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2회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당선작 발표 2024년 12월 1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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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_ 교진(30대 초반의 남성)|상담사(30대 중반의 여성)|노인(60대 남성)|이상(기본적으로 남자지만, 성별도 자아도 없는 형태)
상담사의 병원, 상담실. 교진은 안락해 보이는 1인용 의자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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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진
그녀는 갔어요. 절대 다시 오지 않을 겁니다. 나더러 잘못된 방식의 사고를 지녔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정말 각별했어요. 약혼을 약속했었으니까요.
상담사
그런데, 그녀가 왜 떠났죠? 무슨 일이 있었죠?
교진
그녀는 환경운동가였어요. 지나칠 정도로 심한 환경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었죠. 나더러 환경에 대한 방식이 잘못되었다 지적 했었죠. 그것은 괜찮았어요. 나쁘지 않았죠. 제 생각엔 그녀는 자신이 아는 가장 괜찮은 방식을 저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물론 전 그렇게 생각 안 했지만요.
상담사
그럼 헤어짐이 좋은 선택이 아닌가요?
교진
그렇게 간단한 문제면 상관이 없죠. 저는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어요. 오로지 그녀를 위해서 말이죠.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 그녀의 말이 맞으니까요.
상담사
예를 들면 어떤 것들이 그녀의 말이 정답임을 의미했죠?
교진
사소한 것부터, 대체로 모든 부분이 그랬죠.
상담사
그러니까, 어떤 내용이었나요?
교진
환경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한 것이 유독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녀가 왜 환경운동을 하는 것인지는 제대로 모르지만, 아마도 개인적인 사명감 혹은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 이었던 거 같아요. 그것들은 하나같이 맞는 말이었죠. 인간이 환경을 망쳤고, 다음 세대를 위해 환경운동을 해, 작은 변화라도 일으켜야 한다는 말이에요. 어찌 보면 당연한 것들이죠.
상담사
그녀는 대체로 어떤 환경에 관해 운동했나요?
교진
대기에 관한 것이었죠.
상담사
공기요?
교진
네, 맞아요.
상담사
처음 들어보네요. 자유롭게 말씀해 보세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
교진
그런데, 상담한다고 그녀가 돌아올까요?
상담사
돌아오라고 하는 건 아니니까요.
교진 (한숨 쉬며)
아무튼 그녀는 항상 공기를 아껴야 한다고 말해왔습니다. 심지어 본인은 봉지에 공기를 채워 그것을 나눠 숨을 쉬는 행위도 했었으니까요.
상담사
그게 정상적으로 보였나요?
교진
아니요, 처음엔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죠. 하지만 그렇게까지 공기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녀의 모습을 봤을 땐, 대단하다 생각했죠. 현시대에 보기 힘든 사람이잖아요. 생각만 해도 그 대단한 모습에 따뜻해지네요.
상담사
그녀의 얼굴이 생각나나요?
교진
얼굴이요? 아니요. 전혀 기억나질 않아요.
상담사
언제 마지막으로 보셨나요?
교진
아마도 3일 전쯤이었나, 그랬던 것 같아요.
상담사
그런데, 얼굴이 기억 안 나나요?
교진은 기억하려 애쓰지만, 그녀의 얼굴이 기억나질 않는다.
교진
네.
상담사
이름은요?
교진
모르겠어요. 제 머리가 죽어버린 건가요? 어쩌죠?
상담사
그녀의 향기는 기억나나요?
교진
아뇨. 이상할 정도로 아무런 향이 나지 않았어요. 근데, 그마저도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이니 그러려니 했어요. 문제가 있나요?
상담사
그녀는 문제가 없죠.
교진
그럼, 왜 제가 기억이 안 날까요. 아마도 충격적이었을까요? 이 별이 말이에요.
상담사
추억이 많나요? 주로 어떤 만남을 했죠?
교진
생각나는 건 별로 없어요. 그저, 몇 장면밖엔.
