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6월 6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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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였으면 좋으련만….”
닳고 닳아 시멘트 가루가 날릴 것 같은 육교 계단 앞에서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6차선 도로를 내달리는 자동차들 때문에 길 건너 우체국이 보였다가 안 보였다 반복되었다. 어머니가 미웠다. 아버지도 지독하게 원망스러웠다. 인연을 끊는 방법을 떠올려 보았다. 허름한 양복 안주머니에 든 봉투를 만져보았다. 내 피와 땀방울과 허기진 배가 함께 만들어 낸 돈과 사무실에서 휘갈겨 쓴 유서가 함께 들어있다. 진저리를 쳤다. 10만 원짜리 수표 스무 장이 들어있다. 전부 박박 찢어발기고 싶었다. 한겨울 찬바람이 계단을 휘감았다.
어젯밤부터 차디찬 겨울바람이 가슴에 몰아닥쳤다. 내 가슴을 차갑게 얼린 것은 아버지였다. 일부러 그랬겠지만 덥수룩한 수염과 머리칼에 때 절은 옷을 입고 기별조차 없이 습격하듯, 삐걱대는 문을 열고 들어왔다. 말이 13평짜리 아파트지 실제론 9평이다. 건축업자가 4평씩 갉아먹었다고 한다. 책꽂이 하나에 낡은 책상을 놓으면 이부자리 두 채를 겨우 깔 정도로 작은 방이었다.
조금 큰 방은 주인 내외와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두 살짜리 아들이 살았다. 내 방문 바로 옆에는 덩치 큰 사람은 들어가기엔 턱없이 좁은 화장실이 붙어 있었다.
궁상맞은 모습으로 앉아있는 아버지는 내게 공포감을 주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져, 업고 가파른 길을 내려가야 할 것만 같았다. 주인집과 같이 쓰는 부엌 구석에 놓여 있는 작은 찬장에서 김치와 멸치볶음을 꺼내놓고 아버지에게 소주 한 병 사러 가겠다고 했다.
“괜찮다니께 그라네. 술 끊은 지 한참 됐다니께.”
가능하면 아버지의 말문을 막아야 하고 자식이 얼마나 고생하는지도 알게 해야 했다. 아버지가 술 끊었다고 말하는 건 어머니의 술수일 것이다. 아버지가 술을 끊을 만큼 돈이 없고 건강도 나빠졌다는 얘길 대신하는 게 분명했다. 나는 목구멍에 걸린 말을 내뱉고 싶었다.
‘참는 것도 한도가 있잖아요.’그보다 더한 소리도 튀어나올 것 같아 가슴에 누르고 있었다. ‘아버지 같은 바보는 조선팔도에 없을 겁니다.
왜 그렇게 사셨어요? ’
가파른 길을 뛰다시피 걸었다. 시멘트로 포장한 도로는 내 마음처럼 여기저기 패이고 깨져 우툴두툴했다. 이런 산비탈에 서민 아파트를 지어, 겨우겨우 살아가는 사람들 가슴을 더 시리게 하는 것 같았다. 지난 겨울에도 눈길에 미끄러져 다친 사람이 족히 서른 명이 넘었다고 했다.
은행 통장의 액수가 조금만 더 불어나면 만사 제치고 이사 갈 궁리를 했다. 언덕을 내려와 구멍가게에 들어가 소주 두 병을 샀다. 주인 여자가 된소리를 했다.
“술이 몸에 좋단 소릴 들어본 적이 없어. 지금부터 몸 생각하는 게 좋을 텐데….”
소주 두 병 팔아서 얼마 남는다고 주인 여자는 장사꾼답지 않게 건강 챙기라고 말했다. 전구 불빛이 희미하고 가게 문지방이 높아서 하마터면 걸려 넘어질 뻔했다. 소주나 라면을 살 때는 굳이 그 구멍가게를 찾곤 했다. 주인 여자를 볼 때마다 시골의 어머니가 떠오르기 때문이었다. 술 좋아하는 남편하고 살았다는 것부터 푼푼한 웃음이며 수더분한 말투가 마음을 편하게 해주어 그런 듯하다.
아버지가 소주잔을 내밀었다. 무슨 얘길 하려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엊그제 어머니가 다녀가면서 했던 얘기가 아직도 내 귓전을 때리고 있었다.
“미안허다. 부모가 돼가지고….”
어머니에게 평생 처음 들은 말이었다. 나는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암만 생각해도 내가 지 정신이 아니여. 미쳐도 단단히 미쳤었나벼.” 하고 싶은 말이 자꾸 올라와 목구멍에 걸렸다.
‘고아라면 좋겠어요. 내가 고아였으면 좋겠다구요! ’차마 내뱉지 못한 말을 우겨넣고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이에 비해 훨씬 젊어 보인다는 소리를 듣던 여자가 아니었다. 한눈에도 궁벽한 시골 노인이었다. 일부러 그런 행색으로 왔다는 걸 내가 왜 모르겠는가.
