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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필휘지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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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분

책 제목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당선작 2024년 06월 1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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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린다. 저무는 가을이 아쉬운 듯 눈물을 흩날린다. 예기치 못한 소낙비였기에 우산을 챙기지 못했다. 비를 피해 카페에 앉아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한다. 창밖에는 직선으로 곧게 뻗은 아파트가 희뿌연 빗방울로 흠뻑 젖으며 곡선으로 얼비친다.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하는 차량이 보이자 습관처럼 내 기억은 과거로 후진한다.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라 했던가. 화창하고 푸른 웃음꽃이 꺾일 줄 몰랐던 시절, 너무나 인간적인 직선을 맹렬히 사랑했다. 나의 앞길에 모든 일들이 일필휘지로 술술 풀려나가고 있었고 그것은 당연히 주어지는 일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회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맞딱뜨리게 되었다. 내 품에 안겨 있던 막내딸은 무탈했지만 나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 하지만 운전하던 남편은 돌이킬 수 없는 막다른 길 저편으로 떠나고 말았다.

곧바로 병원에 입원해야 했던 나는 장례식이 끝난 뒤에야 귀가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이 떠났는데 세상이 텅 비어 있었다. 미처 우산을 준비할 겨를도 없이 우리는 한순간에 풍전등화가 되었다. 그때부터 밤이 끝나도 밤이 시작되었다. 바깥으로 나가기가 싫었다. 어린 딸들의 가슴까지도 아리아리하게 하는 것, 그것은 분명 슬픔이었다.

첫째와 막내의 나이 차이가 일곱 살이나 되다보니 돌봄이 필요했다.

첫째는 제가 살아내야 함을 의식해서인지 제 관리로도 힘이 드나보다.

마음이 따뜻한 둘째가 막내를 도맡아 애지중지 돌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점점 힘들어진 둘째가 현실적으로 부당함을 호소하며 첫째와의 마찰이 전개되었다. 언성이 높아지고 기 싸움을 하는 등, 고조된 음성에 슬픔이 흠뻑 묻어 있었다. 알고도 모르는 척 반쯤 눈을 감았다. 영문을 모르고 지켜보던 막내의 놀란 모습이 어찌나 귀여웠던지 아직도 생생하다. 아이들에게 고인 슬픔과 떠난 사람에 대한 연민이 섞여 내면에 균열이 생긴 빈 가슴. 떠난 자와 보낸 자의 애잔한 가락이 조우하고 있었다.

한없는 심연 속을 오랫동안 방황하다가 문득 어떠한 깨달음이 한줄기 빛으로 다가왔다. 오직 엄마만을 바라보는 어린 세 딸의 젖은 눈망울이었다. 세 아이가 힘겹게 깜빡거리는 촛불 같은 눈망울로 나를 밝히고 있었던 것이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더 이상 주저앉아 있을 수 없었다. 무너진 삶 속에서 길을 찾아야 했다. 그때부터 먹을 갈았다. 마음도 갈았다. 고통과 절망으로 오래 묵힌 먹물 아닌가. 내 몸을 붓 삼아서 삶을 더욱 진하고 향기롭게 일필휘지로 써내려 가보자. 곧바로 서예학원에 등록했다. 훗날 엄마가 무엇 하시는 분이냐 묻는다면 자식들이‘서예가’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나아가 아빠의 부재가 가려질 것 같았던 것이다. 막내 딸이 너무 어린 탓에 새벽 6시에 일어나 서예를 배워야 했다. 원장님의 특별한 배려로 개인 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 고단한 일상이 반복되었지만 이상하리만큼 에너지가 흘러넘쳤다. 아이들도 더욱 활기차게 나를 맞아 주었다.

붓의 미학으로 내면의 길로 들어섰을 때 비로소 행복이 스며들었다.

직선이 곡선으로, 결핍은 삶의 역동적인 동력으로 변주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서예가 지금까지 밥벌이가 되고 있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은 운명공동체가 되어 누구의 엄마이고 딸이라기보다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면서 더 아름답게 살기 위한 첫길을 열어갔다. 주말이면 도시락을 싸가지고 서예학원에 가서 글씨도 쓰고 책도 보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때로는 문화공간을 찾아가서 그림도 관람하고 인사동에 나가 필방을 돌아보면서 전통예술의 발자취를 돌아보기도 했다. 마침내 아픔이 웃음꽃으로 피기 시작했다.

벌써 35년이 흘렀구나. 따스한 커피잔이 내 앞에 놓인다. 유연한 곡선에 마음이 끌린다. 모난 돌멩이었던 내가 이젠 많이 둥글어진 것 같다. 늘 그랬듯이 책을 꺼내 든다. 독서에 집중하다 보니 해가 지고 있다

는 걸 늦게서야 알게 된다. 한 집 한 집 불이 켜진다. 밤하늘도 별을 켜고있다.

책을 덮고 창밖을 응시한다. 먹물 같은 밤이 가슴 안으로 그윽한 여백을 만든다. 비워지는 순간이 가장 여유롭다. 나와 대면하는 호젓한 시간이 참 좋다. 내가 이렇듯 홀로인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문학은 무리를 짓는 게 아니라는 것을, 정신이란 고독을 공기처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커피향이 머리를 맑게 감돈다.

우리는 각기 하나의 길을 내고 나름의 방식으로 길을 찾아가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길을 닦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하는 걸까. 그 길이 어디든 자신만의 길을 뚫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이기에, 글이 저절로 써질 리가 만무하다. 동안의 삶에 온축된 사유와 철학이 없이는 녹록지가 않으리라.

끝이 없는 학습과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고 심금을 울리는 글을 쓸 수 있을까. 노력도 천품(天稟)이라는데 제대로 길을 가고 있는 것이 맞을까. 나는 오늘도 보다 나은 글쓰기를 위해 막막한 길을 기꺼이 걸어간다. 어쩌면 내 강한 의지로 붓을 휘두르며 내딛는 그 여백이 발자국이 되고 길이 되는 것은 아닐까. 비록 절벽일지라도 말이다.

저온에서도 아름다운 꽃은 핀다. 그늘 속 혼돈의 질서를 세우고자 읽고 또 쓴다. 내 몫의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하여, 오늘도 흩어진 생각들의 조각을 모으며 붓을 든다. 산고를 겪어야 나오는 글은 일필휘지가 어렵다. 그러기에 기어이 탄생의 울음처럼 번지는 꽃향기는 일필휘지의 의지로 넉넉히 벽을 뛰어넘는다. 지상에서 내려진 나의 캐릭터에 매력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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