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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시간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택란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봄호 2025년 3월 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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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차 세워."

엄마가 운전석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깜짝 놀란 지선이 핸들을 꽉 움켜쥐고 소리를 질렀다.

"엄마,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여긴 고속도로라고."

"고속도로고 뭐고 필요 없으니까 당장 차 세워. 난 집에 갈 거야."

평소에는 어눌해서 알아듣기 힘들던 엄마의 발음이 이럴 때는 정확하다.

"대체 어쩌라고 이러는 건데? 조용히 운전 좀 하자고."

"너 내 돈 다 어떻게 했어? 그거 네 동생 줄 건데 어떻게 한 거냐고?"

"그거 엄마가 요양원에 가기 전에 모두 지석이 줬다며. 지석이랑 같이 은행에 가서 통장을 그대로 옮겨줬다고 하던데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지선은 핸들을 움켜쥔 상태로 한숨만 토해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요양원에 그냥 둘 것을 그나마 엄마에게 기력이 남아 있을 때 고향에 한번이라도 다녀오게 하려고 했던 것이 큰 실수였다. 엄마가 어깃장을 놓을 때는 굳이 대답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억울한 마음에 눈앞이 흐려졌다. 고향에서 출발한 지 벌써 두 시간이 지났으니 휴게소에 들러서 엄마의 기저귀를 봐줘야 하고 자동차도 쉬게 해야 할 텐데, 엄마의 상태를 보아하니 차를 멈출 수도 없다. 지선은 진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차에서 내리게 했다가는 무슨 사달이 날지 알 수가 없다. 그나마 엄마가 혼자서는 안전벨트를 풀 수 없는 것이 다행이다.

이 년 전이었다. 한창 바쁜 시간에 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평소에는 통 연락을 하지 않던 남동생이 전화를 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엄마가 코로나19에 걸려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 달 전에 고향에 다녀온 참이었다.

"누나, 엄마 좀 어떻게 해 줘."

"무슨 일인데?"

"엄마가 어제 퇴원해서 집에 모셔왔는데 밤부터 이상했어.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옷을 홀라당 발가벗고 방은 온통 똥오줌으로 더럽혀 놓고 그 속에서 뒹굴고 있더라고. 오전에 요양보호사가 왔었는데 내일부터는 못 오겠대. 도저히 나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지선은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예상은 했다. 몇 년 전부터인가 엄마는 가끔씩 딸인 지선을 알아보지 못하고 집에 오는 요양보호사라고 생각하는지 아줌마라고 부를 때가 여러 번이다. 고향에 다니러 가면 몇 시간이나 지나고 나서야 겨우, 너 지선이니? 하고 쳐다보곤 했다. 점점 정신이 흐트러지는 엄마를 바라보는 지선은 안타깝고 가슴이 답답했다. 이럴 때 올케라도 있었으면 조금은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심정이었다. 오래 전 이혼하고 병까지 얻어서 엄마 집에 얹혀사는 남동생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평생 아들바보로 살았던 엄마는 혼자된 아들만 안타까워서 이미 남이 된 올케를 미워했다.

"알았어. 일단 내가 요양보호사랑 통화해볼게."

하루에 세 시간씩 집에 들러서 엄마를 도와주는 요양보호사는 깔끔한 사람이었다. 지선은 한 달 전 병원에 입원한 엄마 때문에 고향에 내려갔을 때 요양보호사를 만났다. 엄마가 입원하고 있는 동안에 다른 집으로 일을 다니게 되면 엄마가 퇴원한 후에 보살펴 줄 사람이 염려되었다. 사람을 가리는 엄마가 방문요양보호사를 세 번째 바꾸고 나서 겨우 마음에 들어 했던 사람이다. 요양보호사는 저녁을 준비 중이라서 외출이 곤란하다며 자기 집으로 와달라고 했다. 불러준 주소를 찍고 내비게이션을 따라서 갔던 그녀의 집은 장미과의 넝쿨 식물들이 얕은 담을 둘러싼 아담하고 예쁜 이층집이었다. 집 뒤의 텃밭에는 직접 심고 가꾸는 채소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평소에 그 밭에서 기른 식물로 만든 반찬을 엄마한테도 가져다준다고 들었던 기억이 있다.