상담사
주로 위치가 어디였죠?
교진
저희 집 뒤 언덕과, 저희 집이요. 대부분 그랬죠. 그런데 지나치게 단편적이에요.
상담사
혹시 그녀는 주로 어떤 말들을 자주 했나요?
교진
단어로는 기억이 나는데.
상담사
어떤 거죠?
교진
공기, 자연, 숨쉬기. 이런 것들요.
상담사
혹시 그녀가 원래부터 없었던 것이라면 어떨 것 같으세요?
교진
모르던 사이요?
상담사
아니요. 존재 자체가 없었더라면요.
교진은 생각에 잠겼다.
교진
그럼, 전 아마도 살 이유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저에게 그녀는 전부였죠. 모든 것을 함께하자고 했으니까요.
상담사
얼굴도, 추억도 별로 없다면서요.
교진
그래도 느낄 수는 있잖아요.
상담사
기억에도 없고, 이름도 모른다고 하시면, 어떻게 생각이 드세요?
교진
제가 미쳤다고 생각하세요?
상담사
아픈 거죠. 미친 것이 아니라.
교진
환자 취급을 하시네요. 전혀 아프지 않습니다. 그저 그녀가 기억나지 않는 것뿐입니다.
상담사
지금 들어봤을 땐, 그녀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어요.
교진
(당황해하며)
교진은 여전히 존재 여부를 믿고 있었다.
2
작은 공원. 교진은 머리를 식히러 상담 후 공원으로 갔다.
노인
자네, 무슨 고민 있나? 젊은 청년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말 이야.
교진
죄송합니다.
노인
죄송할 건 없지. 무슨 문제가 있는가?
교진
아뇨. 없습니다.
노인
있는 거 같은데?
교진
사실은 있습니다.
노인
뭔가, 내 아무리 나이가 들어 늙었지만, 삶에 지혜는 그만큼 쌓여 있는 사람이네.
교진
어르신은 보이지 않는 것의 존재를 믿은 적이 있으신가요?
노인
신에 대한 얘기인가?
교진
아뇨. 전혀 아닙니다. 그저 존재 자체를 말하는 겁니다.
노인
그런 적이 당연히 있지. 우리 할멈이 죽었을 때 나는 할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것에 빠져 어딘가 존재한다고 믿었지.
교진
환각 상태였나요?
노인
그렇다고 봐야지.
교진
그럼 미친 거 아닌가요?
노인
미친 거지. 할멈은 없었으니까. 근데 그 미쳐있는 상황이 너무나 좋았지. 가끔은 세상에서 완전히 벗어나 존재하지 않는 것들과 사는 것이 더욱 즐거울 때가 있다네.
교진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정신 이상자나, 사회 부적응자로 구분하지 않나요?
노인
때로는 그렇다네. 자네의 의지나 성향은 판단하지 않고 인간은 그저 시각적인 것에만 집착해 구분을 짓는 습성이 있지.
교진
그럴 땐 어떻게 하셨어요?
노인
더 소중한 현상을 택했지. 가끔은 또 다른 자아를 만들면서도 말이야.
교진
전 살아야 해요. 부적응자로 남으면 모두가 절 등질 겁니다.
노인은 아무 말 없이 교진을 바라본다. 교진은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노인
불안한가? 자네가 미친 사람이 될까 봐서?
교진
네, 다들 이미 저를 미친 사람 취급한단 말입니다.
노인
자네는 어떤 것들을 보나?
교진
약혼녀와 강아지요.
노인
그들이 죽었나?
교진
모르겠어요. 저는 3일 전에도 그녀를 봤었는데, 상담사는 제가 환각을 보고 있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노인
어느 부분에서?
교진
저는 그녀의 이름도, 제가 키우던 강아지의 이름도 기억을 못하고 있죠.
노인
자네의 이름은 알고 있네.
교진
그건 알고 있습니다.
노인
완전히 미친 상태는 아니구만.
교진
별로 큰 위로가 되진 않는 말이네요.
