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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에 뜨는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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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희

책 제목제173회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당선작 발표 2025년 3월 1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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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세상에 머문 시간은 16개월, 나라가 온통 분노로 들끓었다.

창밖에는 진눈깨비가 칼바람에 흩날렸고 매스컴에는 한파가 몰려올 것을 예고했다.

정인이라는 어린 생명이 양부모를 만났지만, 이유 모를 학대로 온몸이 멍들고 췌장까지 훼손되어 하늘나라로 간 가슴 아픈 겨울이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기 너머로 들린 친구의 목소리엔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녀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어린 아기 생각에 가슴이 녹아내려 울며 밤을 새운다고 했다.

이 추운 날씨에 어린 것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손주를 키운 친구는 마음이 너무 아파서 일주일 동안 손수 정인이 옷을 지었다고 했다.

하늘나라 가는 길에 예쁜 모습으로 가라고 지금 안데르센 공원묘지에 가려는 참이라고 했다.

때마침 내가 양수리에 있었던 터라 추모 길에 동행하기로 했다.

한평생을 패션디자이너로 일해 온 친구는 솜씨가 남달랐다.

예쁜 드레스와 모자, 버선을 넣은 상자에는 보석 같은 사랑들로 가득했다.

그녀는 활짝 웃는 아기 사진 앞에 상자를 놓았다.

그 속에는 꽃다발과 함께 아기를 향한 애끓는 할머니의 편지도 동봉했고 아기가 먹을 간식도 넣었다.

‘하늘나라에 갈 때 몸이 너무 망가져서 천사들이 못 알아볼 수 있으니 또박또박 정인이라고 말해’라고 부탁하는 편지글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친구와 슬픔을 공감하면서 문득, 옛 생각이 떠올라 가슴에 전율을 느꼈다.

대학교 2학년 때 일이다.

나에게는 단짝 친구가 있었다.

이름은 김미정이었고 무용을 전공했다.

국문학을 전공한 나와는 달리 외모에도 관심이 많았고 모델처럼 날씬하고 시원스러운 몸매는 여자의 눈에도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녀는 태어나면서부터 금수저였다.

할아버지도 재산가였고 아버지도 고위직 공무원이라 집안도 넉넉하고 성격도 거침이 없었다.

자유분방한 그녀의 모습이 때로는 부러울 때도 있었다.

그러던 그녀에게서 이상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하굣길에 중간에서 헤어져야 하는데 꼭 우리 과수원까지 동행하곤 했다.

“은영아, 나 운동 삼아서 과수원까지 데려다줄게.

난 과수원 가는 돌담길이 너무 좋아.”

그러면서 그녀는 내 팔짱을 꼈다.

“그러면 넌 너무 돌아서 가잖아.

곧 해도 어두워질 텐데.”

“괜찮아.”

그러기를 며칠 후, 어느 날부터는 갑자기 나에게서 거리를 두는 모습이 보였다.

뭔지 모르게 내 눈치를 보는 것이 이상했다.

작심하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집요하게 이유를 물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내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나 사실 석호 오빠를 좋아해.”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이 속에서 들끓었다.

우리 집과는 분위기가 너무 다른 친구가 내 오빠를 좋아한다는 말에 머리가 하얘졌다.

“너 혼자만 좋아하는 거야? ”

그랬더니 둘은 이미 고백한 사이라고 했다.

과수원에 사과 봉지를 씌운 날, 일 도우러 온 줄 알았더니 둘은 연애를 한 것이었다.

사과 봉지를 씌우다 말고 집 앞에 빨간 우체통도 만들고 페인트칠하면서 깔깔대던 둘의 모습이 불현듯 머리를 스쳤다.

수돗가에 손 씻으러 간 줄 알았더니 물 틀어 놓고 키스까지 했다는 것이었다.

과수원 평상에서 오빠가 기타 치며 어니언스의 편지를 노래할 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돌담길이 좋다더니 둘은 돌담 사이에 편지를 끼워 놓으면서 사랑을 주고받은 것이었다.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

사과꽃이 이쁘다고 우리 집을 드나든 것이 핑계였다.

둘은 사랑을 꽃피웠고, 나는 바보처럼 눈치도 못 채고 들러리만 선 것이었다.

