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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사년 겨울호 2024년 12월 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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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가쓰라 조는 오랜만에 길에서 기무라 박을 만났다. 할 일 없이 집 안에서 빈둥거리는 게 지겨워 시장 쪽으로 가던 차에 마침 기무라를 만난 것이었다.

“어이, 기무라! 오랜만이네. 요즘 뭐 하고 지내나?”

사뭇 반가운 듯 상기된 목소리였다. 가쓰라 조나 기무라 박은 해방된 지가 삼 년이나 지났건만, 아직도 창씨개명했던 그대로 일본 이름을 쓰고 있었다. 하긴 그들이 일제 침략으로 없어졌다가 되찾은 조국이 무정부의 분단 한국이라는 걸 애써 기억하려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저 바람 부는 대로, 세상이 일본 세상이면 일본에 맞춰 살면 되는 것이고, 중국 세상이면 중국에 맞춰 살고, 로스께 세상이면 로스께에 맞춰 살면 되는 자들이었다.

“뭐 하긴, 지난번 조사받느라 죽다가 살아난 거 알면서도 그렇게 물어? 자네, 나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정말 너무한 거 아냐, 응?”

기무라가 가쓰라에게 악의 넘치는 분노를 퍼붓는 이유는 지난달 노름방에서 ‘섯다’ 칠 때 일어났던 일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도박 신고를 받은 형사들이 행당동 노름방에 출동했을 때, 같은 일당인 다나까가 깔아놓았던 판돈을 모조리 싹 쓸어가지고 달아났기 때문이었다.

상황도 모르고 노름방에 무심히 남아 있던 기무라는 나중에 혼자서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 사건은 기무라가 잠시 변소간에 다녀온 순간에 벌어졌다. 마침 통금 시간이었는데, 도박 신고를 받은 형사들이 노름방에 들이닥치기 바로 직전, 다나까는 어찌 알았는지 순식간에 누적된 판돈을 싸그리 쓸어 가지고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어디로 피했는지, 함께 짜고 치던 기무라도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함께 치던 노름꾼들도 혼비백산하여 이리저리 튀어 달아났다. 사실 다나까가 어디로 튀었는지를 아무도 모르니, 그 자리에 남아 있던 기무라가 같은 일당이라는 이유로 지서까지 붙들려 가 혼쭐이 난 것이었다.

형사들은 노름할 때 거기 깔려 있었던 판돈을 모두 다 내놓으라고 그에게 엄포를 놓고 다그쳤다. 그러나 이미 다나까가 모든 걸 가지고 달아난 걸 어떻게 내놓느냐며 기무라도 막무가내로 난리를 치며 항변했다. 그러자 형사들은 다나까가 있는 곳을 대라고 심하게 압박을 가하다가, 아무래도 기무라가 모르는 것 같으니 다나까가 잡혀 올 때까지 기무라를 인질로 삼아 근 한 달이나 유치장에 가둬 놓았다.

하지만 시간이 자꾸 가는데도 다나까를 붙잡지 못해 도박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니 잠정 미결로 결정하고, 엊그제야 기무라를 풀어주었던 것이었다. 그러니 기무라는 같은 패거리들이 다 도망치고 자기 혼자만 붙들려가 곤욕을 치른 게 너무 화가 나서, 이유야 어떻든 한 패거리인 가쓰라의 멱살을 잡으려 달려드는 것이었다.

사실 취조를 받다가 기무라가 자칫 매를 맞았을지 몰라 가쓰라는 기무라의 억울해하는 심정을 대충 짐작은 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아예 모르는 척되묻는다.

“으음, 대체 뭐 말인가?”
“정말 몰라? 왜, 시치미를 떼고 그래, 앙?”

기무라는 가쓰라가 자신의 사정을 모르는 척되묻는 게 더 열통이 터졌다.

“그래, 그래! 나 유치장에 갇혀 있을 때 코빼기라도 한번 내밀어 봤냐? 너하고 다나까가 둘이서 짜고 일부러 나 물 먹인 거지? 앙?”

기무라는 넘겨짚으며 악을 썼다.

