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세월·Ⅶ

한국문인협회 로고 곽흥렬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3월 673호

조회수27

좋아요0

깊어 가는 가을, 코발트 빛으로 투명해진 하늘을 바라다보고 있으면 이따금 그려진다.

눈썹이 참숯처럼 짙고 눈동자가 가을 별빛같이 맑았던 H선생님의 모습이.

선생님은 내가 초등학교 육 학년 시절의 담임이었다.

다섯 자 오 푼이 될까 말까 한 그리 크지 않은 키에 소년티가 풍기는 때 묻지 않은 얼굴 모습, 그리고 은방울처럼 낭랑한 목소리를 지닌 분이셨다.

선생님은 틈날 때마다 교정의 화단에다 이름 모를 갖가지 꽃과 나무를 심고 손수 교육용 공작물들을 만들어 운동장 이곳저곳에 차려두곤 하셨다.

마치 자신의 살림집이라도 되는 양 갖은 정성을 기울여 학교 안뜰을 가꾸었다.

교정은 선생님의 그런 노력 덕분에 하루가 다르게 달라져 갔다.

이른 봄 샛노란 개나리꽃이 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면 뒤미처 순백색 목련이 시샘하듯 부끄러운 가슴을 내밀며 세상을 엿보려 기웃거렸고, 양버즘나무가 잎새를 떨어뜨릴 상강 무렵엔 어디선가 까치들이 날아와 다투어 목청을 뽐내곤 했었다.

그리고 이맘때쯤이면 또 생각이 나곤 한다.

이내에 잠긴 듯 아스라한 어린 날의 파스텔톤 기억들이.

이 기억들은 내 마음속 깊숙이에 쟁여져 있는 소중한 재산이다.

그 시절 코발트빛 하늘은 시골살이의 초겨울을 알려 주는 전령사였다.

절기상으로 한로(寒露)가 지나면 날씨는 하루가 다르게 달라져 간다.

이때가 되면 마을 사람들은 연례행사처럼 겨우살이 채비를 서둘렀다.

멀쑥하게 키 자란 무를 뽑아 무청을 싹둑 잘라 낸 후 얼지 않게 땅속 깊이 구덩이를 파서 차곡차곡 묻고, 한여름 내내 강한 자외선에 색이 바래고 아이들 손이 타 군데군데 구멍이 숭숭 뚫린 띠살문의 창호지를 벗겨낸 뒤 말끔히 새로 발라 문풍지까지 달았다.

불이 잘 들이지 않았던 방은 풍구로 고래를 소제하거나, 아예 묵은 구들은 뜯어내고 다시 놓았다.

겨울나기 준비는 학교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부산하긴 여느 가정집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어쩌면 가정집 겨울나기 준비보다 외려 더 분주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다니던 시골 초등학교의 겨울나기 채비는 추위에 약한 꽃나무 화분들을 실내로 들이고 알뿌리를 캐서 땅에 묻는 것 같은 일도 중요한 절차였지만, 그 무엇보다 난방이 중심에 있었다.

지난겨울 한 철 쓰고 나서 창고 깊숙이 묵혀 두었던 갈탄 난로를 끄집어내어 녹슨 부위에 박박 솔질을 한 다음 적당한 자리에 앉히고, 창문 밖으로 기다랗게 연통을 뽑아내는 것이 하나의 큰 행사였다.

아니다.

그보다는 한겨울 동안 쓰고도 남을 만큼 넉넉한 양의 땔감을 마련하는 일이 그 채비의 가장 큰 몫을 차지했었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점심시간이 끝나기가 바쁘게 학교의 온 가족이 교사(校舍) 뒤편의 야트막한 산으로 땔감 마련에 나선다.

손에 손에 빈 비료 포대기 하나씩을 들고 사방으로 흩어져서 솔방울이며 삭정이 같은 불쏘시개들을 개미처럼 부지런히 주워 모았다.

