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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

책 제목171회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당선작 2024년 09월 1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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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042.신인상_전철

할아버지라고 부르기엔 삐딱한 영감탱이다. 할배가 딱인 것은 머리 가 뽀얗게 시어 있어 일흔 살은 쉬 넘어선 것 같지만 허름한 작업복 위로 드러나는 팽팽한 근육들하며 청소한다고 종횡무진 뛰어 다니는 꼴이 왠지 할아버지하곤 잘 어울리지 않고 버겁게 보인다. 할아버지 하면 인자하고 다감하며 푸근해 옆에 가고 싶어야 하는데 그의 싸대는 꼴이 가관인 것이다. 먼지까지 휙 풍기고 지나갈 때는 못마땅하기 그지 없어 “할배, 조심해! ”하고 나무라고 싶을 때도 있다.

재작년 처음 그를 무심결에 봤을 때는 그냥 이곳 동사무소에 고용된 환경미화원인 줄 알았다. 나는 매일 새벽 6시면 출근을 위해 이곳 버스 정류장에서 강남행 광역버스를 타야 한다. 어떤 날은 제 시간에 버스가 오지 않아 정류장 안에 놓여 있는 간이의자에 앉아 고개를 차가 오는 쪽으로 길게 빼어 님 기다리듯 애타게 기다릴 때가 있는데 불현듯 그가 나타나 내 앞에서 빗잘질을 해댈 때가 있다. 조심 없이 쓸어대는 그의 행동이 못마땅해 찡그리고 있으면, “죄송, 죄송, 껌딱지 하나 꽁초 하나 다리 좀 드시고”하며 뭐가 그리 급한지 바쁘게 몰아부쳐서 미처 두 다 리를 올리기도 전에 닳아빠진 중국산 초록빛 플라스틱 빗자루 끝으로 재빠르게 껌딱지와 꽁초를 낚아채 간다. 그런 날은 기분이 좀 상했다. 찌뿌등한 몸을 이끌고 나온 출근길 새벽부터 야금야금 신경을 긁혀 먹힌 기분이 되었던 것이다.
“빌어먹을 영감탱이! ”
쓰레기차나 이런 길거리 청소하는 사람들에게 난 인상이 좋지 않다. 무슨 큰 일이라도 해내는 듯한 위세당당한 그들에게 벌레 씹은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매일 어김없이 내가 출근하는 새벽 6시경 내 주변 어디선가 쏴 대고 있는 게 분명하였다.
이곳은 서울 근교 분당 경계선에 있어 강남 출퇴근이 용이하나 집값 이 강남의 십분의 일도 안되어 서민들 살기에 안성맞춤이다. 나는 40대 초반의 승용차 운전기사이다. 대전에 소재한 사립대학교 총장님을 출 퇴근시키기 위해 강남 도곡동 자택으로 출근하여 지하 주차장에 있는 차 먼지를 물걸레로 조심스레 닦아 내는데, 기름이 묻혀진 근사한 차 먼지털이가 있지만 주차장 구석의 화장실 세면대에 가 걸레를 빨아서 승용차앞뒤와지붕위티끌먼지하나남지않게닦아내는것이하루 일과의 첫 일이다. 몇 년 전 이곳에서 처음 총장님의 차를 예의 그 근사한 먼지털이로 털어내다가 된통 혼이 난 적이 있다. 먼지를 걸레로 감 싸내려야 하는데, 평상시 하던 대로 차 먼지털이로 털어내다가 퇴출감이 될 뻔했던 것이다. 높으신 대학교 총장님이 꼼짝 못하는 굉장한 분들의 차량이 곳곳에 모셔져 있어 잘못 먼지를 털다가는 어디서 튀어 나 온 듯한 CCTV 보안요원의 제지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 먼지가 주차장 안을 오염시키고 다른 차를 더럽힌다며 질책과 퇴출 경고장을 받았던 것이다.
그렇게 신경전을 벌이며 수개월 지나다가 내가 그를 할배에서 할아버지로 부르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에 그의 전직이 꽤 높은 경찰 간부 였다는 말을 듣고 나서부터였다. 경찰은 내게 가장 무서운 존재다. 출 근시간에 쫓겨 속도 위반을 내딴에는 눈치껏 해대다가 어디서 튀어나 왔는지 경찰 순찰차의 사이렌 소리는 귀신을 만난 듯 질겁하게 만들고 오금까지 저리게 한다. 총장이 연신 시계를 보고 차 내부 기기판의 시 간을 째려보는 듯한 눈치까지 간파한 나의 재빠른 충성심이 곤두박질 치는 순간이 되는 것이다. 교통위반의 모든 책임은 곱다시 내가 다 져야한다.