“아냐, 그건 오해야. 난 그냥 소일 삼아 가끔 몇이서 화투 치고 놀았다고만 했지, 다른 얘긴 하나도 하지 않았어.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날 박가가 노름할 때 잡힌 땅문서 찾아오라고 박가 마누라가 눈이 뒤집혀 지서에 가서 거기 있던 노름꾼 모두를 고발했으니까 형사들이 출동하고, 꾼들이 다들 뿔뿔이 도망쳤지. 원래 내기 노름은 법으로 금지됐으니, 들키기만 하면 그 즉시 잡혀 가는 게 당연하잖냐? 마침 나는 그날 그 자리에 없었잖아? 그렇지만 나중에 나도 조사는 받았어. 야! 정말이야. 파출소 형사들이 저희들 실적 올리려 그랬는지, 관계되는 노름쟁이들 다 잡아가려고 집까지 찾아와 취조를 벌인 거라구. 조사는 받았지만, 내가 그날 거기 안 간 게 확실하니 그냥 돌려보내 주더라구. 그게 다야, 임마!”

사실 행당동 노름방 터줏대감인 가쓰라가 그날 요행히도 그 자리에 없었던 이유는, 해방이 되자마자 로스께(소련) 치하의 만주 봉천에서 몰래 삼팔선을 넘어 서울로 내려온 사촌형네 가족에게 집을 구해주려고 이 동네 저 동네 알아보러 다니느라 노름방에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쓰라의 말을 듣고 기무라도 한풀 어조가 누그러지며 말했다.

“참, 재수가 없으려니…. 글쎄, 얼마 전 내가 이사한 거 가지고도 누구한테 사기 쳐서 집 샀느냐고 넘겨짚고 말야. 내가 집 산 거 자금 출처 대라며 고문까지 했잖아. 개새끼들! 사실 노름으로 먹은 것도 없는데 말야!”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기무라는 노름꾼을 험하게 다루던 형사들에게 욕을 퍼붓는다.

“안 그래?”

가쓰라에게 자기 말에 동의를 바라듯 묻는다.

“그래, 그래. 맞아. 그런데 다나까한테 나중에 정말 아무것도 못 받는 거야?”

가쓰라의 말을 듣고 기무라가 흠칫 고개를 돌리더니, 잠시 뒤 한숨을 내쉬며 말이 없다. 그러다가 잠시 후 말을 잇는다.

“사실 그날 내가 아까운 삼팔 광짜리를 둘 다 다나까한테 내주긴 했지. 몇 번 돌린 참이라 판돈도 꽤 쌓였잖아? 근데 어찌 알았는지 갑자기 다나까가 ‘서!’ 하더니 또 ‘피해!’라고 소리쳤어. 그러더니 형사들 뜨기 전에 잽싸게 뛰어나가 도망쳤잖아? 금방 다시 나타날 줄 알았지. 근데 한 달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오리무중이야. 아예 평양으로 갔나? 만주로 갔나? 아무튼 그 와중에 깔린 판돈을 어떻게 다 쓸어 갔는지도 모르겠어. 그 새끼 재주도 좋아.”

“어이, 그래도 오랜만인데, 지나간 건 어쩔 수 없으니 다 잊고 우리 오늘 막걸리나 한잔하는 게 어때? 오늘은 내가 한잔 살 테니 가자.”

가쓰라는 기무라의 기분을 달래 주려는 듯 선심을 썼다.

