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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와 지게

한국문인협회 로고 윤원욱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2월 6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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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평생을 구부리고 사셨습니다
꼿꼿한 처녀의 몸으로
손바닥을 펼치면 하늘을 가릴 수 있는
첩첩산중에 시집온 후
구부림의 일상이 시작되었습니다
갓난아이 젖 물릴 때나
개울가에서 빨래를 할 때나
아궁이에 군불을 지필 때면 늘 구부렸고
척박한 비탈밭에 나가 김을 맬 때면
온종일 뙤약볕 아래에서 구부린 채
호미질을 해야만 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습관처럼 되어버린 구부림은
어머님의 등허리를 호미처럼 휘어지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아버지는 평생을 짊어지고 사셨습니다
찌든 가난을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가장의 지게에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강박이 놀러 붙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투박한 지게는 무엇이든 져 날랐습니다

 

때로는 장작더미나 농작물을 실었고
심지어는 가축도 지고 한나절이나 걸리는
읍내 장터까지 걸어가야만 했습니다
아침햇살을 맞으며 떠난 아버지의 지게는
어둠이 내려서야 달빛의 호위를 받으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지게가 장신구처럼 늘 매달려 있던
아버지의 어깨는 움푹 파인 홈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산골 집엔 인적이 끊어지고
잡초 무성한 밭 가장자리에는
두 무덤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무덤 앞에는
어머니의 영혼이 깃든 호미와
아버지의 삶의 징표였던 지게가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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