이런 색다른 행사가 어린 우리들 마음에는 따분하다거나 힘에 겹다기보다는 오히려 쏠쏠한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마치 가을 소풍이라도 나온 듯이 왁자지껄하게 떠들어 대며 온 산을 누비고 다녔으니 그렇게 느껴졌던가 보다.

겨울이 차츰 깊어지면 주워다 놓은 마른 솔잎을 불쏘시개 하여 난로에 불을 지핀다.

뿌지직뿌지직 소리를 내다 이내 활활 불이 붙기 시작하면, 그 위에 삭정이를 잔뜩 올려놓고는 부삽으로 갈탄을 끼얹는다.

이윽고 난로는 벌겋게 몸통이 달아올라 후끈후끈해지고, 열기를 받은 우리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발갛게 상기되는 것이다.

첫째 시간 마침을 알리는 종소리가 나면 아이들은 난로 쪽으로 몰려나가 준비해 온 양은 도시락을 꺼내 다투어 그 위에다 얹는다.

서로 아래쪽을 차지하려고 밀치고 부딪히고 시끌벅적하게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그러면 선생님은 아래위로 위치를 번갈아 가며 적절히 안배해 주는 것으로 소동을 잠재우곤 하셨다.

당시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마을과 불과 몇십 발자국 거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조그마한 개울 하나만 건너면 곧바로 학교 진입로가 나왔다.

요새 아이들처럼 전자오락실이다 PC방이다 범퍼텍이다 하는 유희시설이라곤 눈 닦고도 찾아볼 수 없었던 그 시절, 학교는 배움의 장소이자 동시에 종요로운 놀이의 공간이었다.

우리 마을에서는 그때 또래 일곱 명이 함께 학교에 다녔다.

벗들은 약속이나 한 듯 매일같이 일과가 끝난 후에도 으레 학교를 다시 찾아 놀이를 즐겼다.

미끄럼틀을 타거나 제기차기를 하고, 구슬치기며 땅따먹기로 하루해가 아쉽게 저물곤 했었다.

특히나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내리는 날엔 선생님과 우리 일곱 개구쟁이는 운동장에 우르르 몰려나가 함초롬히 눈을 맞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눈싸움을 벌였다.

흐릿한 정경 속에서 모두가 머리에 잔뜩 눈을 인 채 그대로 눈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윽고 눈을 툭툭 털고 난롯가에 둘러앉아 꽁꽁 언 손을 녹여 가며 호주머니 한가득 넣어 가지고 온 알밤이랑 고구마랑 가래떡 같은 간식들을 구워 먹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때 선생님은「백설공주」와「피노키오」따위의 순정 동화며, 이순신 장군, 안창호 선생 같은 위인들의 삶이며, 장차 커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이런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속삭이듯 나직나직 들려주곤 하셨다.

그 시절을 떠올릴 때면 나도 모르게 시선이 창가에 머물곤 한다.

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옛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련한 어린 날에의 그리움.

영사기의 필름처럼 되감을 수 있다면 꼭 한 번만이라도 열세 살 소년 시절로 돌아가 보고 싶다.

조는 듯 아늑하게 엎디어 있던 고향마을의 정경과 눈송이처럼 포근하고 다정스러웠던 선생님의 미소, 티 없이 밝고 순수했던 동무들의 음성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

불과 수십 년 사이에 세상이 너무도 많이 달라져 버렸다.

몇 발자국만 걸음을 옮겨도 곳곳에 군것질감이 지천으로 널려 있고 돈만 가지면 아쉬움 없이 모든 것이 뚝딱 해결되는 세상, 참으로 풍요롭고 편리한 시대가 되었다.

그렇지만 벌겋게 단 갈탄 난로 위에 얹어 데워 먹었던 지난 시절의 양은 도시락 맛이, 요새 아이들의 보온 잘 되는 고급 도시락보다 한결 따뜻했던 것 같음은 어인 까닭일까.

흘러간 세월의 힘 때문일까, 아니면 이제 다시는 기약할 수 없는, 잃어버린 지난 시절에 대한 향수 때문일까.

추억은 언제나 아릿한 그리움을 되살려 주는 흑백필름이다.

광고의 제목 광고의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