“한 번만 더 속도위반 하면 각오해요.”
뭘 각오하라는지 뻔한 협박이지만 자기 멋대로다. 속도 위반하지 않으면 안 될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책임은 옴팍 내게 다 뒤집어 씌운다. 그래도 나는 말 한마디 할 수가 없다. “누가 위반까지 하라 했나”하면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참 편리하고 제멋대로 살 수 있는 총장이 야속하기만 하다. 한 번은 총장의 고등학교 동창 모임을 마치고 귀가길 거나하게 취한 경찰청장인 동창을 태워 그의 집까지 바래다준 적이 있다. 두 사람은 친한 사이인 듯 호쾌하게 웃기도 하고 밀담을 나누듯 소곤거리기도 했다. 그러더니 총장이 성토하듯 언성을 높여 나는 그 내용을 온전히 들을 수 있었다. 
“어이 박 청장! ”
“거 말이야 도로에서 어디 숨어 있다가 튀어나와 단속하는 싸이카 경찰 있지 선글라스 좀 벗고 단속하게 하면 안 되나 얼굴 가리고 강도질 하는 것 같아.”
“왜 무슨 일 있었나? ”
“차를 세웠으면 얼굴 가린 시커먼 안경 벗고 당당하게 근무해야지 무슨 꿍심에 큼지막한 안경으로 얼굴 가리고 일 보냐 이거야.”
매사가 이런 식의 말투인 총장이다. 뭐든지 자기 위주의 생각이 옳다 는 주장이다. 땡볕 아래 반사되는 광선을 피하기 위해 그들이 쓰는 선글라스는 눈 보호를 위한 필수적인 보호대인데 교만이 넘쳐나 경찰의 정당한 공무 집행에 토를 달아 오만방자함으로 몰아 붙이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얼마 후 국민을 하늘처럼 섬기는 선글라스 를 벗고 단속하는 진풍경이 한때 보이기도 하였다. 총장은 일선 경찰 근무자들이 선글라스를 끼고 단속하지 말라는 지시를 어기면 징계 대 상이 되었던 시절을 만들었던 것이다.
나는 그런 힘 있는 총장의 운전기사로서 늘 조심조심 살얼음판을 걷는 주눅 든 사람이 되다보니 새벽 출근시간 가끔 부닥치는 청소부에게라도 큰소리 치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봐요 할배, 먼지 좀 내지 마쇼! ”
나는 꽤 시비조로 그의 비위를 긁어내려 했다.
“먼지, 여기 무슨 먼지가 난다고 그래 이 친구야.”
그는 언제나 어떤 일에도 싱글거리는 말투다.
“우리가 무슨 친굽니까? ”하고 쥐어 뜯었다.
“새벽이면 자주 만나는데 친구지∼.”
할배는 호쾌하게 친구라며 아는 체까지 하였다. 버스 승강장 안 시멘 트 바닥에 떨어진 작은 쓰레기 쓸어내는데 먼지 날 것도 별로 없는 것을 나의 괜한 트집과 시비를 그는 껄껄거리며 재미있듯 얼러대며 가지고 노는 것 같아 언짢아지는게 다반사였다. 그러나 할배의 노닥거림에 가까워졌고 그렇게 서로를 알게 되었다. 처음엔 뭐 이런 영감탱이가 있어 했으나 그를 차츰 알아가는 사이 양파껍질 벗겨지듯 그의 진모습들 이 하나하나 벗겨졌던 것이다.
“난 말이야. 젊은 시절 세상에서 내 하고 싶은 건 다 해보고 살았지.” “뭔 일을 다 해봤다는 건데요. 아프리카에서 댄스라도 춰 봤다는 겁니까? ”
택도 없을 것 같은 말로 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려 했는데 만만치 않은 응답이다.
“어이, 난 친구 나이에 애인 셋은 데리고 놀았지.”
뭔 뚱딴지같은 소리람 했으나 이내 그의 자신만만한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이렇게 시작된 그와의 황당막측한 대화는 점점 깊어지기 시작 했다.
“헤퍼빠진 기집애들 풍지박살이 아니라 풍기박살을 냈지. 원래 난 다리 힘이 세었어. 지금도 매일 새벽에만 1만5천 보씩 뛰어다니고 있어.”
