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사년 겨울호 2024년 12월 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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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며 오르고 내린 계단의 수가 얼마나 될까
오른 계단은 여지없이 내려와야 했으니
아직 내려 딛지 않은 계단의 수는 또 얼마나 되려나
처음에는 누구나 직각으로 오르다가
어느 순간부터 예각으로 무너져내리기 마련이다
턱까지 차올라 더는 들숨이 쉬어지지 않을 때도
계단의 모서리는 여전히
무딘 단면을 무심하게 갈고 있었다
정상은 화려했다
천지 안으로 수많은 눈이 굴러 떨어 들어가자
천지는 구름 속에서 예의 그 큰 눈동자를 번뜩였다
모여든 눈빛의 합체임이 분명하다
저마다 맘속에 탁본으로 찍어둔 오롯한 풍경
천지 위를 떠도는 구름은
앞선 이들의 환호가 응축된 것이리라
오르는 과정엔 오로지 코앞의 계단만 보이는 법
정상으로 정상으로 치닫느라
미처 아껴두지 않은 호흡이
내려디딜 계단의 수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겨우 한 올 남아있는 호흡을 정리해보지만 역부족이다
이럴 땐 도리없이
다리의 진동으로 숨을 쉬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천지를 오른 대가로 새로운 호흡법을 하나 선사받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