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봄호 2025년 3월 70호
43
1
"왜 이렇게 늦는 거야."
혼잣소리를 중얼거리며 또 한 번 편의점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가을과 겨울이 교차하는 바람만이 쌩하고 안으로 치고 들어온다. 새벽 6시 30분. 아직 교대시간은 10분이나 남아 있었지만 마음은 안절부절이다. 거의 한 달 만에야 다시 시작한 아르바이트. 어제 저녁, 처음 출근을 하느라 대충 입고 나온 가을 점퍼로 파고드는 찬 기운이 더 춥게 느껴지는 건 분명 첫 추위 때문은 아니리라. P의 소식을 전해들은 건 오늘 새벽 세 시경이었다. 밤새 몸을 사리던 P가 갑자기 증세가 심해져 심한 경련과 함께 의식을 잃어가는 걸 K가 병원으로 싣고 간 모양이었다. K가 옆에 있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쩌면 서른 중반의 노총각을 북망산으로 보냈을지도 몰랐다는 농담 반 진담 반인 K의 말에, 이제 조금씩 사태가 진정되어 감을 반사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흔히 드라마에 나오는 말처럼 ‘정말 조금만 늦었어도’ 정도는 되었거든. 무엇보다 숨겨져 있던 P의 몸의 비밀이 이쯤에서 폭로가 되고 말았다는 점. 더 진행이 되었더라면 큰일 날 뻔했다는 거야."
K는 몇 시간 전 P를 구급차에 싣고 갈 때의 당황함을 생각한 탓인지 아니면 밤새 한숨도 못 잔 탓인지 거의 횡설수설에 가까운 말을 하고 있었다.
"근데 이제 어떻게 하냐? 부모님께 알려야 하는 거 아냐?"
K의 말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을 구하지 못한 우리로서는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 우리가 가진 거라곤 공동 명의의 약간의 (기백만 원 정도) 통장 잔고와 원룸 보증금 50만 원이 전부였다. 만약 그가 수술을 받기라도 하면?
"수고 많았어."
기다리던 사장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 그가 안으로 밀고 들어온 문을 다시 밀고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쳐나갔다.
"사장님, 어제 일당 중 만 원만 가불해 갑니다."
편의점 문을 열고 그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내다보았지만 나는 재빨리 길을 건넜다. 젠장, 출근 첫날부터 가불이라니.
"나야. 자식, 뭐하느라 전화도 빨리 안 받고. 그러게 어디라도 취직을 했으면 출퇴근 시간 정확하게 지키면서 살 것 아냐. 그깟 대학원 석사가 무슨 대수라고 자존심은…."
인수 형의 전화벨 소리에 눈을 뜨니 어느새 오후 햇살이 방 안 가득 들어차 있었다.
"무슨 일이야, 형?"
병원은 K에게 좀 더 맡겨두고 잠시 원룸으로 돌아온 내가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오늘 좀 다녀와라."
그는 내 말은 필요한 것만 듣고 성가시다 싶은 것은 무조건 자신의 말로 가로채며 일방통행을 하고 있다.
"형 마음대로 이럴 거야? 형이 알아서 한다더니 왜 그래? 나도 오늘 바쁘다고."
"잔말 말고 갔다 와. 옛날 시골집에서 아파트로 옮긴 건 알고 있지? 차는 우리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두고 갈 테니 와서 가져가. 운전 조심해. 2014년식이지만 십 년간 아무 사고 없이 잘 타온 아직 새 차니까. 끊는다."
"언제는 다시는 심부름 시키지 않는다더니."
인수 형의 말에 슬며시 화가 나서 나는 머리맡에 벗어던져 둔 양말을 잡고 벽 쪽으로 던져버렸다. 장마 기간 내 곰팡이가 쓸어 있던 벽면은 차가워지는 날씨에 더 이상 검은 빛이 번지지는 않는 듯했다. K에게 전화를 걸었다. 병원 측이 시키는 대로 P는 오전 내내 이곳저곳 불려 다니며 검사를 받은 모양이다.
"결과는 나왔대?"
K의 어정쩡한 대답으로 미루어 아직은 확진이 안 나온 것 같았다.
"지금 출발해서 A시까지 갔다 오면 밤에나 도착할지 몰라. 네가 좀 더 수고해라."