오빠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샛별처럼 반짝였고 그녀를 바라보는 오빠의 눈에서는 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그의 입에서 콧노래가 그칠 줄 몰랐다.

사랑에는 브레이크가 없는지 둘 사이에는 예상치 않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오빠의 입영 날짜가 정해지자 미정은 휴학을 해버렸다.

처음엔 한 시간이라도 떨어지고 싶지 않은 순수한 마음 때문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힌 그녀가 오기로 휴학을 해버린 것이었다.

한참 예쁜 나이인 외동딸이 요즘 말로 흙수저 집안의 아들을 사랑한다는데 선뜻 허락할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부모의 반대가 그들의 불같은 사랑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오빠는 거의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미정이와 나의 만남도 뜸해졌다.

가을이 붉게 타들어 갈 무렵, 그는 폭탄선언을 했다.

입대하기 전 혼인신고부터 하겠다는 것이었다.

우리 가족은 정신적 혼란이 왔지만, 여자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알고 보니 이미 임신한 상태라 그녀 집에서도 어쩔 수 없이 허락한 듯했다.

지방대학이지만 남자가 명문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니까 나름대로 장래는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오빠는 군대에 갔고 아이를 낳을 때까지 그녀는 우리 과수원집에서 함께 지내기로 했다.

이제는 친구가 아닌 시누올케 사이가 되었다.

왠지 어색했지만, 오빠의 부탁도 있었기에 내색하지 않고 그녀를 챙겼다.

그녀는 빨갛게 익은 사과를 따 먹으며 과수원 평상에 앉아 편지도 읽고 뜨개질도 하면서 오빠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듯했다.

신기한 것은 그가 입대한 후 우리 집에는 매일같이 빨간 가방을 멘 우체부가 다녀갔다.

집 대문 앞에 우체통을 만든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빨간 우체통이 노을과 마주할 때면 사랑을 품은 임산부처럼 보였다.

밤마다 편지로 애정을 쏟아내는 아들 모습이 낯설었는지 엄마는 우체부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하이고, 아직도 이병인데 우짜지.”

평소 무뚝뚝한 아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왠지 낯설고 사랑의 힘이 위대해 보이기도 했다.

해산일이 가까워지면서 그녀의 걸음걸이는 오리처럼 뒤뚱거렸다.

과수원을 산책하면서 아이와 교감하는 모습을 멀리서 낮달이 지켜보고 있었다.

해산일이 되어 그녀는 친정으로 갔고 일주일 후 딸을 낳았다는 통보를 받았다.

나는 엄마를 모시고 산후조리원으로 갔다.

난생처음 보는 신생아였다.

태명이 초롱이였다.

그녀를 닮은 초롱초롱한 눈이 별처럼 빛났고 아이는 두 손으로 원을 그리듯 움직이며 방긋 웃어주었다.

나는 아이 아빠가 곁에 없는 것이 못내 아쉬워 오빠에게 보낼 아기 사진과 산모를 카메라에 담았다.

그녀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아이의 손가락을 꼭 잡고선 눈맞춤을 하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 당분간 그녀는 친정에 머물렀다.

일하는 아주머니도 있고 아이 키우기에 친정이 편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없는 우리 집 빨간 우체통에는 어느덧 잡초가 자라났고 땅벌이 윙윙거렸다.

오빠가 세 번째 정식휴가를 왔을 때 일이다.

꼭지가 가도록 술을 마시고 온 그의 방에서 꺽꺽 우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꿀물을 타서 살포시 방문을 열었다.

술을 이기지 못한 그가 입은 군복에다가 왈칵 토를 하며“이젠 끝이야! ’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얼른 방으로 들어가 등을 두드리며 이유를 물었다.