이렇게 해서 시장 안쪽에 있는 월성국밥집으로 들어간 가쓰라와 기무라는 김치부침개에 두부와 굴전을 곁들여 막걸리를 두어 사발씩 마시고 얼큰한 국밥으로 배를 채워 기분이 느긋해진 다음 밖으로 나왔다.
“어이, 그냥 갈 거야? 아무래도 그냥 가긴 서운한데…. 저어, 우리 한 판치는게 어때? 응? 내기 말고 재미삼아 말야.”
가쓰라가 기무라를 또다시 노름방으로 끌어들이려 수작을 건다.
“글쎄. 아니! 난 그냥 갈 테야. 이제 손 씻고 다신 화투 안 칠 거야.”
기무라가 시큰둥하게 가쓰라의 제안을 거절한다.
“흠, 단단히 혼이 났군! 그래도 뭐 재미로 치는 건데 어때? 그런데 누구 같이 칠 사람은 또 없나? 사실 돈들이 없으니 따봐야 푼돈뿐이구.”
하기야 기무라도 별로 하는 일 없는 실업자요, 건달뱅이니 말은 그리 했어도 같은 도박 중독자들이니 굳이 가쓰라의 제안을 마다할 필요도 없다.
“뭐, 재미로 한다 그 소리지, 따면 얼마나 따겠어?”
가쓰라가 제법 착한 척 기무라에게 너스레를 친다.
“하긴 뭐, 그래도 화투란 게 치면서 뭐 좀 생기는 맛이 있어야 치는 재미가 있는 게 맞지!”
기무라도 가쓰라의 말에 다시 기를 더한다. 방금 전 다시는 화투를 안 치겠다고 내뱉은 말이 헛소리가 되고 만다. 하기사 배운 도둑질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후흐으! 아무렴 이를 말인가?”
가쓰라가 기무라의 대꾸에 한층 더 거든다.
“사실이지 치는 동안 뭐 돈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게 얼마나 스릴이 있냐구? 그게 치는 맛이라 이거지. 우리 매일 치는‘섯다’ 얼마나 재밌냐? 근데 요즘 일본에선‘짓고 땡’이란 게 그렇게 인기가 있다네. 자네 할 줄 알아?”
“아니 몰라.”
“그것도 치는 방법 알아 놓으면 끝내주게 재밌다구! 내가 좀 배워 놨어. 좀 더 배워 나중에 가르쳐 줄게.”
가쓰라가 기무라에게 어깨를 한 번 들썩이며 또다시 도박의 주도권자 행세를 한다.
“그런데 기무라야, 누구 또 데려올 사람 없어? 우리 둘이서만 치는 건 별로 기분 안 날 테니 말야?”
“으음, 글쎄. 참, 지난번 박춘달이 땅문서 맡겨둔 거 찾아갔어? 춘달이 마누라가 그 땅문서 때문에 고발한 거잖어?”
“돈을 구하지 못했는지 아직 소식이 없네. 뭐야, 춘달이가 맡긴 땅문서 이젠 전당포에 맡겨야겠어. 나도 돈이 좀 급하니 별 수 없잖아? 춘달이가 돈 가져오면 전당포에 가서 돈 주고 찾아가라고 해야지.”
가쓰라가 궐련 한 개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켜며 무심한 표정으로 대꾸를 한다.
“그럼 내 몫도 줄 거지? 응?”
기무라는 가쓰라가 자기 몫을 잊지 않도록 애써 말소리를 높인다.
“그야, 전당포에서 돈 빌리면 자네 몫도 당연히 주지. 아무튼 오늘 저녁 때까지 기다렸다가 저녁 때 춘달이 돈 가져오면 그 돈 바로 나누고….”
가쓰라는 동료 기무라에게 믿음을 주려 항상 친근하게 대한다.
“그런데 이젠 끌어들일 꾼이 없어. 다들 소문이 나서 내가 부르면 대답도 하지 않고 달아난다구, 히히잇!”
기무라가 가쓰라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실없이 웃는다.
“그러니까 오늘 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치고 딴 동네로 가자.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데가 좋지 않을까?”
여태까지도 그랬지만 투전판에 사람을 끌어들이는 게 기무라의 주 업무고, 노름 방법에 속임수를 만들어 기무라와 짜고 노름 상대를 속여먹는 게 가쓰라의 본 역할이라면 역할이었다. 말하자면 가쓰라가 노름 판의 주도를 맡고 기무라가 노름꾼을 끌어오는 등 그 보조의 역할을 해서 철저히 한 팀으로 이제까지 해온 노름 사업이었다. 다나까가 이 일당에 끼어든 것은 사실 얼마 안 된 최근이었다.
“아무튼 내가 윗동네 서응삼이 보고 저녁 때 한잔 하자고 오라 했더니 오겠다고 했어. 아마 땅문서 찾으러 춘달이도 올 거고. 응삼이도 꼭 올 거야. 춘달이나 응삼이나 자전거를 타고 용산 종로 일대에서 제법 큰 음식점마다 채소나 생선을 대어주잖수? 돈벌이가 꽤 짭짤하잖아?”
“그래에?”
그들은 야릇한 미소로 흔쾌히 약속을 하고 나중에 월성국밥집 뒷방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 것이었다.