노인
자네의 시선에 최대한 차분히 느껴지는대로 대해 봐.
3
교진의 집. 교진은 의식의 흐름에 기댄다.
교진
없나? 거기 있어?
이상
원래 없는 거야. 존재하지 않았잖아. 모든 걸 넌 알고 있잖아. 그저 너의 착각이라는 것을 말이야.
교진
없구나, 왜 이렇게 된 거지?
이상
넌 원래 그랬어. 그냥 아팠던 거지.
교진
무슨 일이 있었지?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던 건가? 있었겠지. 특별히 대단하진 않아도 말이야. 아닌가, 아프지 않았던 건 아니었을까? 그저 꾀병? 존재의 부정인가? 억지로 선택된 것. 혹은 그저 나 자신을 부정해서 만들어 버린 또 다른 존재? 그것도 아니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변질된걸까? 통증? 통증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질까? 아니면 자아들만 온전히 사라질까. 그냥 그런대로 살까? 특별함 없이? 그럼 괜찮잖아. 맞아, 괜찮아지지. 근데 그럼 돈은 누가 벌지? 내가 벌어야 하는데, 다른 자아에 기대볼까? 미쳤다고 말하겠지. 그건 두려운데 말이야. 두렵다고 회피하면 나를 학대하는 게 되려나? 존재들은 다 헛이었나? 진실 아니던가. 진실이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인정하기 싫었던 걸까? 뭐가 진실이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게 진정한 믿음이라던데 이것은 진정한 어둠인 것처럼 판단되는 이유가 뭐지? 다른 사람들의 믿음이 부족했던 탓일까?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해. 근데 그럴 수도 없어, 그들이 구원 받으면 내가 구원받을 자리가 부족할 거야, 근데 같이 가고 싶기도 해. 그래야 기뻐할 거야. 모든 것들이. (숨을 고르며) 자연으로 돌아갈까? 자연은 아름답겠지. 나는 그렇지 않으니 혼자 너무 튀면 어쩌지? 괜찮을까? 괜찮겠지. 별 일 아니잖아. 근데 왜 다들 나에게 미쳤다고 하지? 미쳤다고 인정해 버리고 입원할까? 병원비는 누가 내지? 부모님은 이제 능력이 없는데 말이야.
이상
착각이야 전부.
교진
너의 존재가 착각 속 자유란 걸 알아. 난 그러고 싶지 않지. 그러고 싶을 수도 있고, 근데 아픈 사람 취급받는 건 싫은데 왜 너마저 보일까? 미친 게 맞겠지? 맞을 거야. 특별한 거지? 미치는 건 말이야. 아니, 미친 건 미친 거지 뭐가 특별해 딱히 좋은 것도 아닌데 말이야. 흔적은 어디에도 없나? 작은 것도? 그럼 그냥 있는 척 살까? 아르바이트라도 고용해서? 근데 그럼 또 거짓이잖아. 그럼 다시 구원받지 못하는 거잖아. 그냥 만족할까? 순수함이라는 무식한 단어를 꺼내서 말이야. 근데 왜 상담사는 미쳐 있는 나에게 굳이 시간을 할애했을까? 사랑이었나? 아니면 연민? 동정? 젠장, 그런 건 너무 싫어. 상담사의 그런 작위적인 표정을 보는 건 너무 큰 곤욕이야. 그걸 견뎌야 하나? 아니면 병원을 옮길까?
교진은 자신과 자신이 말했던 존재들의 흔적을 찾고 있다.
이상
그대로 둬.
교진
이상해 보이잖아. 이상한 건 너무 싫어. 그건 너무 개인적이야. 내 개인주의적 성향을 모두 인정하는 셈이잖아. 사람들은 나에게 약점 삼을 거야. 내가 그럼 사라져야 하나? 자연으로? 아니면 그냥 죽음으로? 어디로. 갈 곳이 없네? 집에 있을까? 그럼, 돈은 누가 벌어? 돈은 얼마나 있어야 하지? 아무것도 안 할 거면 말이야. 난 파이어족이 되길 원했나? 아닌데, 죽을 때까지 일하고 싶은데 말이야. 근데 또 일은 너무 싫어, 상사의 잔소리는 너무 진해. 멸치 육수 같달까. 내가 그 우려진 멸치? 그냥 한번 때려버릴걸, 너무 후회돼.