나는 서둘러 전화를 끊고 인수 형의 아파트로 향했다. 생각 같아서는 알아서 하라고 면박이라도 주고 싶었지만 그래도 한 번 다녀오면 인수 형은 몇십만 원의 돈을 심부름조로 주곤 했다. 그간 일자리가 없어 P와 K 그리고 나 세 명이 좁은 원룸에서 생활하며 각각 바리스타 등 각종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한 지 벌써 2년째였다. 그 돈이면 셋이서 당분간 지낼 생활비로는 충분했다.
몇 년 전 P는 대학을 졸업하고 1년 만에 어렵게 취업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반 년도 채 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버렸다. 청년실업이 최고치를 기록하던 그 해였다.
"인마. 미쳤어? 어렵게 들어간 회사를 그렇게 쉽게 포기하다니."
충격이었다. 그나마 국내 중견기업에 속하던 회사를 제 발로 들어갔다가 나올 때도 제 발로 걸어 나오다니. 당시 K 역시 몇 번의 휴학을 거듭하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자 떠밀리듯 졸업장을 받아야 했다. 나 역시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리저리 이력서를 넣었지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지난 3년 동안 그렇게 우리 셋의 운명은 아르바이트만을 앞세운 동질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계속 부모 밑에서 밥만 축낼 수야 없는 노릇이라…."
바리스타 일을 하면서 P가 제일 먼저 독립을 하고 나섰다. 서른둘일 때의 일이다. K와 나는 자주 P의 원룸에서 며칠씩 신세를 지곤 했다. 좁은 방이었지만 근무시간이 제각각 달랐기에, 셋이 좁은 방에서 견뎌야 할 숨통을 조금은 트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비정규직으로만 살아온 우리에겐 더 이상 희망도 없이 점점 흘러가는 세월에 한없이 위축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인 격이랄까. 갑작스런 P의 위암 소식.
차는 시내를 벗어나 중앙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늦가을 햇살은 눈부시게 맑고 빛났다. 이 길을 오갈 때면 언제나 번외 경기를 치르는 기분이었다. 고모는 잘 계신 걸까. 세 달 만에 가는 길이다. 중소도시의 도심 곳곳도 고층 아파트의 숲을 이루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재개발의 바람이 불면서 농지나 임야가 통째로 아파트 단지로 변해 갔다. 어릴 적 뛰어놀던 골목길은 물론 어린 아이들의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어진 세태였다. 농업은 최신 설비를 갖춘 영농법인으로 기업화 되어 일반 농민들은 일어설 힘을 잃어가고 있는 양분화 현상이 두드러진 지 오래였다. 도시로만 몰려드는 사람들. 텅 비어 흉물로 변해 가는 시골 풍경이 마치 고려장을 되살려둔 듯 병들고 나이 많은 노인들의 빈민가로 되어 버린 곳. 고모가 시골집에서 아파트로 옮기고는 두 번째 가는 길이다.
처음엔 고모네도 이곳 고향에 살고 계셨다. 그러나 고모부가 돌아가신 후 고모는 나보다 세 살 많은 인수 형을 데리고 T시로 나오셨다. 그 시절, 나는 수도산 아래 고모 댁에서 며칠을 지낸 적이 있었다. 아버지의 첫 사업이 지지부진하던 때였다. 어머니까지 나서 다시 일어서기 위해 안간힘을 쓰셨다. 혼자 인수 형을 키우기 위해 고모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하셨다. 그날은 이웃의 부탁으로 가져온 옷감을 펼쳐 한복을 만들다 잠시 내 모습이 안쓰러운지 바늘을 꽂아두고 나를 꼭 안아주셨다. 그때 그 품속에서 나는 엄마와 비슷한 체취를 느꼈던 것 같았다. 내 나이 여섯 살 때였다. 인수 형이 그런 나를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고 있었다. 몇 년 뒤 내가 대학에 입학하자 아버지는 굳이 같은 시내에 살면서도 변두리에 있는 고모 집에 하숙을 시켰다. 그때는 아버지의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때였다. 내가 다니던 대학 근처라는 게 아버지의 단 한 가지 이유였지만 그건 일종의 핑곗거리였다. 거기에 대해 고모는 공연히 죄스러워했다.