"얘기 많이 들었어요. 엄마가 늘 고맙다고 하셔서 어떤 분인지 한번 뵙고 싶었어요."

"어휴, 그냥 집에서 조금씩 심고 기른 걸로 우리 부부 먹는 양에 조금 더 만들어서 가져다 드릴 뿐인데요. 우리도 두 식구밖에 없어서 먹을 사람이 없어요. 그런 건 걱정 마시고 그저 어르신만 건강을 되찾으시면 좋겠어요."

서글서글하게 말하는 그녀는 서울에서 살다가 남편이 퇴직하고 나서 시골로 내려왔다고 했다.

"시골에 와서 지내다보니 일이 필요했어요. 농사라야 텃밭이 전부인데 그건 남편이 심심풀이 삼아서 하는 거라서 저도 심심했거든요. 마침 어르신이 참 깔끔하셔서 저도 좋아요. 웬만한 건 어르신이 직접 하시려고 해서 일을 만들어 놓지 않아요. 그러다가 또 넘어져서 다치면 안 된다고 말려도 고집이 세셔서요. 호호호."

"아무튼 엄마를 잘 돌봐주셔서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었어요. 엄마가 퇴원하면 계속 선생님이 돌봐주세요. 부탁드릴게요."

어차피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데 이왕이면 엄마를 잘 아는 분이 계속 맡아줬으면 싶었다. 그게 겨우 이 주 전의 일이다.

"안녕하세요. 이미순 님의 큰딸이에요."

"아이고, 그렇지 않아도 따님한테 연락해보려고 하던 참인데 전화 잘했어요. 어머니 상태가 많이 안 좋으셔요. 아침에 갔더니 도저히 볼 수 없을 정도로 방을 엉망으로 해놓고 계셔서 아드님 혼자 어쩔 줄 모르고 있었어요. 이제는 어르신을 잠시라도 혼자 두시면 안 될 것 같아요."

지선은 급한 일을 마무리 해놓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고향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서부터 코를 찌르는 불쾌한 냄새에 토기가 올라왔다. 다행히 코로나19로 인하여 지선의 가방에는 항상 마스크가 준비되어 있었다. 먼저 현관문과 거실의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엄마의 방문을 열었다. 오물이 잔뜩 묻은 이불을 둘러쓰고 엄마가 방구석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남동생과 요양보호사에게 전해 들었지만 말로 듣는 것과 실제 눈으로 보는 것은 전혀 달랐다. 방바닥은 물론 벽까지 온통 오물로 얼룩졌다. 잠시 할 말을 잃은 채 넋을 놓고 있던 지영은 엄마를 화장실로 데려가서 앉혀놓고 샤워기로 오물부터 씻어냈다. 엄마는 지선을 알아보지 못하고 씻겨주는 대로 멍하게 앉아 있었다.

"아줌마, 나 배고파 배고파."

지선을 요양보호사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웅얼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더니 배고프다는 말이었다. 지선은 엄마의 몸에 붙어있는 오물부터 흐르는 물로 씻어내고 욕조에 물을 받고 거품을 내서 꼼꼼히 씻겼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힌 엄마를 거실로 데리고 나올 때쯤 외출했던 남동생이 돌아왔다.

"난 엄마 방을 치워야 하니까 그동안 넌 엄마가 움직이지 않게 잘 지켜봐."

엄마의 방은 그냥 닦아내서는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 지선은 닦아내고 또 닦아내고 소독제를 뿌려서 또 닦아냈다.

