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사년 겨울호 2024년 12월 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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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빛을 힘껏 껴안은 바다는 눈이 시리고도 남을 만큼 투명했다. 수평선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물결이 잔잔하게 일렁였다. 일렁이는 물결 사이로 하얀 포말은 엉켰다, 이내 사라졌다. 한껏 달아오른 모래가 뜨거울 법도 하건만, 그것마저도 따뜻하게 느껴질 만큼 바닷물은 차가웠다. 개장일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에도 생각보다 피서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저 해안가를 서성이는 몇몇 관광객들과 낚싯대를 드리운 낚시꾼 두어 명이 전부라면 전부였다. 모든 풍경이 적당하고 딱 그만하면 되었다 할 만큼 고요했다. 어느새 나는 내 앞에 펼쳐진 평온한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상하리만큼 너무나 평범한 풍경에 덜컥 겁부터 났다. 검지를 들어 툭 하고 찌르면 괜스레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변해 먼바다로 날아가 버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마저 들었다. 어째서 나는 지극히 평범한 풍경을 마주하고 있음에도, 이토록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그건 끔찍한 살해현장에서 홀로 살아남은 그날로부터 시작되었을지도.
풍경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내 귓가에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들려오는 숨소리는 가공되지 않은 생것 그대로의 날숨이었다. 보통의 숨소리라면 분명 들숨도 있을 법한데, 이건 겨우 목에 붙어 있는 숨을 재빠르게 내뱉는 소리였다. 한마디로 목숨이 곧 넘어간다는 뜻과도 같았다. 위태로운 숨소리에 그제야 나는 정신을 차렸다. 발목에 부딪히는 청량한 파도는 온데간데없고 온통 검붉은 핏빛 물결만이 일렁였다. 조금 전까지 마주했던 아름답고 평온했던 해안가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해초의 향이 묻어나 있던 바람 대신 피비린내가 역겹게 진동했다. 놀란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순식간에 모여든 먹구름 사이로 한 차례의 번개가 번뜩였다. 뒤이어 들려오는 천둥소리는 마치 새끼를 잃고 미친 듯 날뛰는 맹수의 날카로운 비명과도 같았다. 나는 있는 힘껏 두 귀를 틀어막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을 버티었을까. 얼굴 위로 빗방울이 떨어졌다. 한 방울 또 한 방울 떨어지던 빗방울은 금세 굵은 빗발이 되어 온몸을 적셨다. 거센 빗줄기에 눈을 뜬 나는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그렇게 빗물이라 여기며 쓸어내렸던 두 손은 이미 피투성이로 변해 있었다. 나는 피범벅이 된 손바닥과 손등을 번갈아 보며 부들부들 떨었다. 고함이라도 내지르면 이 끔찍한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데, 뭔가가 꽉 틀어막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두 다리를 움직여 보았지만, 그 역시도 소용없었다. 사투의 시간이 길어지고 손끝의 힘마저 사라질 무렵, 검붉은 피를 뒤집어쓴 거대한 금붕어 한 마리가 나의 정수리 위로 튀어 올랐다. 나는 날아오르는 금붕어를 올려보다 그만 핏물 위로 나자빠졌다. 다리와 두 팔을 시작으로 몸 전체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거칠었던 들숨과 날숨도 조금씩 옅어지며 의식마저 희미해졌다. 희미해지는 의식 사이로 나를 부르는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꼿꼿하게 선 채로 나에게 손짓을 했다. 나는 그들이 내미는 손을 잡기 위해 팔을 뻗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서로의 중지가 닿을 듯 말 듯 하던 그때.
“선우 씨! 이선우! 정신 좀 차려 봐… 선우 씨! 제발….”