"웬 하숙비를 이렇게 많이? 변변히 잘 챙겨주지도 못하는데."
아버지는 나를 내세워 말하지만 그건 혼자 힘들게 살아가는 누님에 대한 아버지의 속 깊은 배려였던 것 같다. 인수 형은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취업을 했었다. 그러나 모난 성격으로 똘똘 뭉친 그에게 회사 생활이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니었을까? 몇 달을 채우지 못하고 사직서를 던지고 나온 뒤로 그는 그때까지 3년째 백수와 다름없이 빈둥거리고 있던 때였다.
고모가 유령 같은 시골에 혼자 들어와 사신 지도 벌써 삼 년이 되어 간다. 인수 형이 결혼을 한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 혼자 사시는 게 나로서도 영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인수 형의 인생 역전은 그야말로 그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누구’라면 쉽게 알아주는 부자였던 집안의 무남독녀에게 장가를 들어 삼 년째 처가살이. 인수 형의 현주소였다. 결혼 후 한 번도 고모를 찾지 않던 인수 형을 대신해 혼자 계신 고모를 찾아가 이것저것 생필품을 전해드리고 오는 건 오로지 내 몫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를 삼았지만 내가 보기엔 그것만은 아닌 듯했다. 어쩌다 잘사는 처가 덕을 보는 인수 형으로서는 시어머니를 마냥 무시하는 형수의 태도에 동화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 같았다. 형수 몰래 인수 형의 부탁으로 고모를 보러 가는 일은 내겐 아르바이트보다 더 중요하고 소중한 일상이었다.
세 달 전 마지막으로 찾아왔을 때, 주섬주섬 가져온 한 달치 생활용품을 꺼내 놓다 말고 나는 문득 좀전 집으로 오던 도중 마을 입구 어느 주택에 모여 있던 사람들에 대해 물어보았다. 아파트 입구에 보이던 병원 승합차 한 대. 가족인 듯 몇몇 사람들이 팔짱을 낀 채 병원 직원들이 부축한 노인네가 차에 옮겨지는 걸 남의 일이 아닌 듯 걱정스런 표정으로 보고 서 있었다.
"요양원으로 가는 거겠지. 아흔다섯 넘은 노인이 혼자 살아가려니 잘 드시기나 했겠어? 지난 가을에 겨우 한 번 얼굴 보고 지금껏 못 봤는데."
고모의 말이 내겐 마치 고모 자신의 미래를 말해주는 듯해 소름이 끼쳐왔다.
"그런 집이 어디 한두 군데라야 말이지. 자식이 부모 모시는 건 이젠 옛날 일이니까. 지방자치단체나 행정부서 책임자가 자주 확인을 한다고 하지만 그 사람들인들 이런 흉물스런 곳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나겠어? 너도나도 잡일이 번거로워 다른 부서로 옮기려는 판국에 결국 이곳도 갈수록 폐허가 돼 갈 거 같아."
그날 고모의 눈에 얼핏 스치던 건 외로움이었을까? 아니면 두려움이었던가.
그런데 세 달 전 마지막으로 고모에게 다녀오던 그날 인수 형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다.
"이제부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넌 더 이상 안 가도 돼."
형의 말엔 내게 심부름조로 얼마씩 보내준 것에 대한 냉소가 섞여 있었다. 화가 치밀었다. 자신은 결혼 후 한 번도 찾아간 적도 없으면서.
"형한테 구걸한 적 없어. 형이 내게 그런 말 할 자격이 있어? 형이 주는 그 몇 푼의 심부름비 때문에 내가 거기 간 것 같아? 고모를 저렇게 헌신짝처럼 내던져두고 그런 말이 나와?"
"흠. 그래? 매달 생활비에 생필품에 옷까지, 내가 못 해드리는 게 뭐가 있다고 그래? 혼자 그렇게 잘난 척하지 마.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너 하나 때문에 외삼촌, 외숙모가 그렇게 되신 건 생각도 안 나니?"
가슴으로 신물이 올라왔다. 무엇보다 9년 전, 대학원 석사 과정이 막 끝나갈 무렵 아버지의 파산이 바로 나 때문이었다는 그의 말이 가슴을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당시 아버지는 내게 석사 과정을 마치면 곧바로 유학을 다녀오라고 했지만 졸업을 앞둔 어느 날 뜻하지 않게 아버지가 부도를 맞고 말았던 것이다. 그때 아버지의 표정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침통한 아버지의 말이 귓전에 맴돌았다.