이상
넌 그냥 미친 거야.
교진
전혀. 아픈거야. 그저 감기 같은. 낫겠지. 아니지, 정신이 아픈 건 절대 낫지 않지. 안그래? 나을 가능성이 너무 적은 거같애. 아까 그 노인을 봤잖아. 노인은 점점 이상한 소리를 했어. 노인도 내 말을 듣고 그렇게 느꼈을까? 망했어. 아마도 노인은 내 얘기를 하고 다닐 거야. 내 비밀인 그 얘기를 어딘가에서 알아내라고 시킨 미친 노인. 말하지 말 걸 그랬어. 아닌가, 혹시 노인도 내가 만들어 버린 착각 속 자아인가? 근데 너무 선명해. 아니지 선명하지 않지. 늙어서 흘러버린 얼굴 때문일까?
이상
너도 이제 존재하지 않잖아.
교진
나? 자신도? 그럴지도 몰라 아마도 나는 나를 지워가고 있는 거야. 그럴 거야. 그래야만 지금 이 고통들이 정당화 되잖아. 이건 혹시 가스라이팅? 에이, 스스로를 어떻게 가스라이팅해? 내가 나를 속이는 거잖아. 가당치 않아. 아니지 그런 사람들이 많잖아. 약간 허언증? 비슷하지, 그게 나쁜 건가? 나쁘지, 아니 나쁘지 않지. 선의의 거짓말 같은 것들이 있잖아. 분명 상담사는 내 선의의 거짓말을 너무 잘못이라 정의한 거 아니야? 진짜 너무하네, 사람이 어쩜 그렇게 할 수가 있지? 젠장, 약이나 쥐여주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날, 마치 죄인 취급해 스스로를 비열하게 만들었어. 젠장.
이상
너 스스로도 사라져가.
교진
아니야. 난 안개 속에 갇히지 않아. 안개는 너무 어둡잖아. 아니야 하얀 거 아니야? 그게 거짓이야? 진실이야? 아무것도 아닌 가? 아무것도 아니겠지,. 그게 진실이지. 뭐. 이어서, 다음 문제는 뭐지? 뭐긴 뭐야 내가 문제지. 사라지고 있어, 존재하고 있나? 다시 태어나? 삶은 영원해? 아니지 사후세계가 영원하지, 이 땅의 시간은 고작 우주의 시간으로 4초라고, 난 그저 4초를 사는데, 왜 이렇게까지 집착하며 사는 거지? 후회돼. 차라리 사라지는 게 좋긴 할 거야. 아니야, 사라지면 비참하지. 비참함도 즐겨야 해?
이상
사라져. 차라리.
교진은 점점 자신을 잃어간다. 자신의 흔적들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교진
사라지는 건 방법이 뭔데? 죽음? 죽음은 회피잖아. 또, 그것은 진정한 인간의 완성일까? 사라지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청신호?
이상
그럴 수도 있지.
교진
그렇다면 가능하지. 사라지는 것이. 온전히 사라지고 완전히 다시 존재할 수 있다면 말이야. 그럼 내 미치광이 행동과 생각들이 사라지나?
이상
그건 불가능해. 그건 모든 기억이 사라져야 하지.
