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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길을 걸으며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홍은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3월 6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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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길을 걷다 보면 고요한 밤하늘은 달이 흰 구름과 숨바꼭질을 한다.

달이 숨는 것인지, 흰 구름이 흘러가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이 밤 희끄무레한 달빛은 오늘따라 어릴 때 고향에서 바라보던 하현달 생각이 난다.

뒷마당 울타리에 서 있던 높은 참죽나무에 달이 걸려 있던 겨울밤은 너무도 쓸쓸하였다.

깜박이는 호롱불 밑에서 숙제를 하고 있을 때면, 윗방에선 밤이 깊도록 어머니의 베 짜는 소리가 찰크덕 찰크덕 울려왔다.

아버지는 사랑방에서 마을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새끼를 꼬기도 하시고, 짚신도 만드셨다.

그 모습을 상상하며 하현달을 올려다보는 쓸쓸한 마음은 가슴으로 그리움의 비감(悲感)이 스며든다.

이 밤도 달그림자를 밟으며 터벅터벅 걸어가는 발길에는 인생 여정이 허전하다.

“사람답게 행동하거라. 남의 눈에 눈물을 내면 네 눈에서는 피눈물이 나는 법이다.”

늘 하시던 말씀이 귓가에 쟁쟁하다.

달을 보면 왜 부모님의 목소리가 떠오를까.

가끔은 냇물 건너 산기슭의 외딴집에서 멀리까지 울려오던 다듬이 소리며, 눈이 내리는 밤이면 기차가 신탄진 금강 철다리길을 털커덩 덜커덩 건너가는 소리가 은은히 들리기도 하였다.

기적 소리가 울리는 밤이면 알 수 없는 고독함이 가슴으로 밀려와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가고도 싶었다.

고요한 밤, 쌓였던 눈이 녹았다가 처마 끝에 맺혀 있던 고드름이 투두둑 떨어지면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였다.

어느 때는 참죽나무에서 부엉새가 날아와 부엉부엉 울어대는 밤이면 더욱 무서움에 오금이 저려 왔다.

부엉이가 짐승의 눈만 빼먹고 나면, 호랑이는 그 뒤를 따라다니며 몸통을 차지한다고 하였다.

마치 호랑이가 밖에 와있을 것만 같아 겁에 질려 소름이 돋았다.

찬바람에 문풍지가 우는 밤이면 더욱 온몸이 오싹해지며 잠이 오지 않았다.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도 느낄 수 없는 아련한 어린 시절의 그리움이다.

밤사이 소복이 쌓인 눈으로 새벽 창살이 하얗게 밝아지던 새벽.

멀리서 성당의 새벽 종소리가 울려오면 정신이 맑아지며 아무도 걷지 않은 참죽나무 고샅길을 쓸었다.

어머니는 물동이에 샘물을 길어 오시고, 부뚜막 뒤편에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는 정화수를 떠 놓으셨다.

어머니는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셨다고 생각하니 자식은 부모님께 해드린 것이 하나도 없다.

중국의 노래자(老萊子)라는 사람은 나이 일흔으로 부모가 아직 살아계심으로 항상 색동옷을 입고 어린아이 시늉으로 춤을 추어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렸다고 하지 않던가.

나이 팔십에 이르니 이제야 부모님의 인생사가 얼마나 허무하셨을까를 깨달으며 보살펴드리지 못한 죄스러움에 너무도 부끄럽다.

자식으로써 부모님께 못다 한 불효함에 눈시울이 젖어 든다.

그믐이 가까워가는 하현달을 바라보니 기일 생각에 부모님의 사랑이 더없이 그리워진다.

하현달은 하루하루 기울어 간들간들한 그믐달로 변하여 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가 서서히 세상을 하직하시던, 운명의 순간을 속수무책으로 지키며 겨울밤이 깊어 가던 시간은 그저 애간장 타는 한숨만이 쏟아지었다.

자식을 성공시키려고 일흔이 가까우시도록 평생을 지게질로 논밭을 오가시던 그 심정은 어떤 마음이셨을까.

오로지 자식의 성공만을 바라시던 꿈뿐이셨을 아버지가 아니셨던가.

학식이래야 어깨 너머로 배운 서당글로 세상 이치를 깨달으시며 살아오셨다.

일제강점기는 보국대로 끌려다니시며 가난 속에 어렵고 힘들던 시절을 살아오셨다.

6·25사변 적에는 피난을 갔다 고향에 돌아오니 난장판이 되어 있는 집은 폐가나 다름이 없었다.

마당의 풀섶 가에 나둥굴었던 알 수 없던 섬뜩한 해골바가지도 모두가 아버지의 손으로 치우셨고, 울도 담도 다시 쌓고 집안 곳곳은 흙맥질로 단장하여 아늑한 집으로 만드셨다.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은 인민군과 빨간 완장을 찬 사람들에게 끌려다니며 산비탈에 전쟁을 위한 땅굴을 파러 다니셨다.

비행기 폭격이 무서워 주로 밤으로 땅굴은 이루어졌다.

그 당시 나는 마을 뒷산 기슭의 뽕나무밭에 종일 숨어있다가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도 생각하면 끔찍한 삶으로 전쟁의 무서움을 실감하였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시고 돌아가신 부모님의 연세를 훌쩍 넘은 나이에 이른 뒤에서야 측은하고, 불쌍함의 그 고마운 마음은 북받치는 슬픔만으로 가슴을 아프게 한다.

덩그러니 빈 집을 홀로 지켜가며 외롭게 사시던 어머니.

가족들 저녁상을 마련하려고 반찬거리 사러 골목길을 나서다가 오토바이 사고를 당하셨다.

뇌진탕으로 병원에서 삼 개월 동안 의식을 잃고 누워계시던 안타깝던 그때 바라보던 하늘의 그믐달은 이제나저제나 변함이 없다.

저 달은 삭일이 지나고 나면 가냘픈 초승달로 태어나 광활한 하늘을 항해하듯 상현달로 변해오건만 어찌 우리 인생살이는 저 달의 변화와도 같지 않은가.

부모님은 희생하시며 자식을 이렇게 길러 놓으셨건만, 나는 내 새끼를 위해 무엇을 하며 왔나.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살아오지 않았던가.

옛말에 자신의 분수를 알면 욕되지 않고,마음을 안정시켜 사물에 응하면 비록 글을 읽지 않아도 능히 덕이 있는 사람이 된다고 하였지만, 이도 저도 실행함이 부족했다.

인생이란 어떻게 살다가 가는 것이 잘 살고 떠나는 것인지 아직도 깊은 뜻을 모르겠다.

일찍이 인생이란 진리를 깨우쳤더라면 보람된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하현달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발길이 무겁기만 하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어디로 가야 할지 분간이 서지 않는다.

어두운 이 밤길을 앞으로 얼마나 더 걸을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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