“딴사람도 아니고 당숙이 우리 집안을 이렇게 결딴낼 줄 짐작이라도 했겄냐. 그 돈 갖고 도망칠 줄은….”
어머니 목소리에는 울음이 섞였다. 어머니가 늘 살갑게 도련님이라고 부르던 당숙은 읍내 샛강 아래쪽에 제법 규모 있는 제재소 주인이었다. 읍내에서 부자 소리를 들었고 인심 좋은 사장님으로 불렸다. 읍내 장마당에서 백중날 씨름대회가 열리면 송아지 한 마리를 기증해서 그 배포에 놀라기도 했었다. 제재소와 가까운 곳에 기역자 기와집에 살았는데 마당이 제법 넓어서 정월 대보름이면 거기서 마을 잔치까지 했다.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적부터 발이 넓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는 사람이 많고 신용이 좋은 덕에 계주로 이름이 났다. 별명이‘왕주 아줌니’ 였고 읍내뿐 아니라 인근에서 어머니가 장만하는 계를 서로 들으려고 했다. 그렇다고 아무나 계원으로 뽑아주지 않았다. 곗돈 떼어먹을 여자들을 알아보는 어머니의 눈썰미가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도 한방에 뒤통수 깨지는 꼴을 당하곤 했다. 어머니가 계주가 되어 집안을 거덜 낸 것은 내가 아는 것만도 이번까지 네 번째였다. 자잘한 사고는 어머니 솜씨로 소리소문없이 해결한다는 걸 어렴풋이 알았다. 어머니가 만든 계가 여러 개여서 더러 곗돈 받는 심부름을 다녔는데, 어머니에게서 받는 수고비가 푼푼해서 자청할 정도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어머니가 통행금지 해제 사이렌이 울리면 새벽바람에 나갔다가 0시 통행금지 사이렌이 울리면 들어왔다.
빚쟁이들이 수시로 우리 집을 뒤지곤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달달한 말솜씨로 성질내는 여자들을 돌아 앉히는 재간이 있었고 계원들을 설득하여 빚 갚는 날짜를 명시한 서약서를 나누어주어 또 계를 들게 만들었다. 어머니는 그런 식으로 계를 자꾸 만들어 빚을 모두 갚아나갔다. 내가 복학하여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다닐 때, 어머니는 저당 잡혔던 집도 찾았다고 자랑했다. 신기한 것은 그런 어머니에게 군말 없는 아버지 모습이었다. 참다못해 내가 아버지에게, 어머니의 계주 노릇을 말려달라고, 집안 거덜 낸 게 벌써 몇 번째냐고 따졌더니 돌아온 대답이 이랬다.
“그럼 어쩌겄냐. 산사람더러 죽으라고 하겄냐, 서방, 자식 두고 나가라고 하것냐. 살다 보면 별일이 다 많은 벱 아니겄냐. 느이 엄니가 일부러 그런 거 아니고 재수가 없으려니까 그런 거겠지. 여태 느이 엄니 덕에 우리가 남부럽지 않게 호강한 건 사실 아니냐. 말린다고 들을 사람도 아니잖냐. 느이 엄니는 벼락을 맞아도 살어날 사람이니께 그러려니 혀. 자식헌티 참 면목이 없다만 저러다 느이 엄니가 죽어버리면 워쩔 것이냐. 다 내 팔자가 글러서 그런 걸…. 설마 굶어 죽기야 하겄냐.
” 나는 그렇게 어머니를 감싸는 아버지에게 대들었다.
“이게 무슨 호강이에요? 아니, 아부지가 엄니한테 바른말 못하는 사정이라도 있어요? ”
아버지는 술 없이 못 사는 사람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술에 절어 살았다. 기이한 것은 그런 남편에게 잔소리하지 않는 어머니의 태도였다. 다른 집은 술에 찌든 남편에게 잔소리하는 아내와 걸핏하면 다툰다고 했는데 우리 집에서는 잔소리는커녕 아버지가 빈속으로 들어오면 어머니는 얼른 술상을 차리곤 했다. 그건 마치 아버지의 술타령과 어머니의 계주 노릇을 상호 인정하는 은밀한 거래 같았다.
