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6월 6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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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하늘이 얼마나 힘을 주었던지
시린 바람이 날아와 버석버석 말라가는 시간을 재촉한다
문필봉 아래 바깥마당, 적막을 털어내고 장이 선다
찬바람이 일제히 낙과(落果)를 흥정하고
나뭇잎들은 돌아갈 주소를 쓰는데
다람쥐가 밤송이와 거래하면서 비명을 지른다
장마당 속으로 입점한 단풍잎, 은행 호두 도토리
늙은 호박은 가장 넓은 평수를 차지했다
빛의 각도에 따라 상품의 질이 달라 보여
맨 앞줄에 진열한다
도토리는 새벽 고요를 깬 전력으로 뒷줄에서 긴장한다
예고 없던 바람이 상품을 쓸어가고
찢기고 깨진 제품들은 반품 창고로 밀려난다
마당은 구석진 곳에서 재고품까지 모두 기록한다
파장, 떨이로 내놓은 산국화 향기
한 뼘씩 줄어드는 햇볕은 에누리가 없는데
참새들의 수다가 좌판을 망친다
새들은 장터의 풍경을 물고 건너편 감나무로 날아간다
가지마다 등불을 밝히고
급매물건이라고 써붙인다
근육이 빠진 몸을 햇빛에 의지하고 기어나온 귀뚜라미 여치 메뚜기까지
햇빛은 그들의 뼈마디를 만지며
가을이 주문한 계산서를 쓰고 햇빛은 연간 수익을 정산한다
마당 귀퉁이에 저 대빗자루는 계절통을 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