다급히 나를 부르는 소리와 뒤이어 들리는 연서의 흐느낌. 그녀의 울음에 나는 마침내 악몽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정신이 차츰 또렷해지자 얼마 전 욕실에 바꿔 낀 LED 전등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새로 교체한 전등이 이리도 격하게 반가울 줄이야. 나는 두 눈을 천천히 껌뻑였다. 눈을 껌뻑일 때마다 LED 특유의 빛 잔상이 눈꺼풀 안쪽에 맺혔다. 마치 지워 내기 위해 발버둥 쳤던 아니 애써야만 했던 지난날들처럼. 일정하게 내쉬는 편안한 숨소리에 나는 잠에서 깼다. 연서의 품이었다. 그녀의 고른 숨소리에 맞춰 내 숨도 조금씩 편안해졌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연서의 품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그녀는 잠결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힘주어 껴안았다. 마냥 따뜻하고 포근했다. 연서의 젖가슴에서 흙냄새가 났다. 비 내리기 전, 쌉쌀한 단내가 풍기는 흙냄새. 그 냄새를 놓칠세라 숨을 크게 들이키자 나는 어느새 이슬이 촉촉하게 내린 숲속 한가운데 서 있었다. 때마침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이 커튼 줄을 톡톡쳤다.
“컨디션은 좀 어때? 괜찮아?”
반쯤 일어나 기대앉은 내게 연서는 물잔을 건넸다. 나는 건네받은 물을 한 번에 쭉 들이켰다. 갈증이 가시자 정신이 더욱 또렷해졌다. 그 사이 연서는 침대에 걸터앉아 걱정스레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를 만나고부터 공황장애가 조금씩 나아지긴 했으나, 불안에 의한 불면증과 환시 그리고 환각은 여전했다. 하여 약을 좀 바꿔봄이 어떻냐는 연서의 제안에 전날 약을 바꾼 것이 이런 사달을 낸 모양이었다. 분명 침대에서 잠든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무슨 정신으로 물이 가득한 욕조에 머리를 박고 있었던 건지. 생각이 이쯤에 이르자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그녀는 힘들어하는 나의 어깨를 찬찬히 쓸어내렸다.
나는 병원을 가기 위해 나서긴 했으나, 지하철이 아닌 교통수단 특히 자가용 종류는 타지 못한다. 고로 택시도 못 탄다. 더러 어떤 이들은 이런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하긴 나도 이런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데, 다른 이에게 이해를 바란다는 것은 그야말로 억지스러움이다. 내게 있어 차를 타고 바다로 간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하는 것과도 같다. 숱한 계절이 바뀌고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스쳐 지났건만, 일곱 살에 마주했던 죽음의 공포는 시도 때도 없이 내 영혼을 갉아먹었다. 죽을 만큼 두려웠던 그해 여름날은 애써 더듬어 보지 않아도 작은 것 하나까지도 생생했다. 심지어 그날 어디론가 내달리던 차 안에서 맡았던 싸구려 방향제와 곰팡내의 쾨쾨함은 아직도 내 코끝을 맴돈다. 초점 없던 부모님의 눈동자 그리고 깊은 잠에 빠져든 두 살 아래인 남동생 얼굴까지도. 애쓰면 애쓸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기억에 심장이 다시 옥죄여왔다. 나는 주먹으로 가슴을 내리치며 숨을 내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여태껏 들이마신 숨은 밖으로 터져 나가지 않았다. 점점 앞이 깜깜해질 무렵, 누군가가 내 어깨를 흔들었다. 나는 비로소 들이마신 숨을 한꺼번에 내뱉었다.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는 내 모습에 간호사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환자분! 어디 불편하세요?”
간호사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일어서 나는 부축해 진료실 문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진료실 안으로 들어서자 주치의인 닥터 윤과 눈이 마주쳤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는 노신사 특유의 은은한 미소와 함께 가볍게 눈인사를 건넸다. 인사를 나눈 닥터 윤은 나를 향했던 눈길을 거두어 다시 컴퓨터 모니터에 두었다. 내가 진료 의자에 앉자 그는 마침내 모니터에서 눈을 뗐다.
“선우 씨! 우리 며칠 전에 봤잖아! 그죠? 그나저나 오늘은 연서 씨 없이 혼자 오셨네? 왜? 새로 처방받은 약이 어째 안 맞던가요?”