"미안하다. 네가 유학을 마칠 때까지는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는데."
아버지의 파산 소식에 충격에 빠져 쓰러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어 일 년 만에 아버지마저 세상을 버렸을 때 나는 마치 거대한 우주 한가운데로 내동댕이쳐진 기분이었다. 집이 경매로 날아가고 한 푼 없이 거리로 내몰린 내게 유학은커녕 당장 내 앞에 놓인 현실을 헤치고 나갈 방법도 스스로 찾아가야 할 형편이었다. 어릴 적엔 몰랐던 현실이란 건 냉정하고 무섭기만 했다. 친구 P에게 신세를 지며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K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흘러가면서 어언 30대를 넘어서고야 말았다. 자조감이 밀려왔다.
"어차피 나는 실패한 인생. 나 하나 없어져도 이 세상은 꿈쩍 않고 돌아갈 텐데."
고속도로에서 내려 A시로 나가는 국도로 들어섰다. 일찍 귀가하려는 석양이 마지막 햇살을 휴거하듯 내뱉고 있다. 잘 확장된 도로는 깨끗했다. 6차선 도로엔 지나치는 차도 보이지 않았다. 한밤중엔 다시 이 길을 돌아가야 한다. 어둠이 악마처럼 뒤쫓아 오며 석양 그늘이 길게 늘어져 있는 거리를 마냥 달렸다. 전화를 걸었다. 벌써 네 번째다. 그러나 고모는 끝내 전화를 받지 않으신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덜컥 걱정이 앞섰다. 사람들이 점차 도시로 떠나고 노인들만 사는 마을 풍경은 언제나 을씨년스러웠다. 불이 켜진 집보다 꺼진 집이 더 많은 마을은 마치 유령의 도시처럼 변해 있었다. 마침내 고모가 사시는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위는 깊은 어둠에 묻혀 있었다. 그때 급히 정문을 빠져나가는 앰뷸런스 한 대. 경적도 비상등도 켜지 않은 차는 마치 순찰이라도 도는 양 빠르게 정문을 빠져 나갔다. 노인들만 사는 아파트에 앰뷸런스가 나타났다?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그것은 전화를 받지 않아 무언가 께름칙했던 기억과 더불어 점점 불안을 가중시켜 주었다. 혹시 고모에게? 아파트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하기만 하다. 캄캄한 암흑의 도시. 이 속에 고모가 살고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엘리베이터마저 고장이 났는지 작동이 되지 않았다.
"이거야 원. 아예 사람이 살지 말라는 건지."
쌀 한 포대와 잡다한 생필품이 든 자루 하나를 들고 낑낑대며 계단으로 3층까지 올라갔다. 벨을 눌렀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벌써 주무시나?
저 멀리 복도식 아파트의 긴 복도로 난 창문에서 불빛이 새어나오는 집이 딱 한 곳이 보였다. 십여 가구 중에 단 한 개의 불빛.
"계세요?"
무작정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아무리 두드려도 안에서는 기척이 없었다. 나는 한 계단을 내려와 2층 복도에 섰다. 그러나 이층 역시 집마다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1층에도 몇몇 집에 불이 켜져 있었지만 모두 빈집이란 걸 알고서야 나는 아파트 밖으로 뛰쳐나오고 말았다. 아파트 모두가 미궁에 빠진 듯 불빛만이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 밤 10시가 지나고 있다. 전화를 걸었다. 한참만에야 인수 형이 전화를 받는다.
"정 안 되면 그냥 문 앞에 놔두고 와라. 멀리야 가셨겠어? 노인네가 망령이 들었나? 그러게 좀 일찍 출발할 일이지 이 밤중에 전화를 하고 난리야."
