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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문학 지역특집 - 충청남도지회 - 회원작품(캔디 두 알)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용순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3월 6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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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 두 알이 다시 내게로 왔다.

애써 의식 너머로 밀어 넣었던 희미한 그것이 선명한 청포도색으로 다가왔다.

왔는지도 몰랐는데 우연한 계기로 그걸 알게 되었다.

시청률 최고라는 신문 기사에 이끌리어 매주 금·토요일마다 방영하는 <나의 완벽한 비서>라는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이미 방영이 끝난 부분이 있어 OTT 서비스를 통해서 첫 회부터 시청했는데, 과연 잘 짜인 플롯은 간간이 가슴을 졸이게 하는 흥미진진함을 선물했다.

이야기의 의미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는 3회에선가, 사사건건 엇나가던 두 사람이 드디어 어느 포장마차 앞에 나란히 선다.

그곳은 헤드헌터 회사 CEO인 여자 주인공이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종종 찾는 곳인가 보다.

‘머리 사냥’하는 회사를 이끈다니 그 심리적 긴장도가 얼마나 높을까.

아마도 그녀는 그런 스트레스들을 포장마차의 매운 떡볶이로 해결하나 보다.

주인아주머니가 먼저 아는 체를 하며 음식을 주문하기도 전에 “맨날 먹던 거지? 5단계! ”한다.

테이프로 붙여 놓은 메뉴판에는 떡볶이의 매운 정도가 단계별로 그려져 펄럭인다.

그녀는 맨 마지막 다섯 번째 줄의‘디지게 매운 맛’을 남자 몫까지 2인분을 받아 놓는다.

옆에 있던 남자 주인공은 매운 걸 잘 못 먹는다고 하면서도 상황에 이끌려 아무렇지 않은 듯 연거푸 세 번씩이나 집어먹는다.

그러더니 눈알까지 빨개지며 화끈거리는 입 안을 어쩌지 못하고 허겁지겁 물을 찾는다.

그런 그에게 여자는 얼떨결에 자기가 들고 있던 뜨거운 어묵탕 국물을 권한다.

더 뜨거워진 입 안을 식혀보려고 남자는 대형 음료수 곽을 집어 들이켜는 것도 모자라 곁에 있는 바구니의 캔디를 한 움큼 집어 든다.

매사에 빈틈이라곤 찾을 수 없고 언행에는 절도 있던 남자의 허둥대는 모습에 웃음이 쿡 터졌다.

남자의 손에서 껍질이 벗겨져 나가던 것은 분명 청포도맛 캔디였는데 아무렇지 않게 웃을 수 있었다.

감히 떠올리는 것조차도 두려워서 애써 무의식 속으로 밀어 넣었던 바로 그, 알이 굵은 연초록 캔디.

어느새 3년이나 지났다.

혼란스러운 팬데믹 상황에서 방역망 저편에는 남편의 산소포화도 수치가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이쪽에는 코로나19 전염병이 한창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초조한 날이 이어졌다.

가족이라도 간호는 고사하고 병원 출입조차 어려웠다.

꺼져가는 그의 숨을 붙잡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그 무렵 그의 운전면허증 적성검사 만료일 안내를 접했다.

그러고 보니 그가 주민등록증조차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 터에 운전면허증마저 말소되면 어쩌나, 주민등록증이라도 있어야만 그가 이 세상의 주민으로 존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촘촘한 코로나 방역망을 피해 가며 잃어버린 그의 주민등록증을 재발급받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가족이라도 대리하여 주민등록증을 발급받는 일은 간단치가 않았다.

한겨울 찬바람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애타는 가운데 시간이 흐르고 두 달 만에 주민등록증이 발급되었으니 찾아가라는 문자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미 떠나버린 후였다.

소용이 없어진 주민등록증을 손에 쥐자, 그동안 참았던 설움이 한꺼번에 복받쳐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 나를 주무관이 벤치로 안내하더니 손에 뭔가를 쥐여주었다.

겨우 차에 올라 손을 펼쳐보니 청포도맛 캔디 두 알이었다.

그 당시, 내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던 두 달간의 혼란한 상황들을, 그 지독한 이별 끝에 남은 캔디 두 알을 의식 저편에 밀어 넣었었다.

그리고 세월이 갔다.

카오스 같은 일상을 견디는 동안 이런저런 수필집이나 시집에 많이 의지했고 가끔 차오르는 감정을 글로 옮기기도 했던 거 같다.

문학이 존재의 상처나 결핍에서 기인하는 불안과 고독에서 발아한다더니, 이렇듯 상처나 결핍에서 기인하는 불안과 고독을 지우기도 하나 보다.

이제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화면의 청포도맛 캔디를 보며 웃는다.

기억을 더듬어 그날의 캔디를 찾아보니 서재의 책장 귀퉁이에서 이미 녹아버린 채 발견되었다.

녹아버린 캔디는 무의식 속에서도 실체를 상실했나 보다.

오늘 저녁에는 본방사수다.

굵은 캔디 두 알을 양 볼이 볼록하도록 물고 쩔쩔매던 남자가 떠오르고 내 입꼬리가 다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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