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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

한국문인협회 로고 이순미(성남)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2월 6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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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삼십 년 전 오빠는 학교가 끝나면 또래들과 함께 소꼴을 먹이러 산으로 갔다. 해 질 무렵이면 배가 불뚝해진 소가 먼저 마당에 들어서고 그 뒤에 칡넝쿨을 짊어진 오빠가 따라 들어왔다. 그날은 소는 안 보이고, 오빠가 훌쩍이며 마당에 서 있었다. 엄마는 소는 어디 있냐고 오빠를 닦달했다.

그제야 오빠는 소를 풀이 많은 근처 나무에 고삐를 묶어 놓고, 칡덩굴을 잘라 놓은 뒤 친구들과 놀다가 갔는데, 소는 없고 끊어진 고삐만 있었다고 했다. 그 순간 엄마는 그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놀란 아버지는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마을 스피커에서 신촌 형님네 소가 없어져 소를 찾으러 갈 사람은 마을회관 앞으로 모이라는 이장님의 음성이 온 마을에 울려 퍼졌다. 마실 가는 듯이 매일 나무와 나물을 채취하러 올라가 산 구석구석을 다 알고 있었지만, 한여름이라 무성한 수풀과 살모사, 벌레가 많고 산세까지 험하여, 밤 산행은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다. 낮엔 사람들의 세상이었지만 밤엔 야수들의 세상이라 산에 가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소를 찾아 산으로 가려고 마을 장정들은 거의 다 모였다. 뱀 퇴치를 위하여 담뱃가루를 양말에 넣는 사람과 손톱에 봉숭아 물들이려고 사놓은 명반을 양말 속에 넣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진동을 싫어하는 뱀과 산 짐승에게 방어하려 긴 막대기까지 가져왔다. 사람들은 두껍고 긴 팔 윗도리의 앞단추를 하나씩 끼우고, 전장에 나가는 병사들처럼 손전등과 작대기를 들고 산으로 갔다. 천만다행으로 그날은 보름이라 달빛이 환하게 세상을 비추어 소를 찾는 우리를 도와주는 듯했다.

소가 없어졌다는 산에서 시작하여 마을 사람들은 여러 무리로 나누어 기다란 작대기로 수풀을 툭툭 치면서 산속에 있는 짐승들에게 피하라고 훠이! 훠이! 소리를 냈다. 불빛이 산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작은 재에서 큰 재로, 큰 재에서 산막 고개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산막 고개는 네 갈래 길이 있다. 우리 마을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북두산성, 서쪽으로 독안산성, 남쪽으로 노고산성, 북쪽으로 퇴메산성이 있다. 우리 마을은 골짜기에 위치해서 곡촌이라고 불렀다. 그곳을 벗어나면 소를 찾기가 점점 어렵게 되는데….

우리 마을의 건너편 마을은 범이 가끔 내려온다고 범벅골이다. 그 당시에는 산에 늑대·이리·여유·승냥이가 있고, 범까지 있다고 믿었던 때였다. 불안해진 엄마는 산에 간 사람들이 무사하게 해주시고, 우리 소를 찾게 해달라며 연신 두 손을 싹싹 비비며 기도하였다.

서너 시간 지났을 때, 산막 고개에서 가느다란 불빛이 마을로 내려왔다. 멀리서 딸랑딸랑 워낭 소리가 들렸다. 달빛 속에 소를 앞장세우고 마을로 오는 사람들의 모습은 개선장군처럼 위풍당당했다. 내 옆을 스치는 마을 사람들의 땀 냄새가 그때는 어떠한 향수보다 더 향기로웠다. 마을로 오는 계곡의 나뭇가지에 고삐가 걸려 꼼짝달싹 못하는 소를 찾았다고 한다. 소의 엉덩이 부분이 볼록하게 부은 것을 보니, 벌에 쏘여 그 충격으로 달려나간 것 같았다.

우리 마을은 경주 이씨의 집성촌이다. 큰일이나 어려운 일이 생길 때는 내 일처럼 도와주며, 누구네 밥그릇과 수저가 몇 벌인지 속사정을 잘 알고 지냈다. 전통적으로 마을 공동체 구성원이 되어 계를 만들고 노동력을 교환하는 품이라는 것을 통해 상부상조하지 않으면 혼자서는 농사를 짓기 힘들었기 때문에 뭉쳐야 했다. 그러므로 마을 사람들은 매일 사소한 것으로 지지고 볶고 싸우다가도 마을에 어떠한 일이 생기면, 마치 강력한 자석에 흩어졌던 쇳가루들이 순식간에 모여 하나로 서로 달라붙는 것처럼 뭉쳤다. 그렇게 하나 되어 일사불란하게 어떤 문제든 깔끔히 해결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농기계의 발달로 상부상조하는 공동체 의식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여러 사람이 모여 산다는 정감 어린 마을이란 말보다는, 사는 집 근처라는 뜻의 동네란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유치원생 아들과 외출하고 있었다. 앞에 가는 할머니께서 지팡이를 짚고 한 걸음 한 걸음씩 천천히 걷고 있었다. 아마 운동하러 나온 것 같은데 보호자가 옆에 없었다. 출입문이 가까워지자 아들은 뛰어가서 할머니께서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출입문을 열고 서 있었다. 어린 아들이 너무 대견스러워 잘했다고 칭찬을 했다. 그러자 아들은 엄마가 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한 것뿐인데 하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아들에게 어려운 상황에 있는 할머니를 네가 도왔듯이, 네가 어려운 상황이 되었을 때는 누군가가 너를 도와줄 수도 있다고 말해 주었다. 누군가의 선한 영향력을 받아 타인이 어려운 상황을 보고 도와주는 아들의 모습에 흐뭇했다.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어른의 행동을 보고 그 행동을 따라 한다고 해서 어른은 아이의 거울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그 선한 영향력이 또 다른 선한 영향력을 만들면 세상이 한층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 같다. 삼십 년 전 마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울타리가 있지만, 누군가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 울타리는 금세 없어지고 하나의 울타리가 되었다. 그때처럼 상부상조란 울타리를 잊지 않고 실천하여 선한 영향력을 널리 퍼트리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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