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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로고 박순혜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사년 겨울호 2024년 12월 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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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 톡, 카톡이 온다. 이번 토요일에 우리 모여 밥 먹자는 사진 단톡방 친구들이다. 모두 본명 아닌 별명을 쓴다. 나도 물론 별명을 사용하고 있다. 닉네임이라고들 한다.
나는 열심히는 아니고 게으름이 뚝 뚝 묻어나는 블로그를 하는데 여기서도 본명을 쓰지 않고 별명을 사용하고 있다. 댓글은 막아 놓고 공감은 열어 놓는다. 게시물을 언제나 0시로 예약 발행하는데 아침에 일어나 블로그에 들어가면 40여 명의 내 이웃이 다녀갔고 뒤이어 이웃과 이웃 맺지 않은 블로거도 다녀감을 공감에서 확인한다. 거의 별명 쓰는 블로거들이고 어쩌다가 본명을 사용하는 분이 있으나 성명과 별명 혼용이다.
그런데 많은 수의 블로거들의 별명들이 다 예쁘고 뜻깊고 멋지다. 혐오감을 주거나 이상하게 느껴지는 게 하나도 없어 내 어릴 때 우리 식구 특히 작은언니 별명이 생각이 나곤 한다.
어느 날 작은오빠는 작은언니와 나를 앉혀 놓고 중대 발표를 했다. 큰언니와 큰오빠, 작은언니, 내 별명을 지었다는 것이다.
제일 큰언니 이름이 두연(斗延)이라‘연대가리’라고 했다. 성격이나 특징 이런 걸 떠나서 이름 자 발음으로 별명을 지었다. 그런데 연 자를 넣으려면 연꽃으로 짓거나 하다못해 연필로 지어도 될 것을‘연대가리’라니? 공부 안 한다고 꾸중 듣고 그렇게 지은 것 같다. 그런데 큰언니 안 듣는 데서만‘연대가리, 팥대가리’했지 감히 큰언니에게‘연대가리’호칭은 물론 별명을 지었단 말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큰오빠 이름은 두곤(斗袞), 본인이 이미‘곤두박질’이란 별명을 지었는데‘골뱅이’라 하였다. 곤 자 넣어 지을 별명이 어지간히도 없었던가 보았다.‘골뱅이’역시 큰오빠에게 써먹는 걸 못 봤다. 큰오빠 안 듣는 데서‘골뱅이 골뱅이’했다.
작은오빠 이름은 두승(斗升), 자신은 말로 주고 되로 받는 인생이라고 하면서 따로 별명을 짓지 않았다. 뒤늦게 내가‘승대뽕대 방구쟁이’라고 지었다. 작은오빠가 방귀를 참지 않고 자주 뀌어서였다.
어느 날이었다. 나는 뭣 때문인지 작은오빠한테 한 대 맞고 마당에서 뒹굴며 울었다. 앙앙 울면서 소리 질렀다. “승대뽕대 왜, 방구쟁이 왜” 몇 번이나 반복해서. 그때 작은오빠가 으하하 웃고는, “아하, 순혜 니 비루(별명)가 승대뽕대 방구쟁이구나, 불러놓고 왜 왜 하며 대답했잖 아”하며 나를 약올렸다. 아! 그때 내가 작은오빠 별명 외치며 왜“왜, 왜”했는지 모르겠다.
작은언니 이름은 두혜(斗蕙),‘해골박재기(해골바가지)’라 하였다. 해바라기나 해당화로 지으면 얼마나 좋은가. 무슨 억하심정으로 동생 별명을‘해골박재기’로 지었는지. 참 악취미다. 나 같으면‘해골박재기’는 싫다고 했을 텐데 작은언니 본인은 큰 눈만 껌뻑이며 아무 말이 없 는 게 아닌가.
나는 이미 엄마가 지어준‘설란’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 엄마가 장에 가서 올 때쯤 골목 끝에 서서 기다리다가 저 멀리 동구 밖에 엄마가 나타나면 집으로 뛰어간다. 우리 집이 네 칸 겹집이라 안방의 북쪽으로 전체가 미닫이문인 작은 방이 하나 있고 거기 장롱이 두 개 들어 있다. 그 한쪽으로 엄마 옷을 걸어 놓는 공간이 있는데 장에 갔다가 오면 옷 갈아입으려고 그 미닫이문을 반드시 연다는 걸 안다. 그래서 그 안에 숨어 앉았다가 엄마가 문을 열면“까꿍”하였다. 엄마는 매번 깜짝 놀라곤 했는데 나중 생각하니 일부러 놀라는 척한 것 같다. 또 거기 키 작은 장롱 위에 걸핏하면 의자를 놓고 올라가 미닫이문을 무대의 막이라고 하면서 닫았다가 서서히 열고는 오빠들한테 들어 익힌 노래를 부르곤 했다.
내가 이렇게 설칠 때마다 엄마는“으이구 이 설란아 설란아”하여 그게 내 별명이 되었다. 블로그를 운영하기 전 미니 홈피를 했는데 그때 별명 짓는다고 애쓰지 않고 엄마가 지은‘설란’별명을 생광스레 써먹었다. 방문자들이‘설란’닉네임이 예쁘다고 했고 눈 속의 난초냐며 묻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우쭐하는 마음이 생겨‘설란’의 탄생을 신나게 알리곤 했다.
작은오빠가 나에게‘작은해골박재기’라 해야 옳은데‘수레이뽀레이’란 뜻 모를 별명을 지었다. 큰언니부터 두 두 두 두 잘 내려오던 이름 첫 자가 나한테 와서는 딱 멈추고 순 자가 들어간 순혜(筍蕙) 이름이다. 그 탓인지 이웃집 아주머니가 나를 공굴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며 놀리곤 하여 울기도 했는데 작은오빠는 그런 내가 조금은 측은했던가 보았다.
작은언니와 나는 가끔 토닥거리며 싸웠다. 그럴 때 나는“이 해골박재기야”하며 놀렸다. 그러면 착하디착한 작은언니는 해롭게 듣지 않고“내가 해골박재기면 너도 해골박재기이지”하였다. 그렇다. 따지고 보면 나도‘해골박재기’인 것을.
작은언니가 동갑인 사촌언니들과 어딘가를 가면서 나를 안 데리고 갈 때면 나는 엄마한테“엄마, 해골박재기가 나를 못 따라오게 하고 두 남, 두청 언니하고 어데 갔어”하고 일러바치곤 했다. 셋이 잘 모이는 그 언니들을 나는 왜 그리 따라가고 싶어 했는지 모르겠다.
철이 들면서는 작은언니에게‘해골박재기’라고 하지 않았다. 어른이 되어서는 그 별명조차 잊고 살았다. 그런데 요즘 새삼 생각이 나는 건 블로거들이 하나같이 좋은 별명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언니가 자신의 별명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았을까? 나는 왜 이제야‘해골박재기’라며 놀려준 게 후회가 되는지?
카톡을 준 단톡방 친구들에게 토요일 뭉치자고 답했다. 그날 친구들이 수다 떨 때 나는 내 어린 시절 우리 식구들 별명 이야기로 수다를 떨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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