고 있었다.

존엄사를 의논할 가족마저 없는 모양이었다. 담당의사가 법적으로 보호자가 되는 경우에 해당이 된다. 환자 보호자가 없는 경우에 담당의사가 법적 보호자의 역할을 맡는다. 미혼인 채로 임종을 맞거나, 혹은 가족이 있었더라도 현재 동거가족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담당 의사나 간호사들은 그 환자를 두고 몹시 난감해했다. 어제 저녁에도 요법치료사가 들락거린다. 체온만 미지근하게 유지가 될 뿐 어디에도 살아있다는 증후는 없어보였다. 체온이 유지되고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 가는 게 이상했다. 차라리 인공호흡기 등 연명치료기를 제거해 환자가 편안하게 영면에 들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진료 기록부상 동의 받을 가족이 없다. 이 지점에서 사법적 문제가 재기된다. 호적등본 상에는 아내도 있었고 딸도 둘이나 올라 있다. 하지만 아내와는 20년 전에 이혼을 했고, 딸들과는 연락두절 상태로 살아왔다. 요즘 부쩍 그 숫자를 더해가는 가족이 있지만 혼자 사는 전형적인 독거노인이다. 53년생 죽음을 맞기에는 조금 이르다. 그래서 쉽게 호흡이 멈추어지지 않은지.

경찰에 의뢰해 어렵게 두 딸과 연락이 닿았지만, 모두 만나기를 거부한다는 의견을 보내왔다. 심리상담사를 대동하고 여러 차례 만나기를 설득한 끝에 딸들에게서 그간 아버지의 잦은 가정폭력, 술에 취하면 부인이나 딸 가리지 않고 욕설을 퍼붓고 가정폭력을 일삼아 왔다는 것을 듣게 되었다. 혀에 악성종양이 뿌리를 내리고 그 질긴 세포를 퍼뜨릴 때까지 독설을 퍼부어댄 모양이다. 견디지 못한 부인과는 이혼을 했고, 집안은 풍비박산 나고 딸들과도 남처럼 지내왔단다. 경찰과 심리상담사의 긴 설득 끝에 잠깐이지만, 아버지와의 감정의 응어리를 풀고 보호자로서 연명치료중단 동의서에 사인을 해 달라고 했다. 마지못한 듯 며칠 후 두 딸과 사위가 호스피스 병동으로 찾아왔다.

기다렸다는 듯이 원무과 직원들 그리고 담당 의료진이 가족 동의서에 사인을 받고 곧바로 간호조무사들이 모든 연명의료 장치들을 제거했다. 임종실로 들어간 설암 환자는 유족들의 동의하에 사실상 존엄사로 이승에서의 시간을 끝냈다. 두 딸과 사위가 유족으로 침상 뒤를 따라 나온다. ‘잘 살아야 잘 죽는다.’옥분은 이곳에서 삶의 형태에 따른, 죽음을 보면서 자신의 삶은 어떠했을까 새삼 뒤돌아보아진다.

수면제 없이는 잠들기도 힘든 중증환자들이 진통제나 진정제로 당장의 고통을 잊고 깊은 수면에 빠져 있는 걸 보면 그나마 그들은 운이 좋은 편이다.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은 전문 자격을 갖춘 간호사들이 혼신을 다해 돌보아주고 심리치료사가 매일 들러서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옥분 같은 카톨릭 신자에게는 임종미사도 해주고 불교신자에게는 불교기도 책을 읽어준다. 임종경을 읊어주기도 한다. 환자의 신앙에 따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고 편안히 잠들 수 있게 도와준다.

생명을 유지하기조차 버거운 말기 암 환자들, 죽음의 강을 건네 줄 늙은 뱃사공을 기다리며 이곳으로 모여든다. 죽음의 동행길, 이승의 마지막 길동무들이.

비어 있던 침상에 새로운 환자가 왔다. 설암환자가 임종실로 옮겨지고 이틀 만이다. 침상 머리맡에 환자의 이름과 여명시간이 적혀 있다. 김단비, 환자는 칸막이 커튼 사이로 살짝 보였는데 무척이나 젊고 예쁜 것 같았다. 담당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요법치료사가 팀을 이루어 환자의 침상을 에워싸고 서서 상태를 살핀다. 어딘가 표정들에서 안타까움이 서린다. 넘겨받은 진료 차트를 간호사가 확인한다. 환자의 나이 31세, 기혼, 아이가 둘, 대장암 말기, 잔여생존시간 20여 일, 심각해 보였다. 그는 오자마자 임종을 맞아야 할 아마도 최연소 말기 암 환자일 것 같다.

이곳에 머물러 있는 환자들 대부분이 살아갈 시간보다 살아온 시간이 많은 노년이거나 중년 이상의 연령층인데 이번에 들어온 환자는 뜻밖이었다.

