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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애

책 제목171회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당선작 2024년 09월 1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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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042.신인상_김정애

오랜만에 고향 바닷가를 찾으니 만감이 교차한다. 바다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아름답다. 지금은 없지만 어린 시절 바다 주변에 유채밭과 보리밭이 있었다. 파란 하늘 아래 노란 유채밭을 지나가는 바람의 색깔은 왠지 노란색일 것 같고 청보리밭을 지나는 바람은 연둣빛일 것 같은 바닷가 풍경이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바닷물 속에 숨어 있던 작은 섬들이 차츰 드러나는 바다를 보노라니 잊혀졌던 기억 중 하나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되살아난다. 넓은 갯벌을 가로질러 이웃 마을을 향해 맹렬한 기세로 쳐들어가던 해녀들의 행렬. 어릴 때 이 바닷가에서 보았던 바당*싸움 장면이 느닷없이 떠오른 건 날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날도 바다는 오늘처럼 눈이 부셨고 썰물이 빠져서 드러나는 드넓은 갯벌은 이웃 마을 해안에 이어져 있었다.
인접한 두 마을 사이에는 해묵은 분쟁이 있었다. 싸움의 시작은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2차대전의 말기 수많은 군함이 폭침되면서 군인들의 시체는 파도 따라 어느 해변이든 가리지 않고 밀려왔다. 시체가 잘 떠오르는 곳이 이웃 마을 바다가 분명하건만 자기네 바다가 아니라고 하도 억지를 부리니 마을 사람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밀려온 시체를 치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바다의 경계가 불분명하여 목소리가 큰 쪽 이 우기면 그게 법이 되던 시절이라 골치 아픈 일을 처리할 바다의 경계는 이렇게 정해졌다.
가끔은 흉도 굴러들어 온 복이 되는 수가 있다. 미련해서 억지로 떠맡은 바다가 그랬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전쟁도 끝이 나고 해방이 되자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제야 자신들의 어장이 좁아졌다는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이웃 마을은 바다를 돌려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해산물 수입에 의존하고 사는 입장에서 바다의 넓이는 주민의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분쟁은 격화되었다. 결국 오랜 다툼 끝에 우리 마을에서 바다를 조금 내놓고 공동작업장을 마련했다. 그 이외 지역은 서로 침범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사람들은 그곳을‘공동바당’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원래 끝이 없는 법이다. 그들은 공동바당에 만족하지 못했다. 같이 먹고 살자는 선의는 무시되었고 자주 침범하여 해산물을 채취 해갔다.
그날 일어난 싸움도 공동바당을 지나 경계를 넘어와서 미역을 대량으로 채취해 갔기 때문이었다. 분노한 해녀들과 마을 사람들이 돌진했고 여러 사람이 다치는 큰 싸움으로 번졌다. 훗날 ‘바당싸움’이라 부를 는 이 분쟁은 법정까지 가게 되었는데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당연히 우리마을이 승소했고 공동바당은 원천무효가 되었다. 바다의 경계도 자기들이 예전에 주장했던 시점을 기준으로 결정되었다. 궂은 일 피하려고 잔꾀를 부렸다가 스스로 생존권을 제한하게 된 치명적 판결이었다.
바다가 어린 나에게는 물장구치던 놀이터에 불과했지만 어른들에게는 그만큼 목숨 걸고 지켜야 했던 삶의 터전이었고 치열한 생존경쟁의 전쟁터였다. 그로부터 거의 6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고 그 전쟁터는 지금 너무나 평화롭다. 바다는 날마다 찾아가는 이들을 빈손에 보내는 법이 없다. 소라든 문어든 미역이든 뭐라도 손에 들려 보내 주는 고마운 존재다.
나 역시 바닷가 아이들이 그러하듯이 물질을 배우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숨비소리 낼 줄도 알고 자맥질도 할 줄 안다. 하지만 물속에서 숨을 참았다가 내쉬는 숨비소리는 단순히 숨을 내쉬는 소리가 아니고 바로 생명줄이 이어지는 소리라는 걸 깨달을 무렵 나는 바다를 떠났다. 어머니는 딸들에게 고된 물질 대신 공부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내 친구들은 여전히 물질을 배우며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았지만 남보다 일찍 깬 어머니를 둔 덕에 나는 평생 바다와 무관한 일을 하며 살았고 오늘날까지 국가의 혜택을 받게 되었다.
바다가 없었다면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을까? 바다가 어머니에게 값없이 내주는 것들은 내가 먹을 음식이 되었고, 생활비가 되었고 학비가 되었다. 바다를 떠난 나를 키운 것도 결국 바다인 셈이다. 끊임없이 생명을 잉태하여 인간을 먹여 살리는 바다를 두고 주인 노릇을 하며 서로 자기네 거라고 우기던 주장이 참으로 무색하다. 바다는 누구의 것도 아니다. 세상 모든 사람을 품고 키우는 넓은 품일 뿐이다.
나는 지금 어머니처럼 넓은 품을 마주하고 서 있다. 다시 돌아와 바라보는 바다는 여전히 그대로인데 그 많던 해녀들은 다 어디로 갔나? 몇몇 고령의 해녀들만 겨우 바다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바다는 그들에게 무었이었나. 바당은 어멍은 아닐지라도 큰 어려움 없이 먹고 산다. 바다가 고맙고 어머니의 끝 모를 사랑이 사무치게 느껴진다. 그립다. 보고 싶다. 바다를 향해 어머니 생전에 미처 해보지 못한 말을 소리쳐 본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추억을 간직한 바다는 파도 한 점 없이 잔잔하다. 대낮의 햇살만 잔물결 위에서 반짝거리며 부서진다. 해녀들이 개미 떼처럼 무리를 지어 달려가던 긴 모래톱엔 아무도 없다. 치열했던 바당싸움도 전설처럼 전 해질 뿐 이젠 아무도 바다를 두고 싸우지 않는다. 모두의 바다가 된 지 오래다. 사생결단으로 싸우던 어른들도 저세상 사람이 되었고 어머니 도 친구들도 다 떠난 바다. 그래도 바다는 끊임없이 생명을 품어 키우며 아직도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어머니가 되어줄 것이다.

*바당 : 바다를 일컫는 제주어.
*어멍 : 어머니를 일컫는 제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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