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2월 6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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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부음이었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이제 끝났네.
살아서 지옥을 살았으니 이제 편하겠지.
나도 편하네.”
스님의 목소리는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물속에서 울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목소리에 그 어떤 것도 물을 수 없었다.
행자가 안전문자를 내게 보냈던 것이 며칠 전이었다.
‘△△면 주민인 김○○ 씨(남, 82세)를 찾습니다.
155cm, 52kg, 회색 면티셔츠, 승복바지, 흰 백팩, 검정고무신, 다리 심하게 절고 말이 어눌함.
◇◇경찰청.’
“신고했는데 아직 본 사람이 없어요.
아마 이번엔….”
행자가 말을 흐렸다.
그의 세 번째 실종이 바로 죽음의 예고였던 지도 몰랐다.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천천히 와.
어차피 자네밖에 없으니까.
행자도 내려 보냈어.
…이제 편하네.
그리고 뒤처리를 좀 부탁하네.”
스님의 마지막 말은 뭔가 석연치 않았지만 전화는 그냥 끊어져버렸고 나는 다시 전화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나는 노트북을 덮었다.
이번에도 원고 마감을 지키긴 어렵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뒤부터 매번 원고 마감을 어겼다.
나는 엄마의 말을 복기하였다.
“이제 포기해.
국가를 어떻게 이길 수 있겠니.
아버지도 너도 최선을 다했어.”
그리고 또 다른 말.
‘살면 살수록 목숨에 대한 애착만 생기는데 뭐 하려고.
더 살고 싶어질까 봐 두렵다.’
엄마는 평소의 말대로 더 살고 싶기 전에 생의 끈을 놓았다.
물 한 방울 넘기지 않은 극단의 단식을 빙자한 자살이었다.
죽은 지 일주일이 다 되어 발견된 엄마는 거의 미라 수준이었다.
사인은 심장마비이지만 위도 장도 모두 다 비워진 상태, 라고 의사가 말했다.
나는 장례식장에서 엄마가 했던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너에겐 소설이 있으니까 소설로 끝을 내면 돼.
내일 당장이라도 절에 가거라.
소설을 쓰기엔 여기 보다 거기가 나을 거다.”
엄마는 같이 가자는 내 말에 고개를 저었다.
이미 그때 엄마는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 서류가 도착했을 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보낸 결정 통지서를 뚫어지도록 내려다보았다.
진실규명불능결정이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아버지가 진행했던 일의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
그것을 확인하기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작성한 신청서에는 아버지의 분노와 슬픔이 인장처럼 새겨져 있었다.
1946년 10월 대구 인민항쟁 발발 시 할아버지는 미군정 포고령을 위반한 것으로 사형언도를 받았고 1950년 전쟁 발발 즈음 공주교도소로 이감 도중 학살되었다.
아버지는 증인 출석 등도 허용되지 않은 채 적법절차 없이 사형이 언도된 것과 감형에도 불구하고 이감 중 학살된 것에 대해 국가 차원의 진실 규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적시했다.
아버지가 기록을 찾아 얼마나 많은 길을 헤매었는지 짐작이 가고 남았다.
오염된 기록과 분실되고 전소된 기록의 흔적을 찾아 아버지가 다닌 곳은 수십 곳이었다.
국가기록원과 대전기록정보센터, 시민모임, 대구지방법원과 대구시보.
할아버지를 증언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작고하였고 그것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빨갱이라는 낙인을 두려워했다.
“이제 와서 뭘 어쩌자고.
그것을 기억하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데.
그리고 우린 빨갱이도 아닌데 그런 낙인이 찍혀서 얼마나 고통이 많았는데.
네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욕을 퍼붓고 싶다.
뭐가 그리 잘났다고 세상을 어떻게 바꾼다고.
친일파들이 저렇게 득세하는데 무엇으로 이길 수 있다는 말인지.
다시는 보지 말자.”
아버지의 장례식에 친척들은 이렇게 나와 어머니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가 울부짖었다.
“할 만큼 했다.
다 잊자.
이 처참한 고통을 나라가 무시하다니.
이게 나라냐.
죄 없는 국민을 이렇게 해놓고 양심도 없지.
넌 아버지처럼 일생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이 어미는 염려하지 말고.
잘 써.
이 어미도 잊어버리고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모두 잊어버리고.”
하지만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할아버지는 1946년 대구에 있었던 항쟁에 연루되어 붙잡혀 수개월간 물고문, 전기 고문 등에 의한 고초를 겪었고 삼베옷에 피가 맺혀 살과 붙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구타당했다.
