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사년 겨울호 2024년 12월 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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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산책길
불 밝힌 작은 가로등에
거미는 그물 쳐놓고 먹이를 기다린다
반짝반짝 전류가 흐르는 것 같은 그물망
걸려들면 먹이가 되는 모기 한 마리
그물에 들었다가
앵앵 필사의 탈출을 한다
먹고 먹히는 그들을 바라보니
그날 기억에 등짝이 오싹해
불과 몇 달 전
다정한 문자에 걸려들어
서툰 터치로 진행하다
순간에 붙잡은 정신줄 한 가닥이
걸려든 모기처럼 파닥거렸다
세상 곳곳에 쳐놓은 통신그물망
반짝이며 영역 넓혀 가는 검은 손이
보이지 않게 진화할 때
가로등에 쳐놓은 거미의 그물망도
그날의 문자를 둥글게 말아 놓고
뚫린 곳을 부지런히 수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