한심한 목소리에 힘이 쭉 빠진다. 예상은 했지만 혼자 사는 노모가 집에 안 계신다는 소식에도 저렇게 태무심하다니. 고모의 행방보다 겨우 잠이 들었는데 하릴없는 전화 소리에 잠을 깼다는 인수 형의 말에 다시 힘이 쫙 빠진다. 차를 타고 마을을 천천히 돌면서 불이 켜진 집을 찾아보았다. 헤드라이트에 비친 들판은 그야말로 더 황량했다. 지난해 자란 풀이 겨울 동안 말라죽은 채 그대로 송장처럼 삐죽 솟아 있는 논은 이미 농사를 포기한 지 오래인 듯 하얗게 말라 있었다. 농민들이 떠난 농촌의 현실이었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 교회의 불빛이 보였다. 혹시 저 곳에 가신 건 아닐까. 불빛은 교회 안이 아닌 교회 옆 노인정에서 새어나오는 것이었다.
"안에 누가 계세요?"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문 앞에 노인들의 것으로 보이는 신발이 대여섯 켤레 보였다.
"아. 그 아파트 303호에 사는 노인?"
누군가 아는 체를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우리도 그곳에 살지만 혼자 지내는 것보다 이곳에 모여 얘기도 나누고 하니 외롭지 않아서 이렇게 같이 지낸다오. 헌데 그 노인네는 한 번도 이곳에 오지 않았어. 한 달 전쯤인가 그때 딱 한 번 보고는 본 적이 없어. 싫다는데 억지로 끌고 올 수도 없고."
노인들의 표정엔 그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은 고모에 대한 서운함이 조금은 묻어 있는 듯했다.
"그 노인네 처음에는 저 마을 안쪽에 있는 집에서 혼자 지냈잖아. 그러다 몇 달 전 아들이 아파트로 이사시켜 놨더라고."
"맞아. 외딴 곳에 두 집이 있었지. 그런데 그 옆집 노인네도 요즘은 안 보이더라고. 집 뒤로 과수원과 밭이 있었지만 농사 지을 사람이 있어야지."
아파트로 오기 전 고모의 집. 이제야 생각이 떠올랐다.
"참, 조금 전에 구급차 한 대가 다녀가는 걸 봤는데 무슨 일인지 모르세요?"
"구급차? 글쎄. 또 어느 집 노인네가 쓰러졌을 테지 뭐."
한 마을 사람이 사고를 당해도 모르고 있는 현실. 그건 외면이 아니라 차라리 자포자기와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할까. 농촌 현실이 청년 실업자인 나처럼 답답하기만 하다.
"병신 같은 자식. 그 좁은 시골 마을을 쥐 잡듯 뒤져도 한 시간도 안 걸리겠다. 네 일이 아니라고 대충 넘기는 것 아냐?"
인수 형의 짜증스런 목소리 뒤로 형수의 볼멘 목소리가 뒤엉켜 있다.
"그럼 형이 와서 직접 찾아보든가. 평소엔 한 번도 찾아오는 일이 없더니 이제 정신이 번쩍 드는 모양이지? 그래. 잘난 형이 와서 처리해. 난 돌아갈 테니."
전화기를 주머니에 쑤셔 넣듯 하고 나는 다시 시내 쪽으로 차를 몰았다. 화가 났다. 밤새 한 숨도 못 자고 이 무슨 고생을 하고 있는 건지 갑자기 맥이 탁 풀렸다.
"실종 신고를 하시겠다고요?"
지구대에 들어선 시각은 밤 열한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의자에 앉자 피로가 몰려왔다. 그때 접수 서류를 작성하던 경관이 갑자기 생각이 난 듯 고개를 든다.
"혹시 병원 응급실 쪽은 알아보셨나요?"
순간, 나는 아차 싶었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초저녁에 보았던 구급차.
"일단 접수하고 CCTV부터 확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있던 경관이 수화기를 쥔 채 급히 일어서 나가려는 나를 붙잡았다.
"오늘 응급 환자나 입원한 환자 중에 70대 할머니가 계신지 확인 부탁합니다."
경관은 전화를 받으며 잠시 기다리라는 손짓을 했다.
"예… 그래요?"
차를 몰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은 지구대 정반대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좁은 농로가 헤드라이트에 환히 취부를 드러내는 길을 따라 빠르게 지나간다.
‘오늘 입원한 환자 중에는 그런 분이 없고요. 근래 며칠 사이에 응급실로 들어온 노파 한 분이 계시긴 하답니다. 집을 나가서 며칠 지나 마을 깊숙한 곳을 헤매었는지 어느 산 입구에 탈진 상태로 발견되셨어요. 아직까지 혼수상태라 가족과도 연락이 안 되는 상태고요.’