그런 할아버지 때문에 아버진 신원조회로 인해 공직의 응시 자체가 좌절되어 직업도 가지지 못하고 결국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 사회운동에 참여하면서 자주 붙잡혔고 고문과 구타의 후유증으로 평생 통증을 달고 살았다.
아버진 심장이 조여드는 공황장애로 평생 노숙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길 위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엄마는 곡기를 끊은 것이다.
나는 잊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소설은 잊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 최적이었다.
나는 장롱에서 검은 옷을 꺼내 입고 시외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시외버스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나는 그제야 지금이 한창 여름 피서철이라는 것을 알았다.
계절이 가는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장편소설에 매달렸다.
할아버지가 살았던 시간 속으로 들어갔고 아버지가 떠돌아다녔던 그 수많은 길 위에 서 있었다.
같은 땅 위에서 숨 쉬며 살아갔던 이웃이 서로 반목하고 질시하고 고발했던 할아버지의 시간은 참담했고 아버지의 시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들 시간 속에 스님과 죽은 그의 시간이 겹쳐졌다.
나는 달리는 버스에 나무와 산과 길이 뒤로 뭉개지며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새삼 스님과 그를 만났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몇 년 전,『 유마경을 읽는 여자』라는 내 소설집은 재가불자인 유마거사의 애끓는 이타심과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한 독립혁명가의 삶을 그린 것이었다.
출판사에서는 종교적 제목이 책 판매를 어렵게 한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 표제를 포기하지 않았다.
유마거사가 마치 아버지인 것처럼 나는 그 표제를 달고 아버지를 기리고 싶었다.
책은 평론가의 눈에도 들지 못했고 출판비로 샀던 삼백 권의 책도 고스란히 좁은 아파트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출판사에서 전화가 왔다.
한 사찰에서 전화가 걸려와 작가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얼마 있지 않아 전화가 걸려왔다.
보명이라고 밝힌 여스님은 절 아래 시외버스 종점에 차를 보내겠다고, 보잘것없는 절집이지만 집필하는 방을 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가는 데만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에 선뜻 내키지 않았고 무엇보다 혼자 있을 엄마가 마음에 걸렸다.
“가거라.
네 소설을 알아주는 사람인데.
여기선 누가 네 소설을 알아주니?
이렇게 꽉 막혔는데.
그저 빨갱이, 빨갱이.
끔찍하구나.”
엄마의 말처럼 한 항일작가의 문학상을 수상한 시상식에서 나는 소외감과 박탈감을 느껴야 했다.
오 분여의 수상 소감을 말하던 자리였다.
나는 항일작가를 기념하는 문학상을 받는 것에 대해 영광스러움을 말했고 동시대 친일작가의 면면을 언급하면서 작가는 기득권 세력에 저항하는 작가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일순 분위기가 냉랭하게 얼어붙었다.
내가 연단에서 내려오자 한 노작가가‘왜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한 거야?’하며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고 나를 뽑은 심사위원조차 작가는 어디까지나 중립을 지켜야 하는데, 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시상식 뒤 연회에서 사람들은 나를 위험한 인물을 보는 것처럼 기피했다.
엄마가 거의 울 표정으로 꽃다발을 안은 채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예고에 불과했다.
지역 문예지의 원고청탁이나 문학 행사에 나는 철저히 소외되었다.
‘그 작가는 빨갱이야.’
원로작가 중 몇몇이 나를 두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는 것이 들려왔다.
문단권력 최상위에 있는 원로가 그렇게 말했으니 내가 고립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시외버스 주차장에 나를 태우러 온 행자가 말했다.
“스님께서 작가님의 책을 서점에서 봤어요.
제목에 끌렸던 거지요.
…우리 스님도 사연이 많아요.
이 절은 스님의 고모가 돌아가시고 스님이 물려받은 것이지요.
세상에 열두 살 그 어린 나이에 남동생을 데리고 이 절을 찾아 걸어서 왔다고 합니다.”
“동생이라는 분도 스님인가요?”
내가 묻자 행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니에요.
스님이 되기는커녕… 좀 있다가 보게 될 거예요.
정신이 성하지 않아요.
그래도 해코지 같은 건 절대 하지 않죠.
총소리나 군인만 아니라면 괜찮아요.
근데 갈수록 여기도 조용하지가 않아서.
멧돼지나 고라니를 잡으려고 밀렵꾼들이 여기까지 올라오거든요.
그렇게 되면 난리법석이 되지요.
여기 절집이 발칵 뒤집어져요.
그것만이 아니라….”
행자는 말을 채 잇지 못했다.
눈앞에 절집이 보였다.
단층의 건물은 세 채로 대웅전과 약사전, 그리고 요사채가 전부였다.
요사채 앞에 여스님과 한 남자가 있었다.