닥터 윤이 물었다. 그는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분홍빛 나비넥타이를 만지작댔다. 나는 아무래도 바꾼 약이 문제인 것 같다고 그에게 말했다. 내 대답에 닥터 윤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바꾼 약으로 인한 증상은 아니라고 했다. 현재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증상은 약으로 인한 일반적 부작용이 아닌 심리적인 문제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니 일단 바꾼 약을 좀 더 복용해보자는 것이 닥터 윤의 소견이었다. 대개 정신의학과 약은 단기가 아닌 장기적으로 봐야 하기에 한 번 바꾼 약은 쉽게 바꿔주지 않는다. 무엇보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지금, 입원했을 당시 복용했던 독한 약을 다시 먹게 되면,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역효과가 더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리고 선우 씨! 지금부터 선우 씨가 해야 할 일은… 떠올리기 힘드시겠지만, 기억 속 그날 공포에 떨고 있는 일곱 살 선우를 구해 이곳으로 데려와야 해요. 그동안 피하려고만 했던 일을 더는 피하지 말고 맞닥뜨린다면 분명 지금보다 좋아질 겁니다. 그래요, 이 모든 과정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꼭 해내셔야 해요. 그래야 앞으로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나를 빤히 지켜보던 닥터 윤은 최대한 부드럽게 말끝을 올렸다. 그제야 나는 상담 내내 손톱을 잘근잘근 씹어 먹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 습관은 심적 불안감과 극도의 스트레스를 느낄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나는 서둘러 두 손을 무릎 위로 내려 포갰다. 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코끝에 걸려 있던 안경을 다시 올리고는 부지런히 자판을 두드렸다. 대신 수면제는 지난번 약으로 다시 바꿔주는 것을 끝으로 닥터 윤의 진료는 마무리되었다.
병원에서 나온 나는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더는 피하지 말고 맞닥뜨려야 한다는 닥터 윤의 말이 쉽게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과거로부터 도망칠 방법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그날의 기억을 모조리 지울 수만 있다면 이깟 영혼쯤이야. 괜찮지 않으면서 괜찮은 것처럼 지내면 조금은 괜찮아질 것이라 여겼다. 힘들었던 기억과 슬프고 아픈 기억이 한꺼번에 몰려오자 머리가 아팠다. 몸이 휘청이자 나는 손을 뻗어 난간을 잡았다. 다리 난간은 한낮의 여름 볕을 온전히 품은 탓에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음에도 여전히 뜨거웠다. 때마침 다리 아래쪽에서 끈끈한 더운 바람이 휘몰아쳐 올라 내 머릿결을 스쳤다. 그제야 나는 비로소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게 되었다.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 슬쩍 손만 올려놓았던 난간을 나는 힘주어 움켜쥐었다. 움켜쥔 손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부들부들 떨렸다. 귀신에 홀린 것처럼 나는 어느새 왼쪽 다리를 자연스럽게 난간 위에 얹었다. 그때였다. 다리 위 가로등에 순서대로 불이 들어왔다. 곧 난간에 설치된 플라스틱 전광판에도 하나둘 노란 불이 켜졌다. 켜진 전광판에는 누군가에게 건네는 위로의 문구가 반짝였다. 나는 내 앞에 적혀있는 글귀에 그만 주저앉았다. <괜찮아? 정말 괜찮은 거지?>라고 연서가 묻는 것만 같았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한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난간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열아홉의 김선우, 바로 나! 자신이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린 텅 빈 눈동자에는 죽음의 공포마저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공허함뿐.
보육원에서 자란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보호 종료’의 이유로 원을 떠나야만 했다. 그 어떠한 마련도 준비도 전혀 없는 상태에서 거리로 내몰렸다. 물론 지자체에서 몇 가지 지원 등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혜택을 받는 아이들은 손에 꼽힐 만큼 드물었다. 어쩌다 운이 좋아 지자체에서 지원을 받았다 손 쳐도, 그것을 믿고 맡길 어른이 없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지원금을 노리는 이들에게 쉽게 표적이 되어 사기를 당하는 것도 부지기수다. 그렇게 표적이 된 아이들은 결국 노숙을 하거나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나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퇴소’라는 두 글자에 쫓겨 거리로 내던져졌을 때, 처음 맞닥뜨려야 했던 현실은 믿었던 사람에게 지원금을 모두 빼앗겼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되었는데. 가장 믿었던 이들로부터 겨우 살아남았음에도 또 사람을 믿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더 괴롭게 하였다.
