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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로고 조동열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3월 6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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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의 생활 속에서 많은 명함을 받게 된다.

그 명함을 받으면서 명함이 없었던 때를 생각해 본다.

교직으로 오기 전에는 타인들한테는 직업을 나타낼 수 없는 입장이었기에 명함이 없었고, 교직으로 와서는 선생님이란 처지가 명함하고는 어울리지도 않고 또 필요하지도 않으니 없었다.

지금은 명함의 전성시대인 것 같다.

때론 하루에도 몇 장씩 받을 때가 있으니 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후한 인심이요, 받는 사람 편에선 필요한 명함도 있지만 대부분 귀찮거나 받지 않아도 될 명함들이다.

특히 동창회에 참가해 보면 많은 명함을 받게 된다.

국회의원부터 그룹 사장, 교수, 의사, 보험회사 사원까지 각양각색 직업들의 명함을 받아오게 된다.

어떤 명함은 뒤쪽에 외국어가 표기된 것도 있다.

외국어로 표기된 명함은 외국인들과 거래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아니고 명함의 형식으로 표기한 것이 부지기수다.

명함이란 그렇다.

서로가 연락을 해야 하고 필요한 사람끼리 주고받는 것인데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마구 뿌려지는 경향이 있다.

반갑지 않은 사람의 명함을 무심코 받을 때도 있고, 집으로 배달되는 우편물 속에 들어 있기도 하다.

대문에 붙여 놓은 것도 있고, 자동차 유리 사이에 끼워 놓은 것도 있다.

이처럼 명함의 대홍수 속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나에게도 명함을 갖게 된 동기가 있었다.

경기도 남쪽 끝, 지방 여고에서 근무하다가 교감으로 승진되어 서울 근교로 전근을 오게 되었다.

와서도 일 년간은 명함이 없었는데 중간 관리자가 되고 보니 손님이 많이 찾아왔다.

오는 손님마다 명함을 주고 가는데 명함이 없으니 “죄송합니다… 명함이 없습니다… 미처 준비 못했습니다” 이런 인사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게 되니 교장이 이런 광경을 지켜보면서 명함을 준비해야겠다고 하더니 이튿날 서무과장으로부터 명함 한 갑을 받았다.

난생 처음으로….

그 이후부터는 명함을 사용하게 되었고, 크고 작은 모임에 가서도 남들처럼 명함을 주고 왔다.

식당에 가서도 주고, 직원들과 퇴근길 술 마시러 가서 아가씨들한테도 주었다.

명함을 남발하고 다니다 보니 이상한 일이 생겼다.

걸핏하면 식당에서 전화가 오지를 않나, 술집 아가씨들한테서도 무시로 전화가 걸려온다.

‘왜 아니오시느냐고, 보고 싶어 죽겠노라’고 내가 만약 자리에 없다거나 출장 중이면 대개는 옆자리 여선생들이 전화를 받을 때가 있는데 책상 위 메모를 보면 번번이 음식점 아니면 술집 아가씨들 이름이 적혀 있어 민망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때 당연 교무실 여선생들 입에서는 내가 오르내렸다.

잘못 주었던 명함 때문에 오해도 적잖이 받았다.

교감 6년을 마치고 교장 승진을 해서도 명함은 늘 사용하였지만 명함에 대한 노이로제 때문에 교장실로 오는 손님에게까지도 건네줄 사람인가 아닌가를 숙고해서 사용하였다.

식당에 가서나 술집에 갈 기회가 있어도 명함만은 절대 주고 오지를 않았었다.

그처럼 내 명함 인심만은 인색하였다.

명함은 이처럼 주기도 어렵고 받기도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서 명함에 관한 인식만은 남다르게 터득한 셈이다.

어쨌거나 지금 생각해보면, 50이 되도록 없었던 명함을 처음으로 갖게 해주셨던 그때 그 시절 교장 선생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이제 한 해가 시작되었다.

지난날 받았던 명함들을 정리한다.

지인들의 명함, 친구 및 선후배들의 명함을 정리하다 보니 이미 고인이 된 친구의 명함을 보는 순간 우울해진다.

생존에 있을 때 그처럼 씩씩하고 사업도 번창해서 100년을 훨씬 더 살 것 같던 친구였는데 벌써 고인이 되었으니 서글퍼진다.

마구 뿌린 명함과 줄 사람에게만 준 명함의 양면성을 보는 것 같아 고인이 된 분의 명함만을 따로 모아 소중히 간직한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명함을 남기는 것인가.

퇴직 후 그 알량한 명함조차 필요가 없게 된 지금이고 보니 새삼 명함을 뿌리던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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