그날 밤 지선은 거실 소파에 누워서 엄마 방을 지켜야 했다. 저녁을 먹고 잠들었던 엄마가 한밤중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방문을 열었더니 낮에 애써서 치웠던 오물 냄새가 지선에게 확 달려들었다. 엄마는 잠들기 전에 채워준 기저귀를 풀어보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기저귀를 뜯어서 그 속의 내용물을 모두 뽑아내고 있었다. 침대 옆에는 침대 시트 위에 깔아두었던 방수 시트가 꼬깃꼬깃 구겨지고 오물이 묻은 채로 팽개쳐져 있었다. 몇 시간에 걸쳐서 닦아내고 또 닦아내야 했던 방 안 풍경은 기저귀를 뜯어서 뿌려 놓은 것들과 오물들이 뒤섞여서 낮에 봤던 모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선은 그날 밤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면서도 몸부림치는 엄마를 붙잡고 밤을 세워야 했다.

아침이 되자 요양보호사가 왔다.

"어르신의 상태가 저 정도면 제가 하루에 세 시간 돌보는 것으로는 감당이 안 돼요. 누구라도 계속 어르신 옆에 있어야 하는데 걱정이네요. 이대로는 저도 계속 일을 할 수가 없어요."

지선은 더 이상 엄마를 부탁한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아침에 엄마가 좋아하던 호박죽을 끓여서 상을 차렸지만 엄마는 숟가락질도 못하고 지선이 떠먹여주는 것을 겨우 받아먹었다. 급한 일만 처리하고 내려온 참이라서 겨우 이틀 정도만 자리를 비우게 된 지선이다. 그렇다고 병마에 시달리며 요양 중인 남동생에게 엄마를 맡겨 놓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지선의 고민이 깊어졌다.

현관문을 열고 마당에 내려서는 그녀의 시선이 황폐해진 화단과 뿌옇게 먼지가 내려앉은 장독대에 가서 닿았다. 한때는 저 화단이 온갖 꽃들로 장관을 이룬 적도 있었다. 연자방아 돌확이 멋지게 자리했던 장독대 옆에는 잘 다듬어진 향나무가 기품 있게 자리했었다. 불도화라고 불렸던 꽃봉오리가 탐스럽기 짝이 없는 하얀 수국이 얕은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밀 때쯤이면, 바위 틈새에 심겨진 금낭화가 여기저기서 짙은 향기와 함께 연분홍빛 자태를 뿜어내고, 아버지가 어렵게 구해 와서 심었던 튤립 백여 송이가 우아한 자태로 화단을 물들였다. 어쩌다 대문을 열어놓는 날이면 지나가던 승용차가 멈춰 서서 사진을 찍는 배경이 되기도 했었는데.

그렇지만 지금 지선의 눈에 보이는 것은 돌보는 손길이 전혀 닿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스산한 풍경이었다. 물론 아직 꽃필 계절이 되지 않았으니 수국의 탐스러움도 금낭화의 짙은 향기도 없지만,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두 해가 지났을 때, 엄마가 장을 보러 집을 비운 사이 누군가가 몰래 대문 안에 들어와서 그 많던 튤립을 구근 채 캐어가 버렸다. 엄마는 또 누군가가 연자방아도 실어갈지 모른다며 그 멋지던 연자방아를 조경업자에게 팔아버렸다. 그날 이후, 엄마는 몸도 마음도 흐릿해지는 기억에 의지해 살았다. 그러는 사이에 엄마가 아끼던 천사의 나팔이 커다란 꽃잎을 떨구고 다시는 꽃을 피우지 않았다. 담 너머 보이는 앞산을 한참동안 바라보던 지선이 산책에서 돌아오던 남동생을 불렀다.

"지석아, 엄마를 이대로 둘 수는 없어. 네 생각을 말해봐."

"알아. 그래서 누나가 직접 눈으로 보고 판단하길 바랐던 거야. 마음이 아프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알았어. 그럼 당장 입소할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알아볼게."

그들 남매는 서로가 요양원이라는 단어를 언급하지 않았다.

시설이 깨끗하다고 알려진 몇 군데 전화했지만 이미 만실이었다. 그나마 선심 쓰듯 원한다면 대기명단에 넣어줄 수 있다고 했다. 당장 하루가 급했던 지선은 그녀의 집 근처에 자리가 있다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 엄마의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나 혼자 모시고 가는 건 어려워. 차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지석이 네가 힘들어도 엄마 옆에 같이 타고 가야 해."