만약 일곱 살의 내가 끔찍한 살해현장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가 아니었더라면.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살지 않았더라면. 나를 살해하려는 이들이 내가 세상에서 가장 믿고 사랑하는 부모가 아니었더라면. 정말 ‘만약’이라는 이 모든 가정이 없었더라면, 나는 매 순간 나를 스스로 해치려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가족 동반자 살 아니 가족 살해현장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였다. 혼자 남겨진 삶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수반됐다. 누군가의 한마디는 열 마디의 칼날이 되어 돌아왔다. 그들의 따뜻한 위로가 되레 따가운 시선으로 나에게 더 큰 상흔으로 남았다. 전염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마치 몹쓸 병에 전염이라도 되는 것처럼, 피하기 일쑤였다. 단지 가족 살해현장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라는 이유로 말이다.
증권사에서 팀장으로 근무했던 아버지는 부러울 것이 없었던 사람이었다. 서른 초반의 나이에 팀장으로 승진할 만큼 능력이 뛰어났다. 손 대는 종목마다 상한가의 최고치를 찍으니, 당연히 믿고 거액의 돈을 투자하는 고객들이 많았다. 하지만 운이라는 것이 마냥 좋을 리는 없다. 달이 차면 기운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만큼 시시각각 빠르게 바뀌는 자본 시장의 생리 또한 예측할 수 없다. 아무리 직관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최고가를 치고 올라가던 주가는 정점에 이르자 빠르게 폭락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만기 옵션 증권이 하루를 남겨 놓고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로 인해 투자자들의 항의와 욕설이 빗발쳤다. 자신을 믿고 맡긴 몇십억이라는 고객들의 돈이 눈앞에서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여기에다 자신 역시도 살고 있던 아파트와 있는 돈 없는 돈까지 끌어모아 투자를 했던 터라, 그 충격은 이로 말할 수가 없었다.
나름 책임을 다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아버지는 어느 날부터 모두 놓아버린 사람처럼 술에만 의지했다. 깊은 한숨과 눈물, 그리고 쌓여만 가는 독촉 고지서들. 이 모든 것들이 결국은 부부 싸움으로 이어졌다. 나는 그럴 때마다 두 살 아래인 남동생을 데리고 놀이터로 갔다. 그렇게 늦은 밤까지 놀이터를 배회하다 춥고 배가 고파서야 비로소 동생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저녁은 여느 날과는 뭔가 달랐다. 씻지도 않고 술에만 절여 있던 아버지가 깔끔하게 면도도 하고 회사에 다닐 때처럼 양복을 입고 있었다. 엄마 역시도 옅은 핑크빛이 도는 고급 블라우스에 화사하게 화장까지 한 얼굴이었다. 비록 두 사람 모두 표정은 어두웠으나 나와 동생을 향해 환하게 웃어주었다. 퉁퉁 불은 컵라면과 김치만 덩그러니 있던 식탁에도 오랜만에 불고기와 잡채, 그리고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그렇다, 여느 날과 다른 날은 바로 나의 일곱 번째 생일이었다. 현관에 막 들어서는 나와 동생을 향해 엄마는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우리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꿈을 꾸는 것처럼 행복했다.
아버지는 밥을 먹기 전에 손부터 씻으라며 나와 동생을 욕실로 밀어 넣었다. 막 욕실로 들어간 동생이 변기 뚜껑을 열기도 전에 바지에 오줌을 지렸다. 나는 이런 사실을 엄마에게 이르기 위해 욕실에서 나와 곧장 주방으로 갔다. 하지만 나는 엄마를 차마 부를 수가 없었다. 방금까지 환하게 웃고 있던 그녀의 등이 울음으로 들썩였기에. 눈물을 훔치던 엄마는 뭔가를 도마에 올려놓고 부지런히 빻았다. 그것이 하얀 가루가 되자 국자에 모두 쓸어 넣었다. 그렇게 그녀는 하얀 가루가 든 국자를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엄마는 하얀 가루가 든 국자를 끓고 있던 미역국 속에 푹 담갔다. 그 순간, 욕실에 있던 동생이 큰 소리로 나를 부르며 밖으로 뛰쳐나왔다. 동생의 목소리에 안방에 있던 아버지와 주방에 있던 엄마가 욕실로 달려왔다. 눈언저리가 벌겋게 변해버린 그녀는 애써 미소 지으며 우리를 다시 욕실로 데려가 깨끗이 씻겼다. 엄마는 미리 준비해둔 새 옷을 나와 동생에게 입혔다. 평소 입고 싶어 사달라고 조르던 캐릭터 옷이었다. 새 옷을 입은 동생은 마냥 해맑게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아니, 꼭 웃어야만 할 것 같았다.
