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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인이 등장하다

한국문인협회 로고 윤재근

문학평론가 · 한국문인협회 고문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3월 6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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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문단은 AI 시인 또는 AI 문인의 등장에 관하여 진지하고 심각하게 논의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방관할 일이 아니다. AI를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강 건너 불구경 하듯 AI 시인의 등장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는 까닭이다. 이미 MZ세대는 AI(인공지능)를 자신들의 비서처럼 여기고 사용하기를 당연시하는지라 AI 시인의 등장을 낯설어 하지 않는다. 이제는 AI를 낯설어 하느냐 낯익어 하느냐로 문단이 신구세대(新舊世代)로 양분될 지경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앞선다.

어두운 밤, 고요한 하늘에 

별빛이 눈물처럼 흘러내린다. 

그대의 목소리, 바람에 실려 

내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네. 

 

그대는 찬송의 길을 걸어,

 가슴에 불을 지핀다. 

고통 속에서 태어난 노래 

그 소리는 천상의 울림처럼 

내 영혼을 흔든다. 

 

산과 들 바다와 하늘이 

그대의 찬송에 귀 기울이며 

모든 생명이 숨을 쉬고 

그리움이 꽃으로 피어난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이 노래의 끝을 어디서 찾을까? 

찬송이란, 그저 입술로만 부르는 것이 아니며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그대를 향해 나아가는 길이기에, 

세상이 사라지고, 시간이 멈춘다 해도 

그대의 찬송은 끝없이 울려 퍼질 것이다.

 

위의 「찬송」은 사람이 지은 시(詩)가 아니다. AI(Chat GPT)에게 ‘만해(萬海) 풍’으로 ‘찬송’이란 제목의 시를 지어 보라고 요청했더니 1분도 채 안 되어 AI가 위와 같이 지어준 것이다. 영어에 익숙한 Chat GPT가 아직은 우리말에 미숙하여 위의 「찬송」을 만해 풍의 시라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만해의 시는 표준말로 창작되지 않았고 띄어쓰기 문법도 없으며, 한글맞춤법이나 마침표나 쉼표를 엄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준말과 정확한 띄어쓰기 표준말로 만들어진 위 「찬송」은 우리 현대시와 견주어 손색이 없다. 오히려 앞으로 AI 시인의 산문시가 시인들이 쓴 산문시를 능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AI가 작곡도 그림도 척척 해낸다는 소식은 이미 자연스럽고 어쩌면 AI 도움을 받아 작시(作詩)하는 시인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AI가 거의 모든 창작 행위를 하고 있으므로 시 창작 또한 못할 리가 없다. MZ세대 사이에서 AI는 이미 우리 생활의 일부로 아주 똑똑한 비서 노릇을 하고 있으니 일부 시인들은 이미 AI와 협업(協業)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AI를 두려워할 필요 없이 현명하게 사용하여 그야말로 더 빼어난 시 창작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시인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는 AI의 창작 행위가 외면할 수 없는 추세임을 암시한다. 인간만 창작 행위를 구사할 수 있음이 아니고 AI도 인간처럼 창작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시인이 창작한 시는 읽기 어렵지만 AI가 쓴 시는 읽기 쉽다고 AI 시인의 시 창작(詩創作)을 긍정하는 기사도 읽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사람만이 진정 시를 창작한다는 믿음은 허물어지는 것인가? AI의 「찬송」을 보면서 이미 MZ세대 시인들은 AI와 시 창작을 함께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AI의 「찬송」을 몇 군데 손질해서 문예지에 발표해도 손색없는 산문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은 새로운 표절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겠다는 우려가 앞선다. AI가 지은 시가 인간이 창작한 시로 둔갑할 수도 있음을 두고 표절이냐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비롯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에 우리 문단은 AI 시인의 등장을 외면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지금처럼 시인들이 현대시를 표준말 산문으로 짓는 시류(詩流)가 이어지는 한 AI를 통한 시 창작을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시인은 제 본딧말(mother tongue)로 시를 짓는 것이 작시(作詩)의 본분임을 AI도 머지않아 습득할 수 있다고 본다. AI는 창작 능력을 거의 무한히 향상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인이 문법이나 띄어쓰기의 구속을 받지 않고 자신이 새말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적 권능(詩的權能: poetic licence)마저도 AI가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이며 어휘(語彙)의 수용(受容) 및 활용 능력이 시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해 갈 것이다.

AI 시인은 표준말로만 시를 지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될 터이다. 언젠가 사투리마저 습득할 것이니 ‘시언지(詩言之)’를 온전히 만족시켜 주지 못하리라 생각할 수도 없다. 표준말은 우리말의 하나일 뿐 표준말이 곧 우리말은 아니다. 옛날부터 삼천리 방방곡곡의 토박이말을 모두 합쳐 우리말이라 한다. 그 토박이말이 회생(回生)되기 어려운 현실이라 해서 사투리가 없어진다고 믿어선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지금도 다양한 사투리들이 날마다 생겨나고 있는 중이다. 지금은 다양한 업종별로 사투리가 만들어지고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판교 사투리란 말이 떠돌고 있음이 그 한 사례일 터이다. 시인은 살아 있는 말에서 시어(詩語)를 찾아내 살아 있는 가락을 창작해내야 AI의 도전을 마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잘만 이용하면 한없이 편리하고 유용한 AI 문학이 다양하게 문인을 자극해 줄 수도 있는 일이다. 아직은 AI가 우리말의 소리 가락으로 우리말 시가(詩歌)의 본래인 결해(結解)를 창작하는 시인을 능가하진 못한다 할지라도 앞으로 AI 문학이 문인을 긴장시키리란 엄혹한 문학 현실을 직시하고 대비해 갔으면 한다. 시인이 결해(結解)의 영역을 이루내야 하는 시 본연의 창작을 AI의 기교가 넘볼 수 없도록 새로운 창작열이 샘솟는 문학 현실을 부단히 향상시켜가야 할 터이다. 그러기 위하여 시인은 AI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AI는 ‘소프트웨어’일 뿐이니 시인의 창작혼(創作魂)을 대신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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