나는 아버지의 단골 술집 여산옥을 떠올렸다. 여산옥이 장터 초입에 생긴 것은 얼추 십 년 전이다. 마담은 읍내의 여염집 여자들에 비해 키가 반 뼘 넘게 컸고 인물은 서울내기라는 게 거짓이 아니라는 듯 잘생겼다. 동무 집에서 놀다가 자리 털고 일어나 집에 가는 길에 반쯤 열린쪽문 틈으로 마담과 마주 앉아 술 마시는 아버지를 어쩌다 보았다. 두 사람은 그냥 손님과 마담 같지 않았다. 마담은 어머니에게 계를 들기 때문에 더러 내가 곗돈 받으러 가면 용돈을 주었다. 그럴 때마다 그 돈은 어머니 덕이 아니라 아버지 덕에 받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큰 마담은 더러 아버지가 드실 해장국 거리를 챙겨주기도 했다. 갖고 들어가면 어머니는 반색을 했다. 설마 하면서도 아버지가 마담과 정분이 난 걸 눈감아주고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의 외줄타기를 묵인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평생 처음으로 아들과 맞술을 마셨다. 연신 담배를 피우는 아버지 때문에 가끔 창문을 열어야만 했다. 찬바람이 삽시에 방을 냉기로 채웠다.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빈 술병을 치우고 자리에 누웠다. 아버지는 몇 번이고 화장실을 들랑거렸다. 깊은 밤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가 요란해 혹시라도 집주인이 깰까 싶어 마음을 졸였다.
“집세를 못 내… 집에서 쫓겨나게 됐구먼. 주인도 봐주는 데 한계가 있겄지….”
아버지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인공 난리에도 살어남았는디, 이젠 살어갈 길이 막막허다. 설마 산 입에 거미줄 치겄냐만… 자식 하나 있는 거 바라지도 못한 주제에 면목이 없다. 죽자 하니 지옥이 눈앞에 선하고….”
강론 중에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고 한 신부님의 말이 떠올랐다. 집안 사정이 어떤지 엊그제 어머니한테 상세하게 들었기에 더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밤을 지새우다시피 한 아버지는 새벽 기차를 타고 내려가겠다고 우겼다. 아파트를 나와 걷는데 아버지의 걸음은 발목을 삔 사람 같았다. 그냥 서울역으로 가겠다는 아버지를 억지로 버스정류장 골목안에 있는 해장국집으로 모셨다. 밥 두어 숟갈에 국물만 반 그릇쯤 마시고 일어선 아버지의 눈가에 물기가 서렸다.
“느이 엄니가 죽으면 난들 살 재간이 있겄냐. 느이 엄니, 망할 작정으로 그런 게 아니라 우리도 남 못지않게 살아보자고, 자식 집한채사줄 작정으로 그러다가 당숙한테 당한 거니께 미워허들 마라. 죄가 있다면 당숙 앞세운 내 잘못 아니겄냐.”
내 입에선 어머니의 욕심 때문이지 아버지가 뭔 죄를 졌냐는 소리가 나올 참이었다.
“느이 엄니, 약 먹었다. 게우 살려놓고 왔으니 어여 내려가야 혀. 또 무슨 짓을 할지 몰러.”
아버지의 눈물이 거짓인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나는 갑자기 고아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흠칫 놀랐다. 빚잔치를 하느라 전답은 물론 집까지 처분하고 오갈 데 없는 건 사실이다. 나라도 약을 삼켰을 것 같았다. 문득 어머니 성격으로 미루어 약을 먹을 여자가 아니라는 생각도 했다. 아버지가 꾸몄거나 어머니의 사주를 받았거나, 말수 없고 거짓말을 잘 못하는 아버지가 지어냈을 수도 있다.
출근하여 결재서류를 만드는데 복덕방 영감이 두 번이나 전화로 계약을 채근했다. 회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문간방을 보여준 복덕방 영감은 회사까지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집주인이 점잖아서 세 살기 딱 좋다고 했다. 허튼소리 같진 않았다. 젊은 사람이 인상도 좋고 인사성도 바르니 꼭 내게 그 방을 내주라고 집주인에게 말했다고 한다.
육교 위에서 신촌 네거리 쪽을 바라보았다. 겨울바람이 된소리를 지르며 지나갔다. 육교 난간은 얼음덩어리처럼 차가웠고 자동차 소음과 합주하듯 된바람은 통 넓은 바지 끝에서 내복을 훑으며 사타구니까지 냉기를 채웠다. 버스는 빠르게 내달렸다. 뛰어내리고 싶었다. 그러면 모든 게 편안해질 것만 같았다. 막막하기만 한 앞날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어머니의 빚잔치에 시달릴 일도 없을 테고 돈 모으려고 안달하거나 끼니때마다 뭘 먹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육교 위에서 펄쩍 뛰어내리면 우람한 쇠뭉치, 버스에 치여 그 자리에서 죽을 것이다.
한겨울 얼어버린 아스팔트 바닥에 머리통이 깨져 즉사할 것이다. 그러나 죽기엔 아까운 나이다. 내가 죽어도 슬퍼하고 통곡할 사람이라곤 빚쟁이 어머니와 무능한 아버지뿐이겠지. 신문에 죽었다는 기사 한 토막 실리지 않을 테고 시체 치우느라 여러 사람이 고생할 것이다. 주머니에 들어있는 수표 10만 원짜리 스무 장 때문에 자살이 아니라 실수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 돈이 어머니에게 제대로 전달된다는 보장도 없다. 죽 을 생각을 하니 머릿속이 더 복잡했다.