교진
붕괴되 버렸어. 건물이 부서지는 것처럼 말이야. 즐겨야 해. (큰 소리로) 인간의 붕괴, 붕괴, 붕괴. (흐느끼며) 탄생? 이제 탄생이야.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해. 웃기지 마. 아직 모든게 사라지지도 태어나지도 않았잖아. 미친 거야 미쳤을걸, 미쳐가. 사라져. 연기처럼, 안개 속에 숨을까? 숨으면 보이려나? 보이면 실루엣? 아니면 그냥 자체로 다 보이나? 투명해? 불투명? 그 속에 나는 밖이 보이나? 보이겠지, 안개가 사라지면 말이야. 사라질까? 사라지면 또 그 안개마저 그리울까? 그리우면 또 소용돌이 속에 갇혀볼까, 잊어볼까, 잃어버리면 찾나? 찾지 마? 새로 살까? 나 마저도 이상한가, 요동치나, 매달릴까? 어디에? 환각에 말이야. 그건 비참하다니까? 그것마저 내가 합의해야 해? 합의가 나을까 아니면 전부 이해하는 게 나을까. 죽여버려, 나마저. 살려줘, 나를 위해. 진정해. 진정한 난 누구인가.
이상
지배된 인간.
교진
지배? 지배 안에 내가 있어? 아니면 지배만 온전히 남아 있어?
이상
그게 중요해?
교진
중요하지, 그것이 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잖아. 왜 기만해, 난 나를 기만했어. 아니야, 진실된 것일 수밖에 없어. 아니야. 그럼, 뭐지? 아니야. 전부 다 미쳐버려. 없는 것들에 집착했나? 일산 화 중독? 난 공기 중에 떠버렸나? 공기는 소중한데 나는 부족했나? 집이 문제야? 이사를 해야 해. 아니지, 공원에 가면 숨이 트이나? 거기서도 마찬가지였지. 이젠 그만둬. 제발, 그만해. 사야 해. 공기를, 기본 제공 아니야? 기본 제공이지, 누릴까? 아니면 감사함으로 포장해? 포장은 좋지 않은 나를 새로 만들 텐데 말 이야. 이상해. 괜찮지만 말이야. 기대하지 마, 이상하잖아. 우리는 영원히 가까이 살잖아. 나와 너도 마찬가지로.
이상
하지만 다르지.
교진
다르지 않아. 다르다고 여기면 분열되잖아. 지켜줘. 스스로 지켜야만 해. 그게 나를 위한 온전함이야. 우리는 그대로, 우리는 변화를 어딘가 우리는 이상한 진실을 거짓을 만들어내, 신이 될 수 있어? 아니. 전혀 없어, 신이 되면 행복하겠지, 창조주 잖아. 아니, 너 같은 악이 지배하는 땅을 바라보는 시선은 비관적이야. 괜찮아, 신도 한땐 인간인 순간이 있었잖아. 아니야 애초에 신이 었지. 그게 진실이야 온전해. 나는 자유를 바라나? 무슨 자유? 왜? 굳이? 피곤해. 이게 스트레스? 선생님이 현명했어. 그게 맞잖아. 우리는 이대로 우리는 어디로.
이상
그만해.
교진
됐어. 난 중독됐어. 아닐 수도 있어. 그냥 이런 것일 수도? 어쩌면 태어나지 않았을지도 우리의 충격은 누가 감당해? 오로지 나만, 이 사회는 날 외면했어. 외면한 사회는 현시대 청년들의 모든 고민이었나? 아니면, 고민 따위 하지 않는 늙은이들의 발악? 어디서 오나? 자유? 혹은 갇힘은? 버려야지. 전부 다 살고 싶어. 자유로워 이젠, 더이상은 없어. 인정하자. 간단하잖아. 다들 미쳤다 하니 미친 사람으로 기억할게. 나 자신을 이 세상 언저리 에, 선에서 자유를 찾자, 어디로 갔나.
이상
그만해.
교진
찾았다. 안개, 거짓, 진실.
4
상담사의 병원 상담실. 상담사는 교진의 진료 준비를 한다.
교진
안녕하세요?
상담사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교진
모진 말이네요. 잘 지냈냐니요? 저더러 미쳤다 하셨잖아요?
상담사
확정하진 않았습니다.