그렇다면 혹시 고모도 오늘이 아니라 이미 며칠 전부터 집에 계시지 않았던 건 아닐까. 일단은 확인부터 해야 했다. 병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서너 명의 환자들이 의류 기구들을 잔뜩 몸에 걸치고 자는 듯 누워 있는 병실 안 간호사가 안내해 주는 침상으로 다가갔다. 제발! 무엇일까? 제발 고모이기를 바라는 걸까 아니라면 좋겠다는 의미일까. 스스로 답하기도 전에 나는 침대 머리맡을 바라보았다. 앙상한 얼굴 위 코에 꽂은 호스는 습기로 하얗게 서려 있었다. 최근에 입원한 비슷한 연배의 성함과 병실을 찾아다녔으나 그러나 어디에도 고모의 이름도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고모가 아닌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갈피를 못 잡는 사이, 그때 울리는 전화 소리.
"박경인 씨! 일단 서로 와 보시죠."
다시 차를 몰았다. 눈이 빠질 듯 두통이 났다.
"여기를 보시죠. 혹시 이 분이 맞으십니까?"
경관이 확보한 CCTV를 재생시켜 보여주었다. 아파트 입구 통로를 나오는 사람이 눈에 보였다.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공간을 빠져나오는 듯 조심스런 발걸음. 노파는 아파트 계단을 내려와 길을 향해 걷고 있었다. 화면이 흐리긴 했어도 약간 O자형의 자리로 절뚝이며 걸어가는 모습에서 나는 확신을 했다. 인근 버스 정류장에서 차를 타고 가는 고모의 모습이 보였다.
"이틀 전 아침 08시 20분에 찍힌 모습입니다."
"그 이후에 돌아오시는 모습은 없다는 말씀인가요?"
"예. 안타깝게도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은 안 보입니다."
"그럼 그 시간 이후의 행적을 알 수는 없나요?"
"그 버스가 지나간 길목마다 설치된 CCTV를 모두 확보해 봐야겠죠."
경찰이 다시 CCTV를 조회하는 사이 나는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새벽 4시가 되었다. 전화가 울렸다. K였다. 맞아. P는 어떻게 됐을까.
"비켜갔으면 했는데 예상했던 대로야. 수술을 해야 된대. 벌써 3기라니. 어쩌니? 진짜 집에 알려야 하는 것 아냐?"
"일단 하는 데까지 해보자. 안 되면 원룸 보증금이라도 빼고 이리저리 돈을 구해봐야지."
"참, 너 오늘 아침 근무 나가야 하는 것 아냐? 벌써 새벽 5시인데?"
일이 단단히 꼬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는 한이 있어도 고모를 찾는 일은 포기할 수 없었다.
"뭐? 내가? 그럼 P는?"
K를 떠밀어 일단 대신 아르바이트를 나가라고 했다. 입원 수속은 마쳤지만 아직 수술 날짜까지는 며칠 시간이 남아 있어 당장은 보호자도 필요 없는 것 같았다.
‘형! 정말 이러기야? 벌써 10시간이 지났는데도 나타나지도 않아? 제일 먼저 달려왔어야 할 사람 아냐?’
전화를 받지 않자 나는 신경질적으로 메시지를 남겼다.
"버스 기사의 말에 따르면 그날 어르신은 마지막 종점까지 가서 내렸다고 합니다. 그곳은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지역이죠."
버스 종점까지는 승용차로도 약 40분이 소요되는 거리. 그곳에서부터 읍내를 벗어난 한적한 시골 마을이 펼쳐지고 있는 곳이었다. 고모는 왜 인적이 드문 이곳에 혼자 내리신 걸까?
"그날은 종일 돌아가는 버스를 타러 오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워낙 좁은 읍내라 버스 기사의 기억은 아마 정확하다고 봐야겠죠."
드디어 종점이 보였다. 나는 버스가 한 바퀴 돌아 다시 읍내로 나가는 공터를 지나 샛길로 차를 몰아갔다. 숲을 지나자 저 멀리 산기슭에 하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요양병원이었다. 하필이면 이런 깊은 곳까지 들어와 있어야 하는 걸까.
"그런 분은 안 계시는데요."