육교 건너 왼편에는 작은 우체국이 있고 거기서 오른쪽으로 한참 올라가면 복덕방에서 마음씨 좋게 생긴 영감이 담배를 문 채 나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딱 죽으면 세상사 모두 편안할 텐데, 안주머니에 들어 있는 수표 때문에 죽지 못하는 사내가 바로 나였다.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지만 얼른 내려가지 못하는 것은 우체국으로 가서 수표를 소액환으로 바꾸어 등기우편으로 시골에 보낼 것인지 아니면 복덕방 영감에게 전세계약금으로 10만 원짜리 2장을 내밀 것인지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죽지 못할 거면 고아처럼 살자.’이렇게 다짐하며 육교 오른쪽 계단으로 내려갔다. 울고 있을 어머니를 생각하면 발걸음이 무겁고 자꾸 등 뒤의 우체국이 눈에 밟혔다. 그러나 다달이 어머니의 하소연에, 출퇴근할 때 두 번 타던 버스를 한 번만 타고 먼 거리를 걷고, 여자대학 정문 앞 골목에 있는 싸구려 밥집에서 밥을 사 먹으며 허한 뱃속을 위로하고 아낀 돈을 매번 소액환으로 집에 보내던 생각을 하면 이번에는 죽기 살기로 전셋집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
복덕방 영감은 올 줄 알았다는 듯 미리 작성한 계약서에 지장부터 찍으라고 했다. 지장을 찍은 오른손 엄지손가락은 휴지에 침을 발라 여러번 지웠지만 붉은 인주 자국이 내 마음처럼 남아있었다. 영감은 나를 데리고 그 집으로 갔다.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붉은색 니트 코트를 입고 반갑게 맞아준 집 주인 여자는 계약서를 꼼꼼하게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읽은 뒤 엄지손가락보다 큰 둥근 도장을 꾸욱 눌러 찍었다.
“이왕 왔으니 잘 둘러봐요. 총각이 참하게 생겨서 마음이 놓이네. 먼저 살던 사람은 집 장만해서 이사 갔는데, 총각도 그랬으면 좋겠다. 여기 살면서 장가도 가고….”
출근할 때는 내리막길이고 퇴근할 때는 오르막이지만 회사에서 걸어 다닐만한 거리여서 좋았다. 더 마음에 든 것은 문간방이라 주인 눈치 보지 않고 드나들 수 있고 화장실이 쪽문 옆에 있어서 편했고 세면대와 시멘트로 만든 수조가 있어 빨래하기도 수월할 것 같았다. 부엌이 작고 창문이 뻑뻑한 것 말고는 마음에 쏙 드는 집이었다.
“연탄창고는 같이 써야 하지만 서로 불편하진 않을 거예요.”
둥글넓적한 주인 여자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많고 인정이 있어 보였다. 남편이 세무서에 다녀서 살림이 넉넉하다는 복덕방 영감의 말을 떠 올리며 더러 반찬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했다.
언덕길을 내려오면서 발걸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자칫 피 같은 20만 원을 날리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빚쟁이에 사글세 방세도 못 낸 부모의 사연을 알면서 나 혼자 잘 살자고 전세 계약을 했다는 죄책감과 이번에도 어머니는 빚잔치를 하고 언제 망했더냐 싶게 잘 살 테니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마구 엉켰다. 되돌아가서 계약을 파기하고 20만 원을 돌려받고 싶은 마음과 이번엔 어머니의 버릇을 한번 꺾어보자는 오기가 뒤엉켰다. 육교를 건너며 내달리는 버스와 트럭을 내려다보았다. 아까처럼 뛰어내리고 싶지는 않았다. 장갑을 벗어 인주 묻은 손가락을 보았다. 10만 원권 수표가 자꾸 어른거렸다. 이사한 뒤에 시골의 부모를 모시고 와서 전셋집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지금 계약을 취소하면, 계약서대로라면 계약금 20만 원을 포기해야만 할 것이다.
그 20만 원과 안주머니에 있는 180만 원은 나를 견디게 하는 힘인지 도 모른다. 잊을 수 없는 이름, 장미선. 그녀 얼굴을 떠올리면 계약금 20만 원은 황홀한 복수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쁜 여자도 아니지만 좋은 여자도 아니었다. 물론 그녀를 그렇게 만든 원인은 내 거짓말 때문이니까 원망하거나 미워할 수도 없었다. 100m 달리기를 몇 초에 하느냐고 물으면 학교 다닐 때 가장 빨리 달린 걸 말하듯 나는 우리 집이 제법 여유롭게 살던 시절을 떠올리며 시골에선 비교적 넉넉한 집안이라고 했다. 그녀에게 환심을 사고 싶었고 그 정도는 어영부영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남녀가 사귀는데 궁핍한 집안 얘기를 굳이 늘어놓을 까닭이 뭐 있겠는가. 없어도 있는 척, 있으면 더 많은 척을 하고 친절하고 착한 척을 해서 나쁠 게 없지 싶었다. 다른 데서는 궁색한 티를 내도 그녀에게 만은 풍족한 척, 밥값도 커피값도 아끼지 않았다.