교진
모순이죠. 결국 미쳤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아닌 척하는 것 자체가요. 저는 알고 있었어요. 선생님의 눈을 보고요.
상담사
그렇게 말하면 마음이 좀 편한가요?
교진
아니요. 불편하죠. 그런데 전 찾았습니다. 모든 것을 말입니다.
상담사
모든 것이요? 어떤? 교진 선생님이 찾으라던, 상담사 흔적들이요?
교진
그 안에 내재된 미천한 미친 인간의 진실한 내면과 마주함이요.
상담사
그렇게 말씀드린 적이 없습니다.
교진
그녀는 없었죠. 이젠 알겠어요. 없었어요. 애초에, 시원하세요?
상담사
네? 없었다고요?
교진
없었죠. 그저 내 환각인 걸 알잖아요. 그걸 원하잖아요. 선생님은 내가 병원에 자주 나와 본인의 지갑을 채우길 원하겠지만, 한 단계 위에 서 있는 내가 그걸 깨달아 버렸죠. 어쩌죠? 오늘이 지갑을 채우주는 마지막 날인데 말입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대단한가요? 인간에 대해 모든 걸 아는 듯 자랑하는 그 직업 말입니다. 선생님은 날 조정했죠. 인정하라는 암묵적 단어들로 가려서 말이죠. 그런데 알겠다니까요. 미쳐버렸죠. 현실에서 버티기 위해서 사람들의 시선 따위 눈치 보지 않으려 말입니다.
상담사
왜 그러세요. 저는 그렇게 말씀드린 적이 없습니다. 자아 분열을 겪으셨나요?
교진
찾은 거죠. 직면한 거죠. 분열이란 단어도 언짢네요. 그 말은 오로지 내 스스로만 도출할 수 있는데 말이죠.
상담사
그럼 상담엔 왜 오셨나요?
교진
그 오만함을 깨지게 하려고요. 당신의 그 대단한 오만을.
상담사
감사하네요. 배울 게 있네요.
교진 (언성을 높이며)
또, 또 오만함. 거짓된 오만한 말투를 고치세요. 분명히 당신의 발목을 잡을 겁니다. 당신은 더 많은 것을 공부했다고 인간을 모두 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오산입니다.
상담사
명심할게요. 그래도 자아 분열은 약 처방이 나가야 합니다.
교진
저번엔 왜 주지 않으셨죠? 약 처방을 하지 않으셨죠?
상담사
흔적들을 찾은 뒤, 결론을 짓기 위함이었죠.
교진
사실은 알고 있었던 거잖아요. 그냥 온전히 나를 이해하는 척하고 싶었던 모양이죠. (약간 긴 숨을 쉬며) 이해… 이해라는 단어 참 우습죠. 당신은 내가 당신을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아니, 당신도 아마 이 단어를 날 무기로 삼아 내게 던졌겠지. 이해하라고. 내가 얼마나 미쳐 있는지, 내가 얼마나 내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지, 당신이 알고 있다는 그 대단한 지식으로 나를 통제하려 한 거잖아. 우린 다 알고 있어요, 그렇지 않나요? 나는 이해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원하는 건 이해가 아니었거든. 난 구원이 필요했죠. 하지만 구원이라는 단어도 어쩐지 너무 뻔한, 너무나도 유치한 단어처럼 느껴져. 구원이 뭐라고? 내가 구원받길 원한다면, 그건 당신이 날 구원해 줄 수 있다는 뜻인가? 아니, 그건 오만함이야. 당신이 할 수 없다는 걸 난 알아. 그래서 여기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나 자신을 벗어나고, 이 무의미한 상담을 벗어나고, 그 미친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죠. 근데, 참으로 웃긴 건, 그 미친 세상에서 도망치는 것보다 더 미친 건 내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어요. 내가 미쳤어. 아니, 내가 미치지 않은 거였나? 뭐가 진짜였던 거지? 이젠 그 경계를 찾기가 너무 힘들어요. (잠시 고개를 숙이며) 난 내가 미쳤다고 느낄 때마다 뭔가 가벼워져. 