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6월 6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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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 이곳을 지나던 소슬바람이 어딘가에서 후∼ 하 고 꽃씨를 몰아왔어요. 하필이면 그 꽃씨가 떨어진 곳은 쾨쾨한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쓰레기 더미였어요. 평소에 사랑을 담뿍 받고 자라던 꽃씨는, 자신이 바람에 실려 온 이곳이 사람들이 눈 살을 찌푸리며 다니는 길임을 전혀 알지 못했어요.
그때 마침, 살랑살랑 봄바람이 꽁꽁 언 땅을 훈훈하게 녹이며 재잘재잘 봄이 왔음을 알려 주었어요.
‘아이 따뜻해. 이젠 서서히 새싹 틔울 준비를 해야겠구나.’
땅속에서 겨울을 지낸 꽃씨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어요.
봄의 기운을 느끼며 여기저기서 움트는 소리에 겨울을 보낸 찬바람은 화들짝 놀라며 벌떡 일어났어요.
‘봄바람이 왔으니 이젠 떠날 준비를 해야겠어.’
찬바람은 기다렸다는 듯 봄바람을 만나자 품에 와서 안겼어요.
날씨가 따뜻해지자,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은 콧등을 찌르는 고약한 냄새 때문인지 불편한 심기를 누르며 구시렁거렸어요.
“누가 여기다 쓰레기를 버리는지 더러워 죽겠어요. 얼른 지나갑시다!”
“그러게요. 난, 이곳을 지날 때마다 속이 매스꺼워요!”
다들 불평만 할 뿐 아무도 해결책을 찾으려 하지 않았어요.
싹을 틔울 준비에 열렬한 어린 꽃씨는 세상 속 이야기를 들을 새가 없었어요. 어떻게든 곱고 튼튼한 싹을 틔워 세상으로 나와 아름다운 꽃 을 피우길 간절히 소망하였어요.
보름쯤 지나자 드디어 밝고 환한 세상을 보게 되었어요. 어린 꽃씨는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었어요. 그래서 흥얼흥얼 콧노래가 절로 나왔어요.
아침이면 산등성이에 붉게 타오르는 분부신 태양, 바람을 타고 지구 촌을 떠다니는 구름 가족을 보는 재미도 솔솔하였어요. 숲에서 들려오 는 재잘대는 산새 소리, 들판에는 농부들의 바빠진 손길에 힘겨운 숨소 리까지도 신기하였지요.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생겼어요. 어린 꽃씨가 싹이 나고 잎이 돋아 꽃을 피우기까지 그냥 지나칠 뿐, 사람들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어 요. 낮에는 고운 빛을 먹고 밤에는 정성 빛을 받으며 꽃 피울 날만 기다 린 꽃씨는 자신에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자 맥이 풀렸어요. 처음 설레든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외로움이 몰려왔어요.
어린 꽃씨는 그때 서야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쓰레기 더미에서 자신이 초라하게 자라고 있다는 것을요.
‘난, 외톨이였어. 분명 나를 싫어하는 게 틀림없어! 쓰레기 더미에서 태어났다고…….’
어린 꽃씨는 몇 날 며칠을 서러움에 잠겨 울었어요. 며칠을 그렇게 보냈는데도 말을 걸어 주는 이도 없었어요. 어린 꽃씨는 얼른 기운을 차려서 가족을 찾고 싶었어요.
“누구 옆에 없어요? 제발, 저를 좀 도와주세요.”
아무리 크게 외쳐도 기운만 빠질 뿐 대답이 없었어요. 어린 꽃씨는 갓 꽃봉오리를 맺어서인지 소리를 쳐도 입속에서만 맴돌 뿐 밖으로 나 오지 않았어요.
‘왜 아무도 날 찾아오지 않는 걸까!’
어린 꽃씨는 자신이 가족으로부터 버려졌다는 것에 견딜 수가 없었 어요. 가족과 흩어져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날이 갈수록 의문 만 생겼어요.
