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3월 6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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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물띠를 남기며 섬을 향해 가고 있다.
한번 안 오냐는 언니의 물음에는 간절함이 배어 있어 언니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큰 형부의 퇴직 후 언니는 대부분의 인연들을 사려둔 채, 형부의 고향인 작은 섬에 자신의 삶을 내려놓았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에도 오랜 세월 해묵어 익숙했던 모든 것들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은 분명 서글픈 일이다.
나이 들어 낯선 곳에 정착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언제쯤이면 언니는 이곳에서 당당히 자신의 삶을 채울 수 있을까.
지루한 뱃길에 섬이 하마 저만치 보이기 시작했을 무렵, 진작 선미(船尾)로 나왔다.
하얀 물거품이 배의 꼬리를 따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만남과 이별, 머무름과 떠남의 연속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착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에 사람들은 짐을 챙기느라 부산스럽다.
배가 선착장에 닿기 무섭게 나는 제일 먼저 배에서 내렸다.
내 손을 잡으며 먼 길 고생했다며 반기는 언니의 얼굴이 벌써 섬사람을 닮아 있다.
섬의 바람은 다르다.
육지의 진득한 바람과는 느낌부터 달랐다.
세상 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없다는 듯 돌아앉은 섬은 고요를 품고 있다.
바닷가 마을이라면 어디든 있을 법한 테트라포드조차 눈에 띄지 않고, 낚시꾼들이 버리고 간 말라비틀어진 지렁이의 흔적도 없다.
먹이를 노리는 눈치 빠른 갈매기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도시의 메마른 바람이 이곳까지 불어오지 않은 것이 다행스럽다.
신작로라는 이름이 무색한 작은 길을 거쳐 구불구불한 고샅길을 걷는다.
곧게 뻗은 길이 아니기에 일없이 걷는 사람에게는 여유를 주는 길이다.
넓고 반듯한 길에 익숙하지만, 가슴이 휑한 날이면 골목길의 정겨움을 떠올리며 그리워하지 않았던가.
잠시 생각에 빠져 걷다 보니 어느새 언니 집이다.
이튿날, 섬을 돌아보았다.
더러는 빈집이 많았다.
누가 살던 집이었을까, 마당 한편에는 바닷바람 탓인지 억센 쑥이 무성하다.
주인이 살고 있었더라면 발도 들이지 못했을 사데풀의 기세도 등등하다.
버려진 슬리퍼의 구멍 사이로 윤이 나도록 까만 열매를 매단 까마중이 보인다.
어린 시절,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산딸기를 보며 돌아서 오다가 까마중을 보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새까맣게 익은 열매는 비록 콩알보다 작았지만, 혀가 새까맣게 될 때까지 입속에 넣어 오물거리면 얼마나 행복했던가.
유년의 그 맛을 몸은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허물어진 돌담에는 무언가가 붙어 있다.
자세히 보니 따개비와 작은 굴 껍데기다.
바다에 있던 돌을 가져다 담을 쌓았나 보다.
분명 오랜 세월이 지났을 터인데 원래의 형태를 그대로 간직한 뱀고둥도 보인다.
바다가 내어주는 만큼의 삶이 전부였을 것들이 어쩌다 여기로 붙들려 와 담이 되었다.
생의 기척도 내지 못하고, 햇빛과 바람에 몸이 말린 채 붙어있다.
제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 생겨난 것들의 슬픈 운명이다.
그러고 보니 바다의 생명을 걷어 들인 돌담이 제법 많다.
섬이기에 볼 수 있는 생경스런 풍경이다.
저기 이 섬과는 어울리지 않는 집이 보인다.
비록 번듯한 집은 아니지만 지붕에 기와가 얹힌 집이다.
꽤 넓은 마당 한쪽에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
굵은 둥치에서 뻗어나간 뒤틀린 가지를 보고 있으니 내 팔이 저려오는 것 같아 안쓰럽다.
이제 저 소나무도 마음껏 가지를 뻗을 자유를 얻었으리라.
지붕 위에는 강아지풀이 이른 가을바람에 나풀거린다.
해가 깊어 손갓을 하고 고개를 돌려보니 곧 바닥으로 떨어질 듯 헐거워진 암기와 사이에 와송이 보인다.
실하게 자리 잡을 곳도 천지건만 왜 하필이면 저 곳일까.
돌고 돌아 내려앉은 곳이 왜 하필이면 지붕 위란 말인가.
저렇게 작은 틈 사이에서 제대로 뿌리라도 내릴 수 있었을까.
한 줌도 되지 않는 흙에 발부리를 내려 버티고 있는 것이 대견하다.
가뭄이 짙었던 어느 해 여름이었다.
산이나 들녘 어디든 오만 것들이 물기를 제 몸에 가두지 못하고 말라가고 있었다.
커다란 바위틈에 놀란 쥐며느리 모양으로 온몸을 동그마니 말고 있는 바위손을 보았다.
대부분의 여름 식물들은 가뭄 속에서도 무성한 잎으로 여름을 나는데, 겨울 색을 띤 바위손은 살짝 손만 갖다 대어도 바스러질 것 같았다.
그대로 두면 영락없이 죽을 것 같아 집으로 가져와 예쁜 돌 화분에 심었다.
걱정스런 마음에 다른 화초들보다 더 자주 물을 주었고, 더 많은 눈길을 주며 살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잔뜩 웅크리고 있던 몸을 펴는 듯했다.
제법 제 몸 색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래, 다행이다.’
이 정도의 정성이라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멀쩡해 보이던 바위손은 겨울이 채 오기도 전에 죽고 말았다.
살펴보니 뿌리가 이미 썩어 있었다.
나의 무지에 한 생명이 스러졌다.
바위손은 언제 내릴지 모르는 비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숨고르기를 하고 있을 뿐이었는데 그저 사람의 시선으로만 바라보다 오히려 바위손을 죽게 만들었다.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것은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바람을 맞아야만 예쁜 꽃을 피우는 바람꽃도 있고, 살을 에는 추위 속에 꽃을 피우는 복수초도 있다는 것을.
지붕 위에 터를 잡은 와송도 자신의 생이 다할 때까지 씨앗을 퍼뜨리고, 그 자리에 또 다시 자신을 꼭 닮은 꽃을 피울 것이다.
그 모습은 마치 자식 새끼 다롱다롱 매달고 짭쪼롬한 인생 꽃을 피우는 섬사람들의 질긴 삶과 저 와송이 닮았는지 모른다.
그래, 아직은 제대로 튼실한 발부리를 내리지 못했다 해도 다시 찾을 이곳에 언니의 인생 꽃도 담장을 넘어 소보록하게 피어 있을 것이다.
고개를 들어 보니 작은 섬에 솔개 구름이 떠 있다.
저 구름 또한 잠시 머물다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다.
아니 어쩌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디론가 흘러가 더 큰 구름을 몰고 올지 모르겠다.
잰걸음으로 언니 집을 향해 발길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