언젠가 나는 그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대단한 허풍쟁이의 무용담쯤 으로 흘러 들었으나 조금씩 조금씩 그에게 잠겨들기 시작했다. 그의 풍 기박살이라는 의미가 춤꾼이었던 그가 한참 때는 밤새도록 춤 춘 뒤 기집애 둘이 아니라 셋을 데리고도 밤일을 무사히 임무완수 시켰다는 그 의 말을 처음에는 믿지 않았으나 점점 그를 알아갈수록 그럴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난 말이야 천부적으로 다리 힘이 센 놈으로 태어난 것 같아.” 그가 불쑥이 말을 꺼냈을 때 난 또 뭔 황당한 소리를 하려나 했다. 검거된 북한의 무장공비 김신조가 서울로 내려와 청와대를 깨부수고 대통령 목을 따려 했다는 진술이 있고 난 뒤 군 복무 중이던 대한민국 군인들은 모두 매달 한 번씩 20킬로그램 군장을 짊어지고 10킬로미터 구보를 하는 훈련을 하였는데 그때 중대에서 1등을 하는 사병은 금요일 오후 하기식을 마치고 주말 2박 3일 특박 휴가증을 받았다고 한다. 그 는 그것을 매번 자기가 차지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특박을 나간 뒤 토 요일 밤의 열기 속에서 황제가 될 수 있는 춤판에서의 주인공이 자신이 었다고 한다.
종로 2가 ‘디쉐네’음악 감상실의 간이 무대에서 매주 벌어지는 춤판은 그 당시 한국의 노는 젊은 애들의 성지였다. 이 영감탱이가 수시로 그 성지에 나타나 계집애들을 싹쓸이했다는 그의 말을 처음에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황당함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믿음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의 춤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그의 청춘기는 트위스트라는 춤의 명수가 누릴 수 있는 성파티의 요람이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굉장하면서 신나는 젊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다 리 힘이 좋아 춤만 잘 추면 젊은이들의 제왕이 된다. 영화 <펄프 픽션> 에서 존 트라볼타가 하이힐을 손에 든 채 맨발인 갱두목의 여자인 우마 서먼과 함께 추는 트위스트를 추는 명장면처럼 그는 춤에 홀린 기집애들을 싹쓸이하는 춤꾼이었었다.
충동과 쾌락의 젊음이 인생의 특권인 것처럼 그렇게 환희의 젊음이 지나 장년이 되었을 때 그의 춤은 역동적인 트위스트에서 은근한 블루스로 바뀌었다. 열정의 춤에서 평강의 춤으로 그렇게 젊은 시절 트위스트 킹으로 지내다가 장년으로 접어들어서는 블루스 킹이 된 것이다. 그에게 블루스는 삶의 새로운 기쁜 도구가 되었다고 한다. 블루스의 단순 하면서도 편안함이 짙은 자극으로 빠져들게 하는 마력이 되어 블루스 리듬을 타고 물 흐르듯 여자를 리드하다가 스윙하는 순간 오른쪽 무릎이 교묘하게 여자의 오른쪽 허벅지를 자극시키면 잡은 왼손 끝 약지가 바르르 떨리는 여자는 그의 밥이 되었던 것이다.
한 달에 한 번은 이런 생판 모르는 여자가 걸려든다고 했다. 자신만이 누릴 수 있는 능력과 특권에 그는 나보다 더 멋진 인생을 사는 놈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소리치며 살았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식이 아니라, 경험에 의한 풍부한 수법 공개가 탄탄한 구성 요건을 충족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감탱이는 뭐란 말인가 하며 궁금해지기 시작 했다. 경찰 중견 간부를 지내다 재벌이 되겠다고 뛰쳐나왔다는 말도 처음에는 ‘뻥’이라고 여기던 것이 사실 증거들이 점점 들어났다. 그가 보여준 낡은 신문을 잘라 붙인 스크랩에는 정복을 입고 유명한 신문사가 주최한 경찰봉사상의 수상자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게 나는 그 에게 빠져들었다.
“그래서 재벌이 되겠다는 것은 어떻게 되었어요? ”
“재벌이 될 수 있는 풍족한 밑천만 날리고 빚쟁이가 되었지.”
늘 자신만만하고 통달한 척하던 그가 그때 이렇게 진지해지는 모습은 처음 보이며 말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였어. 나 같은 놈이 재벌 되면 대한민국 여자 다 말아 먹는다고 알거지로 만든 게야.”
언뜻 스치는 사람들에게 공동으로 나타나는 진심 어린 죄송함이 그 의 주름진 얼굴 아래 그림자와 함께 엿보였던 것이다. 확대한다면 지금 은 모든 걸 놓고 참회하고 살았다는 내면이 보이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부터 “할배, 아니 할아버지! ”라고 저절로 이렇게 부르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이 할배에게 근접해서는 이제 진지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 것이다. 나는 그를 좀 더 알기 위해서 새벽 만날 때마다 먼저 인사하고 밀착하였다.