이 쓰레기 더미에서 혼자 살아간다는 것이 무척 힘들었어요. 그렇다 고 마냥 죽상인 얼굴로 살 수는 없었어요. 어린 꽃씨는 어떻게든 혼자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이웃을 찾아야 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날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위를 살펴보아도 이웃은커녕 쓰레기만 늘어났어요. 그래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이면 누구보다 일찍 일어 나 부지런히 하루를 시작하였어요. 그랬더니 하루가 다르게 아기 꽃씨 의 꽃대가 쑥∼ 자랐어요.
꽃잎을 피우며 예쁘게 단장을 하고 나비나 꿀벌이 날아오기를 손꼽 아 기다렸어요. 그렇게 되면 가족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여 겼어요.
오늘따라 유난히 날씨가 화창했어요.
저 멀리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도 힐끗힐끗 보였어요.
언뜻 보니 나비도 날아다니고, 윙윙대는 꿀벌 날갯짓도 볼 수 있을 만 큼 맑았어요. 나비도 쾨쾨한 냄새는 싫은지 근처까지 오다가 다시 어디 론가 날아가 버렸어요.
기대가 허물어진 어린 꽃씨는 어떻게든 존재감을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하였어요. 사람들이 냄새난다고 코를 막고 눈길 한번 받지 못해도 견딜 수가 있었는데, 나비나 꿀벌이 외면하니 마음이 쓰리고 아팠어요.
어린 꽃씨는 다시 용기를 내어 먼저 손을 내밀기로 하였어요. 다소곳 하게 기다리기엔 너무 외롭고 쓸쓸했으니까요. 어린 꽃씨는 지나가는 바람을 불렀어요.
“바람님∼ 바람님∼.”
“네∼ 누구세요?”
“저예요.”
바람은 가는 길을 멈추고 뒤돌아보았어요.
“무슨 일로 저를 부르셨나요?”
“나에게 나비나 벌이 날아들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래야만 우리 가족을 찾을 수가 있어요.”
어린 꽃씨는 흐느끼며 그동안에 있었던 일을 말했어요. 어린 꽃씨의 사연을 들은 바람은 안타까워하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리고는 어린 꽃씨의 마음을 달래주었어요.
어린 꽃씨의 부탁을 받은 바람은 나비와 벌이 보이면 무조건 어린 꽃 씨가 있는 쪽으로 바람을 일게 했어요. 그러나 나방도 나비도 냄새를 맡는 더듬이가 민감해서인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어요.
어린 꽃씨는 답답한 마음에 흔들흔들 향기를 날렸어요. 그 후 놀랍게 도 팔랑팔랑 예쁜 나비가 근처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바람으로부터 전 해 들었어요. 그 말을 들은 어린 꽃씨는 곧 가족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어요.
세상 구경을 나온 나비는 유치원을 마치고 귀가하는 아이들을 따라 가 같이 놀고 싶었어요. 살며시 아이들 곁으로 다가갔어요.
“애들아, 안녕!”
나비가 부르는 소리에 아이들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어요.
“응, 나비야∼ 안녕!”
아라가 나비를 보며 말했어요.
“예쁜 나비다! 나비가 우릴 따라오려나 봐!”
소연이가 반가움에 말했어요.
“얘! 나비는 민감하니까 소리를 지르거나 가까이 가면 도망가, 그러 니 소곤소곤 말해야 해.”
해주가 말했어요. 다른 아이들처럼 걸어 다니지 않고 해주는 휠체어 를 타고 있었어요.
“몰랐어, 미안해.”
소연이는 해주를 보며 말했어요. 그러자 아이들이 우러러 몰려와 나 비를 향해 손을 뻗쳤어요.
순간, 한 아이가 뒤를 따라가던 나비를 잡으려 손바닥을 쳐서 깜짝 놀 라 나비는 꼬꾸라지고 말았어요. 어린 나비는 겨우 일어나 아이들을 피 해 쓰레기 더미에 핀 꽃잎에 앉았어요.
