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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형열

책 제목171회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당선작 2024년 09월 1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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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042.신인상_변형열

등장인물_ 신기성(30대 남자, 작가)|상담사(40대 여자)|안내자(30대 중반 남자)|여자(30대. 신기성의 전 여자 친구)|중년 여인(50대 중후반. 죽은 남편을 찾기 위해 자살 도우미 센터에 방문한다)|뉴스 앵커|이우영 교수

시간_ 현재
무대_ 무대는 기본적으로 비어 있다. 장소들은 각각 구체적으로 재현되기 보다는 공간·디테일·조명 등으로 처리되며, 소도구는 극의 진행에 따라 사용한다. 시간과 장소의 전환은 ‘신기성’의 감정에 따라 자연스럽게 진행되도록 한다.

#1—죽음 도우미 센터
중년 여인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다.

중년 여인 (큰소리로) 아무도 없어요? 누구 없냐고요.


중년 여인의 목소리에 안내자가 무대 위로 등장한다.

안내자 무슨 일이죠?
중년 여인 (휴대폰을 보여주며) 제 남편이 죽었다는 문자를 받았어요.
안내자 (휴대폰을 확인하며) 송희준 씨는 오늘 오전 사망하셨습니다.
중년 여인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어요.
안내자 그동안 말 못 할 고민이 많으셨던 것 같습니다. 얼마 전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당하셨더군요.
중년 여인 (놀란다) 몰랐어요. 늘 성실하던 사람이었는데.
안내자 가족에게 남긴 유서가 있습니다. (무대 뒤로) 송희준 씨 유서 좀 부탁해요.

안내자의 말에 여직원이 중년 여인에게 유서를 건넨다.

중년 여인 (유서를 받아 들고는) 고민이 있으면 같이 얘길 나누지 이렇게 혼자 가면 난 어떡하라고.
안내자 따라오시죠. 송희준 씨의 유골을 확인시켜 드리겠습니다.

중년 여인이 휘청인다. 안내자가 중년 여인을 부축한다. 중년 여인이 안내자의 부축을 받으며 무대 밖으로 나간다. 민원창구로 돌아가 앉아 있는 여직원. 신기성이 무대 중앙으로 들어온다. 앉아 있는 여직원에게 걸어간다.

여직원 어서 오십시오. 예약하고 오셨나요?
신기성 네.
여직원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신기성 신기성이라고 합니다.

여직원 (컴퓨터로 조회해 보고) 신기성, 80년생 맞으세요?
신기성 네.
여직원 잠시만 로비에서 기다리시면 안내자분이 오실 겁니다.

신기성은 로비 중앙에 놓인 소파에 앉는다. 소파 앞에 놓여 있는 테이블에 ‘죽음 도우미 센터’ 안내 책자가 있다. 신기성은 안내 책자를 들어 훑어본다. 안내자가 무대로 들어온다.

안내자 신기성 씨?
신기성 네, 맞습니다.
안내자 반갑습니다. 전 신기성 씨를 담당할 안내자 D-359입니다. 상담실로 가실까요?

신기성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안내자를 따라서 걸어간다. 신기성이 무대 밖으로 나가자 암전이 되고 죽음 도우미 센터의 광고가 흘러나온다. 암전 속에서 라디오 주파수를 마치는 소리가 들린다. 잡음이 멈추고‘죽음 도우미 센 터’의 라디오 광고가 들린다.

안내자 지금 죽음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두려우십니까?  걱정 마십시오. 여러분의 고민을 정부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남자 1 매일 자살을 결심했지만, 막상 그 앞에 서면 늘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두려움에 떨지 않습니다.
남자 2 정부에서 죽음을 합법화했다는 얘길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이제 더 이상 한강 다리 위를 기웃거리지 않아도 되니까요.
여자 1 삶에 낙이 없던 제겐 큰 선물이었습니다. 우선, 나라에서 직접 사업을 진행해 제가 지불해야 하는 단돈 백만 원밖에 안 된다는 것에 놀랐고, 생각보다 접수가 편리해서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안내자 지금 죽음을 고민하시는 분. 1544-XXXX로 전화 한 통만 주시면 친절히 도와드리겠습니다. 1544-XXXX. 죽음 도우미 센터. 지금 당장 전화 주세요.

라디오 방송이 끝나자, 무대로 조명이 켜진다.

#2 상담실
안내자와 신기성이 무대 위로 걸어온다. 무대 중앙에 의자가 놓여 있다. 안내자가 손짓으로 신기성에게 의자에 앉으라고 한다. 신기성은 의자에 앉는다.