케이크에 꽂힌 일곱 개의 초에 불을 붙이고 박자에 맞춰 생일 노래도 불렀다. 나는 두 볼을 빵빵하게 부풀려 있는 힘껏 촛불을 껐다. 요란스러운 박수 소리가 멈추고 아주 잠깐이었지만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그때까지도 식탁 아래를 내려다보던 아버지가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 있던 엄마를 바라보았다. 마주친 두 사람의 눈동자에 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뒤엉켜 차고 넘쳐 보였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아버지와 천천히 일어나 가스레인지 앞으로 다가서는 엄마. 여느 평범한 가정집 저녁 밥상 풍경임에도 어린 나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뒤이어 나와 동생 앞에 놓인 미역국. 엄마는 늘 그리 해왔던 것처럼 밥 한 숟가락을 떠서 미역국에 꾹꾹 말았다. 동생은 미역국이 적당히 잘 버무려진 밥을 한 숟갈 퍼서 입에 냉큼 넣었다. 나는 동생에게 먹지 말라고 먹으면 안 된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뿐이었다. 음식 앞에서 주저하는 나에게 엄마는 미역국에 말아서 얼른 밥을 먹으라고 재촉했다.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나는 되도록 천천히 밥을 한 숟가락 떠서 미역국에 꾹꾹 눌러 입속으로 쑤셔 넣었다. 그런 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엄마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러자 놀란 아버지가 엄마의 팔목을 낚아채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 문이 닫히고 나는 미역국에 담겨 있던 숟가락을 꺼내 옆에 있던 어항에 집어넣었다. 숟가락에 묻어있던 자투리 미역이 기름과 섞여 긴 띠를 이뤄 동동 떠다녔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어항 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던 주홍빛의 금붕어 한 마리가 허연 배를 까집은 채, 물 위로 동동 떠올랐다. 떠오른 허연 뱃가죽이 터질 듯이 점점 부풀어 오르더니 아가미에서 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흘러나온 금붕어의 피는 다시 기름띠에 녹아들었다.
놀란 나는 서둘러 입 속에 있던 밥을 도로 뱉었다. 그리고는 싱크대로 달려가 입을 정신없이 씻어냈다. 그때였다. 쿵 소리와 함께 동생이 식탁 위로 고꾸라졌다. 나는 쓰러진 동생의 입을 벌려 손가락 넣어 씹다 만 밥을 긁어냈다. 그래도 동생이 일어나지 않자 얼굴을 세게 때렸다. 그렇게 별의별 방법을 다 써봤지만, 동생은 약간의 움직임조차도 없었다. 나는 안방의 동태를 살피며 손가락을 최대한 목구멍 안쪽으로 집어넣어 게워내었다. 이 모든 행동은 재빠르게 이루어졌다. 안방에서는 고성과 울음이 몇 차례 오고 가더니 거칠게 방문이 열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미역국이 든 그릇을 식탁 아래로 떨어뜨리고는 동생처럼 엎드려 있었다. 그 사이 주방으로 다시 나온 엄마는 대성통곡을 하며 쓰러진 동생과 나의 얼굴을 번갈아 쓸어내었다. 그때까지도 난 두 눈 꼭 감고 숨죽여 있었다. 비록 일곱 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왠지 그래야만 이 무서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고 진짜 잠이 들었다.