여든의 나이를 훌쩍 넘긴 듯 노쇠한 두 사람은 오누이처럼 닮아있었다.
선한 눈매의 여스님과 깡마른 몸에 한눈에 봐도 정신이 성하지 않을 듯 보이는 남자가 사람 좋은 웃음을 하고 있었다.
“저렇게 웃다가도 갑자기 괴성을 지르고.
이상한 것을 가지고 오고.
아이고 말을 다 못 하겠어요.”
행자가 부르르 몸을 떨며 차의 시동을 껐다.
스님이 다가오며 말했다.
“오시느라 고생이 많았어요.”
합장을 하는 나를 보며 사내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가 하나도 없었다.
남자는 다리를 심하게 절며 굴뚝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스님이 요사채 안으로 나를 안내하였다.
낮은 찻상과 방석이 전부인 소박한 방이었다.
먹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방 한쪽에 벼루와 먹과 화선지가 놓여 있었다.
‘과거심(過去心) 불가득(不可得), 현재심(現在心) 불가득(不可得), 미래심(未來心) 불가득(不可得).’
“금강경의 한 구절입니다.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 이런 뜻이지요.
가끔 마음이 산란하면 저 경을 먹으로 옮깁니다.”
스님이 말했다.
나는 자리에 바로 앉지 못했는데 그것은 바로 벽에 걸려있는 액자 때문이었다.
초가집 앞에 네 사람이 활짝 웃고 있는 가족사진이었다.
부부의 앞에 서 있는 남매는 스님과 남동생으로 보였다.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는 내게 스님이 말했다.
“유일하게 남은 가족사진이지요.
저 사진 한 장 품에 안고 집을 빠져나왔어요.
…그건 그렇고 여기 앉아요.”
스님이 찻잔에 차를 채웠다.
“어떻게 그런 소설을 쓰게 됐는지 궁금했어요.
소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스님의 말은 정확했다.
일어날 법한 일을 쓰는 것이 소설이라면 내 소설은 소설이라고 할 수가 없다.
나는 일어날 법한 일이 아니라 일어났던 일을 쓴 것이다.
나는 책을 쓰는 내내 악몽을 꾸었다.
검붉은 흙속에서 구더기가 들끓고 이윽고 그 속에서 뼈가, 붉은 뼈가 뛰쳐나오는 것을.
나는 내가 꾼 꿈에 대해 말했다.
“역시 내가 예상한 대로 소설 속 길 위의 여자가 바로 자네군.
아, 말을 놓아서 미안해요.
그냥 말이 저절로 놓아지게 되네.
이상하게 작가님이 수백 년 수천 년 전에 만났던 인연처럼 느껴져서….”
“말 놓으셔요.
그게 전 편합니다.”
“그럼… 그렇게 하지.”
나는 가방에서 기사가 실린 신문의 복사물을 꺼냈다.
소설 보다 나의 가족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스님에 대한 예우이기도 했고 어쩌면 스님 또한 나와 유사한 일을 겪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스님의 기구한 사연에 대한 소설적 호기심도 일어났다.
신문의 검은 활자는 마구 뭉개져 있어 해독이 어려웠지만 사형이라는 활자만 또렷하게 떠있었다.
스님이 유심히 그것을 보았다.
“1946년 대구에서 일어난 시민봉기였어요.
할아버진 그때 인민위원회 분회장으로 미군정의 포고령을 어긴 것으로 사형이 집행되었다가 일 년 뒤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그 이후 자취도 없이 사라졌어요.
아버진 평생 집 밖을 떠돌아다녔고….”
스님이 가만히 내 눈을 바라보았다.
“내가 그래서 작가님을 만나보고 싶었던 거야.
먹이 아니라 피로 쓴 것 같아서.
…난 평생 달아났어.
그 기억을 지우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달아났는데….”
스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언가 찻상 위로 떨어졌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차 주전자와 찻잔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찻상 위에 한 개의 뼈다귀가 떨어져 있었다.
다리뼈인지 팔뼈인지 모를 뼈다귀에선 비린내와 노린내가 섞여 역겨운 냄새를 풍겼다.
그가 히히히 웃더니 다시 밖으로 나갔다.
스님은 이 일이 처음이 아닌 듯 아무렇지 않게 그 뼈다귀를 한 손에 들고 차실 밖으로 나갔다.
요사채 뒤로 난 작은 길을 따라 올라갔고 야트막한 언덕이 보이자 스님이 그쪽을 향해 뼈를 던졌다.
“어차피 처사가 다시 가져올 것을 알면서도 나는 이렇게 하는 거라네.
이게 부모님의 뼈인 줄 아는 거지.
아직도 70년 전 그 시간에 정지되어 있는 게지.