그렇게 해서 엄마는 지선의 동네에서 가까운 요양원에 들어가셨다. 이어진 건강검진에서 기존의 치매와 당뇨 등 여러 질병 외에도 심각한 영양실조를 발견했다. 조금씩 진행되던 치매가 코로나19로 입원했던 기간에 빠르게 진행된 것이라고 했다. 다행히도 요양원에서 지낸 지 서너 달이 지나고 나자 스스로 식사도 하고 각종 프로그램에도 참석하는 변화를 보였다. 지영은 매주 요양원에 방문해서 유리문 너머로 엄마를 면회했다. 그때마다 피골이 상접했던 얼굴에 화색이 돌며 뽀얗게 살이 돋는 모습에 안심이 되었다. 무섭게 번져가던 코로나19도 잠잠해지더니 자유로운 면회가 가능해졌다.

엄마는 면회실에서 지선을 만나자마자 집에 언제 가느냐고 물었다. 이번에는 지선이가 큰딸이라는 걸 제대로 알아보는 것 같았다. 어눌해서 도저히 알아듣기 힘들던 목소리도 많이 좋아져서 그나마 알아들을 정도는 되었다. 엄마는 요양원을 병원인 줄 알고 있었다. 하긴 매주 의사가 방문해서 상태를 살피고 상주하는 간호사가 매일 바이오리듬을 체크했다. 고향집에 있을 때는 방문요양보호사가 차려주는 하루 한 끼를 제외하면 제대로 먹지도 않았으니 오죽했을까 싶다. 요양원에 입소한 지 이 년이 넘은 지금은 워커를 밀고 다니며 요양원 내를 자유로이 돌아다닐 만큼 회복되었다.

엄마는 지선을 알아볼 때마다 고향집을 걱정했다. 봄에는 장롱에서 이불을 모두 꺼내어 햇볕에 말려야한다고 걱정, 여름 장마철이면 지붕이 새지 않는지 집 안팎을 돌아봐야 한다는 걱정, 가을이면 보일러가 오래되어 고장 날 수도 있으니 사람을 불러서 정비해야 한다는 걱정. 그럴 때면 정말 엄마가 멀쩡해 보였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오래전에 남동생과 이혼하고 조카들만 데리고 간 올케를 찾아대며 언제 오냐고 물었다. 그것도 애들 엄마가 아닌 올케의 이름을 부르면서.

아, 엄마는 당신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며칠 전 지선은 가까운 친척들에게 연락하고 회사에 휴가를 냈다. 엄마가 몸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고 정신도 돌아와 있을 때가 많은 시기에 그토록 그리워하는 고향에 한 번이라도 모시고 싶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엄마가 친지들을 만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내려가는 길은 지병중 하나인 틱으로 인하여 엄마가 끊임없이 들썩이며 소리를 내긴 했지만 집에 간다는 걸 아는지 얌전했다. 기저귀를 갈아주려고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을 때 간식으로 주었던 두유를 마구 흔들어대는 바람에 승용차 내부를 온통 희뿌옇게 만들어 놓기도 했지만 그나마 큰 사고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옆에서 엄마를 보살필 사람도 없이 지선이 혼자서 운전을 했더니 무척이나 긴장해서인지 등 어깨 팔이 모두 시리도록 아팠다. 생각해보면 지선의 나이도 환갑이다. 그동안 앞만 바라보며 사느라 아플 겨를도 없었다. 직장에서도 머리가 팽팽 도는 젊은 녀석들에게 점점 밀려나는 느낌에 더욱 안간힘을 쓰며 버티는 날들이다.

날이 저물 무렵 고향집에 도착했다. 남동생이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는 당신이 귀히 여기는 아들을 보자마자 끌어안고 등을 쓰다듬으며 안타까움이 잔뜩 묻어나는 안부를 묻고 또 물었다.

"밥은 먹고 다니니? 아픈 데는 좀 어떠니? 애들은 자주 오니?"