입원 환자 내역이 적힌 화이트보드가 정면 벽에 붙어 있었다.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이곳도 아니면 그럼 고모는 어디로 가셨다는 말인가. 하긴 고모 혼자 발로 걸어와서 입원을 하셨을 리는 만무했다. 혹시 깊은 산중을 헤매다 길을 잃고 쓰러진 건 아닐까. 바로 그때 봉고차 한 대가 병원 입구로 들어서는 게 보였다. 잠시 뒤 봉고차에서 내려 교대를 하기 위해 병원 문을 들어서던 간병인 한 사람이 사무장과 내가 얘기하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다가왔다.
"그래요?"
급히 간병인을 따라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비상계단은 철저히 번호키로 단단히 보안을 해 둔 것 같았다. 치매 노인들이 혹시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사례를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틀 전 정오 무렵에 오셨어요. 그때부터 계속 그 방에서 그 분과 같이 머물러 계시더라고요. 제가 보기엔 본인도 상당히 건강이 안 좋아 보이셨는데도 굳이 직접 간병을 하시겠다는데 말릴 수도 없고, 또 가실 곳도 없다고 해서 당분간 두고 보고 있었죠. 식사는 끼마다 환자분과 나눠 드시는 것 같았어요."
5층에 내려서 간병인이 안내하는 대로 마지막 방으로 들어섰다. 508호실. 좌우 세 개씩의 침대가 놓인 여성 노인 입원실. 아침 식사 시간인지 모두들 침대에서 일어나 목에 수건을 두르고 밥상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모!"
나를 본 고모는 흠칫 놀라는 듯했으나 이내 들어온 밥상을 챙겨 옆에 앉은 노인에게 식사 수발을 하고 양치질까지 시킨 다음에야 고모는 휴게실로 나오셨다.
"어떻게 된 거예요? 얼마나 찾아다녔는데."
고모는 옷에 묻은 밥알을 떼어내면서도 끝내 나와 눈을 맞추지 않으셨다.
"어떻게 알고 왔어? 인수가 가 보라고 하든? 딴 말은 없었고?"
고모는 한 번 입을 열자 연거푸 내게 물어왔다.
"예. 근데 딴말이라니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인수 형이 또 뭐라고 하든가요?"
"아니다. 돌아가더라도 내가 여기 있다는 말은 하지 마라."
고모의 뜻이 그런 데야 더 할 말이 없었다. 한숨이 나왔다.
"그럼 여기 계속 계실 거예요? 고모가 왜 이곳에서, 간병인도 아니면서…."
"그 노인네, 나와는 둘도 없는 친구였다. 대구에서 다시 이곳으로 들어왔을 때 고향이라곤 하지만 삼십 년 만에 돌아와 보니 아는 사람이라곤 옆집 할멈밖엔 없었다. 아무도 곁에 없는 시골에서 서로 의지하며 친구처럼 지낸 사이야. 근데 저렇게 덜컥 아프다는데 어떡해. 인수 그놈이 내 편하라고 아파트로 억지로 이사를 시킬 때 그놈 속셈을 알아봤어야 하는데. 농사를 못 지으니 과수원도 밭도 휑하니… 그래. 관두자."
"글쎄요. 사정이 딱하긴 합니다만 여기에 입실을 하시려면 보호자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더구나 환자가 아닌 다른 분의 간병을 위해 입원하시겠다는 것도 좀…."
"입원하실 수 없다는 말씀이네요. 곧 조치를 치하시겠다는 뜻은 고모님을 더 이상 여기서 간병하게 하실 수 없다는 말씀인가요?"
"정해진 간병인도 있고 연로하신 분이시라… 또 매일 방문하시는 건 상관없지만 아예 이곳에 계실 작정이라면 저희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러고 보니 처음 병실에서 마주쳤을 때 고모의 얼굴이 예전보다 많이 야위었던 것 같았다. 혼자 얼마나 외로우셨으면.
"뭐? 요양병원? 거기에 왜 계셔? 네가 보낸 거야? 아니, 네가 무슨 돈으로."
인수 형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예상대로 인수 형은 펄쩍 뛰고 있었다. 그에 비해 나는 힘이 쭉 빠졌다. 함께 맞설 화도 나지 않는 자신이 우스웠다.
