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회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당선작 2024년 09월 1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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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콩콩콩.
버스 안 유리창에 나방 한 마리가 몸을 이리저리 부딪히고 있었습니다. 콩콩콩콩.
이번에는 제 머리로 더 세게 들이박기 시작했습니다. 소란스러운 장면은 곧 운전석 뒤편, 세 번째 자리에 앉아 있던 한 소년의 눈에도 들어왔습니다.
벌써 수 분째 머리 콩콩 비행으로 어지러울 만도 할 나방은 점점 더 거친 날갯짓을 보였습니다. 바로 제 한 칸 앞 창문에서 벌어지는 이 성가신 상황에 소년은 자꾸만 시선이 가다 어느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니, 저기서 왜 저러고 있지? ’
‘거긴 유리창이야! 그리로는 못 나간다고! ’
소년은 있는 힘껏 미간을 조여서라도 그 강렬한 경고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했고, 앞쪽 승차문이 열렸습니다. 하나둘씩 사람들이 올라타느라 문이 꽤 오래 열려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저 문으로 나가! ’
애타는 마음에 소년은 이번에는 양쪽 눈 동공을 크게 해 고개를 여러 번 문 쪽 방향으로 돌렸습니다.
그러나 다시 부질없는 콩콩콩콩.
나방은 계속 같은 자리에서 의미 없는 동작만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소년은 이제 화까지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거기 말고 그 반대, 반대쪼옥! ’
그렇게 소년은 온 눈빛을 다해 외치고 있었지만 불행히도 나방은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잔뜩 실망한 소년은 더는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의미로 고개를 확 떨궜습니다.
찌르륵 찌르륵.
갑자기 왼편에서 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려보니 아까 그 나방이었습니다. 어느새 소년이 앉은 곳까지 넘어와 그 옆 창에 떡하니 자리를 잡아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불쑥 작은 소리가 이어졌습니다.
“찌지지직…(나 좀 도와줘…).”
몸을 베베 꼬는 그 애처로운 몸짓만으로도 소년은 어쩐지 그 말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한 번 더 인심 쓰는 눈초리로 말했습니다.
‘너 그 미련한 유리창 박치기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찌지지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
“그러니까∼ 찌지… 엇? 뭐? ”
맙소사! 어느새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분명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려봤는데 다른 좌석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이 상황을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다시 작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 아무래도 좀 다친 것 같아.”
소년은 안타까운 마음에 괜히 핀잔을 주었습니다.
“거 봐, 그렇게는 안 된다고. 거긴 문이 닫혀 있고, 그게 열려야 나갈 수 있어.”
그러자 답답한 듯 나방이 물었습니다.
“왜? 저기 나무가 이렇게 눈앞에 딱 보이는데.”
아무래도 더 설명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하아… 그건 유리창이야, 꽉 막혀 있다고. 아무리 네 눈에 저 나무가 보여도 그건 유리라는 창에 막혀 있고, 그건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거라고.”
소년은 조급함에 손을 창문 손잡이로 뻗었습니다. 그렇게도 몹시 나방을 밖으로 내보내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양손으로 손잡이를 꽉 잡아 가슴 쪽으로 힘껏 당겼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창문이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어? 잠시만 이게 왜 안 되지? ”
소년은 몹시 당황했습니다.
“치지짓.”
실망한 나방은 가만히 두 날개를 뒷짐 지듯 등 뒤로 내렸습니다. 민망함에 잠시 서먹해진 사이, 소년은 가만히 옆에 있는 녀석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제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에 이등변 삼각형 모양의 형태. 꼭 미지의 세계로 비행을 준비하는 우주선같이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칙칙한 그 색깔이었습니다. 나비만큼 산뜻하지 못한 그 색이 그동안 사람들의 호감을 사지 못했던 것 같았습니다. 소년은 그렇게 조금씩 그 요 상한 생물체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정적을 깨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안녕! ”
깜짝 놀란 소년은 이왕 이렇게 된 김에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근데 여기 어떻게 들어왔어? 너는 밤에 사는 곤충이잖아. 지금은 환 한낮이라고.”
나방은 두 날개를 아래위로 여유롭게 흔들며 말했습니다.
“난 이 마을버스 종점인 달맞이공원 숲속에 살아.”
뚱딴지같은 소리에 소년이 다시 물었습니다.
“아니, 여기 어떻게 들어왔냐니까? ”
나방은 이번엔 한쪽 날개를 새침하게 한번 위로 올렸다 내리더니 말을 이었습니다.
“간밤에 그 종점에서 헤드라이트가 환하게 들어왔거든. 깜빡깜빡 윙크하듯 예쁘게. 그래서 그 빛에 취해 들어왔다가 이렇게 갇혀버렸지. 나는 모험을 좋아하거든. 형을 닮아서 그래.”
소년이 다시 물었습니다.
“너 형이 있어? ”
녀석은 잔뜩 풀이 죽어 말했습니다.
“응. 지금은 없지만.”
“지금은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
그때 하차를 알리는 안내방송이 들려왔습니다.