옆에서 보기에 민망스러울 정도로 아들에 대한 애정이 덕지덕지 보였다. 그 귀한 아들은 엄마의 존재와 관심이 부담스러울 뿐인데. 옆에서 지켜보던 지선은 저녁을 준비했다. 고향집이라지만 본인이 하던 살림이 아닌 만큼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미리 준비해서 가져간 전복죽으로 엄마의 저녁을 챙겼다. 기저귀도 다시 교체해주고 잠자리에 들 수 있도록 보살폈다. 엄마는 집에 돌아온 것이 기뻐서였는지 흥분해서 쉽사리 잠을 자지 못했다. 계속해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하고픈 말이 많았다. 지선은 남동생과 삼겹살을 구워서 김치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나마 쉽게 먹을 수 있는 메뉴를 선택한 것이다. 엄마가 몸도 마음도 병들고 나서 가끔씩 고향집에 갈 때마다 낯선 주방에서 밥상을 챙기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다.

이튿날, 식구들이 오는 날이다. 무쇠 가마솥이 걸린 창고 옆 야외 부뚜막이 기억 속에 있었는데 찾을 수가 없다. 한참을 찾다가 보니 온갖 허드레 물건들이 가마솥 위에 잔뜩 쌓여 있어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걸 모두 치우려니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아서 창고에서 커다란 양은 솥을 꺼내고 동생에게 마당에 장작불을 준비해달라고 부탁했다. 여러 명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던 지영은 마트에서 암탉 여섯 마리와 찹쌀을 샀다. 많은 인원이 먹을 음식을 혼자서 준비해야 하니 가장 적절해 보이는 닭백숙을 끓이려는 것이다. 친척들의 도착시간이 맞지 않더라도 마당가에 놓인 커다란 양은 솥에서 퍼먹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 엄마가 아프고 나서부터 지영에게 고향집 방문은 매번 쉽지 않은 고역이었다. 이번에도 단순히 엄마만 모시고 가는 것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모이는 인원들의 식사도 준비해야 했다.

점심 무렵이 되자 하나 둘씩 도착했다. 서울 사는 지선의 둘째딸네 가족이 돌도 되지 않은 아기를 안고 가장 먼저 도착했다. 그들에게 백숙을 먹이고 있을 때 대전에 사는 숙모가 사촌들과 함께 도착했다. 지선은 불과 얼마 전에야 숙모가 암과 투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숙모는 소파에 앉아있던 엄마의 두 손을 꼭 잡고 조근조근 안부를 묻고 답했다.

"형님, 제가 사는 게 바빠서 형님을 뵈러 가지 못했어요. 죄송해요."

엄마는 멀뚱멀뚱 숙모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서, 왜 이렇게 늙었어? 서방님 먼저 보내고 많이 힘들구나?"

그 말에 당황한 숙모가 지선을 쳐다봤다. 지선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눈짓을 했다.

"엄마한테 지금은 삼십 년 전인가 봐요. 이해해주세요."

숙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나도 친정엄마를 요양원에 모시기 전까지 함께 지냈으니 무슨 말인지 알아. 네가 여기까지 모시고 오느라고 힘들었겠다."

작은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삼십 년이 훨씬 넘었다. 아버지의 동생들은 모두 큰형보다 앞서서 세상을 버렸다. 고향에서는 인물 좋기로 소문났던 아버지 형제들 중에서도 작은아버지는 수재로 이름을 떨쳤던 사람이지만 병에는 장사가 없었다. 여름 감기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병원에 들락날락하기를 두어 달. 고등학교 교사였던 그가 개학을 앞두고 도저히 안 되겠다며 종합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는 뇌종양. 그해 늦가을에 작은아버지가 세상을 떴다. 작은아버지를 닮아서 수재라고 일컬어졌던 사촌동생이 겨우 고1 때였다. 둘째는 중1, 늦둥이 막내로 예쁜 딸아이를 얻어서 너무 행복했던 작은아버지는 그 막내의 초등학교 입학도 보지 못하고 가셨다. 지선은 혼자된 숙모의 고생을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숙모의 아픔을 아는 사촌들이 잘 자라주어 기특했다. 그 숙모가 암 투병 중에도 엄마를 보러 왔다.

