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사년 겨울호 2024년 12월 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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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감증명을 떼러 동사무소에 갔다
지문이 뭉개져 감식되지 않았다
어쩔거나, 나를 증명할 수가 없으니
직립보행으로 손은 문명을 지어왔으나
팔십여 성상 손가락이 닳고 닳아
현대 문명의 이기로도 나를 인증하지 못한다
인식의 자아는 존재하나
나의 실존은 소멸되었다
밋밋한 하늘처럼 민무늬 인생
늘그막엔 인생의 본질마저 불확실성이다
사람은 육신으로 먼저 망아(忘我)가오고
정신으론 치매가 뒤따른가 보다
비우기에서 지우기로 진행 중
다시 완전한 무허(無虛)
‘스스로 그러한 대로’진화하는 자연법칙
며칠간 여행 중에
내 가족들이 나를 잊고 있었다
소멸이란 천천히 조금씩 지워지는 것이로구나
덩그러니 자연만 남는 것이로구나
나는 없다, 없다
나는 이 땅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