안내자 이번이 처음이신가요?
신기성 처음입니다.
안내자 자신의 의지대로 오신 거 맞나요?
신기성 네. 제 의지로 왔습니다.
안내자 이번 질문은 상담을 받는 동안 매번 들을 질문입니다. 자살을 원하시나요?
신기성 네. 자살을 원합니다.
안내자 질문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제가 전화로 말씀드렸던 서류들은 가지고 오셨나요?
신기성 (가방에서 서류봉투를 꺼낸다) 여기 있습니다.
안내자 (서류봉투를 받아 들고) 여기서 기다리시면 상담사가 올겁니다. 신기성 네.
안내자 그럼, 상담이 끝나면 오겠습니다.

안내자가 무대 밖으로 나간다. 신기성은 움츠린 채 의자에 가만히 있다. 상담사가 신기성의 차트를 확인하며 무대로 등장한다.
상담사 신기성 씨? 반갑습니다.
신기성 네. 반갑습니다.
상담사 상담하기 전에 먼저 확인할 게 있는데… 자발적으로 오신 것 맞나요?
신기성 네. 맞습니다.
상담사 (차트를 보며) 과거에 자살을 시도했던 경험이 있네요.
신기성 한 번 있습니다.
상담사 차트에 적혀 있기로는 두 번이라고 되어 있는데요. 타이레놀 100알을 드셨다고.
신기성 그건, 머리가 아팠어요. 너무 아팠어요.
상담사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많이 먹지는 않죠.
신기성 너무 아팠어요. 두통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상담사 갑자기 두통이 찾아왔나요?
신기성 재작년 겨울쯤부터 머리가 깨질 듯 아팠어요.
상담사 무슨 일이 있었나요?
신기성 제가 바라보면 모든 사물들이 제게 말을 걸었어요. 상담사 뭐라고 하던가요?
신기성 넌 너무 게을러. 난 널 잊었어. 그만 전화해.
상담사 그들의 말이 지속적으로 들렸나요?
신기성 네, 재작년 겨울부터.
상담사 늘 똑같은 말이었나요? 다른 말은 안 했나요?
신기성 그만해. 이제 다 지난 일이야.
상담사 그들과 대화를 나눠본 적 있나요?
신기성 일방적으로 내게 말을 걸지만 대화를 나눈 적은 없어요.
상담사 (차트에 적는다) 그들과 대화는 나눈 적이 없다. 언제부터 그들이 당신에게 말을 걸었죠?
신기성 머리가 아플 때부터니까, 재작년 겨울 때부터였어요.
상담사 (차트를 보며) 단지 머리가 아파서 약을 드셨다기에는 양이 너무 많네요.
신기성 … 계속 먹다 보니 내성이 생겨서.
상담사 자, 그럼 간단한 질문들 몇 개만 하고 오늘 상담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신기성 …….
상담사 고향이 어디시죠?
신기성 강원도 원주입니다.
상담사 가족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신기성 아버지는 제가 두 살 때 어머니와 이혼하셔서 연락이 닿지 않고, 어머니는 재작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상담사 학교는 어디까지 나오셨나요?
신기성 K대, 국문과 졸업했습니다.
상담사 직업이… 작가라고 되어 있는데 맞나요?
신기성 등단하고 단편 몇 편 발표했습니다.
상담사 다른 직업은 없으신가요?
신기성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했었습니다. 글을 쓰는 것만으로는 생활을 지탱할 수가 없어서요.
상담사 사적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마지막 연애는 언제죠?
신기성 재작년 겨울입니다.
상담사 결별을 하고부터 자살을 준비하신 건가요?
신기성 그저, 전 단지 머리가 아팠을 뿐입니다.
상담사 (차트를 덮으며) 오늘은 여기까지만 묻겠습니다. 언제든 사실을 말할 용기가 생기신다면 제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상담사가 무대 뒤로 퇴장한다.

#3 상담실
상담실 안에 신기성 혼자 남아 있다. 안내자가 상담실 안으로 들어온다.

안내자 상담은 잘 받으셨나요?
신기성 (고개를 들며) 상담사가 뭐라고 하던가요? 그때는 머리가 미칠 듯 아팠을 뿐입니다.
안내자 그러다 한순간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신 거군요.
신기성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야 믿어주실 겁니까?
안내자 (깊은 한숨) 신기성 씨의 마음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이렇게 보여주지 않습니까?
신기성 결과. 그게 그리 중요한 건가요? 제 의도는 그게 아니었지만, 결과가 그렇다면 그게 무조건 맞는 건가요?
안내자 중요하지요. 특히 저희같이 정부 산하 기관들은 결과가 가장 중요하죠.