겨우 숨을 돌린 나비는 배고픔에 꿀을 먹었어요. 아이들을 피해 정신 없이 도망쳐 왔는데, 이곳까지 나비를 쫓아와 웅성거렸어요.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던 그곳에 나비가 앉으니, 아이들은 하나둘 나 비를 보기 위해 손으로 냄새를 막으며 바라보았어요.
“나비야, 어서 여기로 오렴. 그곳은 쓰레기 냄새도 나고 너무 지저분 해서 병에 걸릴지 몰라!”
소연이가 걱정되어 흐느끼며 나비를 부릅니다. 그리고는 나비를 쫓 은 남자아이를 쏘아보았습니다.
“얘, 예쁜 나비가 저렇게 위험한 곳에 앉은 건 너 때문이야!”
“뭐? 꽃잎에 앉았는데 위험하긴 뭐가 위험하다고 그러니?”
“얘들아, 저기 좀 봐! 예쁜 꽃이 피었어.”
몸이 불편한 해주도 뛰 따라와 향기를 맡았어요.
“와아! 정말 너무 예뻐. 꽃씨는 어디에서 날아온 걸까?”
아라도 쓰레기 더미에 핀 꽃을 보며 말했어요.
다들 냄새난다고 피해서 다니는데 유독 해주와 아라가 예쁘다고 말 을 하니 길을 가던 다른 아이들은 제각기 손가락질했어요.
“쓰레기 더미 속에서 핀 꽃이 뭐가 예쁘니? 냄새나는 풀꽃이지.” 소연이는 해주와 아라의 행동에 못마땅해하며 힐끗 쳐다보고는 아이 들 곁으로 다가갔어요.
“뭐라고! 우리 보고 지저분한 풀꽃.”
어린 꽃씨는 자신을 얕잡아 보는 말투에 화가 났어요.
“쉿! 예쁜 꽃이 듣고 있어.”
해주는 소연이의 말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어요.
“너도 참 바보구나. 사람도 아니고 꽃이 어떻게 말을 알아듣니?”
“쟤들 좀 봐! 금세 풀이 죽어 있잖아. 네 눈에는 보이지 않니?”
아라도 함부로 말을 하는 소연이가 미웠어요. 그리고는 꽃잎이 다치 지 않게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돌부리를 치우고, 여기저기 날리는 쓰레기 도 주웠어요.
해주는 어른들의 버려진 양심에 핀 어린 꽃씨를 보자 보호해 주고 싶 은 마음이 생겼어요. 아라도 해주를 도와 어린 꽃씨가 안전하게 씨앗을 맺을 수 있고 더 이상 따가운 시선을 받지 않길 바랐어요. 해주가 불편 한 몸을 안고 태어난 것은 자신의 탓이 아니듯, 쓰레기 더미에서 태어 나 살아가는 어린 꽃씨의 아픔을 느낄 수가 있었거든요.
어린 꽃씨는 나비를 만나면 가족을 찾게 해 달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혼자서도 척척 해결하는 해주를 보고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리고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닌 것도 알게 되었어요.
어린 꽃씨는 무엇보다 자신의 나약함에 부끄러웠어요. 이제는 온전 한 꽃씨가 되기 위해 꿈을 꾸며 하루하루를 맞이합니다.
해주는 삐뚤삐뚤 쓴 글씨로 푯말을 만들어 그곳에 세웠어요.
‘양심을 버리지 맙시다. 이곳은 우리가 가꾸는 꽃길입니다.’
어른들도 눈치만 보고 냄새난다고 피하기만 할 뿐, 누구 하나 선뜻 나 서서 해결하려 들지를 않았어요. 그 모습을 보고는 아이들이 너도나도 모종삽을 가지고 온 친구들, 꽃씨를 가져온 친구들, 호미를 가져온 친 구들이 서툰 손질을 하며 화단을 가꾸기 시작하였어요.
아이들의 성화에 이끌려 엄마, 아빠도 함께 참여하여 쓰레기 더미도 말끔히 치우고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만든 사랑의 꽃길이 되었어요. 무엇보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남을 배려하며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아 름다운 세상을 만든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