“오늘은 무슨 좋인 일이 일어날 것 같아요? ”하고 물으면 “비질 하다 가 길바닥에서 오백원짜리 동전 하나 수입잡았지롱.”한다.
“길조네요, 오늘 고물 수입이 많겠어요.”
나는 그의 장난질에 맞장구를 치는 사이가 되었다.
그는 새벽에 이 청소를 하기 전 집에서 이곳까지 오는 도중 길거리 서너 곳의 쓰레기장을 정리하며 몰고 다니는 1톤 트럭에 절반 정도의 고물을 채워 놓는다. 청소 후에는 정류장 앞 작은 도서관 입구의 다리 위 양쪽에 그가 비치해 놓은 스물네개의 메리골드 꽃 화분에 물주기를 끝내고 직장인 인테리어 회사의 비품 창고로 간다. 가는 길에 또 몇 곳 의 쓰레기 분리 처리장에 멈춰 서서 재활용 고물들을 마저 한 차 가득 채운다.
아침 7시경부터 그의 직장생활은 시작된다. 강남에 있는 본사에서 20여 킬로미터 떨어진 이곳 창고에서 혼자 장비와 자재를 관리하는 그 는 칠십이 훨씬 넘도록 아직 근무하고 있는 중이다. 회사에서 그에게 일할수 있는 날까지 일해 달라는 간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단 나이를 떠나 늘 부지런한 사람이고 약속을 칼같이 지키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그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가 이십수 년 전 알거지가 되어 노숙자처럼 헤매다가 지인의 소개로 이곳에 취업되어 그때부터 어언 21년이 지나도록 일한다는 것은 내가 봐도 순전히 그의 근면 성실함이 바탕이 되었으리라고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사실 그가 이 회사에 큰 이익을 주고 있어 작지만 탄탄한 인테리어 회사인 그곳에서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존재가 된 것은 그가 근무한 지 일 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근무 시간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9시간을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그는 회사의 필요한 물건이라고 생각되면 다 실어와 보관했다. 그는 꿩 먹고 알 먹으며 기상천외한 회사 근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회사 차를 이용하고 있지만 새벽과 퇴근 후 고물 수집을 하는 그는 그 수입을 처음에는 빚 갚는 데 전념했으나 수년 전 빚을 다 갚고 난 뒤에는 엉뚱한 목적이 생겨나더라고 했다.
복수라는 새로운 빚이 생겼다나 뭐라나. 그동안 주변 인물들에게 당한 그 많은 수모와 능멸을 어찌 잊을 수 있겠냐며 반드시 복수하고 말겠다고 작심하고 새벽 4시부터 하던 고물 수집을 3시간 더 일찍 일어나 일하며 복수를 위해 절치부심했는데 신문 배달은 그에게 복수를 위한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되었다고 한다. 우선 체력도 배가시킬 수 있었고 회사 봉급 외 수입도 고물 수입의 배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참 힘들고 복잡할 것 같은 그의 새벽이 일사불란하게 퍼즐을 맞추듯 진행되어 그를 아는 모두가 놀랄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새벽 1시부터 지국으로 뛰어가 10여 종류의 일간 신문 200부를 챙겨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오르내리며 배달을 마치면, 세상에서 제일 깨끗하고 아름다운 다리를 만들겠다는 능평교까지 오는 동안 온갖 고물들로 한 차를 채운다. 내가 출근할 새벽 6시경 버스 정류장에 있으면 그는 어김없이 주변 어디선가 빗자루질을 하고 있든지 다리 위 꽃 화분들을 보듬고 있다.
어떤 때는 내게 다가와 “친구, 오늘도 파이팅! 지구의 한 귀팅이가 깨끗해지고 있어”하며 호쾌하게 떠든다. 그가 다리 저편에서 시들은 메리골드 꽃잎을 따내며 물을 주는 모습을 보면 어느덧 숙연해지기도 했다. 늘 피곤에 쩔은 나도 그만 정신차려야겠다며 마음을 다잡을 때도 있다. 그는 수많은 담장을 뛰어 넘고 끊임없이 이어진 철길 즉 쾌속도로를 달리는 기관차처럼 보였다.
“할아버지! ”
언제부터인가 할배에서 할아버지로 호칭이 바뀌어 있었다. “복수는 잘 하고 계셔요? ”
어느날 새벽에 예의 그 복수 얘기를 끄집어 내어보았다.
“싹쓰리 해치웠지.”
“어떻게요? ”
“복수가 달콤한 줄 알았나? ”
“도대체 이렇게 사시는 게 무슨 복수란 말이에요.”