*

밤새도록 엄마와 아버지는 싸움질이었다. 단순한 말다툼으로 시작하다가 차츰차츰 소리가 격해지는 말투가 끝내는 사생결단을 낼 듯 험악해진다. 다음 날도 다음 날도 싸움은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가 장사를 하러 나가지 않은 지가 벌써 한 열흘은 되었다. 그건 엄마를 향해 툭하면 아버지가 말없이 내두르는 아버지 나름의 시위법이기도 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어야 사는 잡상인인 아버지가 열흘이나 집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 있다는 게 그게 보통 일이 아니다. 남편이 집에서 할 일 없이 누워 있는 것을 바라보는 여자는 속에서 열불이 터져 절대 참을 수가 없는 일이다. 일단 남자는 집안의 가장이니까 눈만 뜨면 나가서 달려야 하는 것이다. 나가서 잘 달려야 가족이 먹을 게 있고 살림이 유지되는 거니까.
“에이그, 밑천이 있어야 장사를 나가지. 맨손으로 무얼 어찌 하라고, 앙?”
아버지는 여전히 안방 한켠에 누워 이불을 더욱 뒤집어쓴다.
“아니, 이젠 돈 빌려 주는 데가 한 군데도 없는 거 모르우? 그동안 몇십 번이나 꾸어다 밑천 대주고 대주고 했어?”
속 터지는 엄마는 다시 아버지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그러게, 노름하지 말라고 얼마나 말렸어. 내 말 안 듣고 주머니에 몇 푼만 있으면 쪼르르 노름방으로 달려가 있는 돈 없는 돈 다 내기에 걸고… 그럼 왜 따지는 못해? 따지도 못하는 거 뻔히 알면서 왜 쫓아가 번번히 돈을 다 뺏기고 집안을 말아 먹어, 이 화상아, 앙?”
엄마는 더욱더 세게 소리소리 지른다.
“그럼, 뭐 할 수 없지. 당신이나가서 벌어와. 나도 앉아서 밥 좀 먹자.”
“흠, 앉아서 밥을 먹어? 저녁 지을 쌀거리 없는 거 몰라?”
“그야, 으흠!”
당장 저녁거리 양식이 없다는 말에 할 말이 없는 아버지는 그저 헛기침으로 애써 권위를 세우려든다.
“내가 장사하면 당신만 못할 줄 알아? 등신 머저리! 그래, 집에서 얘들 좀 봐봐. 은숙이 젖도 얻어다 멕여, 응? 진석이도 굶기지 말고 잘 데리고 놀구, 응? 해 보라구, 앙? 해 봐! 해 보라구!”
악을 쓰던 엄마는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자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배가 고파져 뭔가 먹을 게 없을까 싶어 부엌으로 내려가 이것저것 그릇들을 열어 본다. 먹을 건 아무것도 없다. 뚜껑이 반들반들한 조그만 가마솥 밥솥에 멀건 숭늉뿐 먹을 거라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자 엄마와 아버지의 싸움은 가라앉았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