우리에게 일어났던 그 사건은 자네의 할아버지가 당했던 그 사건 뒤 꼭 2년 후의 일이네.”
스님은 여수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동네 사람들이 두 패로 나누어졌어.
군인들이 반란군의 부역자를 색출한다고 동네 사람들을 집합시켰지.
그래놓고 서로 손가락을 겨누게 만들었어.
그때 정미소 사장이 내 아버질 손가락으로 가리켰지.
그러자마자 아버진 질질 끌려갔어.
난 아버지가 학교 운동장 옆 계단 위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총살을 당하는 것을 봤어.
내가 있는 곳에서 불과 30∼40미터 떨어진 곳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고 그 소리가 운동장을 흔들었어.
어머닌 혼절했고 동생은 귀를 막은 채 오줌을 지렸어.
시신을 수습하면 죽인다고 해서 우린 집으로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지.
하지만 집으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가 집을 나갔어.
어머니가 내게 말했어.
‘시신을 그냥 놔둬선 안되지.
몸이 불편한 동생을 네 동생을 네가 잘 돌봐야 해.’
어머닌 지게를 지고 갔는데 나가고 얼마 있지 않아 총소리가 들렸어.
탕.
나는 겁이 나서 뒷문으로 나가 장독대로 도망쳤어.
그런데 동생은 뒷문 대신 방문을 열고 나갔던 거야.
다리를 절뚝거리며.
이윽고 마당에서 소리가 들렸어.
‘놔두자고.
총알도 아깝고 어차피 병신이라 곧 죽을 것 같구먼.
이 놈아 비켜.
죽지 않으려면.’
얼마 있지 않아 불이 활활 타올랐어.
군인은 불을 질렀어.
집은 완전히 불타고.
나는 양 귀를 틀어막고 마당에 주저앉아 있는 동생을 찾았어.
동네가 전부 불에 다 타버렸어.
난 동생을 데리고 무작정 걸었어.
고모가 있는 이곳으로.
그렇게 그 길로 떠나서 다시 돌아가지 못했어.
아버지 어머니의 시신도 결국 거두지 못했네.”
일순 침묵이 흘렀다.
평생 할아버지의 족적을 찾아 길 위를 방황했던 창백한 아버지의 얼굴이 확 다가오는 듯 느껴졌다.
여전히 그는 소각장 앞에서 불쏘시개로 재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뼈를 화장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
동생은 자식의 도리만 남아있지.
그 힘으로 사는 셈이지.”
“어떻게 그 일을 잊을 수 있을까요?
그 엄청난 일을.”
“살고자 한 사람은 다 살았지.
죽고자 한 사람은… 자네 할아버지처럼 아버지처럼 내 아버지처럼 어머니처럼 죽기를 각오하고 도리를 다한 사람들은 죽어버리고.”
“그들은 죽지 않았어요.
명예로 품위로 살아 있어요.
굴종하지 않았으니까.
두려움을 무릅쓰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고 신념을 지켰으니까요.
지금도 전 그것을 느껴요.”
“나를 지키려고 동생은 저 몸으로 방을 뛰쳐나갔는데.
겨우 열 살의 아이가 무엇을 보았을까?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아버진 오욕을 피해 죽음을 택했을 것이고 어머닌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죽을 것을 알면서도 뛰쳐나갔을 것이네.
정미소 사장은 손가락으로 내 아버지를 가리켰을 것이고 군인은 총을 쏘았을 것이고.
…난 도망쳤을 거네.”
“그 가해자들이 모두 죽기 전에 사죄를 받아야 해요.”
스님은 금강경의 한 구절을 또다시 읊었다.
과거의 마음도 현재의 마음도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 이 말은 시간의 실체가 없다는 말이고 그러니 과거의 상처를 물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가해자에게도 그것은 적용하는 거겠지요?
스님의 말씀대로라면 가해자의 과거도 실체가 없으니 지워져야, 아니 피해자가 오히려 적극적으로 지워주는 셈이 되겠군요.
그건 종교 안에서 해당될 순 있지만 종교 밖 세상에선 해당되지 않는 일이에요.
그러니까 이젠 가해자가 사죄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게 개인이든 국가이든.”
“난 이제 늦었어.
여든이 넘어가니까 말하는 것도 숨을 쉬는 것도 힘들어.
난 저 아이만 죽기를 기다리는 셈이야.
저 아이만 죽고 나면.”
“늦지 않았어요.
제가 도울게요.”
“그 동네를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아.
그 학교와 그 사람들.
서로 그렇게 손가락을 겨눈 사람들….”
“말할 수 없는 것은 가해자이어야 하지 피해자가 되어선 안 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따로 있을까.