“몸부림치며 살아가다 보면 만족할 날이 기다리고 있다. 그 몸부림의 느낌이 달라짐을 맛본거다.”
뚱딴지 같은 소리다. 언젠가 그는 분명히 이렇게 말했었다.
“육체적 고통이야 얼마든지 견딜 수가 있어. 참을 수 있고 잊을 수 있지만 정신적 고통은 그게 아냐.”
빚 갚기 위해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물불 안 가리고 찾아다녔던 지난날 당한 그 수모와 능멸, 무자비하게 당했던 그 정신적 강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이건 무슨 소리야 벌써 복수를 다 했단 말인가.
“우리나라에는 3만 6천 5백 개가 넘는 다리가 있어. 500km가 넘는 서 울 한강에는 32개의 다리가 있는데 그중 22개가 서울 시내에 있지. 모두 가 어마어마하게 크고 웅장해. 그런데 여기 있는 50여 미터짜리 작은 다 리 능평교, 이 다리 위에 해마다 꽃을 키우면서 복수를 다 하게 된 거야.”
“한강 다리에서만 기적이 일어난 것이 아니고 능평교에서도 기적이 터진 거지.”
또 무슨 궤변인가 했다.
“매일 새벽 말통 세 개와 반말통 물조리 한 개에 물을 담아 능평교 난 간에 24개의 화분에 키우는 황금빛 메리골드 꽃을 키웠지. 그리고 바뀌었어.”
그 꽃들에게 물을 주다가 자신이 변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변했는데요? ”
내가 되묻자 할아버지는 낄낄거리며 열을 내었다.
“통쾌한 복수를 했거든. 나를 갈기갈기 찢으며 짓밟았던 그놈들에게 당한 처참한 정신적 강간을 모조리 되갚았어.”
“어떻게요? ”
“인간이 은혜를 원수로 갚기가 얼마나 쉬운지 알게 되었지. 사람은 모두 자기 위주로 살게 되어 있거든. 그걸 깨달았어. 내가 한 짓이 부끄러웠어. 그래서 생각을 바꾼 거야. 인간이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지.”
그가 이렇게 중얼거리며 말할 때 나는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한담 했으나 그 뒤의 그의 고백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공 휴일이나 주말에는 하루 일당을 받고 일거리를 찾아 인력사무실에 나 가거나 동네 전원주택 단지에 사는 분들이 부탁하는 일을 적잖게 했는데 할아버지는 그날 동네 분의 연락을 받고 컨테이너 한 개의 청소를 하러 갔다고 한다. 3.6미터짜리 회색빛 컨테이너 안에는 책상 하나 옷 장 하나 그리고 벽 쪽에 작은 일단 냉장고와 싱크대가 있었고 침대로 사용한 낡은 천소파 뿐이었다. 허나 그의 유난히 눈길을 끈 것은 그 주 변에는 온갖 쓰레기더미로 돌아설 틈이 없게 공간을 메우고 있었기 때 문이었다고 했다.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는 순간 참을 수 없는 악취 가 코를 찔렀지만 하루 일당을 받기로 하고 현장까지 온 마당에 물러설 수는 없었기에 마스크 단단히 쓰고 목장갑 위에 고무장갑 하나 더 끼고 치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땅주인은 월 15만원씩 받고 빈 텃밭 20여 평을 임대해 주었는데 50 대 초반인 남자는 컨테이너 하나를 옮겨 놓고 그곳에서 혼자 생활해 왔다고 한다. 그 남자는 그가 쉬는 날 일용직 노동을 하듯 매일 새벽 인력 시장을 나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컨테이너 안에서 죽어 있는 것을 그를 찾아온 지인이 발견하여 신고하게 되었던 것이다.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밝혀지고 그의 가족관계가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아내는 오래 전 가출하여 연락두절 상태고 인근의 반지하 단칸방에서 중3과 초등학교 졸업반 남매인 두 자녀를 찾아내어 동사무소의 도움으로 겨우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그런데 장례 후 두 자녀가 종적을 감춰 주인은 학교 도 무단 결석인 상태로 사라진 그들을 찾아 수소문했으나 찾지 못하여 동사무소에 신고한 뒤 법적 수속을 거쳐 컨데이너를 철거하게 된 것이었다. 우선 못 쓰게 된 가구와 쌓여 있는 쓰레기 치우는 일을 하게 된 할아버지는 구석구석에 쌓여 있는 종이뭉치를 치우다가 깜짝 놀랐다. 그것이 모두 복권 뭉치였던 것이다. 족히 한 가마니나 될 듯한 분량의 이 복권 뭉치를 보고 처음에는 어디서 복권 장사를 하다가 그만두었나 했으나 고무줄로 동여 매어진 복권을 풀어 보니 당첨 여부를 확인한 흔적이 남아 있는 지난날의 것임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아마 매주 수십장씩 수년간을 복권놀이 아니 복권에 목숨을 건 삶을 살다가 죽은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복권 뭉치를 끄집어내면서 머리가 뻥 뚫리는 허망함을 느끼며 그의 죽음을 가늠해보니 아무리 해 도 잡히지 않는 행운 때문에 절망이라는 종착역을 느끼고 심장마비가 일어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하루 품삯을 받아 세 끼 밥 먹고 남은 돈 모두가 이 복권 구입에 사용된 것 같은 셈법을 헤아릴 수 있었다고 한다. 엄청남 복권 뭉치가 누가 보아도 유추할 수 있는 상황이라 그 남자의 삶이 눈 앞에 스쳐 가슴이 메었다고 한다.