"형! 인제 그만하자. 고모가 불쌍하지도 않아? 고모 혼자 형을 키우시며 고생하신 생각은 손톱만큼도 안 하는 거야?"
"뭐? 고생?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게 당연한 일인 것 아냐? 혼자 잘난 척하지 마. 그리고 엄마 옆에 계시면 좀 바꿔줘. 빨리!"
"참, 형! 아니 인수야. 나이는 나보다 세 살 많지만 머리에 든 건 나보다 어리니 이렇게 불러 주마."
"뭐? 이 자식이 정말?"
"왜? 바꿔드리면 고모한테 시골집하고 땅을 팔자고 하려고?"
"뭐?"
"정곡을 찔려 그래? 처갓집 수십억 재산도 모자라 이제 부모 재산까지 팔아넘기려는 거야?"
"아니 이 자식이 정말 보자 보자 하니."
"형! 고모가 이 말은 하지 말라고 했지만."
바로 그때였다. 언제 나오셨는지 고모가 벤치 뒤에 서 계셨다.
"전화 이리 다오."
고모는 다짜고짜 내 손에서 전화를 빼앗아갔다.
"그 땅만은 안 된다. 분명히 말하마. 더 이상 욕심 부리겠다면 우리 연을 끊자."
고모는 그 말을 마치고 힘이 빠지셨는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내가 다가가자 고모는 나를 팔로 제지하며 다시 전화를 들었다.
"부모 자식 간의 연은 천륜이라 세상 어떤 강인한 단두대라도 그걸 끊을 수 없다. 그냥 이대로 지내게 해 다오. 때가 되면 다 네게 돌아갈 것을. 사랑한다, 인수야."
"그럼 이곳에 오신 이유가 인수 형을 피해 오신 셈이네요?"
고모는 쓸쓸히 웃으시며 내 손을 잡으셨다.
"그놈도 처가살이 하느라 변변치 못하다는 것을 아니까 그거라도 팔아서 생색을 내려고 한 모양이다만, 그래 이해한다. 물려줄 재산도 없으니 그놈도 그럴 수가 있겠다 싶어. 네 모습을 보니 자꾸 네 아버지 생각이 난다. 네 두상하며 손까지 쏙 빼닮았네. 혼자 생활하기 힘들지? 세상에 이런 멀쩡한 젊은이들이 잡고 일어설 곳이 없으니, 원."
"고모 괜찮아요. 고모만 건강하시다면야."
차창에 붙어선 고모의 표정이 슬픈 사슴과 같아 보이는 건 왜일까.
"고모. 가 볼게요. 분명 약속하셔야 해요. 오늘 오후엔 통근차 편으로 아파트로 돌아가신다고. 그리고 아까 하신 말씀도 잘 생각해 보세요."
"왜 고생을 사서 하려고 해. 그냥 도시에서 편히 살지. 정 그럴 생각이라면 내일부터 난 아파트를 나와 옛날 살던 집에 가서 청소도 하고 밭도 좀 손보고 할 테니."
고모의 흔드는 손이 백미러 너머로 점차 작아지고 있었다.
‘고모, 이제부터는 제가 모실게요.’
병원으로 향한 길은 여전히 흙탕물이 튀고 있었지만 그 흔들림조차 조금은 여유로워진다. 그러나 한 가지가 해결되자 이젠 내 문제가 갑자기 돌발 상황처럼 떠올랐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시골로 들어와 살기엔 그동안 쌓였던 무력감과 한껏 떨어진 자신감이 선뜻 일어서지 않는다.
"뭐? P가 내일 수술을 받기로 했다고? 부모님도 알고 계신단 말이지? 잘 됐다."
K는 잠시 손님이 왔는지 물건을 계산하는 소리와 함께 편의점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미안. 그래도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P 병원비도 좀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치?"
"그럼. 우리가 P에게 신세진 게 얼만데."
또 손님이 닥쳤는지 잠시 K의 목소리가 끊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읊조리듯 말했다.
“K! 우리 인연 없는 도시 생활 다 때려치우고 농사나 지어볼까? P도 수술받고 완쾌되면 우리 셋이서 함께 말이야”
"감사합니다"라는 K의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그가 전화기에 대고 큰 소리로 말한다.
"뭐? 뭐라고? 농사라고 했니?"
차는 국도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