오정 때가 되어도 아버진 여전히 윗목에 목침을 베고 누워서 눈만 껌벅거렸다.
엄마는 곱게 누빈 자주빛 명주 처네로 은숙이를 둘러 업고 처네끈을 바짝 졸라맨다.
이 처네는 얼마 전 엄마가 큰맘 먹고 산 자주빛 꽃분홍의 명주로 만든 처네였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고급 명주로 된 포대기라서 은숙이를 업을 때마다 엄마에게 행복을 주는 처네였다.
엄마는 양철 다라에 이것저것 빨랫감을 찾아 담고 비누와 방망이를 얹어 머리에 이고 밖으로 나갔다.
한 손으론 머리에 인 다라이를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 뒤를 눌러서 등 뒤에 업힌 은숙이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연신 손을 바꿔대며 우물 쪽으로 다가갔다. 은숙은 엄마 등에 기대어 옹알거리다가 잠을 자는 듯 조용했다.
숙자네 집 담벽에 바짝 인접해 있는 우물은 언제나 물이 많고 깊다. 온 동네 사람들이 이 우물물로 식수를 하고 온갖 잡일을 해결한다. 이 우물은 이 인근에 마을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던 우물로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쓰는 우물이지만 숙자네 담벽에 바짝 붙어 있어 마치 숙자네 개인 우물 같이 생각되기도 했다. 우물 가장자리에는 물을 퍼올릴 때마다 뻐그덕거리는 양철 삼각 두레박이 긴 밧줄을 드리고 언제나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 우물에서 다시 숙자네 담을 끼고 돌아나가면 고샅마을 뒷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시냇물이 차츰 개울로 이어진다.
은숙이를 업은 엄마가 우물로 다가갔을 때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물을 길러 나오지 않았다. 엄마는 우물가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다시 빨래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빨래터 양쪽으로 버드나무가 늘어서 있고 두툼하고도 넙적넙적한 바윗돌이 물가에 나란히 놓여져 있어 여기서 아낙네들이 빨래하기가 너무 좋다.
햇살이 곧게 쏟아져 남실거리는 냇물에 물결이 반짝거린다. 맑은 냇물은 고기 비늘 같은 물결을 흐늘흐늘 흘려보낸다. 맞은편에선 벌써 아줌마들이 물에 흔들어 낸 빨래를 빨랫돌에 얹어 놓고 척척 방망이질을 한다.
아낙들의 힘찬 방망이질에서 나는 소리는 절묘한 합성(合聲)으로 배타적이면서도 묘하게 끌리는 데가 있다. 그 두드리는 타격의 소리가 물과 나무, 돌, 그리고 빨랫감 속으로 흡수되면서 빨래가 맞는 순간의 둔중한 아픔이 사뭇 부드러워지는 느낌마저 든다. 그래서 방망이질을 하면 마치 그 척! 척! 소리와 함께 마음속에 응어리진 여인들의 깊은 고충과 시름들이 흐르는 물에 시원하게 씻겨 나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느지막이 냇가로 나온 엄마는 양철 다라이를 내리고 자주색 누비 처네 끈을 풀고 등에 업힌 아이를 앞가슴 쪽으로 끌어 당겨 잠시 젖을 물린다. 아이는 어느새 눈을 뜨고 오물오물 젖을 빨아댄다.
한낮의 햇살이 눈부시다. 삼순은 처네 포대기를 풀섶에 펴서 깔고 아이를 눕힌다.