친구 녀석이 왜 그녀를 밤늦게 내가 사는 그 옹색한 서민 아파트로 데려왔는지 몰랐다. 그녀는 궁상맞은 내 삶의 현장을 훑어보고 늦었으니 얼른 집에 가야 한다며 일어섰다. 내가 차 타는 곳까지 따라 나갔지만 굳은 표정을 펴지 않은 채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렸다. 나는 그제야 녀석이 미선이를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참으로 냉정했다.
녀석의 입을 빌려 절교를 선언했고 나를 거짓말쟁이로 규정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시골집 망한 사연까지 그녀가 죄다 알고 있다는 걸 미선이의 여자친구를 통해 듣게 되었다. 그 모든 게 그 녀석의 교묘한 술수였다는 걸 알게 된 건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 둘이 사귄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하소연할 데도 없는 신세였다. 좋은 집은 아니지만 문간방이나마 전세로 얻었으니 작은 복수를 했다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참 가여운 복수지만…. 하긴 녀석을 미워하기도 쉽지 않았다. 녀석의 어머니도 우리 어머니에게 계를 여러 몫 들었다가 뜯긴 처지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막내고모는 수화기 너머로 표정까지 느껴질 만큼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찾았댜. 당숙, 그 인간이 어딨는지 알아냈댜. 남을 못살게 죄지은 인간이 숨어봤자 어디 가겄냐, 뗏장 덮고 죽었으면 모를까…. 우리만 찾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서 퍽이나 많이 해먹고 도망친 모양이랴.”
“당숙어른 지금 어디 있대요? ”
“어른은 무슨 어른. 베락 맞을 인간, 저승도 못 가고 계룡산 깊은 골짜기에서 누가 봤댜. 얼마 못 살겠더랴…. 죽으면 안 되지. 떼어먹은 거 다 토해내지 않고 죽으면 안되고 말고.”
“당숙모도 같이 계신가요? ”
“그 인간은 진작에, 벌써 내뺐지. 빈털터리로. 서방 부추겨 남의 돈으로 호사 부리고, 거들먹대더니 그꼴난겨. 벌받아도싸.”
내 머릿속은 느닷없이 복잡해졌다. 당숙이 계룡산 골짜기에서 얼마 못살게 생겼다면 돈을 되찾기 어려운 상황일 것이다. 돈을 못 받으면 어머니 대신 사람들이 경찰에 넘길 텐데, 훗날 친척들에게 우리 집안만 덤터기를 쓰겠다 싶었다.
“시방 얼렁 내려와야겄다. 그 인간이 있는 델 댓골 황씨가 안다는데, 낼 시간 낸다니까 니가 얼렁 내려와야겄어. 늬 엄니는 혼자서라도 달려 간댜. 무슨 사달이 나도 날 모양이니께 장정인 니가 같이 가야 혀. 나도 억센 여편네 두어 명 데리고 따라갈 참이여.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 도 당장 내려와. 늬 아부지는 심지가 없어서 가나마나여….”
막내고모는 나한테 확답을 듣기 전엔 전화기를 놓을 성미가 아니었다. 그렇거니 궁금한 걸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댓골 황씨 아저씨가 당숙어른을 봤다면 지금은 피했을 수도 있잖아요.”
“황씨가 의뭉스러워도 멍텅구리는 아니지. 눈치채지 않게 했다잖여. 늬 엄니한테 신세 갚을 일이 수두룩하니께. 귀신도 눈치 못 채게 했댜.”
막내고모와 입씨름 하기 싫어 얼른 전화를 끊을 요량으로 말했다.
“제가 간다고 도울 일이 뭐가 있겠어요. 당숙어른께 제가 무슨 말을 하겠냐구요. 그 어른 우악스런 건 고모도 알잖아요.”
아버지의 사촌 형제 중에 셋째인 당숙은 젊은 시절 한때 읍내에서 힘 깨나 썼고 반건달 노릇을 했기에 친척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술에 쩌들고 잡질에 삭신이 녹아서 힘자랑 못한 지가 언젠 줄 아냐? 재작년 기제사 때 느이 막내고모부한테 세 판이나 졌잖여.”
막내고모부가 당숙어른을 씨름판에서 이겼다는 걸 은근히 자랑했다.
“그럼 고모부 모시고 가면 되잖아요.”
