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봄호 2025년 3월 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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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갈 날이 너무 많아 갈길 부대끼는 사람이거나
얼마 남지 않은 생이 지루해서 군내 나는 사람은
신불산 억새평원 들머리
술잔 거꾸로 걸어 놓은 구전의 천변주막
작천정에 와 보시라
달빛이 별빛 불러 자고 간다는 야영장 지나
천년기암을 눈으로 밟고 개울 따라 한 마장
백년풍상 휘어진 벚나무길 한 마장
겁 없는 꺼병이 무단 횡단하는 모텔촌 못 가서
애인집 하나 정해 놓고 혼자 오거나
애인 만들어서 둘이 오거나
볕들면 볕을 이고 젖으면 젖는 대로
야생초 야생화 이름은 다 몰라도
내 속에서 나간 듯 그 속에서 내가 나온 듯
도포 소매 휘젓던 그 어느 적 길손의 심사가 되어
올라와 보니 내려와 있는 도깨비 도로
사는 게 다 착시라서 되려 안심 드는 길
개평술 얻어먹는 기분으로
가욋잠 자는 기분으로
오늘처럼 비안개 낭자하게 낀 날
사방 미로에 자발적 미아가 되어
몽롱히 꿈결처럼 왔다 가시라
온 김에 자수정 동굴도 거쳐 가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