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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연

책 제목제173회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당선작 발표 2025년 3월 1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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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추위는 여전히 맵다.

차가운 왜바람이 양볼을 할퀴고 달아난다.

퇴근길의 버스정류장 추위는 매섭기만 하다.

여름 더위는 짜다 쓰다 하지 않으면서 겨울 추위를 왜 맵다고 하는지 알 것 같다.

더위보다 더 독하고 훨씬 아프게 하는 녀석이다.

움츠러드는 어깨를 감싸며 추위를 견뎌 보지만 겨울바람은 숨을 들이쉴 때마다 코끝이 찡해 몸서리치게 한다.

차가 많이 막히는 모양이다.

평소였다면 벌써 도착했을 버스지만 아직도 몇 정류장을 남겨두고 있다.

마음부터 바빴던 출근길의 버스는 유난히 서둘러 가버리더니 오늘같이 추운 날은 더디기만 하다.

동동거리는 발길 사이로 훤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이불가게가 눈길을 끈다.

황금색 불빛에 이끌려 매장 앞으로 다가섰다.

커다란 침대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이불속이 더없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몸은 추위 속에 서 있는데 마음은 벌써 침대 위에 예쁘게 진열된 이불 속에 눈치 없이 들어앉았다.

이불을 바라보는 눈빛의 온도가 서서히 올라가며 저릿한 기억 하나가 꿈틀거린다.

오늘같이 매웠던 그해 겨울, 어머니의 하루는 새벽 네 시에 시작되었다.

곤히 자는 식구들을 눈으로 더듬으며 살금살금 방문을 나섰다.

질끈 동여맨 머릿수건이 어머니의 고단할 하루를 말해주었다.

학교 갈 동생들 아침밥과 도시락을 준비하고 당신을 위한 밥 한 덩이도 싸야 했다.

어둠을 두른 새벽, 허옇게 입김이 몸부림치는 좁은 부엌에서 어머니는 홀로 불풍나게 문턱을 넘나들었다.

겨울이면 온 동네 아낙들은 굴 공장으로 출근했다.

추위 걱정 없는 계절에는 속곳이 축축하도록 몸을 움직여도 벌이는 시원치 않았다.

그러나 겨울철 굴까는 일은 바닷가의 촌 아낙들이 평소 받기 힘든 제법 큰돈을 손에 쥐게 하는 일감이었다.

우리 집은 겨울 한 철을 제외하곤 세 계절을 남의 돈으로 살아내야 했다.

불어나는 이자를 감당해야 하는 형편에, 유난히 손이 빠른 어머니에게 굴 까는 일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돈벌이였을 것이다.

굴 까는 소리로 공장 안이 요란스럽다.

인부들이 바다에서 건져온 굴을 부리는 소리에 조금이라도 크고 좋은 굴을 차지하려는 아낙들의 손짓이 바쁘다.

새벽부터 시작된 굴 까는 손놀림은 열 시간을 넘기기 예사였다.

굴 하나하나가 모두 돈이었기에 잠깐의 휴식도 사치였다.

찬밥을 시래깃국에 말아 마시듯 점심을 먹고 종일 서서 굴을 까야 했다.

손목은 쑤시고 두 다리는 퉁퉁 부었다.

당신의 잰 손놀림만큼 돈이 되기에 아픈 팔다리를 살필 여력이 없었다.

고단한 하루는 어둠과 함께 끝이 났다.

괭이잠에 돌아누울 때마다 신음 같은 소리가 어머니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육신의 아픔 때문인지 고단한 당신의 삶 때문인지 한숨 섞인 그 소리에 나는 긴 겨울밤이 더욱 길게 느껴졌다.

어머니는 새벽엔 매운바람에 맞서고 밤이면 시린 바람에 등을 내어 주며 그렇게 겨울을 살아내셨다.

어머니가 살아내고 있던 겨울의 문턱에서 나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시집가는 큰딸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나 또한 집안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터라 혼수를 준비해 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

다행히 시부모님은 귀한 딸 주신 것만으로도 고맙다며,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염치없게도 정말 맨몸으로 시집을 갔다.

내가 사 온 이불 한 채가 혼수의 전부였다.

결혼식을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다.

비릿한 굴 냄새를 잔뜩 묻혀 오신 어머니는 다짜고짜 내 손을 잡고 캄캄해진 어둠 속으로 이끌었다.

막 문을 닫으려는 이불집으로 들어섰다.

“여름 이불 좋은 놈으로 보이 주이소.”

겨울을 목전에 두고 여름 이불을 찾는 어머니를 주인아주머니는 멋쩍은 미소로 반겼다.

쌓아 놓은 이불과 한참을 씨름하던 아주머니는 겨울 이불에 밀려 있던 것들 중에서 푸른색 보들보들한 이불을 꺼내 놓았다.

한눈에 보아도 반질반질 윤이 나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를 읽으신 어머니는 필요 없다는 내 말을 못 들은 척하며, 열다섯 달 동안 한 달에 만 원씩 갚기로 흥정을 했다.

가늘게 떨리는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여름 이불밖에 사주지 못하는 아픈 마음이 녹아 있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시집가는 큰딸에게 여름 이불을 선물했다.

목화솜 가득 든 따뜻한 겨울 이불을 장만해 주고픈 간절한 마음은 눈물로 꾹꾹 눌러 놓고서….

어머니를 담은 기억이 훑고 간 이불집은 온통 서늘하다.

정갈하게 진열된 혼수이불 위로 뜨겁고 무거운 마음이 내려앉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포근해 보이기만 하던 이불은 뾰족한 가시가 되어 나의 가슴에 촘촘히 박힌다.

기다리던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에 오르는 발걸음이 모래 자루를 두른 듯 무겁다.

여름 이불 하나도 제값을 바로 쳐서 사주지 못하는 어머니.

그 마음이 얼마나 무겁고 시렸을지 나는 감히 짐작도 할 수 없다.

이불을 할부로 사겠노라 흥정하면서 얼마나 속울음을 삼켰을까.

어머니는 이불값을 치르기 위해 그 겨울의 차가운 바람에 기꺼이 맞섰고, 매운바람에 멍든 푸른빛의 이불로 나는 시원한 여름 서른 해를 보냈다.

여름 혼수이불을 보며 딸을 이렇게 시집보내는 친정 부모가 어디 있냐며 한숨짓던 어머니.

어머니의 아픈 마음보다 고운 이불이 더 빛나 보였던 철없던 기억과 함께, 저릿한 아픔 한 덩이가 목젖을 타고 넘는다.

힘겹게 삼켜진 아픔은 마음을 벌겋게 얼룩 지우며 쓰라리게 한다.

흐르는 눈물이 부끄러워 차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버스의 유리창이 온통 뿌옇다.

뿌연 유리창에 정성 들여 어머니의 이름을 적어 본다.

‘이둘남’눈가도 창가도 더욱 흐릿해지는 것은 매운 겨울 추위 때문이라 탓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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