막내작은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이 년 뒤에 재혼했던 막내숙모는 올 수가 없다. 목회를 하는 지선의 막내 동생네도 주말은 설교준비 등으로 자리를 비울 수 없으니 못 온다고 했다. 물론 독일에 유학중인 조카는 말할 것도 없지만.

황량하게 비어 있던 넓은 거실이 둘째네와 숙모네가 오고나자 북적북적 사람이 사는 집 같아졌다. 평소에 남동생은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고 지냈다. 식사 때만 잠깐 주방에 들어갔다가 어느새 방에 들어가는 동생이다. 혼자 지내는 것에 익숙했던 남동생도 사람의 온기가 그리웠나 보다. 거실과 방 그리고 마당을 연신 오가며 사촌 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아기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어서 지선의 큰딸 가족이 울산에서, 남동생의 자녀들이 청주에서 도착하자 집은 마치 잔치 집을 방불할 만치 북적였다. 엄마가 요양원에 입원하기 일 년 전에 결혼했던 조카딸이 남편과 동생을 동행하여 들어오자 엄마가 반색을 했다.

"우리 희주가 왔구나. 이리 가까이 오렴. 우리 희주는 어쩜 이렇게 항상 예쁜 거냐."

엄마는 희주의 얼굴을 요리조리 살피면서 쓰다듬었다. 원래도 엄마는 손주들 중에서도 당신이 귀히 여기는 아들의 딸인 희주를 가장 예뻐했다. 하필이면 생일도 엄마랑 같은 날이어서 더욱 엄마의 사랑을 받았다. 그 못 말리는 애정에 다른 손주들이 불평을 해도 끄떡도 않는 사랑이었다. 한참 동안 희주를 붙잡고 쓰다듬던 엄마가 불쑥 말했다.

"그런데 네 엄마는 왜 안 오니?"

그 소리에 모두가 얼어버렸다. 남동생이 이혼한 지가 언젠데 또다시 그런 소리를 해서 모두를 불편해지게 만들었다. 홀엄마 밑에서 잘 자라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조카들이다. 그 아이들이 잊지 않도록 명절 때는 꼭 본가에 보내주는 올케가 고마운 지선이다. 부모가 이혼한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상처였을 텐데 엄마가 또 상처를 건드렸다.

"이해해라. 할머니가 또 예전으로 돌아간 모양이야. 희주 엄마가 보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어쩌겠니."

지선은 조카들과 조카사위를 다독거렸다.

지선의 딸들과 남동생의 아이들, 그리고 숙모와 조카들, 그들이 낳은 증손주들까지 모여서 정신없이 북적거리는 하룻밤이 또 지났다. 아침이 되자 모두들 돌아가야 했다. 하나 둘씩 엄마의 손을 잡고 쓰다듬다가 건강해져서 안심이라며 다음을 기약하고 떠났다.

"할머니가 많이 좋아지셨어요. 고모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다음에 할머니 뵈러 요양원으로 갈게요."

"큰누나가 큰일하시네요. 저희는 먼저 갈게요."

"그래. 너니까 할 수 있는 거야. 네가 있어서 형님의 노후가 안심이구나. 나도 성치 않은 몸이지만 이렇게 모두 모여서 얼굴을 보니 참 좋구나. 지선이 네 말을 애들이 잘 따르니까 다음에도 이런 기회를 갖자. 너만 믿을게."

하나 둘 말을 남기고 떠날 때 마지막으로 남았던 지선의 둘째딸이 투덜거렸다.

"왜 맨날 우리 엄마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거야. 엄마도 환갑이라고. 엄마 몸도 생각해야지. 난 참 맘에 안 들어."

그리고 떠났다.

낮잠을 자고 난 엄마가 희주를 찾았다.

"우리 희주 어디 갔니? 빨리 불러와라."

"애들 다 갔어요. 낼 출근하려면 가야 해요."