“진석아, 여기서 애기 잘 봐. 딴 데 가면 안 돼. 알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가 시키는 대로 처네 포대기 옆에 앉는다. 엄마의 검정 몸빼바지 위로 하얀 모시 적삼이 땀에 젖어 후질하다. 언제부터인지 엄마는 자신의 외모나 차림새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한다. 전혀 쓸 형편이 못 된다. 나는 엄마가 다른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늘 검정 몸뻬바지에 윗저고리와 하얀 고무신이 엄마의 고정된 차림이었다.
“어우 진석엄마, 애기 데리고 나왔어? 아유, 애 아버지한테 애 좀 보라고 맡기고 나오지. 쯧쯧쯧!”
춘식이네 아줌마는 갓난애를 업고 손윗아이까지 아이 둘이나 데리고 빨래를 하러 나온 엄마가 안쓰러운지 집에서 노는 아버지를 빗대 꾸지람 같은 조언을 해댄다.
엄마는 그런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지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저 다라이에 담긴 옷가지들을 물에 담가 놓고 하나씩 건져 빨랫돌에 올려 놓고 비누질을 쳐 주물주물 비벼 헹군다. 엄마가 방망이질을 하는 동안 은숙이 응아응아 소리를 낸다. 엄마는 얼핏 방망이를 내려놓고 서둘러 빨래를 마무리하려 한다.
“에그, 은숙이가 젖 달라네!”
엄마는 얼른 은숙이를 안아서 젖을 물린다. 아이는 울음을 뚝 그치고 엄마만 쳐다보며 오물오물 행복한 웃음으로 젖을 빨아댄다.
엄마보다 먼저 와서 빨래를 시작한 춘식이네 아줌마가 빨래를 거의 끝낸 듯 빨래를 짜서 양은 다라이에 담기 시작한다.
“아이, 벌써 다 빨았수?”
“그려어. 오늘은 빨 게 많지 않아서 금방 다 끝났다네.”
“으음 참, 그런데 춘식이네, 음, 미안한데 돈 좀 있수?”
“으응? 돈은 왜 또?”
“글쎄! 흐음저어, 돈 좀 또 빌려주구려. 금방 갚을게!”
“아니, 지난 번에도 억지로 빌려다 주었는데 왜 또 그려?”
“으흠, 그래도 그건 다 갚았잖수. 한 번만 더 빌려 줘요.”
엄마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사정사정하듯 돈을 빌려 달라 간청했다.
“나한테 무슨 돈이 있수? 지난 번도 큰집 아주머니한테 집의(삼순네 집) 사정 말해서 빌려온 거 아뉴? 거 뭐냐, 돈놀이하는 사람들 선이자를 꼬박꼬박 떼어 가며 겨우겨우 융통해 주지. 돈 있는 사람들 더 무섭잖수?”
사실 춘식이네도 큰집에 얹혀 사는 형편이라 스스로 목돈 마련 같은 건 쉽지가 않다.
“얼마나 빌릴 건데?”
“오백 원만 빌려다 줘요.”
“글쎄, 내가 큰집 아주머니한테 말해 볼게. 꼭 빌려 줄는지는 모르겠으니 믿지는 마우.”
“그려어 그려!”
이렇게 해서 엄마는 또다시 아버지의 장사 밑천을 마련해 주었다. 아버지는 우선 노름빚을 얻느라고 전당포에 맡겼던 자전거를 찾아 다시 장사를 나갔다. 아버지가 어떤 장사를 하는지는 잘 몰랐다. 아무튼 자전거를 타고 제법 커다란 식당에 부식재료, 야채나 고기, 생선 등을 도매상에서 사다가 가져다 주고 돈을 받는 것 아니었을까 생각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그래도 아버지가 장사를 나가면 집안은 활기가 있고 희망이 생기는 것 같았다. 엄마는 아버지가 저녁 늦게 들어오면 놋주발에 밥을 퍼담아 따뜻한 아랫목에 넣어 포대기를 덮어 밥이 식지 않게 보관해 둔다. 부뚜막 위에 끓여 두었던 된장이나 고추장찌개가 작은 뚝배기에 담겨져 화롯불 위에서 자글자글 끓기 시작하면 어찌 알았는지 아버지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가 들어오는 소리는 대문에서 자전거를 집 안으로 들여 놓는 소리로 알 수 있었다. 자물쇠를 채우는 때도 가끔 있지만 대부분 거의 그냥 건넌방 외벽에 세워 두는 때가 많았다.