“이젠 끝났어! ”라고 책상을 후려치자 책상 위에 있던 컵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박살이 났다. 놀란 가슴을 쓸어 담으며 유리 조각을 치웠다. 그는 분노로 가득한 얼굴에 닭똥 같은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알고 보니 오빠의 가장 친한 친구와 올케가 사고를 친 것이었다. 전역한 오빠의 친구가 미정에게 연락을 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원래는 순수한 마음으로 초롱이의 축하선물을 전해 받으러 간 자리였다. 평소 너무 친한 사이라 일식집에서 만나 선물도 받고 이런저런 이야기로 술도 하게 되었다. 외로움 때문인지 술이 화근이었다. 욕정을 참지 못한 그녀가 남편 친구와 치정의 깊은 늪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술 때문이었다고 변명했다지만, 아내와 친구를 한꺼번에 잃어버린 오빠는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배신감에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일이 이 지경이 되다 보니 그녀는 친정에 계속 머물게 되었고 아기는 입양 보내기로 합의했다. 애 아빠가 아직 군인의 신분이고 장래가 구만리니, 서류도 정리하고 아이는 유럽으로 입양 보내라는 친정 부모님 충고가 한몫한 듯했다. 처가의 카리스마에 주눅이 든 오빠는 한마디 말도 못하고 허깨비처럼 돌아왔다. 돈의 권력에 기가 죽었는지 실수는 여자가 했건만 오히려 남자가 죄인처럼 보였다.

난 가슴이 먹먹했다. 학교를 포기할 정도로 불붙던 그 사랑은 도대체 무엇인가? 사랑의 본질은 욕정이란 말인가? 머리에선 지진이 나고 있었다. 차라리 아이를 낳지를 말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을 거면서 앞뒤 없이 행동한 미정이가 죽이고 싶도록 야속했다. 그렇다고 대학생인 내가 아이를 키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손주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리게 된 엄마는 허리 디스크가 재발하여 꼼짝도 못하고 누워서 울분을 삭이고 있었다. 철없는 남녀의 사랑놀이로 태어난 아이는 울음을 거세당한 채, 낯선 땅으로 입양 가게 되었다.

도시계획이 발표되어 우리 과수원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분양권도 받게 되었고 과수원이 수용되어 토지보상금도 받게 되었다. 나는 속으로 무척 기뻤다. 힘든 과수원 일에서 엄마를 해방해드리고 싶었다. 남들처럼 편안하게 아파트에서 살게 하고 싶었고 나도 힘든 과수원 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 기회에 서울로 가서 도심에서 내 꿈을 펼쳐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보상금으로 엄마는 나에게 강남의 작은 아파트 하나를 구해주었다.

서울의 거리는 지방과는 달랐다. 휘황찬란한 밤거리에도 생기가 돌았고 거리에는 외제 차가 대부분이었다. 세상 자본이 서울로 집중해서인지 씀씀이가 장난이 아니었다. 절약이라는 말은 강남에서는 볼 수 없었다. 나는 취업을 위해 학원등록을 했다. 몇 군데 이력서를 넣었지만, 국문과로는 취업이 어려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로 했다.

세월은 아픔까지도 지우는 듯했다. 오빠는 제대도 하고 복학도 했다. 전공을 살려 독일회사에 취업도 했다. 178센티의 키에 80킬로의 몸무게가 60킬로로 줄었고, 얼굴에서 반그림자가 늘 얼비치고 있었다. 여자를 보아도 관심이 없었고 친한 친구와도 거리를 두는 눈치였다. 오직 일에만 몰두했고 외국계 회사라 외국어에만 열정을 쏟았다. 마치 지난 일을 애써 지우려고 독을 품고 자신과 싸우는 맹수처럼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문득 내 머릿속에는 미정이가 생각나곤 했다.

학교 친구들을 수소문해 그녀의 소식을 물었지만 아는 이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 남자와 사는 것도 아니었다. 그 남자는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어엿한 사업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돈 많은 사업가의 애인으로 살다가 비구니가 되었다는 소문도 있고, 죽었다는 소문도 들렸다.

“가시나 그냥 잘 살 것이지.”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말이었다.