안내자가 무대 밖으로 퇴장한다. 암전.

#4 신기성의 방
시간은 과거로 지난다. 신기성의 방이다. 방 안에는 구석에 쌓여 있는 책과 펼쳐져 있는 이불, 연식이 오래된 노트북, 선풍기가 전부이다. 방 안에는 신기성과 여자가 이불 안에 누워 있다.
여자 넌 언젠가 내 얘기를 쓸 것 같아.
신기성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난 늘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만 쓰거든. 여자 우리가 과거가 되면?
신기성 그런 일은 없어. 난 널 사랑해.
여자 사랑이란 생물이라서 늘 살아 움직여. 언제 변할지 모르는 게 사랑이야.
신기성 언젠가 날 떠나겠단 거야?
여자 그런 말이 아니야. (한숨) 나, 좀 지쳐. 집에선 언제 결혼할 거냐고 재촉하고.
신기성 책만 출간하면 결혼하자.
여자 …나 맞선 보기로 했어. 어머니가 성화라 이번엔 꼭 봐야 할 것 같아.
신기성 (여자를 째려본다.)여자 나도 많이 기다렸어. 벌써 4년이야. 네가 그 글을 쓴다고 집에만 붙어 있던 게. 그동안 널 기다리면서 나도 많이 지쳤어.
신기성 너 역시 똑같은 인간이야. 속물.
여자 그래. 나도 똑같은 인간이야.

신기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밖으로 나간다. 여자는 그 자리에 앉아서 울고 있다. 신기성이 손에 망치를 들고 무대 안으로 들어온다. 신기성은 망치로 노트북을 내려친다.

여자 (신기성을 말리며) 그러지 마.
신기성 (말리는 여자를 밀치며) 난 절대 네 이야기를 쓰지 않을 거야. 여자 넌 언젠가 꼭 쓸 거야. 네게 남은 이야기는 나밖에 없으니.

여자 무대 밖으로 퇴장한다. 신기성은 혼자 여자가 떠난 곳을 바라본다.

#5 신기성의 방
안내자가 무대로 들어온다.

안내자 생각보다 더 지저분하군요.
신기성 그녀가 떠난 뒤 청소할 수 없었어요. 그녀의 흔적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안내자 (손목시계를 보며) 이제 돌아갈 시간입니다. 센터로 챙겨 가실 건 없나요?
신기성 부탁이 있습니다. (고장 난 노트북을 가리키며) 노트북을 고쳐줄 수 있나요?
안내자 (노트북을 집어 들며) 한 번 알아보죠. 다른 것은 없나요?
신기성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안내자 (노트북을 챙긴다) 그럼 센터로 돌아갈까요?

안내자가 신기성을 데리고 무대 밖으로 나간다. 암전.

#6 상담실
무대 중앙에 의자가 놓여 있고 신기성이 앉아 있다. 상담사가 차트와 노트북을 들고 무대로 등장한다.

