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그날의 기억

한국문인협회 로고 한명림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2월 672호

조회수13

좋아요0

조카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다. 예약한 미장원을 가기 위해 경의중앙선 지하철을 탔다. 코스모스가 가냘프게 손을 흔들면서 철길에 가을이 온다. 좋은 일로 만날 친족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맑은 하늘을 본다. 응봉역에 도착하니 가끔씩 오는 안전안내문자가 핸드폰에 ‘띵’하며 떴다.

‘영등포구 한○화 씨(여, 66세)를 찾습니다. 160cm 53kg, 꽃무늬 원피스’.

둘째 여동생의 이름이었다. 나이와 키 몸무게도 비슷했다. 그리 흔한 이름도 아니다. 동생은 정읍에 살고 있다. 영등포에서 찾고 있는 여성은 동생 이름과 같은 동명이인일 거라 생각되었다. 그렇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수 없었다. 같은 이름에 비슷한 나이와 몸매였기 때문이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어서 상경했다가 영등포역에 잘못 내렸나? 하루 사이에 그 무섭다는 치매가 갑자기 와 이 거리 저 거리를 헤매고 있는 걸까? 불길한 상상에 치매를 진단받은 영국인 웬디 미첼의 말을 떠올렸다. 치매의 증상은 ‘시작과 중간, 끝이 있다며 갑자기 진행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제 통화에서 이상한 느낌이 없었으니 부정적인 생각을 지우고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밝은 목소리로 서울 아들집에 와서 결혼식장에 가려고 준비하고 있단다. 잠깐 놀랐던 가슴을 쓸어내리고 안전안내문자를 지우고 나서 미장원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운동장 트랙 반 바퀴 정도의 광희중학교 담장을 돌아 걸으며 미용실을 이용하게 된 것은 3년 정도 되었다.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미용사는 빌라와 주택 골목 이층에서 혼자 미용실을 운영하는 오십 대 초반 주부였다. 계단을 걸어 미용실 앞에 다다르니 불이 꺼져 있고 문도 잠겨 있었다. 안에 누가 있는지 문을 두드려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당황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꺼내 어찌된 일인지 미용사에게 전화를 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코로나가 걸려 나갈 수가 없어 죄송하단다. 결혼식 때문에 날짜를 맞추어 예약한 단골손님을 이렇게 대해도 되는 것인가? 참으로 한심했고 무책임한 사람이라 탓하고 싶었지만 시간은 멈춰 주지 않았고 고장 난 시간이란 없었다. 12시까지 결혼식장에 가려면 빨리 머리를 만질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근처 미장원이 있는지 물었더니 카센터 옆으로 가면 한 군데 있다고 하였다. 카센터를 지나니 허름한 일층에 ‘응봉헤어라인’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미닫이문이 열려 있었고 서글서글한 60대 미용사가 첫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처음 보는 미용사였지만 손 빠르게 부스스한 머리를 단정하게 만들고 흰 귀밑머리에 갈색 파우더까지 발라 주었다. 흰머리를 살짝 가리니 젊어 보였다.

집에 들를 시간을 아끼기 위해 남편에게 미리 챙겨놓은 한복 가방을 가지고 집 앞 역으로 나오라고 전화를 했다. 시청역을 목표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4호선을 타고 서울역에서 1호선으로 바꾸어 타는 것과 경의중앙선으로 용산역에서 갈아타는 방법이었다. 전철이 자주 오는 4호선을 택했다. 서울역에서 막 도착한 1호선을 놓칠세라 허겁지겁 올라탔더니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잘못 탄 것이었다. 한 정거장을 손해보고 다음 차를 기다려서 두 정거장을 거쳐서 내렸다. 전철을 놓치지 않으려고 서두르다 시간을 세 정거장 이상을 낭비하고 말았다. 긴 지하도를 거쳐 10분 전에 도착한 결혼식장 입구 벽 옆으로 축하 화환이 줄지어 서 있었다. 축의금을 받지 않은 결혼식이라 그런지 촘촘히 겹쳐진 3단 화환 뒤는 탈의실 대용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지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으니 내 모습도 눈에 띄지 않았을 것이다. 옷고름을 매고 꽃신을 신고 화환 속을 빠져나와 몇 걸음을 떼니 발바닥과 신발이 따로 움직였다. 뒤 밑창이 입을 떡 벌리며 떼를 쓰며 발목을 잡는 것이었다. 신발 앞축으로 뒤축을 살살 달래며 가족 지정 테이블에 간신히 앉을 수 있었다. 고이 신고 신발 상자에 잘 보관한 가죽신이 이럴 줄이야…. 새신랑 친구들이 노래하고 춤추며 귀여움 떨 때 가만히 처음 신고 왔던 헌 신발로 바꿔 신었다. 맨 먼저 결혼한 막내아들 때는 비단 꽃신, 그 이듬해에 결혼한 딸은 매화 자수 꽃신을 신었었다. 오늘 신으려던 십장생 자수 꽃신은 10년 전 큰며느리가 시집오면서 맞춰준 신발이었다. 세 켤레로 곱게 남아 있는 꽃신 중에서는 제일 새것이었다.

꽃신 속에는 아이들이 평생의 반려로 삼게 된 이야기가 소롯이 담겨 있다. 말썽부린 십장생 꽃신이 품은 큰아들 부부의 만남을 생각하면 작은 미소가 번진다. 아들에게 재활 치료를 받던 며느리 직장의 여성 상사가 소개를 하여 인연이 된 것이었다. 알고 보니 며느리와 나는 구면이었다. 며느리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강남에 있는 초등학교에 며느리는 6학년 학생, 나는 5학년 담임이었다. 4층에서 공부하고 3층에서 가르치며 학생과 교사로 1년을 같은 공간에 있었던 것이다. 며느리의 졸업 앨범에 내 사진도 있었다. 걸 스카우트 대원으로 활동했던 며느리의 이야기가 친분이 두터웠던 후배 동료와 연결될 땐 내 직접 제자 같은 친근감이 들었다. 6학년 때 담임이었던 남교사와는 그 학교를 떠나서 같이 근무도 했었다. 지금은 손자가 그 학교를 다니고 있다. 엄마가 입학하여 졸업하고 할머니가 4년간 선생님으로 있었다고 친구한테 자랑하는 손자가 토끼같이 귀엽다.

인연으로 만나 일가친척, 지인들의 축복을 받으며 새 가정을 꾸미는 조카의 결혼식날, 구불구불 움직이는 곡선처럼 빚어진 나의 하루였다. 석양에 비치는 고운 노을, 정다운 손주들과 둥글게 손잡아 보고 싶은 시각이다. 내일은 도화지 위에 수평선처럼 잔잔한 직선이 그려질까? 파도처럼 너울대는 곡선일까? 사람을 놀라게 한 헛된 안전문자, 미장원의 약속 위반과 신발 뒤축이 말썽을 부리는 등 곡선 같은 날들에 대비하여 느긋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지우개 하나 준비하자.

광고의 제목 광고의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