자업자득이라고, 자식 버리고 자기 인생 살겠다는 생각이 어리석은 일임을 왜 모를까. 죽이고 싶도록 미웠던 마음이 측은지심으로 변했다. 독일회사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그에게 소개팅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두 부잣집 자녀들이었다. 독일 본사에서 근무할 때가 많아지면서 본인도 결혼의 필요성을 느낀 듯했다. 열 번쯤 선을 보더니 그 여자랑은 결혼하겠다고 했다. 이름은‘경옥’이었고 예명이 비취였다. 그야말로 밝고 보석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였다. 아버지가 한국에서 시행사를 하고 있고 그녀는 독일에서 미술을 전공한 유학파였다. 의외였다. 자본주의를 욕하면서도 자본을 선택하는 그의 이중성이 속물같았다. 평소에 자본주의 고질적 병폐를 치열하게 말하던 그가 아닌가! 자유인으로 태어난 인간이 건강한 사회조직을 위해 사회지능이 필요하다는 헨리 조지 말이 문득 생각났다. 물질지능에 부응해서 사회지능을 높인 것인가. 현실사회의 정의를 말하면서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아전인수격 엘리트 인간의 이기주의를 보는 듯했다. 그런 모습이 왠지 낯설게 다가왔다. 며느리가 우리 집에 어울리지도 않았고, 평생 아들만 바라보고 살아온 엄마에게 효도할 것 같지도 않았다. 왠지 오빠마저 남처럼 살게 될 것 같은 불안함이 머리를 스쳤다.

내 속마음을 읽었는지 그는 그 여자를 선택한 이유를 말했다. 선을 볼 때마다 입양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고 했다. 다른 여자들은 모두 부정적이었는데 그녀는 조금도 주저함 없이 긍정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기회가 되면 언제든지 입양하자고 흔쾌히 대답하는 열린 모습을 보면서 호감이 갔다고 말했다.

유월의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던 날, 둘은 조건에 맞춰 거래하듯 결혼했다. 엘리트 남편만 있으면 다 갖춘 그녀는 호텔에서 화려한 예식을 하고 신혼여행도 프라하로 다녀왔다. 신혼여행에서의 추억을 말할 때면 까를교 건너 올드 타운 브리지 타워에서 본 야경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붉은 하늘이 감싸는 도시의 밤이 환상이었다고 그녀는 커피를 마실 때마다 말했다. 그녀는 나에게도 신혼여행지로 추천하면서 그곳에서 마신 커피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석양을 보면서 마신 커피는 쓰거나 달지 않았고 그냥 예술이었다고 말할 때면, 언젠가 드라마에서 본 프라하의 모습이 그려지곤 했다.

처가의 배려로 그들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한남동 빌리지에 신혼집을 마련했다. 고급승용차를 계약하고 온 날, 그들은 한강 야경을 보면서 와인 파티를 했다. 베르디 축배의 노래가 집 안 곳곳에 스며들었다. 그녀는 남편의 손을 잡으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한 번도 춤을 배워 본 적 없는 그는 어설프지만, 아내의 손에 끌려 어설픈 스텝을 밟았다. 그들은 부러울 게 없었다. 복층에 마련된 그녀의 작업실은 한강 유람선이 지나갈 때면 마치 파리의 센강에 온 것 같았고 이웃 주민들도 외국인이 많았다. 도우미가 와서 청소며 빨래며 요리도 했고, 정시에 어김없이 퇴근하는 남편을 보면서 그녀는 스킨십도 아끼지 않았다.

사람들이 볼 때, 마치 성능 좋은 신차처럼 삐걱거림 없이 결혼생활을 시작하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그 모습이 내 눈에는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의 눈에서 꿀이 떨어지지 않았고 과수원에서 듣던 콧노래도 들을 수 없었다.

그냥 인형의 집에서 예쁘게 사는 꼭두각시 같았다.

주말이면 늘 처가에 갔었고 고급 요리를 먹으며 물질의 풍요를 누리는 모습은 대한민국 기득권자의 삶이었다.

주말이면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보든지 미술관 전시회를 보러 다녔다.

돌아오는 길엔 한강이 훤히 보이는 이탈리아 식당에서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즐겨 먹곤 했다.

청바지를 즐겨 입던 그가 아니었다.

사과꽃을 보면서 설레고 달을 보면서 감성에 젖던 옛 모습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이미 신분 세탁이 되어 아내의 세련된 자본주의 삶에 그도 젖고 있었다.

결혼한 지 3년이 되면서 그는 다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천천히 갖기를 원했지만, 아내의 성화에 못이긴 듯했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전시회 날짜와 조율하면서 아들을 순산했다.

이름은 경석이었다.

두 사람의 이름인 경옥과 석호의 첫 자를 따서 경석으로 지었다.

처가에서 축하객이 줄을 이었고 아이의 용품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빠가 되었는데도 별로 기뻐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뭔가에 쫓기듯 불안해하는 모습이 왠지 이방인 같았다.