상담사 (노트북을 내밀며) 다행히 고쳤다고 하네요.
신기성 (노트북을 받아 든다.) 감사합니다.
상담사 기분 나쁘실 수도 있지만 제가 전달해 드리기 전에 노트북에 있는 파일들을 훑어봤습니다. ‘유서’라는 소설이 있더군요. 인상 적이더군요. 홀로 무인도 남겨진 남자가 유서를 써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신기성 인상적이었다니 다행이네요.
상담사 아쉽게도 아직 결말을 내리지 못하셨나 보네요. 중간에서 멈춰 있더군요.
신기성 결말을 쓰다가 두통이 심해져서 마무리 짓지 못했습니다.
상담사 의문이 든 점이 있었는데 남자는 누구에게 유서를 남기는 건가요? 유서란 대상을 정하고 쓰는 건데.
신기성 누구든 어떻습니까? 홀로 남겨진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상담사 그렇군요. (차트를 보며) 그럼 다시 상담을 시작할까요? 가벼운 질문부터 시작해 볼까요? 좋아하는 운동이 있습니까?
신기성 운동을 하진 않습니다만 가끔 야구를 즐겨 봅니다.
상담사 어느 팀 팬이시죠?
신기성 특정 팀을 응원하진 않습니다. 그냥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다 중계를 하면 보는 편입니다.
상담사 그럼, 다른 질문을 하죠. 유년 시절, 꿈이 뭐였죠?
신기성 슈퍼맨이 되고 싶었습니다.
상담사 지금은요?
신기성 원래는 책을 내는 게 꿈이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네요. 그게 꿈이었는지 욕망이었는지.
상담사 요즘도 목소리가 들리나요?
신기성 가끔 들립니다.
상담사 그렇군요. (차트에 적는다) 요즘은 무슨 말을 하죠? 신기성 넌 너무 게을러. 난 널 잊었어. 그만 전화해.
상담사 지난번 상담 때와 비슷한 내용이네요.
신기성 네.
상담사 두 번째 자살 시도. 그러니깐 타이레놀 중독으로 입원하셨을 때 극단적 선택을 하신 거에 대해서는 인정하시나요?
신기성 인정하지 못합니다.
상담사 신기성 씨의 문제는 심각합니다. 첫 번째 극단적 시도 때는 법령이 발효되지 않았을 때라 상관이 없지만 두 번째, 그러니까 신기 성 씨가 인정하지 않은 극단적 선택은 법령이 발효된 후라 신기 성 씨의 안락사가 인정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신기성 정말, 머리가 아파서 먹은 것뿐입니다.
상담사 알겠습니다. 일단 그렇게 적어 놓도록 하겠습니다. (차트에 적으며) 오늘 면담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무대 밖으로 나가려다가 돌아서서) 아직도 죽음을 원하시나요?
신기성 네. 원하고 있습니다.

상담사는 신기성에게 목례를 하고 무대 밖으로 나간다. 신기성은 노트북을 펼쳐본다. 노트북을 펼친 신기성은 글을 써 내려간다. 암전 속에서 라디오 주파수를 마치는 소리가 들린다. 잡음이 멈추고 뉴스가 들려온다.

앵커 …육 개월 전이죠, 국가에서 자살을 규제한다는 명목 아래 자살 도우미 센터를 만들었습니다. 국민 투표를 거쳐 51.19퍼센트의 지지를 받아 센터가 설립이 되었는데요. 그 후로 자살률이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대구 가톨릭 대학교의 이우영 교수님을 모시겠습니다. 반갑습니다 교수님.
이우영 반갑습니다.
앵커 현재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우영 전 이 상황이 반사이익을 얻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자살을 관리하면서 국민들에게 자살이 합법화되었습니다. 다만 센터를 거치지 않고 자살을 시도할 경우엔 3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데요. 대부분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 음지에서 이루어지는 게 당연했거든요. 그걸 센터를 통해 자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통해서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이 처음엔 센터에 방문자가 많았습니다. 자살이라는 게 병적으로 늘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순간적인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시도하는 사람들도 많았죠. 그런 사람들이 센터를 방문하면서 순간적인 감정이 수그러지고 다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게 자살률이 오히려 줄어든 큰 이유가 되는 것 같습니다.
앵커 순간적인 감정으로 자살을 시도하던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이우영 네. 거기에 자살을 음지에서 양지로 꺼내면서 자살을 시도하려던 사람들이 자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 게 이번 법안의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그렇다면 자살률은 계속 줄어들까요?
이우영 제가 예상하기로는 당분간은 줄어들 거로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는 늘어날 경우도 생길 거라 봅니다.
앵커 장기적으로 늘어난다. 어떤 점이 그렇죠?
이우영 자살을 양지로 꺼내어 왔지만 여전히 고독사가 나타나고 있거든요. 그리고 센터에 입소하기 위해선 심리 상담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순간적인 선택을 할 때 센터를 이용하기보다 혼자서 감당을 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정부에 서 어떻게 대처할지가 문제입니다. 센터를 통하지 않고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징역형을 내린다고 해도 이미 죽은 사람을 가둘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앵커 그렇네요. 자살 시도를 법으로 막는다 하더라도 이미 죽은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으니까요.
이우영 네.

#7 상담실
신기성은 아무 말 없이 노트북만 바라보고 있다. 우산을 든 상담사가 차트를 들고 등장한다.

