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사년 겨울호 2024년 12월 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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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는 가시로 꽃을 피워요
몸 안에 가시가 피를 품어내요
몸 안의 가시가 한 타래의 진한 향기를 뽑아내요
고통에서 삶을 빌려왔기에 아픔을 꽃으로 피워내는 것일까요
가시는 꽃을 돋보이게 하는 마지막 자존심이에요
가시는 아픈 손가락이에요
내 몸 안의 죄와 암과 질병에 항체를 만들고
허약한 것과 능욕과 핍박에 면역력을 키워요
송곳처럼 에이는 가시는 자기를 지키는 방패예요
고난도 삶의 일부임을 수시로 각인시켜 줘요
가시는 자만(自慢)을 누르는 섬돌이예요
가시가 없었다면 키만 웃자랐을 거예요
질척한 욕심과 교만과 강퍅한 마음이 사랑하는 법을 배워요
약함 가운데서 온전해지기에 가시를 빼주지 않네요
못 박히는 아픔은 그 지탱하는 몸무게로 고통이 가중되어요
가시 덕분에 경건한 삶이 내 안에서 꽃을 피워요
믿음의 시련은 침향(沈香)을 만들어요
내 안에 악을 분별하고 버려야 영혼이 살아요
아름다움과 위험은 늘 공존해요
장미는 자신의 가시로 꽃 피울 때 더 아름다워져요
가시에서 뽑아낸 향기는 더 멀리멀리 퍼져 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