깨어나 보니, 물 속으로 점점 가라앉고 있는 차 안이었다. 마치 대형 소금 포대를 입속에 모두 쏟아부은 듯한 짠맛과 곧 얼어붙어 버릴 것만 같은 차가움이 극한의 공포로 밀려왔다. 놀란 나는 앞을 바라보았다. 지난해 제주도에서 잠수함을 탔을 때 보았던 파도가 앞유리창에 넘실대고 있었다. 나는 운전자석에 있던 아버지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러자 아버지의 팔이 툭 하고 아래로 떨어졌다. 옆자리에 있던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급한 대로 동생의 볼을 꼬집어 보았지만, 그 역시도 소용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는 온 힘을 다해 울부짖으며 엄마 아빠를 불렀다. 그제야 비로소 목구멍에서 내내 맴돌던 말을 힘주어 소리칠 수 있었다. 죽고 싶지 않다고, 살고 싶다고, 정말 살고 싶다고…. 그렇게 정수리까지 차오르는 바닷물을 끝으로 나는 정신을 잃었다.
누군가에 의해 구조되어 차량 밖으로 나올 때까지 동생의 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깨어나 보니 병원이었다. 한동안 뉴스에서는 온통 살아남은 나의 이야기와 동반자살이냐 살인이냐를 두고 열띤 논쟁이 오고 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에 난 상처는 나아갔지만, 마음에 남은 상흔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일가친척이라고는 십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연락을 끊고 지내던 외삼촌 하나가 전부였다. 나는 그의 손에 이끌려 전혀 낯선 곳으로 갔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못 가 다시 외삼촌의 손에 끌려 보육원에 입소하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소문을 듣고 온 빚쟁이들이 허구한 날 찾아오니, 그로서도 나를 버리는 편이 더 나았을 터. 그렇게 모진 세월이 지남에 따라 나는 덩치만 커졌지, 여전히 일곱 살 겨울인 나의 생일에 머물러 있었다.
이른 나이에 죽음을 경험한 나는 같은 또래의 아이들과 친구가 될 수 없었다. 그들이 그 나이에만 할 수 있는 고민은 내게 있어 사치였다. 상실감에 허덕이는 날들이 많아지자 눈만 감으면 악몽을 꿨다.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물 속에서 마지막으로 맞닿았던 동생의 손끝이 심장을 아프게 짓눌렀다. 보육원에서는 이런 나를 위해 심리 상담소를 데려갔지만,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청소년기에 접어들자 잦은 발작과 자해로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약으로 인해 괜찮아졌다 싶으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살을 떠올렸다. 생존자가 된 그 순간부터 나는 생과 사의 경계 위에 곡예하듯 위태롭게 서 있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날 그곳에서 연서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
보육원 퇴소가 결정되고 믿었던 이에게 지원금 모두를 사기당했던 날, 나는 마포대교 난간 위에 서 있었다. 그간 물이 너무 무서워 바다뿐만 아니라 강 근처도 가지 않았다.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혀 죽을 것 같은 공포 때문에. 하지만 열아홉 그때의 나는 모든 것을 놓아 버렸던 것 같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까마득한 물 속 어딘가에 내 가족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두려움의 대상이기만 했던 물이 더는 무섭지 않았다. 부모를 향한 원망과 미움이 큰 만큼, 그 이상으로 그리움도 컸다. 나 하나 지금 없어진다고 해도 누구 하나 슬퍼할 사람이 없는 이곳이 이제 정말 싫어졌다.
고요함이 가득한 새벽. 난간을 치고 올라오는 서늘한 바람 한 줄기가 심장으로 찬찬히 스며들었다. 요란하게 뛰던 심장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자, 나는 눈을 감고 두 팔을 벌려 강으로 뛰어내렸다. 마치 큰 블랙홀에 빨려드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착각인지 환청인지는 알 수 없으나, 검은 강물이 울었다. 다리 아래로 떨어진 내 몸뚱이는 수면에 작은 파동을 일으키고 천천히 아래로 가라앉았다.
가빴던 들숨과 날숨이 옅어지고 의식이 희미해지자 평생을 그리워했던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어서 오라며 나에게 손짓을 보냈다. 한시라도 빨리 그들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떨어질 때 들렸던 강물의 울음소리가 이상하리만큼 크게 들렸다. 나는 천천히 두 눈을 떴다. 강물의 울음이라 여겼던 소리는 다름 아닌 산소마스크를 통해 나오는 내 거친 숨소리였다.
