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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는 교실

한국문인협회 로고 최만호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3월 6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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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두 달째 내 옆자리는 비어 있습니다.

짝꿍인 세연이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해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횡단보도를 건널 땐 꼭 이쪽저쪽을 잘 보고 건너라고 말씀하십니다.

꼭 두 달째 되는 월요일 아침, 세연이는 양손에 목발을 짚고 한쪽 다리를 절룩거리며 우리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고개를 푸욱 숙이고서 말입니다.

그렇게 잘 웃던 애가 웃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 세연이는 아직도 몸이 불편해요.

여러분이 세연이를 잘 보살펴 주세요.

알았죠?”

선생님이 우리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네.”

우리는 일제히 대답했습니다.

아침 조회가 끝나고 아이들은 세연이 주위로 몰려들었습니다.

“아직도 많이 아프니?

의사 선생님이 뭐라셔?

예전처럼 걸을 수 있대?”

세연이는 쏟아지는 아이들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었습니다.

“세연아! 힘내.”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해 겨우 이렇게만 말했을 뿐인데, 세연이는 벌써 울고 있었습니다.

손끝도 가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어쩔 줄 몰라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세연이는 늘 명랑하고 다정한 친구였습니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해 친구들은 모두 세연이를 좋아했습니다.

얼굴엔 언제나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런 세연이가 울고 있는 것입니다.

예전의 발랄하던 모습 대신 목발에 의지해 겨우 화장실을 다녀오는 세연이가 너무 안돼 보여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솟았습니다.

나는 어떻게든 세연이를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세연이를 교실 한 구석에 남겨 두고는 썰물처럼 한꺼번에 교실을 빠져나갔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각자의 학원으로 말입니다.

“세연아! 내가 가방 들어줄게.”

가방을 등에 매려는 세연이를 보고 말했습니다.

“됐어.

나 혼자 할 수 있어.”

세연이는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러지 말고 가방 이리 줘.”

세연이가 거세게 내 손을 뿌리쳤습니다.

그러고는 목발을 짚고 힘겹게 교실 문을 나섰습니다.

나는 뒤따라갈 생각도 못하고 그냥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세연이가 야속했습니다.

‘세연이가 몸도 마음도 아파서 그런 거야.’

나는 애써 세연이를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가방을 매고 학교 정문을 향해 뛰어갔습니다.

그러나 세연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좀 더 빨리 다가가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습니다.

“세연아! 어제 정문으로 달려갔는데 네가 없더라.

나 우리 엄마한테 말씀드렸어.

피아노학원 당분간 가지 않기로 말이야.

오늘부터 내가 네 가방 들어줄게.”

나는 말을 하면서도 세연이가 또 화를 낼까 봐 내심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세연이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뒷자리에 앉은 진수가 다가와서 그동안 정리한 공책이라며 세연이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그러나 세연이는 고맙다거나 잘 보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진수는 황당한지 뒤통수를 긁적이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영준이, 금숙이, 지연이도 그동안 요점 정리해 놓은 것들을 세연이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세연이는 진수에게 했던 것처럼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책상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그런 세연이를 반 아이들은 모두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예전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종례시간에 선생님이 세연이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예전처럼 걸을 수 없다는 말을 듣고는 세연이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방과 후, 아이들은 학원을 향해 다람쥐처럼 달려갔습니다.

아이들이 빠져나간 교실은 세연이의 어깨처럼 축 내려와 있습니다.

“세연아! 가방 이리 줘.”

나는 최대한 조심스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됐어, 괜찮아.”

세연이는 이번에도 단번에 거절했습니다.

“되긴 뭐가 돼.

네가 싫다고 해도 오늘은 꼭 네 가방을 들어 줄 거야.”

나는 세연이가 뭐라고 하든 말든 가방을 낚아채 앞서 걸었습니다.

“미영이 너 피아노학원 안 가?”

세연이가 앞서가는 나에게 말했습니다.

“뭐야, 말을 한 거야?

나는 네가 벙어리가 된 줄 알았어.

그래도 벙어리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당분간 안 가기로 했어.

어서 따라 오기나 해.”

나는 기뻐서 눈물이 다 나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엄마에게 세연이 얘기를 했습니다.

