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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노안(白髮老顔)

한국문인협회 로고 조효현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사년 겨울호 2024년 12월 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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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본디 게으른 성품은 아니다만 어인 일이런지 이발을 하러 가는 것 만은 늘 머무적거리는 습관이 있다.
두어 달이 지나서야 한 번쯤 가게 되는데 오늘은 꼭 길게 늘어진 머 리카락을 자르려고 작정한 날이다. 그러기에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간 다. 면도사도 없이 혼자 하는 작은 이발소이기에 먼저 온 손님들이 있 으면 지루하게 차례를 기다려야 하니 이렇듯 서둘러 가는 것이다. 그래 도 더러는 나보다 먼저 오는 분들이 있기도 한데 오늘은 다행인지 요행 인지 이발사가 문을 막 열고 있을 때에 일착으로 도착했다. 그리하여 맨먼저 이발을 하게 되었는데 이발사 또한 그의 습관이 있어서 문을 열 어 놓고는 담배부터 한 대 피우고서야 비로소 일을 시작하고는 한다.
그러니 나는 이발하는 의자에 앉아서 눈앞에 있는 커다란 거울이나 우두커니 바라보게 되는데 문득, 이백(李白)의 시「추포가(秋浦歌)」에나 오는 구절 중에‘부지명경리(不知明鏡裏); 밝은 거울 속(얼굴)을 모르겠 다’라는 구절이 떠오른다. 거울 속으로 보이는 자기의 얼굴을 본인이 모를 리가 없으니 유난스럽게 더욱더 늙어 보임에 놀라고 허무해서 그 가 그랬을 것이고 나도 그렇기에 그 시가 생각이 나는 것이다.
그때의 그 이백은‘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 백발이 삼천 장이나 늘어 졌네’라고 길게 늘어진 흰 머리카락을 보며 놀라서 그랬지만 이 순간의 나는‘얼굴은 주름살투성이고, 눈 밑의 지방은 볼록하게 솟아오르고, 콧방울의 양쪽에서부터 입의 좌우로 팔자(八字)처럼 파여져 있는 주름 은 더욱더 깊어졌고, 염색을 했던 정수리의 가르마에 새로 자란 흰 머 리카락들은 늦가을 길섶의 풀잎에 얼어붙은 눈서리 같으니 많이도 늙 구나! ’싶음에 놀라고 허무해서 이러는 것이다.
기실 나는 젊어서나, 늙어서나 머리카락과 얼굴의 변화쯤은 그저 그 러려니 하고는 한다. 그런데 내 자녀들의 효심은 그렇지가 못하다. 해 마다 희끗희끗한 새치가 솟아나고 거뭇거뭇한 검버섯이 피어나는 아비 의 모습이 안타까워서들‘염색을 하라’고 성화를 대고‘검버섯도 빼 라’고 졸라대고는 한다. 그래도 나는 그러려니 하며 살았었다.
그랬었는데 큰여식이 시집가는 날짜가 정해지니 더욱더 성화를 부리 고 졸라댔다. 그러기에 그때는 이발소와 성형외과에 가서 염색을 하고 검버섯도 뺐다. 그렇게 시작되었는데 검버섯을 빼는 것은 남세스럽고 도 너무 고통스러워서 중지하고 염색은 계속해왔던 것이다. 아니, 아니 다. 세 자녀들을 모두 남혼여가로 시집, 장가를 보내놓고서는 염색을 하는 것도 중단했었다. 그런데 이 무슨 복운이런지, 팔자이런지. 출가 하고 분가한 세 자녀들이 모두 다들 하나 같이 내 집 가까이에 살면서 수시로 왕래하며 성화들을 대니‘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다시또염 색만은 계속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내가 지금까지 염색을 하는 것 은 전혀 내 뜻이 아니었고 내 자녀들의 뜻이었던 것이다.
어떻든지, 담배를 다 피운 이발사가 이제는 내게로 다가와서 하얀 망 토를 내 목에 둘러놓고는 이발을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조금 전에 느 낀 내 생각을 말한다.
“나도 이제는 더욱더 많이 늙었지요? ”
그런데 이발사는 내가 왜 그런 말을 불쑥 하는지 알 리가 없으니 묵 묵히 하던 이발이나 계속하고는 한다. 그리고 나는 나대로 하던 말을 계속하고는 한다.
“저 옛날, 중국 진나라 때의 갈홍(葛洪)이라는 사람이 불로장수의 비 법을 서술한『포박자(抱朴子)』라는 책에 의하면‘신선은 머리카락이 허 옰지만 얼굴은 소년처럼 주름살이 없고 볼그레한 백발홍안(白髮紅顔)이 다’고 합디다. 그런데 나는 오늘 저 거울 속으로 보이는 내 얼굴을 물끄 러미 보고 있노라니 머리카락은 염색을 해서 까맣지만 얼굴은 주름살 투성이의 늙은이라서 신선과는 정반대인‘흑발노안(黑髮老顔)’임을 새 삼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 나 같은 쭈그렁 늙은이가 염색을 하는 것은 가당찮은 노욕(老慾)입니다. 이제는 염색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염색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니 우처(愚妻)가 보고 묻는다.
“오늘은 왜 염색을 안 했어요? ”
“늙은 호박에다 색칠하면 젊은 호박이 될까? 얼굴이 쭈글쭈글하게 늙었으니 이제는 거기에 맞추어 살아야지.”
그 퉁명스런 대답만으로도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었다.
하지만‘부모가 늙는 것이 싫다’고 지금도 지극정성으로 보약들을 지 어오고,‘헌옷도 보기 싫다’고 철마다 새 옷들을 사오고는 하는 내 자녀 들의 성화는 그렇게 쉽게 끝나지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제는 나도 고집을 부리며 이해를 시킬 작정이다. 내가 지금도 암송할 수 있는「백발가(白髮歌)」의여러구절중에‘가는세월 오는 백발을 무슨 수로 금할 건가/ 소진(蘇秦) 장의(張儀) 구변으로 달래 보면 아니 올까/ 석숭(石崇)이의 억만 재물로 인정(人情) 쓰면 아니 올까 / 좋은 술 많이 빚어 권해보면 아니 올까/ 만반진수(滿盤珍羞) 차려 놓고 빌어보면 아니 올까’라고 하는 그 구절들을 읊어대며“가는 세월과 오는 백발은 막을 수가 없는 자연의 섭리이니 나도 순응하며 살아야 한 다”고 이해를 시켜줄 것이다.
그렇다. 그리하면서 내 여생은 이렇게 백발노안으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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