살아있다는 벅참보다 죽는 것 하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이 더욱 비참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기자마자, 나는 갖은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했다. 담당 주치의는 이런 나를 정신병동에 재입원 시켰다. 하지만 정신병동에서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렇게 미쳐 날뛰는 날이 많아지자 건장한 남자 보호사들이 달려들어 나의 두 손과 발을 침대 기둥에 묶었다.
그렇지만 이것도 임시방편일 뿐. 상태가 더 나빠지자 한 대였던 주사는 두 대로 늘어났다. 주사약이 점점 늘어나자 나는 무기력 속으로 빠져들었다. 풀어놓으면 정신없이 흐른 것이 시간이라 했던가. 나에게 있어 시간은 그리 크게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내 시간은 흐르지 않기에. 병동에서의 하루하루는 똑같았다. 주치의인 닥터 윤의 처방을 따라 밥을 먹고 끼니때마다 나오는 약을 먹었다.
독한 약으로 인해 나의 영혼은 점점 텅 비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여자 하나가 휴게실 통유리를 사이에 두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호기심 어린 그녀의 눈빛이 부담스러워 나는 자리를 옮겼다.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 이상하리만큼 눈길이 돌아갔다. 나와 다시 시선이 마주친 그녀는 옅은 미소를 띠며 나를 향해 무슨 말을 건넸다.
휴게실을 가득 채운 잡음으로 그녀의 말소리는 들리지 않고 그저 벙긋대는 입 모양만 보였다. 나는 한 글자라도 알아듣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녀가 띄엄띄엄 내뱉는 입술을 따라 나도 목소리를 내어보았다. “너! 살, 살아…있…네…?”
내가 천천히 입 모양을 따라 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활짝 웃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알았지만, 그녀가 바로 난간에서 뛰어내린 나를 구해준 연서였다. 연서로 인해 나는 또다시 자살 생존자가 된 셈이었다. 처음에는 나를 살린 그녀에게 화가 났지만, 시간이 갈수록 고마웠다.
그 후로도 연서는 진료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나를 보러 왔다. 나는 어느새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원히 멈춰있을 것이라 여겼던 내 시계가 연서와 함께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초점을 잃었던 내 눈동자에 또렷한 빛이 찾아들자 무기력했던 삶에 생기가 돌았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녀와 함께 있으면 내 마음은 한없이 평온했다. 굳이 다음에 이어질 말을 생각하지 않아도 될 만큼. 그녀의 지극한 보살핌으로 복용하던 약의 가짓수가 차츰 줄어들게 되었고, 얼마 있지 않아 나는 퇴원을 했다. 나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사회복지사 덕분에 서울 외곽에 있는 비닐 제조공장에 취직할 수 있었다.
일은 힘들었다. 하지만 몸이 고달픈 만큼 잡생각이 나질 않아 오히려 좋았다. 여전히 수면제에 의존하고 있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악몽을 꾸는 횟수가 적어졌다. 적당히 무리에 섞이는 법도 연서에게서 배웠다. 그녀는 하나에서 열까지 알뜰하게 나를 챙겨주었다. 연서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살고 싶은 욕구도 강해졌다.
그러던 중, 연서는 독립하여 작은 원룸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를 끝낸 그녀가 나에게 먼저 함께 지내면 어떻겠냐는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연서와 함께 있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나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혹여 나의 불행이 그녀에게 옮겨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망설임이 길어지자 연서는 말없이 나를 껴안고 토닥였다. 우리가 하나 되던 그 날 밤, 그녀는 내게 속삭이듯 말했다.
“나… 나 말이야. 그날 죽으려고 다리에 갔었어. 엄마 기일에 맞춰서 죽으려고. 거기, 그 난간이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엄마가 나 데리고 뛰어내리려 했던 곳이야. 결국은 엄마 혼자만 뛰어내렸지만….”
담담한 연서의 목소리에 내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 연서, 너도 나처럼 가족 동반자살 아니 가족 동반 살해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였구나. 나와 같은 상처를 앓았을 그녀의 고백에 제대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내가 연서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녀를 꼭 껴안아 주는 것뿐이었다. 연서는 나의 품에 파고들며 잠시 끊겼던 말을 다시금 이어갔다.
