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사년 겨울호 2024년 12월 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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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들
구겨진 삶을 다림질하고 싶지 않으리오
옷장에 쌓여가는 헌 옷처럼
신발장에 뒷굽 닳은 구두처럼
버리지 못해 칭얼대는 삶
삶은 자꾸 거짓말을 하데요
세상의 주인공은 나라면서도
나 없이도 그 사람 세상은 잘도 돌아가데요
달궈진 다리미를 가볍게 밀며
알듯모를듯웃어보이는저여자
사랑했던 그 사람도
너무 착해서 바보 같던 그 사람도
사랑해서 떠난다는 말에 속아 준 그 사람도
떠나간 후에야 그리워지는 그 사람도
거부하지 못한 인연이
운명이 되는 것이 어찌 혼자만의 일일까마는
창밖엔 흩뿌리는 벚꽃 비
귀밑엔 희끗해진 세월 자국
가슴엔 아직 봄빛 남아도는 저 여자
입을 모아 한 모금 물안개를 뿌리자
파도에 씻긴 모래펄처럼 하얗게 빛나는 와이셔츠
이제라도 우리 같이 남은 여정
정연히 펼 수는 없을까 묻고 싶은 저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