“이번 정류장은 햇빛아파트, 햇빛아파트입니다.”
소년은 원래 거기서 내려야 했지만, 그 얘기가 궁금해 더 가보기로 했습니다.
“너 언제 내려? 시간이 있다면, 잠시 우리 형 얘기를 해줄까? ”
“그래! 나도 종점까지 가.”
녀석은 그렇게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그동안 이렇게 나를 도와주려 한 사람은 네가 처음이거든. 보통 나를 보면 소리치며 도망치거나 어떻게든 죽이려고 하지. 근데 너는 그냥 나를 가만히 지켜봐 줬어. 살아 있도록.”
소년은 놀라 대답했습니다.
“그야 당연하지! 물론 나도 처음엔 놀라긴 했지만, 가만히 지켜보는 건 당연한 일이지. 네가 나에게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았는데.”
나방은 다시 유리창에 몸을 착 붙인 채 말했습니다.
“형은 사람들을 참 좋아했어.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과는 반대로. 자존심도 없지. 그래서 버스가 종점에 도착하는 밤이면 엄마 몰래 슬금슬금 나가곤 했어. 그렇게 버스에 올라 가만히 기다리다 보면 곧 아침이 되거든. 그때부터 여행을 떠나는 거야. 형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빛이 가득한 곳으로.”
‘여행’이라는 단어에 녀석은 조금 흐뭇해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형이 자꾸 시내로 나가는 걸 무척 싫어하셨어. 물론 사람들 때문이지. 엄마는 우리에게 늘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하셨거든. 아무리 좋아도 멀리 떨어져서 바라봐야 한다고. 우린 그런 존재들이라고.”
소년은 갑자기 서글퍼져 물었습니다.
“그래서 형은 어떻게 된 거야? ”
녀석은 덤덤히 대답했습니다.
“죽었어. 아까 저 자리에서.”
잠시 생긴 침묵을 깨고 다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어느 날, 그날따라 밤에 나가는 형이 몹시 궁금해진 거야. 그래서 형 몰래 살짝 뒤따라갔지. 그렇게 무사히 버스에 올라 난 저 구석에 자리를 잡았어. 버스가 출발하고 한참을 가는데, 처음엔 별 특별한 게 없어 보였어. 형은 오늘처럼 저 유리창에 가만히 붙어 있었거든.”
소년은 의아한 표정으로 계속 들었습니다.
“몇 정거장 지나 문이 열렸고, 그때 한 커플이 탄 거야. 덩치가 형의 수천 배는 더 돼 보이는. 그리곤 남자가 성큼 저쪽 자리로 가더니 여자를 자리에 앉도록 배려해줬어. 다정해 보였지. 그런데 우아하게 좌석에 앉으려던 여자가 마침 유리창에 붙어 있던 형을 발견한 거야. 그리곤 곧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어. ‘꺄악 꺄악’하면서.”
그 장면이 상상된 소년은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곧 곁에 있던 남자가‘어디 어디’ 하며 두리번거렸고, 형을 발견하자 즉시 커다란 손을 위협적으로 들어 올렸어.”
더는 힘들었던지 그는 여기서 다시 숨을 골랐습니다.
“그리곤 세차게 바닥으로 내려쳤어. 순간 형은 발아래로 곤두박질쳤고 나는 너무 놀라 계속 소리쳤어. 형! 피해! 도망쳐! 그런데 기절한 형이 듣지 못하는 것 같아 나는 얼른 그 남자 얼굴에 달려들었어. ‘헤치지 않아요. 헤치지 않아요. 그러니 제발 죽이지 말아주세요’ 하면서….”
“그런데 그 남자는 더욱 흥분해서 바닥에 쓰러져 있는 형을 찾더니 발바닥을 들어….”
거기서부터는 더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습니다.
“밟았어.”
녀석은 그렇게 힘겹게 이야기를 마쳤고, 소년은 그저 그 자리에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것밖에 다른 말을 해줄 수 없었습니다.
어느새 버스는 종점에 도착했고, 밤을 맞은 창밖이 캄캄했습니다. 스르륵 뒷문이 열리자 저 멀리서 하얀 달빛이 들어왔습니다. 햇빛만큼 쨍하진 않지만 은은하고 따스한.
나방은 그 빛을 통해 뭔가 길을 찾은 듯했고, 천천히 출구로 다가갔습 니다. 그리곤 마지막 말을 남기며 우주선같이 멋진 날개를 들어 올렸니다.
“알아. 우리가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걸. 그래서 우리도 낮을 피해 밤에 살아. 그러니 부디 헤치지 말고 멀어질 수 있도록 도와줘. 그저 손을 한번 휘이 젓는 것만으로도 좋으니.”
나방은 그렇게 밤을 가르며 날아갔고, 소년도 따라 내렸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문득 하늘에 높이 뜬 달을 바라봤습니다. 하얀 원형 위에 살짝 그을린 무늬가 꼭 아까 그 나방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저기까지 간 걸까? ’
그리곤 조금 전 헤어진 그 친구에게 이름을 붙여줬습니다. 달빛, 나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