세연이가 교통사고를 당한 얘기는 예전에도 했지만 그 얘기부터 시작해 세연이가 목발을 짚고 한쪽 다리를 절며 학교에 나온 얘기며, 말도 안 하고 웃지도 않는다는 이야기까지 시시콜콜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다리를 절게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할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습니다.

내 얘기를 듣고 난 엄마는 안됐다며 몸이 불편할수록 마음의 상처도 크니까 친구들이 많이 도와주어야 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4교시는 운동 시간입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나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들은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달려나갔습니다.

나도 서둘러 운동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그때까지도 세연이는 그대로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세연아! 너도 빨리 운동복으로 갈아입어.”

내가 말하자 세연이는 나를 한번 올려다보았을 뿐 그대로 앉아 있습니다.

“운동복 안 가져왔니?”

“가져오긴 했는데….”

세연이는 말을 얼버무렸습니다.

나는 다가가 세연이가 운동복으로 갈아입는 걸 도와주었습니다.

선생님은 세연이와 내가 늦게 나오는 걸 보고도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맨 뒷줄로 가서 섰습니다.

선생님은 우리의 몸의 구조에 대해 잠깐 설명하고는 편을 나누어 술래잡기 놀이를 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편을 나누어 술래잡기를 했습니다.

세연이는 나와 같은 편이 되었지만 자기는 할 수 없다며 빠지려 했습니다.

그때 반장인 지연이가 세연이에게 그냥 서 있기만 하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세연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공을 잡는 것도, 공을 피하는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반장인 지연이가 영어학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며 방과 후에 세연이와 함께 학교 앞 빵집에 가자고 했습니다.

나는 세연이를 찾았지만 세연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술래잡기에 열중인 아이들은 세연이가 사라진 것도 몰랐습니다.

화장실에 간 줄 알았지만 화장실에도 없었습니다.

나는 세연이가 걱정되어 교실로 가보았습니다.

세연이는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었습니다.

나는 가만히 세연이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습니다.

“세연아! 울지 마.

열심히 걷기 연습하면 예전처럼 걸을 수 있을 거야.

텔레비전에서 봤어.

어떤 아저씨도 너처럼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열심히 걷기 연습을 해서 다시 걸을 수 있게 된 걸 말이야.”

운동 시간이 끝나고 아이들이 밀물처럼 교실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때까지도 세연이는 책상에 얼굴을 묻은 채 울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우르르 세연이 주위로 몰려들었습니다.

“아까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예전처럼 못 걷게 될까 봐 그러는구나.

걱정하지 마.

세연아! 넌 꼭 다시 뛸 수 있을 거야.”

반장인 지연이가 말했습니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일찍 수업이 끝났습니다.

세연이와 나는 지연이가 말한 학교 앞 빵집으로 갔습니다.

빵집으로 들어선 세연이와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거기엔 반 아이들이 모두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연아! 어서와.

네가 다시 학교에 나오게 되어 너무 기뻐.

축하해 주려고 자리를 마련한 거야.

넌 꼭 다시 예전처럼 걷고 뛰고 할 수 있을 거야.

세연이 네가 다시 학교에 나오게 되어 정말 기뻐.”

반장의 말에 다른 아이들도 한 마디씩 했습니다.

“우리도 네가 다시 학교에 나와서 정말 기뻐.”

세연이의 눈에서는 금세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동안 못되게 굴러서 미안해.”

세연이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습니다.

“괜찮아, 우리는 다 잊었는걸.

얘들아, 그렇지?”

진수가 말했습니다.

“그래, 세연아!”

모두가 말했습니다.

“나도 네가 다시 돌아와 준 것이 정말 기뻐.

넌 정말 예전처럼 다시 걸을 수 있을 거야.”

나는 세연이의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고마워, 미영아! 내가 너에게 화냈던 거 미안해.”

“아니야, 난 아무렇지도 않은 걸.

세연아! 힘내.”

“그런데 모두들 학원은 어떻게 한 거야?”

세연이가 물었습니다.

“오늘은 다 빠지기로 했어.”

모두가 일제히 대답했습니다.

“정말?”

“그렇다니까.

하하하!”

우리는 빵집이 떠나갈 듯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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