그 과거로 다시 돌아가면 고통만 더해지는데, 분노로 어떻게 사느냐 말이지.
난 저 아이의 슬픔을 보는 것만 해도 벅차.
수행자이면서 부끄럽네.
수치스럽네….
그리고 난 놓쳤네.
그 가해자를 보고서도 사죄를 받지 못했어.”
나는 숨이 멎을 뻔하였다.
“오래 전 여길 왔었어.
여수 사람들이 이 절에 와서 초를 올리고 기도를 올린다는 것을 듣고 왔던 거지.
시신을 찾지 못한 죄책감 때문에 사람들은 이 절에 와서 제사를 지냈거든.
똑같은 날에 말이야.
그 부부는 하나뿐인 아들이 병명을 알 수 없는 질병에 걸렸다고 기도를 부탁했어.
우린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어.
근 육십 년이 지났는데 어떻게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겠어?
그들의 간절한 부탁에 난 백일기도에 들어갔어.
부부는 법당 앞에 서서 내가 하는 예불을 지켜보곤 했지.
삼배를 하기에도 노쇠한 몸이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소각장 앞에 앉아 있던 동생을 본 거야.
다리를 절며 뜰을 오가는 동생을 보더니 그 부부의 얼굴이 하얗게 변해서… 나와 동생을 번갈아 보는데.
다리를 저는 동생을 보고 한눈에 알았던 거지.
그 동네에서 다리를 저는 아이는 내 동생뿐이었으니까.
나는 부부를 차실로 유인했어.
벽에 걸린 가족사진을 볼 수 있도록.
그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내 예상은 맞았어.
그들은 벽에 걸린 사진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 주저앉았어.
운전기사가 급하게 그들 부부를 부축하였고.
그가 바로 내 아버지를 겨눴던 정미소 사장이었지.
그 사람 밑에서 아버진 노예처럼 일했거든.
그 사람은 아버지에게 사람의 눈을 속이는 짓을 시켰지.
햅쌀과 묵은쌀을 속여 가래떡을 뽑고 저울을 속이게 하고.
아버진 그게 괴로워서 그만두려고 했지만 달리 살 방도가 없었어.
할아버진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느라 집과 땅을 팔아버려 우린 그 사람이 내준 집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해야 했거든.”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원수를 만났군요.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나는 말을 더듬었다.
“난 복수를 생각했어.
동생과 힘을 합쳐 죽여 버리자.
노쇠한 그를 죽여 버리고 절을 태워버리자.
우리 남매도 절과 함께 산화해 버리자.
하지만… 난 공양간에 들어가서 밥을 지었어.
밥과 국을 짓고 찬을 만들었지.
네 사람이 앉았지.
그들은 숟가락을 들지 못했어.
한참이 지났을까 내가 말했어.
내 아버지가 개머리판에 머리를 맞고 끌려갔다고, 계단 쪽으로 끌려가 거기 모인 사람들과 함께 일시에 총을 맞고 고꾸라졌다고.
당신은 노예처럼 부려먹은 내 아버질 결국 죽게 만들었지만 내 아버진 절대 다른 사람을 겨누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런 일을 할 짐승이 아니라고.
그리고 약사전의 그 기도문을 불태워 버렸어.
짐승 같은 부부의 몸에서 태어나 부모의 악업을 대신 받아 천형처럼 죽어갈 그 아들을 위한 기도는 하지 않겠다고.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앉았다가 비틀거리며 방을 나갔고 그 길로 다신 오지 않았지.
…그동안 나는 수행자로서 자비심을 실천한다고 생각했지만, 죄성의 실체도 시간의 실체도 없다고 했지만… 그건 망상이었던 거지.”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방 안 가득 침묵이 흘렀다.
“스님, 허락해 주신다면 스님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싶어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잔인한 세월은 이미 지나갔는데.”
“가해자가 사죄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게 개인이든 국가이든.
용서를 하는 것은 사죄 그다음입니다.
다행히 대통령이 국가의 폭력에 대해 시인했어요.
그러니까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돼요.”
“난 이제 늦었어.
이제 말하는 것도 숨을 쉬는 것도 힘들어.
난 저 아이만 죽기를 기다리는 셈이야.
저 아이만 죽고 나면….”
“늦지 않았어요.
제가 도울게요.”
“고모는 절대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쳤어.
통곡조차 삼켜야 한다고, 고모와 우리 남매는 그렇게 버텼어.
전쟁이니 빨치산이니 토벌대도 우리를 비켜갔어.
그건 순전히 고모의 덕이었지.”
스님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스님은 황망한 표정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그는 여전히 소각장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 첫 만남 이후 한동안 스님에게선 연락이 오지 않았다.