상담사 밖에 비가 내리네요.
신기성 (말없이 노트북만 바라보고 있다)상담사 오늘이 마지막 상담입니다. 오늘까지의 상담을 근거로 상부에 보고서를 올릴 겁니다.
신기성 (노트북을 덮으며) 다 썼습니다. 소설의 결말을.
상담사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신기성 결국 남자는 홀로 무인도에서 마감합니다. 죽기 전 누군가 자신의 시체와 유서를 발견하길 바라지만 결국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상담사 새드 엔딩이네요.
신기성 해피엔딩일 수도 있지요.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니까요.
상담사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그러니 새드 엔딩이지 않을까요? 
신기성 전, 어떻게 되는 겁니까? 죽을 수 있나요?
상담사 그건 저도 모릅니다. 보통 제가 보고서를 올리고 나면 윗분들이 결과를 내립니다.
신기성 제게는 선택권이 없군요. 상관없습니다. 이제 다 정리되었으니. 
상담사 그럼, 질문을 하겠습니다. 두 번째 자살을 시도하셨나요? 그러니깐 타이레놀 중독으로 입원하셨을 때를 묻는 겁니다.
신기성 네. 인정합니다. 전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상담사 왜 자살을 시도하셨죠?
신기성 제겐 그녀가 전부였습니다. 그녀가 떠난 후, 제게 남은 거라곤 절망, 좌절뿐이었습니다.
상담사 그래서 극단적인 생각을 하신 건가요?
신기성 계획적이었던 건 아닙니다.
상담사 이해합니다. 누구나 늪에 빠지면 자신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죠. 
신기성 제 스스로 늪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게 제 이별에 대한 복수라 생각했습니다.
상담사 그랬군요. 지금은 어떠신가요? 아직도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시나요?
신기성 이젠 돌이킬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전 범법자고 나라의 질서를 무너트린 놈입니다. 대가를 받아야겠죠.
상담사 (차트에 기록한다) 알겠습니다. 이대로 상부에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신기성 결과는 언제쯤 나올까요?
상담사 글쎄요. 평균적으로 빠르면 이틀 늦으면 일주일 정도 걸립니다. 
신기성 감사합니다.
상담사 마지막으로 질문이 있습니다. 왜 인정을 하신 거죠? 두 번째 극단적 시도 말입니다.
신기성 사실이니까요. 가려지진 않을 테니까요.
상담사 알겠습니다.

상담사가 무대 밖으로 나간다. 안내자가 무대로 등장한다.

안내자 모든 걸 자백했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신기성 전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안내자 저도 확신을 할 수는 없지만 아마, 죽음이 진행될 거라 생각이 듭니다. 신기성 씨가 세상 밖으로 나갔을 때 사회가 겪을 혼란을 막으려면 그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신기성 다행이네요.
안내자 그 전에 서류를 작성하셔야 합니다. (서류를 내밀며) 기본적인 신상은 저희가 적어놨습니다. 확인란에 사인만 하시면 될 겁니다.
신기성 (서류를 받아들며) 꼭 가족에게 알려야 하나요? 아버지랑 다섯 살 때 헤어지고 연락을 한 적도 없는데.
안내자 저희도 그 부분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유일하게 남아 있는 신기성 씨의 인척이기에 어쩔 수 없습니다.
신기성 (서류에 사인을 한다) 여기 있습니다. 이제 다 된 건가요?
안내자 이제 잠시 기다리시면 됩니다.
신기성 부디, 통과가 된다면 좋겠네요.

잠시 암전, 핀 조명이 실루엣만 보일 정도로만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신기 성을 비추고 있다.

목소리 신기성, 죽음 인정.

목소리와 함께 무대에 전체 조명이 들어온다. 안내자가 서류철을 가지고 무대로 들어온다.

안내자 죽음이 인정되었습니다.
신기성 잘 되었네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요?
안내자 사망실로 이동할 겁니다. 그곳에서 순서를 기다리시면 됩니다. 
신기성 얼마나 걸릴까요?
안내자 이틀에서 삼일 정도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드립니다.
신기성 노트북은 들고 갈 수 있나요?
안내자 죄송합니다. 노트북은 들고 갈 수 없습니다. 원칙적으로 아무것도 가지고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노트를 건네며) 그 전에 남기고 싶은 말은 유서로 남기면 됩니다.
신기성 그럼, 이 노트북을 그녀에게 보내주실 수 있나요?
안내자 그러죠. 주소와 이름을 적어주세요

신기성은 안내자가 건넨 종이에 이름과 주소를 적는다. 다 적자 신기성이 욕조에서 일어난다. 무대 위로 감시자가 들어온다. 감시자가 신기성의 오른팔을 잡고 무대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안내자 그럼,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를 드려도 될까요? 신기성 뭔가요?
안내자 그녀는 당신에게 어떤 사람이었나요?
신기성 (아무 말 없다.)

신기성은 안내자의 안내에 따라 무대 밖으로 나간다.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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