남편의 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아내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함박꽃처럼 웃고만 있었다.

마네킹처럼 서 있는 남편을 보면서 아빠가 처음이라 쑥스러워하는 줄 생각하는지 손을 당겨서 아이의 발에 갖다 대었다.

“신기하지? ”하고 묻기도 했고 손을 만지작거리면서“당신 손과 똑 닮았다”며 깔깔대기도 했다.

그는 어색한 웃음 뒤에 불안함을 감추고 있었다.

병원에서 산후조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야말로 상위 1%가 이용한다는 조리원에서 그녀는 2주간을 생활했다.

놀랍게도 2주 사용료가 천만 원에 육박했다.

호텔 수준의 시설과 전문 의료진도 있었고 산모 체질에 맞는 개인 식단과 다양한 테라피 프로그램도 있었다.

일대일 관리로 산전 후 몸 관리는 물론 모발까지 윤기 있게 관리해 주었다.

그런 현실을 보면서 그는 자신의 과거 모습이 떠오르는 듯 얼굴이 굳어졌다.

해산 때 함께 있어 주지 못했던 지난날이 생각나는지 얼굴에 반그림자가 비쳤고, 입양 보낸 아이에 대한 죄의식과 미안함이 가슴에 어룽져 산모를 마음껏 위로해주지 못하는 듯했다.

그런 그를 보면서 아내는“피곤해 보이니 집에 가서 쉬라”고 오히려 배려했다.

남편의 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그녀는 조리원에서 퇴원한 후에도 새로운 인맥을 쌓아갔다.

조리원 동기들과 육아를 공유하며 동아리 모임을 했고, 그 모임에는 부부가 함께 참석하기도 했다.

그런 현실에 끌려다니면서 그는 과거의 오점을 자신에게 돌리는 듯했다.

어떨 땐 마치 넋이 나간 듯 베란다에 서서 흘러가는 강물을 보면서 눈시울을 적시곤 했다.

어느 날이었다.

나와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그에게 이상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기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가는 그의 뒷모습이 왠지 수상했다.

평소와는 달리 매우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회사에서 오는 전화라고 생각했다.

횟수가 잦아지면서 내가 자꾸만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니까 그녀가 외출한 어느 날,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했다.

그는 입양기관을 통해 몰래 초롱이를 찾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들이 태어나던 날, 7년 전 입양 간 딸아이가 배냇저고리를 입은 채 꿈속에 나타났었고, 그 후로는 학대받는 악몽에 시달린다는 것이었다.

아빠를 부르며 달려오다가 넘어질 때면 자기도 모르게 초롱이를 부르며 벌떡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독일회사를 선택한 이유도 혹시 모를 딸아이를 찾기 위해서였다.

미정이 부모에게서 유럽으로 입양 보내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미 속으로는 생각을 굳혔다고 했다.

‘반드시 성공해서 딸을 찾으리라.’

지금까지 그 마음 하나로 버티었다고 속내를 말했다.

입양기관을 통해 백방으로 찾아도 아이의 행방은 알 길이 없었다.

그러자 그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와인으로 시작하더니 점점 위스키로 주종이 바뀌었다.

오래전 일이라 잊은 줄 알았는데 잊은 것이 아니었다.

아내가 없을 땐 가끔 술에 취해 기타를 치곤 했다.

산울림의 <회상>이라는 노래를 부를 때면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곤 했다.

“길을 걸었지, 누군가 옆에 있다고 느꼈을 땐 나는 알아버렸네∼ 이미 그대 떠난 후라는 걸, 나는 혼자 걷고 있는 거지.

갑자기 바람이 차가워지네∼ 묻지 않았지, 왜 나를 떠났느냐고 하지만 마음 너무 아팠네∼ 이미 그대 돌아 서 있는 걸, 혼자 어쩔 수 없는 거지.

미운 건 오히려 나였어.”

노랫말이 자기 이야기로 들렸는지, 어떨 땐 술에 취해 꺽꺽거리며 “아가야 미안해! ”하며 울기도 했다.

좋은 집, 좋은 직장, 좋은 아내와 좋은 차, 가질 것을 다 가져도 가슴에서 도려낸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빈터였다.