“…엄마가 내 손을 잡고 뛰어내리려 할 때, 죽을 힘을 다해 말했어. 살고 싶다고. 죽고 싶지 않다고 그러니 죽고 싶으면 엄마 혼자 죽어 버리라고! 그리고 죽기 살기로 달렸어. 넘어지고 또 넘어져서 무릎이 까이고 발가락에 피가 터져도 달리고 또 달렸어. 그러다 이만큼 달렸으면 되었다 싶어 멈춰 서서 뒤돌아봤는데 엄마가, 엄마가….”
지금껏 내내 담담했던 연서의 목소리가 옅은 물기와 함께 떨렸다. 그녀는 결국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연서를 더욱 꽉 껴안았다. 그간 그녀가 견디고 버티었을 무게가 내 심장 끝에 아프게 닿았다.
“살아 있어 줘서, 이렇게 살아남아 줘서 고마워! 연서야.”
나는 연서의 등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지금껏 나 자신에게 가장 해주고 싶었던 말을 건넸다. 그녀의 뜨거운 눈물이 나의 가슴에 찬찬히 스며들었다. 나는 그런 연서에게 연민보다 존경심이 앞섰다. 내 생일이었던 그날, 그녀처럼 용기를 내어 살고 싶다고 죽고 싶지 않다고 소리쳤더라면 동생은 살 수 있었을까? 살아가는 내내 수백 번, 수천 번을 더 나에게 묻고 또 물었던 질문이었다.
그 사이 울음이 잦아든 그녀는 차분하게 이야기를 마저 꺼냈다. 매번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죽은 엄마의 환영에 미쳐, 죽고 싶었다고. 그래서 엄마 기일에 맞춰 자살하려고 다리를 찾았는데, 난간 위에 서 있던 나를 보았다고 했다. 연서는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와 눈동자도 마주쳤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를 본 기억이 없지만.
“그때, 아주 잠깐이었지만 선우 씨 눈동자에 울고 있는 꼬맹이가 보였어. 저 사람 나보다 더 힘들었겠구나…. 그래서 살리고 싶었어. 아니, 꼭 살게 하고 싶었어.”
“이제야 알겠어. 그날 내가 들었던 강물의 울음이… 연서, 너였어!”
떨리는 내 목소리에 연서는 나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겨주었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그렇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생존자가 되었다.
가족 동반자살은 ‘자살’이 아니라 명백한 ‘살해’다. 혼자 남을 어린 자식들이 걱정되어 함께 간다는 말은 살인자의 비겁한 변명이며 자기 합리화일 뿐.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설사 어리고 약하다 하여도 그들에게는 그들이 살아가야 할 앞으로의 귀중한 삶이 있다. 무슨 권리로 그들의 소중한 삶을 빼앗는단 말인가. 죽은 자에게도, 또 살아남은 자에게도 비극인 가족 동반 살인 사건의 생존자가 더는 나오지 않기를.
아련하게 들리던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지자, 나는 비로소 먼 과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순찰차에서 내린 경찰이 나를 보고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너무 오래 이곳에 있지 말라는 말을 끝으로 순찰차는 다시 사이렌을 울리며 멀어져갔다. 조금 전 끈끈했던 더운 바람은 어느새 시원하게 바뀌어 내 머릿결을 스쳤다. 나는 난간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연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전화를 안 받았냐는 그녀의 걱정스러움과 함께 <괜찮냐?>는 물음에 나는 괜스레 코끝이 매워졌다.
“내일 하루 쉴 수 있지? 우리 차 타고 바다에 가자! 바다가 갑자기 보고 싶어졌어. 나… 이제 정말 살고 싶어! 아니, 살아내고 싶어!”
나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한껏 들떠 있었다. 그렇게 연서와 몇 마디 더 주고받은 후에야 통화는 끝이 났다. 통화를 마친 나는 무심결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아직도 한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난간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열아홉의 김선우가 있었다. 나와 두 눈동자가 마주친 열아홉 김선우의 눈동자에 밝은 빛이 찾아들자, 그가 천천히 난간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고는 난간 아래에서 울고 있던 일곱 살 꼬마인 김선우를 꽉 껴안았다.
그 모습에 나는 그들이 있는 곳으로 내달렸다. 그리곤 그들을 있는 힘껏 껴안았다. 아주 오랫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