오후가 되자 날이 흐려지고 바람이 선선해지기 시작했다. 초가을 강변은 여러 날만에 들어온 고깃배들이 빽빽이 들어서 제법 활기로운 선창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먼 바다까지 나가서 잡아온 생선들을 경매로 팔아넘기는 단기 선상 도매시장이었다.
이런 날은 사람들이 너도 나도 배에 올라가 직접 물건을 사려고 야단들이다. 그런데 갑자기 뜻밖에 사단이 난 것이다. 누군가 서로 밀치고 다니다가 배에서 떨어진 것이다. 먼바다까지 나가서 조업을 하는 배니만큼 배는 상당히 높고 바닥도 깊다.
“어어, 어어어엇!”
이어서 첨벙 소리가 들렸다.
“누구야? 누가 떨어졌어?”
“누가 빠졌어?”
“어우, 서가 같은데… 응삼이 말야.”
“그려어? 큰일 났구먼. 빨리 찾아 건져야 할텐데… 배가 이렇게 빽빽히 들어서 있으니 어떻게 한담? 사람이 배 밑으로 빨려 들어가면 시신도 못 찾는데… 이거 정말 큰일이네!”
사람들이 웅성웅성 떠들며 선장에게 배를 빼라거니 옆에 서 있던 배들을 보고 먼저 빼라거니 하며 난리였다. 그러나 소리들만 질러댔지 배들은 다 그대로 있었고 물 속으로 떨어진 사람은 아무리 기다려도 고개를 내밀지 않았다.
이씨 아저씨가 소리치자 박씨 아저씨가 큰소리로 대답했다.
“저기 큰동네 서 서방이야! 발을 헛디뎠는가 봐. 중국 식당에 생선 가져다 줄려고 직접 온 것 같았어.”
이가 아저씨나 박가 아저씨도 생선이나 뱃자반을 받아서 시장에 넘겨주는 중간거래를 하는 장사꾼들이다.
“에에? 서응삼이가 물에 빠졌어? 그 양반 여러 날 안 나타나더니 웬 일이래? 아이구, 빨리 찾아보세. 배 밑으로 들어가면 시체도 못 찾고 그냥 죽어.”
“어어, 정말 서가가 안 보이는데. 큰일이네. 저, 배 주인보고 사람 빠졌는데 배 좀 빨리 빼라고 해요. 근데 잘못하면 더 큰일이 생길 수가 있어요.”
배 밑으로 사람이 빨려 들어가면 물에 빠진 사람을 절대 구해내지 못하는 것이라 배를 강 한가운데로 빼내는 것도 그리 단순한 해결책은 아니다.
어쨌거나 사람은 살리고 보아야 하니 배 위에 있던 사람들과 옆의 배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소리를 치며 안타까워했다. 구조대라도 왔으면 좋으련만 구조대 기다리느라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누군가라도 뛰어내려 물에 가라앉은 서 서방을 찾아내야 할 텐데 아무도 그럴 사람은 없었다.
아이들 때문에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마루 걸레질을 하는데 이웃집 춘식이가 마당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급히 달려 오느라 숨이 차 식식거리며 삼순네에게 소리쳤다.
“아줌마, 진석이 아버지가 배에서 떨어져 물에 빠졌어요. 진석이 아버지가 배 밑으로 들어가 찾지 못한다고 사람들이 소리치고 난리가 났어요. 아줌마 빨리 오시래요.”
“뭐라구? 진석 아버지가 왜 배에서 떨어져? 누가 그러던?”
열두 살 춘식은 삼순네가 얼른 강으로 달려가 주길 바라며 강가에서 있었던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삼순네는 근 열흘 만에 기껏 장사 밑천 마련해 돈벌러 나간 진석아버지가 배에서 떨어졌다는 이유가 이상했다. 게다가 춘식이는 거기 뭐하러 가 있었길래 진석아버지가 배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달려왔는지 도통 어이가 없다.
“얘, 도대체 누가 널더러 나한테 빨리 오라고 시킨 거니?”
“박가 아저씨가 절보고 진석아버지가 배에서 떨어져 물에 빠졌다고 빨리 진석네 집에 연락해 아줌마 오시라고 하랬어요. 그래서 제가 무조건 마구 달려왔어요.”
숨이 찬지 춘식이는 헐떡거리며 기침을 해댔다.
“뭐라구? 진석아버지 찾기는 찾았던?”
“그새 아저씨를 찾았는지는 저도 몰라요. 찾는 중에 그냥 달려왔으니까요.”
“거기가 어딘데?”
“조깃배하고 새우젓배들 많이 들어와 서 있는 데예요.”
“그래?”
낮에 동네 아이들이 강으로 헤엄치러 가자며 여럿이 강변으로 나갔다. 그런데 오늘은 강에 고깃배들이 잔뜩 들어와 있어 다른 때처럼 강가에서 헤엄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강 건너로 가서 놀자고 했다. 강을 건너가면 모래바닥이 더 넓고 물도 얕고 더 깨끗하니까. 그런데 강을 건너가려고 막 나룻배를 타려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소리치며 왁자거려 아이들은 무슨 일인가 하고 다들 고깃배 있는 쪽으로 몰려갔다.
마침 춘식이를 알아본 박가가 진석아버지가 배에서 떨어져 강물에 빠졌다며 빨리 진석이네 집에 연락하라 해서 춘식이가 쏜살같이 달려 온 것이었다.
춘식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엄마는 어느새 은숙이를 등에 업고 자주색 누비 처네의 긴끈을 허리에 둘둘 둘러 바짝바짝 조여매며 마루 아래로 내려가 하얀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엄마 손엔 벌써 물에 빠진 아버지가 갈아입을 수 있도록 회색 작업복 윗도리와 검정색 바지를 서둘러 싼 보퉁이가 들려 있었다. 그 윗도리는 가슴 양쪽에 겉주머니가 달려 있어 아버지가 담배갑을 넣어 두고 수시로 담배를 꺼내 피우는 덧주머니다.
대문을 나선 엄마는 마치 달리기 선수처럼 강 쪽을 향해 달렸다. 사실 매일같이 싸움질만 하고 아버지에게 악다구니를 퍼붓던 엄마가 그렇게 빠르게 아버지를 찾으러 달려갈 줄은 몰랐다. 나도 엄마의 뒤를 따라 달렸지만 어느새 엄마는 내 시야에서 보이지도 않았다.