어린 두 자녀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고 그는 한 인간이 지독히도 불행한 삶을 목격한 것이 자신을 돌아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때 그가 매일 복권을 산 컨테이너 속에서 죽은 자의 꿈과 매일 새벽 동네를 청소하고 다리 위 꽃을 가꾸는 자신의 꿈이 어떻게 다른지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컨테이너 속에서 죽은 남자 이야기에 그에게 물었다.
“할배, 꿈은 뭔데요? ”
느닷없는 나의 질문에 할배는 깜짝 놀란 듯하였다.
“내 꿈? 암 있고 말고지. 재벌 되는 게 꿈이다, 왜? ”
그의 당당함과 유창함이 얄미웠다.
“재벌은 뭐 어중이 떠중이 다 되는 줄 아나”하고 내가 궁시렁거리자 할배가 갑자기 눈을 감더니 기어 들어가는 작은 소리가 되어“야 친구, 죽은 그놈이나 나나 똑같은 놈이지”하는 게 아닌가.
오직 복권 당첨되기 위해 피땀 흘려 번 일당을 매일 복권 사는 그나, 세상에서 제일 깨끗하고 아름다운 다리를 만들겠다는 꿈을 이루겠다고 매일 빗자루질을 하고 메리골드에 물을 주는 자신이 똑같다는 말에 그들의 공통점을 찾기 위해 재빠르게 나는 머리를 굴려보았다.
그래, 꿈을 이루기 위해 복권만 사다가 죽은 남자와 세상에서 제일 깨끗하고 아름다운 다리를 만드는 꿈을 이루겠다는 할배는 같은 꿈을 꾸고 있는지 모른다 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컨테이너 속의 남자가 불쌍했고 꽃할배가 불쌍해지면 어쩌나 하다가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 죽은 남자의 꿈은 허상이었고 그래서 죽은 자는 패자였고 희망이 넘 쳐 신나게 살아 있는 꽃 할배는 승자인 것이다. 그의 기다림은 수백 배 확률이 높은 실체가 보였던 것이다 그는 그의 벽을 뛰어 넘는 선수임을 그의 유쾌함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빗자루질을, 화분에 물주기를 즐기고 있었다. 작년 이맘때, 처음으로 가족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고 한다. 둘째아들 며느리도 얻고 큰놈에 이어 손녀까지 두 명 생기자 자식 들 살고 있는 인천 쪽 무의도라는 섬에 펜션 하나를 얻어 2박 3일 다녀 오게 되었는데 여행 떠난 그 이튿날 새벽에도 나타난 것이다.
새벽 4시 그는 무위도 해변가 펜션에서 차를 몰고 달려와 청소하고 꽃 가꾸기를 한 뒤 다시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 것이다. 365일 주말이나 공휴일은 당연하고 추석날 설날 새벽에도 어김없이 대한민국 능평교 주변 일대 지구의 한 귀퉁이가 그의 손으로 깨끗하게 청소되고 꽃들이 가꾸어지고 있었다. 언젠가 그는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이 친구, 내 손에는 언제나 꽃향기가 진동해.”
“꽃 만지니까 꽃 냄새 나는 거죠.”
내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메리골드 화분 한 개에 매일 물 주면서 시든 꽃송이 서너 개씩 모두 50여 개를 떼어내고 며칠 지나면 55개의 꽃송이가 피어나 있는 거야. 내가 일일이 새어봤거든.”
“메리골드 꽃말이 희망인데 강렬한 이 꽃향기 이상으로 이 꽃은 내게 희망을 주고 있어.”