당신은 미친 걸 두려워하겠지, 그게 정상인 것처럼 보이니까. 사람들은 미친 사람을 다들 피하니까. 그렇지 않나요? 그런데 나를 봐요. 이 미친 상태가 때로는 나를 자유롭게 해요. 한순간도 잡히지 않는 자유 말이에요. 나는 뭘 해도 괜찮아졌어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어떻게 생각하든지 이제 상관없어요. 내가 그들을 이해할 필요도, 그들이 날 이해할 필요도 없어졌으니까. 그래서 내가 여기 왜 온 걸까? 왜 나는 이 상담실에 계속 앉아 있는 걸까? 뭘 기대했지? 뭘 원했나? 당신이 나를 치유할 거라고, 이 미친 상태에서 나를 끌어내 줄 거라고? 그런 건 바란 적 없어. 그저 나는 확인하고 싶었어요. 나의 진실을. 당신의 대답에서, 당신의 눈빛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미쳤는지 확인하고 싶었어. 근데 이상하게도 그게 나쁘지 않았어요. 당신이 날 미쳤다고 확정 짓는 그 순간조차도 말이죠. 그러니까, 왜 우리는 진실을 그렇게 두려워할까? 진실이 우리를 자유롭게 해줄 거라고 믿으면서도, 그 진실에 너무 겁먹지 않나요? 난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아. 진실을 마주하는 게 나를 미치게 할 수 있다면, 그게 더 나은 거라고 생각해. 차라리 그게 나은 거야. 그래야 이 불확실함 속에서 끝없이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으니까. (웃음 섞인 한숨을 내쉬며) 그러고 보니, 그 진실이란 게 대체 뭘까? 내가 미쳤다는 것? 그게 진실이라고? 그건 너무 간단하지 않아? 우리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 얼마나 부질없는지 생각해 봤어?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게 사실은 그저 만들어낸 이야기일 뿐이라면? 그게 우리 모두를 속이는 방식이라면? 그런데 당신은 그렇게 대단한 지식을 가지고도 내가 미쳤다고 확정해 버리겠죠. 당신의 책에 적혀 있는, 당신의 진단에 맞춘 정의에서 날 끼워 맞추겠죠. 당신은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내가 찾은 진실은 달라요. 내 진실은 당신의 진실과는 달라요. 내가 내린 결론은, 이 세상에선 누가 미쳤고 누가 정상인지를 규정할 수 없다는 거예요. 모두가 자기만의 진실을 가지고 있고, 그 진실 안에서 살고 있어요. 내가 미쳤다고 한다면, 그건 내가 내 진실 안에서 나를 인정하는 것뿐이에요. 당신이 나를 어떻게 진단하든 상관없어요. 나는 이미 나를 찾았고, 나를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다시 물어보겠어요. 왜 나는 여전히 이 상담실에 앉아 당신과 대화하고 있는 걸까요? 당신은 대답할 수 있나요? 아니면 또 무언가 새로운 진단을 내리려고 할 건가요? 당신이 말해봐요. 내가 여기에 앉아 있는 이유를. (잠시 침묵) 사실, 난 당신의 대답을 듣고 싶은 게 아닐지도 몰라요. 내가 원하는 건 대답이 아니라, 그냥 확인. 확인이었어요. 내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 내가 나를 얼마나 잃어버렸는지, 그리고 내가 그 모든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졌는지를 말이죠.
상담사
그렇군요. 사과를 드려야 할까요?
교진
필요 없어요. 그건 당신의 마음이죠. 자유하세요. 굳이 그대로 있는 대로 말입니다. (생선을 두며) 이것이 저와 가장 비슷해 가져왔습니다.
교진은 연실 토로해댔다. 교진은 집에서 자신과 가장 비슷한 생선을 상담사의 책상에 두고, 밖으로 나갔다.
-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