그냥 한 쪽 가슴이 패인 채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

드디어 일이 터지고 말았다.

초롱이가 양부모에게 쫓겨나는 꿈을 꾼 것이다.

어린아이를 발가벗겨 거리로 내쫓는데 큰 덤프트럭이 오고 있었다.

너무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안간힘을 다해 초롱이 이름을 불렀다.

눈을 떠보니 아내의 얼굴이 눈앞에 보였다.

그는 놀라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도대체 초롱이가 누구야? ”

아내의 눈에서 레이저가 쏟아져나왔다.

“초롱이가 왜? ”

그는 벌떡 일어나 화장실을 향했다.

이상하게 요즘 그의 시계는 자꾸만 거꾸로 가고 있었다.

딸의 생각이 자꾸만 밟히기 때문이다.

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당황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설레기만 했던 시간이 이젠 상처로 남아 있었다.

태명을 초롱이로 지은 이유는 미정이의 초롱초롱한 눈 때문이었다.

유난히 예쁜 엄마의 눈을 닮았으면 하는 바람과 건강하게 자랐으면 하는 바람으로 초롱이라 지었었다.

하지만 아들이 태어나면서 비교되는 초롱이의 인생이 아빠의 가슴을 저미고 있는 것이었다.

세상에 비밀은 없었다.

결국, 초롱이의 과거 입양 사실을 아내에게 들키고 말았다.

잠꼬대 사건이 있고 난 뒤, 이상히 여기던 그녀가 다른 사람의 계정으로 SNS에 들어가 초롱이의 갓난아기 사진을 보게 된 것이었다.

그날 이후 부부 사이에는 살얼음이 돋았다.

그녀는 남편에 대한 배신감으로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했고 그는 자신을 너그럽게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그렇게 침묵으로 일관하던 그녀가 작심한 듯 말했다.

당신과 상관없는 아이는 입양할 수 있지만, 당신의 아이를 데리고 와서 키우는 것은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자신이 다이아몬드라 생각했던 보석에 이런 흠집이 있으리라곤 생각을 못 했던 터라 그녀는 자괴감에 빠지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다 말고 붓을 도화지에다 던지고는 벌떡 일어나 미친 사람처럼 차를 몰고 나가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가 아이 찾는 일을 포기할 마음도 전혀 없는 듯했다.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되었다. 주말마다 가던 공연도, 전시회도 가지 않았고, 그녀는 툭하면 아이와 함께 친정으로 갔다. 한번 가면 며칠째 돌아오지도 않았다. 부부는 사랑이 깨지면 남보다 못한 것인지 팽팽한 줄다리기를 계속하더니 드디어 법정에 서고 말았다. 신뢰가 무너져 평생 함께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그녀의 말이 너무 단호했다. 그로서는 반박할 아무런 대책이 없었기에 모든 절차를 변호인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엄마가 키우기로 했고, 대신 양육비를 지급하고 자녀면접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그는 부잣집 딸인 친엄마에게서 아들이 자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하는지 그냥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렇게 그는 두 번째 여자와도 인연이 이어지지 못했다.

그녀와 헤어진 후 이삿짐을 내가 사는 집으로 옮겨왔다. 그의 이삿짐은 정말 간단했다. 노트북과 이민용 트렁크 두 개가 전부였다. 24평의 아파트는 그가 살던 빌라의 3분의 1도 되지 않았다. 방 하나에 짐을 정리한 그는 홀가분해서인지 오히려 더 자유인 같았다. 그는 된장찌개와 고등어구이로 밥 두 공기를 뚝딱했다. 잘 때도 잠옷으로 갈아입지 않았고 외출할 때면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의 운동화를 신었다. 와인을 마셔도 맥주잔에 그냥 부어 마셨다. 잠이 오지 않는 날이면 컴퓨터를 켜 놓은 채 새벽 3시가 넘도록 책상에 앉아 있곤 했다.

삶이 달라지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 생기가 돌고 미소가 번지기 시작한 건 옛 친구 동수를 만나고 오면서였다. 동수는 학창 시절 재벌의 자녀였다. 아버지가 특급호텔의 소유주였고 대 기업의 총수였다. 그는 학창 시절에 파리 유학을 하였기에 더는 만날 수 없었다. 지금은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정권이 바뀌면서 집안이 망해 버렸다. 집안이 풍비박산되면서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형도 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친구가 살 수 있었던 것은 천신을 받았기 때문이라 했다. 어느 날부터 신병이 찾아와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서 신을 모시는 팔자로 바뀐 것이었다.