그때는 그냥 듣고 흘렸던 말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의 몸에서 는 꽃향기가 끊임없이 나고 있었던 것 같다. 그의 손길로 능평교를 오가는 모든 사람들이 메리골드의 짙은 향기를 맡을 수 있다. 휴가 간 줄 알았던 그를 새벽 출근길에 만나게 되어“꽃할배, 모처럼의 가족 휴가에 이게 뭔 짓이람”하고 빗자루질을 막아서자 그는 낄낄거리며 선승이 말하듯 툭 던져 버렸다.
“니가 즐길 줄을 알아.”
“뭘 즐긴다는 거요? ”하고 그의 엉뚱한 짓을 따지자
“지금쯤 올 때가 되었는데 그녀를 놓칠 수 없지”라며 생뚱맞은 말을 한다. 해마다 삼복더위가 시작될 때면 어김없이 그녀가 나타났으나 작년에는 중도에 발을 끊었기에 올해 다시 올 것 같아 이 새벽 100킬로미 터를 달려왔다는 그를 보며 나는 울고 싶어졌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몇 해 전 여름이었고 마지막 본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고 했다. 꼭 한여름때만 며칠간 새벽에 보이는 그녀를 기다린 다니. 처음 봤을 때 그 더운 날씨에 소매 긴 남방에 통바지를 입고 운동 화를 신은 그녀는 얼굴이 땟국으로 덮힌 찌든 기름기로 덮혀 있었다. 한 번에 보아도 노숙자임을 알 수 있는 형색의 50∼60대 아주머니, 큼직한 배낭 하나를 걸머지고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다음 날 새 벽에 또 보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배낭에는 그의 전 재산이 들어 있는 것 같다. 아니 그녀가 떠돌아다니며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그 속에 들어 있을 것 같았다. 쉽게 볼 수 없는 여자 노숙자 그녀를 이곳에 서 만난 것은 뜻밖이었다고 한다. 우연치고는 특별한 그녀의 출현이 생 뚱맞고 신기하였으나 조심스럽게 대했다고 한다. 그가 매일 새벽 청소 하는 능평교 옆 신현천 기슭에 수백년 된 아름드리 느티나무 밑 정자에 서 자고 있는 것을 처음 보게 되었을 때, 땟국에 절은 얼굴이었지만 너 무나 평온하게 보여 묘한 감정까지 느꼈다고 한다. 처음에는 깨워서 보 낼까 했으나 곤히 잠들어 있어서 그대로 두고 살금살금 조심스럽게 정 자 뒤편에 보관된 빗자루와 쓰레받이를 들고 나와 인근 청소를 다하고 돌아오면 그 사이 그녀는 잠자던 주위를 깔끔히 치워 놓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새벽 6시 정자 뒤에 와서 빗자루와 쓰레받이를 들고 청소를 시작하려는데 그녀가 급히 주섬주섬 주위를 챙기더니 여느 때와 다르게 그녀만의 일이 있어 일찍 떠나려는 채비인 듯 해서 엉겁결에 “안녕히 주무셨어요”하고 처음으로 그녀에게 인사를 하였다고 한다. “죄송합니다”라는 기어드는 작은 목소리가 신기하게 들렸다고 한다. 그냥 자리를 급히 챙겨 떠날 줄 알았는데“죄송하다”는 어감이 그녀가 채신머리는 지킬 줄 아는 여잔가 하는 호기심이 발동하는 것 같다고 했다.
“불편하진 않으세요? ”
그는 왜 그렇게 자신이 친절해졌는지 모른 채 그냥 그렇게 다시 물었다.
“불편하긴요. 내 멋대로 사는데…”라는 휑한 말을 남기고 쏜살같이 배낭을 메고 떠난 그녀. 그동안 ‘내 멋대로’란 말이 기억에 오롯이 남아 그말의 묘한 뉘앙스를 지금도 더듬고 있다.
그렇게 그녀와 그날 처음 대화를 나누었고 한여름 새벽 보름 정도의 만남은 계속 되었다. 2년째 잊지 않고 찾아온 그녀를 할아버지는 마음 속으로 너무 반가워“그동안 잘 지내셨나”“건강은 좋으신가”등 인사를 하고 싶었으나 그들의 새벽 만남은 좀처럼 이야기할 분위기나 기회 가 나지 않았다. 꽃할아버지는 그녀를 마지막 본 작년 여름 말복날을 기억한다.