국가폭력으로 인한 비극적인 가족사를 증명해야 한다는 내 신념은 지나치게 직설적이고 공격적이지 않았던가, 하는 후회와 함께 스님의 용서와 자비심에 비해 나는 이념적 단죄라는 비정함에 젖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하지만 정작 같은 피해자인 나와 스님은 왜 서로를 보는 것이 불편한가.
비극을 견뎌내는 방식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가, 하는 혼란스러움과 함께 자기 검열이라는 덫에 걸린 듯 소설도 지지부진했다.
나는 스님과 처사, 그리고 그 노부부와의 만남을 상상하며 가해자와 피해자의 무자비한 시간을 생각했다.
스님은 잔인함을 스스로 선택했구나, 속죄의 시간을 주기로 하였을까.
그걸 위해 스스로 이를 악물며 그 고통의 저녁을 버텼구나.
나는 스님을 만나기 위해 절로 향했다.
“이젠 처사님이 아니라 스님이 이상해요.”
스님은 행자의 말대로 정신이 나간 듯 보였다.
스님은 기력이 다해 겨우 걸음을 옮길 정도였다.
처사는 죽어서 오래된 개나 고양이의 사체나 오래된 뼈를 품에 안고 돌아오고 있었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처사는 열 살 소년에 정지되어 있었다.
총성에 진저리를 치며 땅바닥에 머리를 박고 부들부들 떠는 것도 여전했다.
“스님은 처사의 귀가 멀어 더 이상 저 총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날만 기다리고 계셔요.
고라니와 멧돼지를 쫓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총성이 녹음된 테이프를 하루 종일 틀어놓아 염불도 할 수 없을 지경이거든요.”
행자가 말했다.
스님은 웃는지 우는지 모를 기이한 표정으로 처사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처사는 소각장 앞에 쪼그려 앉아있었다.
처사는 여전히 뼈를 모아 소각장에 가져가서 태우고 그 재를 산 아래 계곡에 뿌렸다.
“뼈를 모으고 있네.
…죽어야 살 것 같네.
저도 나도.
과거심 불가득, 현재심 불가득, 미래심 불가득.
나는 부처님 말씀을 잘못 알았던 게 분명하네.
방편으로 한 것을, 방편으로 해야만 살 수 있는 무지의 중생을 위해 했던 부처님의 설법을 내 식대로 해석했네.
개인의 역사든 집단의 역사든 나라의 역사든 그것은 오로지 현재성으로 이어지고 반복된다는 것을.
시간의 인과 또한 잔인하도록 분명한 것을.”
스님은 끝을 알 수 없는 비탄 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불길한 예감에 나는 행자에게 한 시라도 스님에게 시선을 떼지 말아 달라고 말할 정도였다.
내가 집으로 온 지 얼마나 되었을까, 행자의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저녁 공양시간이 지났는데 그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시외버스정류장 종점에 내리자마자 또다시 행자의 전화가 왔다.
절 뒤쪽이 아니라 버스 종점을 지나 신작로 쪽으로 내려가라고 했다.
“국립공원 관리공단 사람들이 차를 타고 내려가다가 그를 봤다고 해요.
그러니까 작가님 절 쪽으로 오시지 마시고 읍내 쪽으로 내려가 보셔야 해요.”
다행히 그는 얼마 가지 못했다.
나는 갓길에서 그를 발견했다.
그는 잔뜩 등이 굽은 채 심하게 절뚝거리며 걷고 있었다.
그의 등엔 하얀 배낭이 걸려있었다.
가슴팍에 안고 오는 것보다 등짐을 지는 게 낫겠지 싶어서 하나 달아주었지, 하고 스님이 쓴웃음을 지으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의 배낭은 축 처져 있었다.
그와 불과 몇 발자국 뒤에 있었던 나는 그의 배낭에서 금세라도 썩은 뼈의 냄새가 날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그는 마치 목적지가 있기라도 하듯 앞만 보고 걸어가고 있었다.
길엔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었다.
고라니를 쫓는 가짜 총성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절집이 아니라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쭉 길을 따라가면 바로 시외버스 종점이었다.
나는 그의 발걸음을 막아야 했다.
하지만 묘한 호기심이 일어났다.
단 한 번도 이 절집을 벗어나지 못했던 그가 절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이 이상하면서도 신기했다.
그는 마치 어딘가를 가기로 작정한 듯 머뭇거림 없이 길을 걷고 있었다.
길을 지나가는 차도 사람도 하나 없었다.
고라니를 쫓는 가짜 총성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도시라면 저토록 다리를 저는 늙은 노인이 눈에 띄지 않을 리가 없을 것이다.
