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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의 추억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덕림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3월 6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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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모레 추석 명절에 귀성전쟁이 시작된다고/ 작은 나라가 들썩들썩이는데/ 우린 결혼 10년 만에/ 참으로 한가로운 추석을 맞는가 보다// 경상도 의성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 서울 가까이 사는 두 아들들/ 해마다 겪는 귀성길 초죽음에/ 우리가 올라갈란다 선처하시고// (중략)// 들이며 산들이 묵묵히 내어 놓은 터에/ 삐죽삐죽 솟아오른 신도시 큰아들네로/ 시골 텃밭, 도라지, 고추 함께 오신 두 어른/ 안동댐 굽이 돌아 높이 누워 계신/ 조상님들 모두 모시고 오셨을까나.

-1994년 가을에 쓴 자작시,「신도시의 추석」

 

1994년 2월 설 명절을 맞아 경상도 시댁에 가려고 길을 나섰다.

죽령고개를 넘어가야 했다.

지금은 터널이 생겨 편하게 오가는 길이지만 그때만 해도 산길을 굽이굽이 오르내려야 하는 곳이었다.

하루 종일 가야 하는 길은 아직도 멀고도 먼데 눈이 오기 시작했다.

어찌어찌 죽령고개 입구에 도착했는데 여기저기 사람들이 분주하다.

자동차 타이어 체인을 장착하지 않으면 고갯길에 들어서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우리도 바퀴에 체인을 감은 후 죽령 꼬부랑길에 들어섰지만 앞으로 나아가기는 어려웠다.

앞서 가는 차들도 마찬가지였고 모든 자동차들이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눈발은 점점 거세지고 있었고 날은 더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미끄러지는 앞 차에 놀라고 행여 우리 차도 미끄러지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면서도 정말 이 상황이 아니라면 폭설이 빚은 장관은 가히 절경임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기어이 세 식구가 탄 우리 차도 빙그르르 돌고야 만다.

그 순간에 내 눈에 들어온 산 아래 낭떠러지는‘아! 이렇게 죽는구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낭떠러지 앞에서 극적으로 멈춘 우리 자동차는 그 순간 천사들의 떠받침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살았다.

1993년에 내가 영세를 하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1994년 여름 영세 예정이었던 부자가 탄 차가 아니던가.

오! 주님 감사합니다.

겨우겨우 밤새 그 악몽 같은 죽령고갯길을 내려와 도저히 더 이상 시댁으로 향할 수 없어 가까운 숙박업소에서 잠을 청했다.

그리고 놀라신 부모님은 그해 추석부터 당신들이 올라오시겠다는 역귀성을 선포하시게 된 것이다.

그리고 1990년대 초 조성되었던 1기 신도시인 산본 신도시 큰아들네로 올라오셨던 것이다.

2024년 11월 27일 28일 또 큰 눈이 내렸다.

내가 살고 있는 용인은 47.5㎝라는 적설 기록을 남기고 수원 43㎝의 적설은 기상 관측 이래 처음이라는 뉴스가 보도되기도 했다.

주민자치센터를 비롯하여 경기도 학교 1100여 곳이 문을 닫았다.

항공기 결항으로 대혼란을 겪고 지하철은, 지연은 물론이고 지옥철이 되었으며 버스들은 만원이 되었다.

또 눈길 교통사고로 53중 연쇄추돌이 일어났고 길에 차를 버리고 출근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11월 최대 기록적 폭설에 강풍까지 더한 눈바람은 아파트 지하주차장 지붕 붕괴를 비롯하여 전신주, 가로수 등 도로시설물 파괴로 이어져 정전이 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추운 겨울 냉방으로 추위에 떨어야 했다.

이상기후로 뜨거워진 바다가 영향을 주었다고 했다.

11월 적설량이 117년 만에 최대라는 이번 눈은 물기를 버금은 습설(濕雪)로 건설(乾雪)보다 2∼3배 더 무거워서 피해가 배가되었다.

비닐하우스, 축사, 안양 농수산물센터 지붕 등 붕괴로 농축산인과 상인들이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다.

‘추억’이란‘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이다.

지나간 시간, 지나간 모든 일이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내 추억이 전부 아름다울 필요는 없다.

다만 악몽 같은, 너무 아프게 지나간 시간들은 굳이 추억이라는 내 사전의 범주에 쌓아 놓고 싶지는 않다.

어딘가에 누군가에 피해를 입히는 폭설 같은 추억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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