새벽 6시 그날도 그녀는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꽃할아버지가 청소 도구를 꺼내 한 바퀴 돌고 오면 그녀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는 것이 수순인데 그날은 청소를 마치고 다리위 꽃화분에 물주러 가려는데 사라지고 없어져야 할 그녀가 아직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꽃할아버지는 의아했고 조금 놀라 “허흠”하고 자신도 모르게 헛기침을 내질렀다. 순 간 깨어난 그녀가 놀란 듯 일어나 주변을 급히 챙겨 그곳을 떠났다. 그녀가 민망해 할까 봐 고개를 돌려 핸드폰을 꺼내 전화 거는 시늉을 했다는 꽃할배의 심중이 아리송했으나 그녀가 황급히 사라진 정자 주변 청소를 하려 뒤편을 살피는 순간 흙바닥 한켠에 오물로 축구공 크기만큼 어질러진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토해 놓고 간 자국이 분명했다. 1년에 서너 번씩 겪는 일이다. 한밤중 지나는 사람들이 급한 볼 일을 보기에 용이한 장소라 주로 여름 한철 겪게 되는데 처리방법을 터특 하고 있어 별 문제도 아니였던 할아버지였다. 흙으로 덮어 두고 하루만 지나면 그 토사물들은 흙으로 바뀌어 있어 쉽게 처리할 수 있다. 그런 날은 늘 운좋은 날이 되어 꽃할배에게는 횡재날이었다고 한다. 그날의 고물 속에서 큼지막한 고철 덩어리나 이삿짐에서 버린 옷보따리를 줍게 되어 하루 수입 2∼3만 원에서 4∼5만원이 되는 재수 좋은 날로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잊지 못할 날이 되었다고 한다. 꽃할배 치욕이 그날 작년 이맘때다. 얼굴에 땟굿은 흘렀으나 눈동자가 맑아 이게 웬일이야 하였다고 한다. 그녀만 보이면 눈동자만 떠오른다고 하였다. 눈동자 때문 꽃할배는 그녀를 기다린다고도 했다. 그날 토해 놓고 사라진 그녀를 생각하며 꽃할배는 “괜찮아, 토한다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데 나쁜 것을 먹으면 토해야 돼 토해내지 않으면 문제가 되는 거야. 내가 흙으로 잘 덮어 두었으니 내일 새벽이면 깨끗해져 있어”하고 꽃할배가 그녀에게 마음속으로 걱정 말라 전한 날 밤 나는 그의 호출을 받고 지 구대로 불려갔다.
“쪽 팔려서 친구한테밖에 연락할 데가 없었어.”
퇴근길에 마지막 고물을 수거하면서 고물상으로 향하던 중에 도로 옆 인도 조성 공사를 하던 포크레인 기사의 신고로 꽃할배가 절도 혐의로 잡혀간 것이다. 내용인 즉 길 한쪽 구석에 버려져 있는 100킬로그램 이 넘는 큰 쇠뭉치를 고물상 가던 중 발견하고 이게 왠 횡재야 하며 예 의 그 초인적인 힘이 솟아 번쩍 들어 짐칸에 싣고 가 고물상에 넘겼다 했다. 그런데 그날 밤 새벽에 일어나 청소하기 위해 늘 일찍 잠이 든 9 시가 지나서 지구대의 연락을 받았단다. 경찰 조사를 받고 신원보증인 으로 꽃할배의 연락이 온 것이다. 꼼짝없이 꽃할배는 절도 혐의를 받았다. 지나가다가 쓰레기통 옆에 버려진 듯한 쇠뭉치를 발견한 꽃할배는 이게 왠 떡이야 하며 주워 올려 신나게 고물상으로 직행했는데 두세 시 간 만에 현행범으로 검거된 꼴이 되고 말았다. 공기에 쫓긴 포크레인 기사가 장비 교체를 위해 길바닥 아무 곳에나 두고 작업을 마친 뒤 돌아와 보이지 않자 신고해 주변의 CCTV 확인으로 금방 꽃할배는 검거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설명에 정상 참작의 여지가 다분히 있다 는 경찰의 판단에 따라 우선 신원 보증을 받고 귀가를 하였다. 본서 조 사 요원에게 연락이 오면 출두를 하라는 것이다.
꽃할배는 된통 걸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미필적 고의가 분명 함을 부인하는 것은 그저 아는 얼굴들이 부끄러울 뿐이었다. 쇠뭉치를 발견했을 때 그것이 중장비 기구란 것을 알았으나 누가 혹 버리기라도 한 물건일 수도 있다는 기대를 하며 이런 순간 노구에도 처올라오는 괴력의 엄청난 힘을 동원해 번쩍 들어올렸던 것이다. 신기한 것은 내릴 때는 들어 올릴 때보다 휠씬 가볍고 쉽게 내릴 수 있었는데 아무리 들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할배의 전언이다. 이것이 꽃할배의 힘 이다. 그의 힘은 참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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