내가 엄마의 뒤를 따라 강에 도달했을 때는 이미 해가 기울고 저녁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미 그 많던 배들이 나루터를 빠져 나가고 북새통이던 강변은 사뭇 허허롭고 한가했다.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고 두어 척의 남은 배 위에선 사람들이 뱃전을 빙빙 돌다 별일 없다듯이 뱃길을 돌려 다시 바다로 나가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나보다 훨씬 앞서 달려간 엄마도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를 본 사람도 아무도 없었고 아버지가 배에서 떨어져 물 속에 가라앉는 것을 직접 보았다는 사람도 없었다. 현장에 있었다던 박가네 아저씨마저도 보이지 않았다. 그 많던 사람들은 제 갈길로 모두 돌아간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물 속에 내려갔다 올라온 몇몇 사람들이 배 아래 아무도 없다는 말을 해 이 말 을 들은 엄마는 더욱 불안해 인근 파출소에 사고 신고를 하러 갔다고 했다. 내가 엄마를 찾아 파출소에 갔을 때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훌쩍 훌쩍 울고 있었다. 아무도 아버지의 현실을 알지 못했다. 어이 없는 실종이었다.
순경들은 엄마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더니 사실이 어찌 되었던 간에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며 차후에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줄테니 우선 집에 돌아가 기다리라고 했다. 일단 실종 신고가 접수되어 더 이상 파출소에 머무를 필요가 없어 엄마와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오는 도중에도 엄마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안절부절 못하고 걷는 걸음마저 비틀대었다. 불안한 느낌을 아는지 자주색 누비처네에 휩싸인 은숙의 울음소리가 엄마의 등뒤에서 더욱 앙앙거렸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손으로 포대기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질끔질끔 연신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너무 급작스러운 아버지의 변고라 사실 믿어지지도 않았는데 어쩌면 아버지는 영영 못 돌아올지도 몰랐다. 사실이지 매일같이 싸움질에 소리소리 아귀다툼으로 아버지를 닦달하던 엄마가 아버지가 실종되었다고 이렇게 슬퍼하리라고는 절대 짐작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해가 저물고 전깃줄에 나란히 앉아 지질대던 제비들도 보이지 않았다. 이따금씩 전봇대 위에서 사방에다 깍깍대던 까마귀도 어느새 사라져 온 동네엔 어둠만 내려앉았다. 엄마는 혹시나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을까 하며 저녁도 먹지 않고 대문 밖에서 늦도록 서성거렸다. 어렴풋이 희멀건 달이 구름 속에서 느리게 멀어져 가고 기약 없는 아버지 소식은 막막하기만 했다.
밤이 이슥해 자정이 다 되어서였다. 아버지가 초췌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삐그덕 소리를 내며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물에 빠진 생쥐처럼 젖어 지친 모습이 너무도 처연했다.
“어우, 여보!”
엄마의 목소리는 반가움과 기쁨에 더할 나위없이 상기되어 있었다.
“당신 물에 빠져 죽었다더니 살아 왔네!”
“아니, 죽긴 내가 왜 죽어!”
아버지의 목소리에 버럭 생기가 솟아나는 것 같았다. 아마도 아버지와 엄마는 서로 마주할 때면 없던 기운도 새로이 솟아나는 모양이었다.
“아니, 배에서 떨어져 물 속에 가라앉았다더니 어떻게 된 거유?”
“후후으읏!”
아버지는 엄마가 자신의 생환을 기뻐하는 게 즐거운지 연신 웃으며 순간 무척 행복해 보였다.
나중 들은 아버지의 얘기는 이러했다.
아버지는 기무라와 가쓰라가 배 안에 있는 걸 보고 넌지시 다른 배로 옮겨 뛰다가 배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그가 건너 뛰려는 쪽에 배가 갑자기 나가려 했는지 반대쪽으로 틈을 벌려 그가 뛰는 순간 배의 거리가 전보다 상당히 멀어진 것이었다. 그는 배에서 떨어진 순간 죽었구나 싶었는데 옆쪽 배에 구명보트 밧줄이 늘어진 것이 손에 잡혀 무작정 잔뜩 움켜 잡았다. 밧줄을 잡고 강 한가운데 쪽으로 있는 힘을 다해 헤엄을 쳐 나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던지 구명 밧줄이 더 이상 끌려오지 않아 줄을 놓고 배 밑으로 빨려 들지 않으려 물 속에서 온 힘을 다해 팔다리를 휘둘러 더욱 강 가운데로 나아갔다. 얼마를 물 속에서 허우적거렸는지 이제 더 이상 물 속에서 숨을 참기 어려워져 물 밖으로 완전히 머리를 내밀었다. 그런데 물 속 물살에 어떻게 떠밀려 왔는지 자신도 모르게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얼마나 밀려갔던지 이젠 처음 있던 데서 족히 십 리는 떠내려와 있을 것 같았다. 이미 강 건너편 쪽 가까이 와 있었다. 아버지는 모래사장으로 기어 올라가 한참을 누워 있다가 너무 지쳐 잠이 들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으슬으슬 추워지기 시작해 눈을 뜨니 어느새 캄캄한 밤이었다는 것이었다.
마치 죽음에서 살아온 아버지의 무용담이라도 듣는 듯 아버지의 온몸을 살펴가며 열심히 듣던 엄마는 일단 아버지가 무사히 살아 돌아온 게 기뻐서 안도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에이그 웬수! 속 안 썩이는 날이 단 하루도 없다니까!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 왔으니 천만다행이유!”
엄마는 늦은 시각이지만 부엌으로 내려가 아버지의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걱정을 다 잊은 행복한 표정이었다.
참 어여쁜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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