순간 그가 바닥에 쓰러졌다.
아, 나는 소리를 지르며 그쪽으로 뛰어갔다.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먹장 같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알아보지 못한 눈치였다.
나를 몰라보는 거예요?
어딜 가려고 하는 거예요?
이렇게 무겁게 해서는 어딜 가려고 한 거예요?
하며 나는 배낭을 손으로 당겼다.
그가 내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이제 찾았어.’
나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
배낭 안엔 뼈가 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를 일으켰다.
그때 시외버스가 섰다.
가요.
그에게 말했다.
그가 젖은 잇몸을 드러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스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수로 가는 중입니다.
처사님과 같이.
스님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외버스정류장에서 택시를 잡았다.
택시 기사는 연신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차창을 한껏 열고는 정면 거울을 통해 뒷좌석의 나와 처사를 번갈아 보았다.
아버질 모시고 가나 보네요.
이렇게 늦은 저녁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수에 도착하니 이미 밤거미가 완전히 내려앉았다.
그를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걱정이 되었다.
날이 밝으면 찾아가요.
지금은 깜깜해서 묻어줄 수도 없으니까요.
그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근처 여관을 찾았다.
그는 낯선 공간에 와서인지 여관 옆 식당에서 차려준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여전히 배낭은 그의 등에 걸려있었다.
밥을 드셔야 내일 뼈를 묻을 수 있어요.
그 자리에.
그가 힘겹게 숟가락을 들었다.
그는 밥을 먹기 시작했다.
지은 지 오래된 것이 분명한 윤기 없는 밥 한 숟가락이 그의 목구멍으로 나의 목구멍으로도 들어갔다.
복받쳐 올라오는 설움이 위로하듯 목구멍 밖으로 나왔다.
그가 내 품을 파고들었다.
젖먹이처럼 내 젖가슴을 더듬었다.
엄마, 엄마, 그가 중얼거렸다.
나는 그를 품었다.
가여운 우리 아들.
고마운 우리 아들.
괜찮다.
괜찮다.
어슴푸레한 새벽, 나와 그는 일찍 여관을 나왔다.
스님이 살았던 동네를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신작로와 정미소, 면사무소, 마을 정자, 집도, 마을도 없어졌을지도 모르지.
불 타버린 동네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스님이 말했었다.
다행히 택시 기사는 학교 이름을 듣고 얼굴을 찌푸렸다.
거긴 이름이 바뀐 지 오래 되었어요.
머리가 희끗희끗한 기사는 나와 내 옆에 나란히 앉아있는 그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뭔가 어두운 기억을 저미듯 기사 또한 침울해졌다.
“여기요.
여길 오는 사람은 모두 다 비슷한 행색이지.
아무도 없을 때, 새벽이거나 밤늦게 말이요.
야반도주하듯 와서.
늙고 쇠약한데 눈만 깊어서.
돈은 안 받겠어요.”
기사는 기어코 돈을 받지 않고 이내 신작로 쪽으로 사라졌다.
내가 차의 꽁무니를 보고 있는 찰나 그가 학교 교문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운동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나는 그의 뒤를 따라갔다.
빈 운동장 가장자리에 줄지어 서 있는 홍가시나무 울타리 아래 계단이 있었다.
그가 계단 위에 배낭을 풀었다.
두 구의 해골.
나는 지난밤 그의 배낭 속에서 그것을 보았었다.
누구의 것인지, 그가 어디서 발견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의 염원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그의 부모가 저절로 날아와 그의 눈에 잘 띄도록 한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구멍가게에서 사 온 막걸리를 잔에 채웠다.
그가 손을 마구 떨며 잔을 해골 앞에 놓았다.
두 개의 해골 위로 가을볕이 은은하게 비추었다.
거기 계단 쪽에서 총소리가 계속 들려왔어.
등 뒤로 포승이 결박된 사람들이 앞으로 연이어 거꾸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어.
거기 아버지의 옷이 보였고 아버지가 고개를 돌려 우리가 있는 쪽을 바라보는 듯 보였어.
어머니가 통곡을 하였고 동생은 오줌을 지렸어.
동생은 거길 찾아갈 거야.
스님의 말은 맞았다.
그는 마치 아버지를 마주 보듯 울음을 터트렸다.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던 그의 울음이었다.
웃기만 했던 그였다.
그의 얼굴 온통 눈물로 번들했다.
바로 그때였다.
아니 거기서 뭐해요?
누군가 소리를 지르며 이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허겁지겁 배낭 속에 해골을 집어넣었다.
가요.
이제.
산에 묻어줘야 해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달려오던 사내가 우리를 보더니 말문이 막힌 듯 어이없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사내는 계단 아래 막걸리 잔을 보더니 얼굴을 사정없이 찌푸렸다.