엄마는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 옆에서 듣는 사람의 복장이 터지는 것은 알고 싶지 않다. 어찌 보면 치매라는 것이 사람에 따라 참 편리한 기억만 보여준다.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상태는 고려할 필요 없이 본인이 원하는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니 얼마나 편리한가. 지선은 지난 삼일 동안 엄마를 챙기랴, 모처럼 본가에 온 친척들을 먹이고 챙겨주랴, 온몸의 기력이 다 빠져나간 것 같지만 마음만은 뿌듯했다. 엄마가 원하던 대로 모두를 만나게 했으니 이제는 여한이 없을 것 같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것은 지선만의 착각이 아니었을까.

"엄마, 우리도 가야 해요."

"어디를? 내가 우리 집을 두고 어딜 가니?"

엄마의 말이 다시 어눌해졌다. 엄마는 어느새 당신이 누웠던 이불 속에 쏙 들어가서 나오려하지 않았다. 난감해진 지선이가 남동생에게 입 모양으로 말을 전하며 눈짓을 했다.

"엄마, 막내가 엄마 보고 싶대. 주말에는 교회 때문에 바빠서 못 왔다고 엄마가 광주로 오면 좋겠대."

엄마가 이불 속에서 고개를 삐쭉 내밀고 말했다.

"정말?"

"그럼 정말이지. 막내 본 지 오래 됐지? 이 참에 가서 막내 얼굴도 보고 와."

남동생의 설득에 엄마가 고개를 끄덕이고 이불 속에서 나왔다. 지선이가 기저귀부터 갈아주고 옷을 입혔다. 짐은 미리 차에 실어두어서 엄마만 타면 출발할 수 있게 해 두었다. 동생의 부축을 받고 차에 오르면서도 엄마는 연신 아들의 손을 만지작만지작거렸다.

고향집에서 출발한 지 삼십여 분이 지났을까. 갑자기 엄마가 눈을 번뜩이면서 말했다.

"그런데 내 도장하고 신분증은 어디 있니?"

지선은 전방을 주시하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엄마, 그건 내가 갖고 있기로 했는데 생각 안 나?"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또다시 말했다.

"내 통장도 네가 갖고 있지?"

"무슨 통장? 아, 노령연금 들어오는 통장은 내가 갖고 있어. 그걸로 엄마 영양주사 같은 거 놔주게 하는 건데."

그랬다. 엄마의 목돈이 들어 있던 통장은 남동생에게 그대로 옮겨주었고, 매달 노령연금이 들어오는 통장은 지선이가 갖고 엄마가 필요로 하는 것을 조달하는데 보태기로 동생들과 얘기를 끝냈었다. 노령연금이라고 해봤자 이삼십만 원이다.

"너 내 돈 내놔."

갑자기 엄마가 운전하고 있는 지선의 오른팔을 잡고 늘어지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엄마, 나 운전하잖아. 제발 건들지 말고 가만 좀 있어요. 위험하잖아."

말이 통하지 않는다. 엄마가 오른팔을 잡고 흔들어대자 운전대가 흔들렸다.

"무슨 통장을 내놓으라는 거야? 노령연금은 얼마 되지도 않는데 그걸로 뭐하려고. 필요한 것 있으면 사줄게 말해요."

"누가 쥐꼬리만큼 들어오는 거 달래? 내 거 있잖아. 네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아끼고 아껴서 모아놓은 돈인데 그게 얼만 줄 알고 가져가. 나쁜 년. 당장 내놔."

"그 목돈 통장은 지석이 줬잖아요. 그걸 나한테 내놓으라고 하면 어쩌라는 거야."

"당장 차 세워. 집에 가서 우리 지석이 밥해줘야 돼."

엄마가 어눌한 발음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니 지선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좋은 마음으로 고향집에 모시고 갔는데 다른 사람들은 좋았을지 몰라도 지선에게는 역시나 오늘도 망해버린 날이다.

"네가 도장이랑 갖고 있다며. 그러니까 돈도 네가 다 가진 거잖아. 우리 지석이 아파트 사주려고 남겨 놓은 돈이야. 내 돈 내놔."