“그걸 시방 말이라고 혀? 나중에 집안 어른들이 알면 똥친 작대기 취급 받어. 그러니 잔말 말고 얼렁 내려와. 저러다 엄니 속 터져 죽어. 너 하나 믿고 사는디… 그 인간도 널 보면 함부로 못할 겨. 무조건 내려와. 그런 줄 알고 전화 끊는다.”
급한 대로 회사 일을 정리하고 밤 기차를 탔다. 통행 금지를 피하려 기차의 시간표를 계산해야만 했다. 야간열차는 내 마음을 아는지 곳곳에서 쉬면서 밤새 달렸다. 마라톤 선수보다 느릴 거라는 생각을 했다.
잠들지 못했다. 코 골며 자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머릿속에 공깃돌 같은 게 굴러다녔다. 당숙이 그 많은 돈을 들고 야반도주해서 번듯하게 살고 있다면 희망이 있으랴만. 말린다고 들을 어머니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몇 가지 다짐을 했다. 당숙이지만 우리 집안을 풍비박산으로 휘몰았으니 매섭게 따지자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와 따라나선 아주머니들은 모두 몸빼를 입고 있었다. 연장만 안 들었지 영락없이 새마을운동에 동원된 여자들 같았다. 막내고모는 지팡이까지 들고 있었다. 사내는 달랑 나 혼자였다. 심마니 황씨는 보이지 않았다.
“사내자식은 모름지기 모질 때는 위아래도 窪어야 허다고 안혔냐. 우리 집 망가뜨린 인간은 친척도 아니고 날강도여. 딴 사람은 몰러도 너 헌티는 함부로 할 인간이 아니니께 맘 모질게 먹어야 혀.”
어머니보다 고모가 먼저 다그쳤다.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게 지팡이를 건넸다.
“느이 아부지도 이참에 인연 끊겠다니께 그리 알고 다부지게 대들자.”
아버지 성격에 당숙을 그런 식으로 말했을 리 없다. 보나마나 어머니가 일방적으로 말해놓고 나를 충동질하는 것 같았다.
“그 양반이 어쨌거나 넌 우리 집 대들보라고 했어. 니가 따지고 들어도 헐 소리가 없을 겨. 그 나이 됐으니 힘도 못 쓸 거고. 엄니 살릴라믄 눈 딱 감고 쳐들어가. 무슨 말인가 알지? ”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이럴 때는 듣는 척하는 게 상책이기 때문이다. 논산역에 도착하자 심마니 황씨가 반갑게 우리 일행을 맞았다. 내 손을 잡고 흔들 때 그의 아귀힘이 느껴졌다.
“느이 엄니가 불쌍해서 그 양반 있는 델 알려줬는디, 내가 못 할 짓을 하는 거 아닌가 싶어. 이 지경이 됐으니 발을 뺄 수도 읎고…. 그러니 내가 발설했다는 건 비밀로 해주게나.”
“알겠습니다. 신세 갚겠습니다.”
황씨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벙거지를 눌러쓰고 앞서 걸었다. 아주머니들이 잰걸음으로 황씨를 따라 걸었다. 아주머니들은 보나마나 곗돈 뜯긴 여자들이 분명했다. 전부 내가 아는 얼굴들이었다. 기차가 멈춘 곳은 두계역(豆溪驛)이었다.
갈 길이 멀어서인지 황씨는 자꾸 채근했다. 어둡기 전에 산을 벗어나야 했기 때문인듯했다. 젊은 내가 지쳐 걸음이 더뎌지는데 어머니와 아주머니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기를 쓰고 걸었다. 어머니와 아주머니들은 떼인 돈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로 독한 마음을 먹어서인지 건장한 황씨를 잘도 따라 걸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황씨 뒤를 바짝 따라 걷는 어머니도 그 뒤를 따르는 말 많은 막내고모도 말이 없었다. 가파른 고갯길 중턱쯤에서 각자 허리춤에 묶었던 보자기를 풀었다.
막내고모가 급하게 김밥을 먹고 일어나더니 지팡이를 서너 번 휘두르며 말했다.
“계룡산엔 귀신이 많다는디, 그 인간을 안 잡아간 걸 보면 우리더러 작살을 내라는 거여.”
황씨가 걸망을 메고 일어서자 어머니와 아주머니들은 얼른 보자기를 허리춤에 묶었다. 오솔길을 벗어난 황씨가 지팡이로 산마루를 가리켰다.
“저 고개를 넘으면 내리막인디, 내리막 끝에서 오른쪽으로 돌믄 거기 굿당이 있슈. 그 양반이 거기 있을 거유. 나는 저 아래 굿당에 있을 거니 웬만하면 후딱 내려와유. 날이 빨리 어둬지는 데라 짐승도 나오고 더러 허공장천 떠도는 거시기도 나오니까. 나야 굿당에서 자구 새벽에 산 타러 가두 그만이지만 아줌니들은 귀신 씌일지두 몰러유.”
굿당에 오래 있지 말고 하산하잔 말을 그런 식으로 했다.