나는 사내의 손에 지폐를 올려놓았다.
막걸리를 그만 쏟아서요.
죄송합니다.
사내는 만 원권 지폐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나는 사내에게 정미소의 위치를 물었다.
정미소는 오래 전에 문을 닫았지요.
대대로 내려오던 갑부인데 아들이 죽고 서둘러 다 팔아버리고 어디로 갔는지 몰라요.
근데 거긴 왜 물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의 손을 잡았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배낭을 나에게서 빼앗지 않았다.
이상한 듯 고개를 가로젓는 사내를 뒤로하고 교문으로 빠져나왔다.
‘정미소 뒤쪽으로 산이 있을 거야.
만약 산도 깎아서 없어졌다면 할 수 없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거기 산 아래 우리 집이 있었어.
거기도 사라졌다면 거기 집에서 가장 가까운 쪽에 묻어줘.’
스님의 말대로 가고 있었다.
다행히 산은 그대로 있었다.
그는 전혀 알아보지 못한 눈치였다.
그는 구불텅한 산길을 넘어지지도 않고 잘 걷고 있다.
바다가 보이는 쪽의 언덕까지 올라왔다.
그가 먼저 한 자리를 가리켰다.
온몸이 땀에 젖어있는 그는 손으로 땅을 파기 시작하였다.
내가 솔나무 가지를 그에게 주었지만 그는 마다하였다.
나도 그를 따라 파기 시작했다.
푹신푹신한 흙은 잘 일어났다.
그의 손톱 가득 검은흙이 배였다.
배낭 속 해골을 구덩이에 넣고 흙을 덮었다.
그가 뭐라고 주문을 외었다.
그것은 망자를 위한 염불이었다.
법성게.
스님이 저녁예불에 하는 경이었다.
오래도록 염불이 울려 퍼졌다.
‘법의 성품 원융하여 두 모습이 없고 모든 법은 움직이지 않아 본래 고요하네.
이름도 없고 형상도 없어 온갖 분별 끊겼으니 깨달아야 알 수 있지 달리 알 길은 없다네.
참된 성품은 참으로 깊고도 오묘하여 자기 성품 고집하지 않고 인연 따라 나타나니 하나 속의 일체요 일체 속의 하나라.
작은 티끌 하나 속에 온 우주가 들어있고 낱낱의 티끌마다 온 우주가 들어 있네.’
이윽고 버스는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국도로 접어들고 있다.
한 마을 앞에 차가 선다.
‘여름휴가는 청정 산골마을에서’라는 현수막이 정자에 걸려 있다.
정자 앞 팽나무 앞에서 부채를 들고 있는 노인들이 버스 안 나를 바라보고 있다.
우르르 쾅쾅, 갑자기 뇌우가 울리기 시작한다.
잠에서 깬 손님 몇몇이 어쩌지, 우산도 없는데 하며 수선을 피우며 차에서 내린다.
이제 버스 안에는 나와 버스기사뿐이다.
버스기사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오늘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는 없었는데.
절까지 가려면 부지런히 올라가야 할 거요.
곧 내리 퍼부을 듯하니까요.”
버스기사가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나는 산불조심이라는 입간판을 뒤로하고 언덕길을 올라가기 시작한다.
멀리서 고라니를 쫓는 가짜 총성이 울려 퍼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저 소리에 양 귀를 막을 필요가 없는 그의 안위에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슬픔이 밀려온다.
나는 마음이 급해진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발걸음은 자꾸만 처진다.
숨이 턱에 걸릴 정도가 되어서야 극락교 다리가 보인다.
이어 절 처마가 눈에 걸린다.
갑자기 풀숲에서 요란한 벌레가 일제히 울기 시작한다.
경내에 발을 들였을 때 나를 맞이한 것은 스님이 아니었다.
휘발유 냄새와 매운 탄내가 등천하였다.
소각장 앞에 두 개의 제단이 나란히 놓여있다.
나무 장작더미 위에 검게 탄 형체가 들러붙어 있다.
그토록 하염없이 쪼그려 앉아있었던 처사와 그 처사를 지켜보았던 스님의 형체라는 것을 의심할 수가 없다.
그리고 소각장 굴뚝에 휘장 하나가 걸려있다.
붓으로 쓴 스님의 서체.
‘여순은 항쟁이다 국가는 사죄하라.’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때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총소리처럼 무서운 굉음을 지르며 제단 위로 검은 비가 마구 포개지고 있었다.
그러자 검은 제단이 화염에 휩싸이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제단 아래 이미 온통 타버렸던 장작이 용광로처럼 불타오르고 있었다.
적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