엄마가 지선의 오른팔을 잡고 마구 흔들어댔다. 도저히 운전을 할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깜빡이를 켜고 고속도로 갓길에 승용차를 세웠다. 지선은 엄마가 늘 아들 타령하는 것에 지치다 못해 포기한 지 오래이다. 그렇지만 이 같은 상황에서는 화를 참을 수가 없다.

"그놈의 아들 아들. 그렇게 좋으면 끝까지 잘 살았어야지. 그 좋아하는 아들이 엄마랑 못 살겠다는데 어쩌라는 거야. 평생 아들 타령만 하더니 지금 이 꼴이 뭐야. 아들한텐 있는 돈 없는 돈 싹싹 긁어서 사업자금이랍시고 주더니 대체 이 꼴이 뭐냐고. 내가 어떻게 사는지는 관심도 없고 하다못해 내가 살던 집 팔아서 갚는다고 아파트 잔금 오백만 원만 빌려달라고 했을 때 뭐라고 했어. 아버지가 남겨준 돈 탐내는 나쁜 년이라고 욕까지 했지. 그렇다고 내가 유산이라도 한 푼 받았냐고. 하다못해 아버지 병원비도 내가 다 냈는데 남아있던 논이랑 밭은 다 어떻게 했어. 내가 그거 궁금해 하고 욕심낸 적 있냐고."

머리끝까지 화가 솟구친 지선이가 소리소리 지르며 속엣 말을 해대자 엄마는 눈만 끔뻑거리며 조용해졌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지선이지만 남편과 헤어진 뒤 혼자서 살아가기가 힘들 때면 문득문득 부모가 원망스러웠다. 공부 잘한다고 남들한테 자랑할 때는 신나하더니만 막상 지선이가 대학 예비고사에 합격하고 대학진학을 하려고 했을 때는 부득부득 말리던 엄마였다. 세 살 터울의 동생들이 줄줄이 고등학교 중학교에 입학해야 하는데 대학은 무슨 대학이냐며 눈을 흘겨가며 매섭게 반대했다. 심지어 교육대학이라도 함께 지원하자며 교대 원서를 들고 왔던 지선의 친구를 내쫓기까지 했다.

돌이켜보면 참 바보같이 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지선의 호적상 나이는 16세밖에 되지 않았다. 실제 나이보다 한 살 늦게 호적에 올렸던 탓도 있지만 남들보다 빠르게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것이다. 지선의 고향집은 초등학교 바로 앞에 있었다. 학교 운동장을 놀이터 삼아서 놀다가 함께 놀던 동무들이 운동장에서 입학식을 하자 지선이도 같이 줄서 있다가 그대로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처음엔 망설이던 담임선생님도 다니다가 못 다니면 내년에 다시 입학하면 된다고 했다. 지금이라면 얼토당토않을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유치원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으니 충분이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막상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가 문제였다. 성년이 못 되었으니 공무원 시험에 응시할 수도 없고 일반 회사에도 취직할 수 없었다. 정상적으로 대학을 나온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이후 지선의 삶에 많은 영향을 줬다. 지선은 남들보다 더 많이 죽도록 노력해야 했다. 그렇게 해서야 지금의 안정된 직업을 가질 수 있었다. 그것도 잠시, 환갑이 지나자 주위의 시선과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직장 구하기가 어려울 때마다 지선은 애초에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학진학을 했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그랬으면 굳건히 교직에 있으면서 안정된 삶을 살았을 테고 정년퇴직이 보장되었으니 밀려나는 두려움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됐다. 나이가 들면서 직장이 불안정해질 때마다 대학진학을 반대했던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지선이 지난날을 돌아보며 가슴을 치는 동안 눈물은 주책없이 멈출 줄 몰랐다. 실컷 소리 내어 화를 내고 울부짖다가 옆을 돌아보니 엄마는 어느새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들어 있다. 잠든 엄마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던 지선은 한숨을 내쉬고 다시 차 시동을 켰다. 잠자는 모습이 참 평화로운 엄마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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