“여기두 귀신들린 사람이 있남유? ”
막내고모가 이렇게 물었다.
“쌔고 쌨슈. 귀신들린 사람이야 피하면 되겄지만 밧줄로 목매단 사람 만나믄 오줌 싸유.”
“그만해유! ”
어머니가 얼른 말렸다. 말 많은 사람이 겁도 많다고 했던가. 막내고모가 걸음을 재촉했다. 황씨 입장을 대충 짐작할 것 같았다. 당숙어른 숨어 있는 곳을 알려줬으니 무슨 사달이라도 나면 그 책임이 가볍지 않을 것이다. 산마루에 오르자 땀범벅이 되었다. 잠시 쉬었다 가도 되련만 앞장선 어머니는 숨을 몰아쉬며 내리막길을 쉼 없이 걸었다. 마음이 급했을 것이다. 집안이 풍비박산 난 분풀이를 할 작정으로 나섰고 빚쟁이 아주머니들까지 대동했으니 한시가 급했으리라. 어머니가 자꾸 뒤돌아보며 내가 잘 따라오는지 감시했다. 남자라곤 나 혼자였다. 나이든 당숙이라고 하더라도 한창때 힘깨나 썼던 사내였으니 여자들이 여럿이라도 내가 없으면 감당 못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굿당 앞에서 어머니는 성호를 그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아멘’하는 목소리가 또렷했다. 어머니는 당숙이 어머니 목소리를 알아듣고 굿당 문을 열어주길 바라며 신호를 보낸 것 같다. 그래도 기척이 없자 어머니는 지팡이를 내게 맡긴 채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당숙어른이 안에 계신 것 같네.”
그래도 기척이 없자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고 혼잣말을 했다.
“서방님이 편찮으신가부다. 니가 들어가 안부 여쭈어라.”
굿당 안에 분명 당숙어른이 있다고 확신한 어머니는 내게 말했다. 굿 당 문 앞에 놓여있는 신발 두 켤레의 크기를 가늠해보면 당숙의 신발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덩치만큼이나 신발 크기도 보통 남자들보다 훨씬 컸다. 문을 열고 싶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눈빛을 피할 수가 없어 굿당 문을 손으로 밀었다. 허름한 나무 문짝이 삐그덕 거리며 열렸다. 이부자리가 보였다. 사람이 그 속에 누워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열린 방문 너머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이불을 들춰볼 것인지 그냥 기다릴 것인지 묻는 것이다. 어머니가 고갯짓으로 이불을 걷어보라는 시늉을 했다.
“아저씨, 주무세요? ”
내가 생각해도 목청이 너무 높았다. 이불이 살포시 움직였다.
“아저씨, 제가 왔어요.”
“서방님, 어디 편찮으셔유? ”
어머니 목소리는 절로 이불이 벗겨질 정도로 높았다. 어머니는 턱짓으로 이불을 걷어보라는 시늉을 했다. 나는 이불자락을 잡고 말했다.
“아저씨, 저 왔어요. 일어나보세요.”
이불이 들썩였다. 나를 쳐다보고 있는 어머니와 아주머니들의 눈빛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이불자락을 잡아당겼다.
“아저씨 뵈러 왔어요.”
눈감은 당숙의 얼굴은 구안와사를 앓아 한쪽으로 쏠려있었다. 당숙이 눈을 천천히 떴다. 수염 길이로 보면 한참이나 이곳에서 누워지낸 것 같았다.
“괜찮으세요? ”
당숙은 힘겹게 일어나 앉았다.
“아직은… 살어… 있다.”
“어머니도 왔어요.”
“들어…오시라… 해.”
귀 기울이고 있던 어머니는 성큼 들어왔다.
“조카는… 나가… 있거라.”
반신불수로 입이 삐뚤어졌고 발음이 어눌했다. 나는 일어나 나오며 방문을 닫았다. 한참 만에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눈물범벅이 된 어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저만치 걸어갔다. 막내고모가 앞서고 아주머니들이 따라갔다. 길섶 바위에 걸터앉은 어머니가 폭폭하게 울었다.
영문 모르는 아주머니들이 어머니의 손을 잡고 뭐라고 번갈아 묻고 다독였지만 어머니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방문이 열리고 당숙이 엉금 엉금 기어 나왔다. 입은 삐뚤어졌고 수염은 길었으며 그 좋던 인물이 거렁뱅이 몰골이었다. 어머니가 달려가 당숙을 잡고 방 안으로 들어가 한참 만에 방문을 열고 나왔다. 어머니는 내 등을 두드렸다.
“돈가진거다내놔.”
나는 주머니에 있는 돈을 모두 어머니에게 주었다. 어머니가 뭐라고 했는지 모르지만 막내고모와 아주머니들도 어머니에게 돈을 주었다.
