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봄호 2025년 3월 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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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었을까
가늠할 수 없는 높이의 나무가 있었지
덤불처럼 자란 것에서 어린 잎사귀들이
제 색깔을 바꿔 가며 흔들리고 있었어
분명 가시였는데
남은 것을 돌아보기도 전에
떠나버린 자리가 오히려 자연스러웠으니
순록의 뒤를 따라 걸어갔지. 뚜벅뚜벅 살금살금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더 좋았던 거야 유유한 풍경 속에
고고한 한 쌍의 뿔 위로 내려와 부딪히던 햇살은
소리조차 경쾌했거든. 어제까지였어
카메라를 당겨보니 뿔과 뿔 사이에 가득한 핏덩이
아닐 거야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어
생존이었을까, 투쟁이었을까
비로소 그들만의 삶이 렌즈 안으로 훅 들어왔지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땅에서 평화는 없었어
혹한을 견디기 위해 그의 뼈를 삶아 국물을 내고
살코기를 발라 내 몸을 다스려야 했으니
척박한 대지에 가늘고 긴 다리로 살아내는 처절함이
그동안 잊고자 하였을 뿐
오래오래 외면하였을 뿐
윙윙거리는 것은 벌 떼들의 웅성거림
그 무리 속에서 남길 수 있었던 것은
피로 물든 자국눈이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