그 친구는 거의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가끔 옛 친구를 만나거나 자신을 찾는 사람이 있을 때만 서울 나들이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몸이 아파서 견딜 수 없어서 산에서 몇 달씩 기도하면서 보낸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그 친구가 아이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해 준 것이었다. 희망의 빛이 작은 아파트를 채우고 있었다. 그날 이후 그는 더 적극적으로 아이 찾는 일에 매진했다. 자신의 DNA를 온라인 족보 찾기 플랫폼에 등록했다. 어느 날은 아이를 입양 보낸 사람들과 만남도 하고 밤늦게까지 회포를 풀고 집으로 오기도 했다. 입양 보낸 초롱이가 어느 나라에서 사는지 너무 궁금한 것이었다. 입양기관을 통해 정보를 얻으려고 했지만, 어느 기관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국제입양 정보도 공유하면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어느 해 봄날 덴마크에 있는 친구에게서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그 속에는 신문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덴마크에 한국 아이를 입양한 부모가 있는데 7살 계집아이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는 것이다. 눈이 번쩍 뜨여 신문을 펼쳐보았다. 처음 본 여자아이는 우수에 젖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순간, 사진 밑에 쓰인 작은 글씨가 그의 눈을 붙들었다.

‘혹시라도 한국에서 이 아이가 보고 싶은 사람은 마음껏 보세요.’ 가슴에서 전율이 느껴졌다.

그는 무작정 코펜하겐 비행기표를 끊었다. 그리고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가슴에서 뜨는 무지개는 그의 마음을 쉼 없이 뛰게 했다. 밤하늘을 바라보면 하늘에 박힌 별이 그의 마음을 시리게 했다.

코펜하겐에 도착한 그는 신문사의 도움으로 아이를 만나기로 했다. 알록달록한 건물 사이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도시는 마치 어릴 적 동화에서 본 풍경들이었다. 길가에 드리워진 가로수 길을 지나 아이의 집 앞이 가까워질수록 그의 가슴은 널을 뛰고 있었다.

자동차를 집 근처 가로등 밑에 세우고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렸다. 20m 정도 떨어진 곳에 담장도 없이 사방이 정원으로 가꾸어진 그림 같은 집이 눈앞에 펼쳐졌다. 덴마크의 전통가옥을 북유럽의 실내장식으로 세련되게 꾸민 가옥이었다. 집 둘레는 드문드문 삼색 꽃인 덴마크 무궁화가 피어 있었고 현관 입구에는 접시꽃처럼 생긴 란젤랜드 꽃이 그 집 분위기를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그는 흩어져 내리는 숨을 몰아쉬면서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바람도 긴장했는지 가던 길을 멈추었고 덴마크의 하늘도 노을에 젖고 있었다.

중년의 부부가 정원에 세워 둔 탁자에서 차를 마시면서 함박꽃웃음으로 웃고 있었다. 그 곁에는 흰 바탕에 검은 반점 무늬로 보이는 반려견 그레이트데인이 든든하게 서 있었다. 여자는 왼손으로 축 늘어진 반려견의 귀와 등을 연신 쓰다듬고 있었다. 작은 연못에는 대리석 조각들이 저녁놀을 반기듯 물줄기를 내뿜고 마당 한쪽에는 긴 머리에 파란 원피스를 입은 아이가 애착 인형을 안고 잔디밭에서 뛰놀고 있었다. 멀리서 보아도 동양인이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가 평소에 꿈꾸던 장면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그는 넋을 놓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 사이로 지난 7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운명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억울하고 뼛속까지 통증이 전해졌다. 애착 인형을 놓친 아이가 풀줄기에 걸려서 넘어졌다. 파란 원피스를 휘날리며 그가 서 있는 쪽을 향해 뛰어오다가 발에 걸린 것이다. 갑자기 꿈에서 본 그 감정이 솟구쳐올랐다.

‘초롱….’ 그가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중년 부부가 빛의 속도로 와서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순간, 그의 가슴에서는 또 다른 별이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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