어머니는 쌈지에 돈을 넣어 다시 굿당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조금 뒤에 당숙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굿당을 나서 산마루에 도착한 어머니가 지팡이를 짚은 채 입을 열었다.
“남의 피 같은 돈 떼어먹고 잘될 인간이 있을까만 서방님은 벌을 받아도 단단히 받았구먼. 중풍에 입까지 돌아갔고… 조강지처 버리고 반반한 여자 데려다 호강시켰는디… 그 년이 서방 버리고 패물이며 잔돈푼까지 들고 도망쳤으니, 살어두 산 게 아녀. 살면 얼마나 살겄냐구. 우덜이야 뭐 굶어 죽기야 허겄냐…. 목숨이 질기다는 거… 인공 난리에도 살아남었잖여. 무당 만신이 푼전이라도 받아야 저 양반 풀대죽이라도 멕여주지. 그간 행실로 보믄 벼락 맞아 싸지만… 어쩌겄어. 병들고 의지할 데라곤 귀신밖에 없는 걸. 빚진 건 내가 몸뚱이 팔아서라두 갚을 테니 어여 내려가자. 내가 저 양반을 죽어라 미워하고 원망해서 저리된 거 같구먼. 내가 죄받게 생겼어. 참 이년 팔자 드럽게 기구혀….”
어머니 말을 듣고 싶지 않아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저만치 황씨가 손을 들어 보였다. 논산역까지 가는 기차표 살 돈만 남기고 주머니를 탈탈 털었다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이미 지난 일이고 어머니의 말을 거스를 수 없어 모두 할 말을 잃고 기차를 탔다.
서울행 기차표 살 돈까지 빼앗듯이 어머니가 가져갔기에 막내고모가 차비를 보태주었다. 늦은 저녁밥을 먹고 야간열차를 타려고 일어서며 어머니에게 말했다.
“당숙이 그렇게 위중해요? ”
“중풍이지만 십 년은 너끈히 살겠더라.”
“그렇게 미워하더니… 뭐하러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모아서 주고 와요? ”
“한 짓을 따지면 목을 눌러도 시원찮지만 산 목숨인데 어쩌겄냐. 미워하고 한을 품는다고 해결될 거면 왜 안 그러겄어. 내가 한을 품고 미워해서 서방님이 저 지경이 됐는지도 모르겄다. 천주님 믿는다면서 말이다. 늦겄다. 어여 가거라… 참… 너한테 염치없게 전셋돈 달라고 한 거… 제정신으로 한 거 아니니께 잊어버려. 산 입에 거미줄 치지 않을 거여. 얼른 가거라….”
돌아볼 수가 없었다. 등 떠미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눈물에 젖었다.
상경한 다음 날 나는 복덕방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주저리주저리 어머니의 빚잔치와 거덜 난 우리 집 사정이며 오갈 데 없는 부모의 처지와 돈 떼어먹고 도주했던 당숙 만난 사연 따위를 털어놓고 도움을 청했다. 복덕방 영감은 한숨을 쉬다가 담배를 피우다가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전화통을 붙잡고 집주인 여자에게 나 대신 하소연을 했다. 나보다 훨씬 더 내 사정을 잘 아는 말솜씨였다. 그러더니 내 등을 아플 만큼 툭 쳤다. 영감이 잰걸음으로 걸으며 말했다.
“나도 자식 키운 부몬데, 효자 둔 자네 부모가 부럽네 부러워.”
대문을 열어 놓고 기다리던 주인 여자는 내 손을 잡고 노란 봉투를 내밀었다.
“이십만 원, 그대로니까, 나중에 돈 모으걸랑 꼭 우리 집으로 와요. 아이고, 착하기도 해라.”
복덕방 영감과 주인 여자가 그 자리에서 계약서를 잘게 찢었다. 육교를 건너가 은행에 들러 180만 원을 찾고 주인 여자에게 받은 20만 원을 합쳐 2백만 원을 채운 봉투를 안주머니에 넣고 다시 육교 위로 올라갔다. 버스와 트럭은 몹시 사나운 기세로 찬바람 속을 내달렸다. 엊그제만 해도 이 자리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는데 지금은 발걸음이 가벼웠다.
우체국으로 내려가는 계단 쪽에 납작 엎드려 있는 거지는 추위를 이기려 연신 손을 비비고 있었다. 계단 모서리가 닳고 닳아서 미끄러웠다.
우체국에서 2백만 원짜리 소액환을 보낸 등기우편 영수증을 주머니에 넣고 서둘러 육교 계단을 올라갔다. 거지 앞을 서너 발자국 지나쳤다가 돌아섰다. 주머니를 뒤져 지전 몇 장을 꺼내 주었다. 거지는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얼른 안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육교 중간쯤에 섰다. 육교 아래로 갖가지 자동차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두 팔을 벌리고 소리 질렀다.
“세상 사람들 들어보쇼! 내가 우리 집에 돈 2백만 원 부쳤다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