31세에 소생이 불가능한 시한부 시간을 판정받고 이 호스피스 병동까지 밀려온 대장암 말기 환자. 환자는 고통을 참는지, 신음 소리가 거칠다. 과연 신은 있는가, 의사는 곧 간호사에게 응급처치를 지시하고 먼저 병실 밖으로 나갔다.

간호사와 요법치료사의 응급처치(진통제와 수면제를 주사하는 게 유일한 처치다)가 이루어지고 그 젊은 환자의 신음 소리도 잦아들었다. 배우자는 아예 병실에 나타나지 않고 친정어머니가 법적 보호자로 등록이 되어 있는 것 같다.

새벽녘 웅철에게 또 위급한 상황이 왔다. 의식이 없고 인공호흡기 속에서도 호흡이 점차 희미해져 갔다. 요양보호사가 간호사에게 연락을 하고 간호사는 의사에게 이웅철 환자의 응급상황을 알린다. 의사가 급히 불려와 잠이 달린 눈을 비비며 병실로 들어왔다. 간호사와 요법치료사가 뒤따른다.

주치의는 환자를 살핀 후 임종실로 이동시키고, 가족에게 연락하라고 지시를 하고.

병실이 술렁거린다. 요양보호사가 웅철의 침상을 밀고 급히 임종실로 들어갔다.

호스피스 병동은 이승에서 저승(죽음의 강-망각의 강)으로 건너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플랫폼. 잠깐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늘 위급상황에 놓여 있다. 웅철 역시 임종을 지켜줄 가족이 없다. 간호조무사가 급히 나와 옥분을 깨운다.

“이웅철 환자분께서 임종실로 가셨는데 참관해줄 수 있을까요.”

옥분을 휠체어에 앉혀 임종실의 웅철 앞에 데려다 놓는다. 마지막 길을 떠나는 웅철을 배웅할 유일한 임종자이다.

임종실에서 또 긴 이별을 앞에 두고 두 연인은 마주한다. 웅철이 실낱같은 눈을 들어 옥분을 본다. 얼굴에 평화로운 미소가 물결처럼 번져 나온다. 가까이 와 있는 저승사자와 말을 주고받는지 허공을 보며 응얼거리더니 잠든 것처럼 편안하게 눈을 감고 있는, 웅철의 얼굴 위로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덮쳐 온다. 옥분은 차갑게 식어 가는 웅철의 손을 놓아 주었다. 눈에서 눈물이 고인다. 낡은 옷을 벗듯, 육신을 벗어놓고 한 줄기 빛이 되어 영혼이 사라진다.

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내가 막 출산을 끝냈다고 연락만 왔다고 했다. 탄생과 소멸이 교묘하게 교차하는 순간이다.

웅철이 전 병원에서 선고받은 기한을 이 주가량 넘겼다. 웅철이 끊길 듯 끊길 듯, 끈질기게 호흡을 이어갔다. 드문 경우라고 했다. 그리고 편안히 떠나도록 안내할 성직자, 장 목사가 천국으로 가는 길 안내 예배를 시작했다.

“주여, 또 하나의 어린 양이 주님 곁으로 갔습니다. 편안하게 받아주소서.”

임종자의 생애 동안 위안이 되어 주었던 종교의식을 거행했다. 그동안 돌봐왔던 김 간호사는 코끝에 매달린 눈물방울을 손등으로 훔쳐냈다. 어쩌면 평생을 고속버스 기사로 도로를 안방처럼 누비면서 살아온 웅철의 마지막 모습이라면 이승에서의 소명을 어김없이 완수한 셈이다.

옥분은 웅철의 임종을 지켜 보고난 뒤로 눈곱만큼 붙어 있던 생의 의지마저도 상실되었는지 온몸이 흐물흐물하게 늘어져 있다. 의식도 흐려져 있고 눈을 뜨지 못한다. 심박수도 급격히 떨어지고 호흡도 불규칙하다. 주치의가 와서 세밀하게 살핀다.

‘카론이 곧 올 거야, 타고 와, 나 여기 아케론 강둑에 기다리고 있을게, 노란 개국화가 흐드러지게 피었구만, 우리 고향마을 개천가처럼.’강 건너에서 웅철이 머뭇거리며 손짓을 한다. 사각사각 은빛 갈대 부딪치는 소리가 귀에 감긴다.

“김옥분 환자분 임종실로 이동시켜요.”

의사의 긴박한 진단이다. 간호사 요양사들이 하나 둘 급히 모여들고 병실 안이 소란스러워지고 마지막 호흡이 희미하다. 선고받은 여명의 시간이 조금씩 하얀 여백으로 사위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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