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당선작 발표 2026년 9월 179호
5
0
땡그랑! 땡댕댕, 풍탁이 운다. 동그란 파문을 일으키며 물고기가 허공을 유영한다. 향인지 꽃인지 모를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죽은 물고기가 극락왕생하라고 비는 사람은 보살님이 처음입니다.”
“집에서도 가끔 불경을 펴놓고 저러셨어요.”
“살생으로 쌓인 죄책감을 내려놓고 싶으신 게지요.”
엄마가 부처님을 알현하는 일은 마지막일 것 같았다. 한동안 벼르다가 오늘은 잘못되면 보호자가 모든 책임을 진다는 각서를 쓰고 병원에서 외출할 수 있었다. 휠체어에 앉은 엄마는 염주를 굴리며 혼잣말을 읊조렸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때까지 스님과 나는 대웅전 모퉁이로 비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을 주십시오. 남기신 말씀도 있으니….”
“예, 그러겠습니다.”
오월의 산은 푸르게 빛났다. 정상에서 아래로 점점 짙어지다가 저수지 물빛과 만나 더욱 깊어졌다. 수면에 내려앉은 하늘이 잔물결에 너울대면서 물속에는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가슴속에 담는 것인지 풍경으로 들어가 유영하는 것인지, 호수를 바라보는 엄마의 표정은 죽음을 초월한 듯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엄마, 저기서 물고기로 살고 싶다고 한 말 기억나?”
여윈 미소를 띠며 엄마는 고개만 가볍게 끄덕거렸다. 엄마의 말이 단순한 감상이나 충동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안다. 엄마의 생애를 돌아본다. 하루도 빠짐없이 생선 머리를 내리치며 비린내에 찌들었던 날들. 향기로운 날이 있었을까? 맑고 깨끗하게 살고 싶은 심정을 엄마는 물고기가 되어 맑고 깨끗하게 살고 싶다고 했다.
“어디 갔다 오는 거야?”
“그냥 바람 좀 쐬어드렸어.”
큰오빠가 병원에 와 있었다. 병간호보다는 금고 비밀번호를 알아내려는 속셈이다. 때때로 엄마는 금고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한다.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너무도 말짱해서 소소한 일까지 다 기억한다. 이 틈을 타서 큰오빠는 엄마에게 좋은 말로 비나리 치며 빙빙 돌리다가 결국 금고 쪽으로 말을 돌렸다. 하지만 큰오빠의 수법을 거니챈 엄마는 금고라는 말만 나오면 입을 닫아버렸다. 큰오빠가 그동안 쌓은 업이 엄마의 머릿속에서 소멸하지 않는 한 큰오빠는 이래저래 속만 태울 것이다.
“너는 같이 사니까 비밀번호를 알 것 아니야?”
“나도 몰라. 열쇠도 어디 있는지 몰라.”
“그럼 기사를 불러… 열어보고 닫아두면 안 되나. 왜 그리 융통성이 없나.”
큰오빠의 야지랑스러운 태도에 속이 울렁거렸다. 시시각각 죽음이 다가오는 엄마 앞에서 재산을 탐내다니, 자식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 궁금하나. 그만큼만 엄마 속을 들여다봤다면 뱃속에 든 암덩어리도 보였을 거야. 오빠나 나나 상속받을 자격이 있다고 보나?”
큰오빠가 주먹으로 벽을 쳤다. 그러고는 벽에 머리를 쥐어박고 한숨을 길게 쉬었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드러나는 습성이었다. 궁색해질 대로 궁색해진 큰오빠에게 자기학대 말고는 달리 화풀이할 데가 없었다. 그럴수록 나는 큰오빠를 더욱 모질게 몰아쳤다. 심리적 배수진 같은 것이었다.
“그만 가라. 분명히 말하는데, 옛날처럼 또 칼이라도 들고 오면 나는 내 배를 들이대서라도 막을 거다.”
십여 년 전, 큰오빠는 엄마에게 사업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뜨는 유망한 아이템으로 문만 열면 삽으로 돈을 퍼담는다나.
“어림도 없다.”
엄마가 단칼에 거절하자 큰오빠는 주방에서 칼을 들고 왔다. 아무리 막나가도 핏줄에게 칼을 들이댄다면 자식이 아니라고 판단했을까, 엄마는 오히려 덤덤해 보였다. 큰오빠는 내가 듣기에도 뜬구름 잡는 헛소리를 하며 거품을 물었다. 엄마가 외면하자 큰오빠는 손을 문지방 위에 펴고 칼을 치켜들었다.
“내가 주먹질한다고 그러는 모양인데 이 더러운 손을 잘라버리면 믿어줄 겁니까.”
홧김에라도 내리칠 것 같아 몸에 소름이 돋았다. 할 말은 다 하고 엄마의 반응을 봐서 결단을 내릴 기세였다.
“맹모삼천이라던데, 네가 칼을 쥐는 걸 보니 다 내 잘못이다. 아무리 그래도 칼은 내리고 이야기하자.”
엄마는 타협에 들어갔다. 엄마는 지금까지 네 몫의 몇 배는 가져갔으므로 상속 포기각서를 쓰면 생각해보겠다고 버텼다. 눈앞의 이익이라면 뒤를 가리지 않는 큰오빠는 칼을 내려놓았다. 상속 포기각서에 큰오빠의 지장을 찍은 엄마는 그래도 미덥지 않은지 뒷면에 손도장까지 받았다. 엄마는 제법 큰돈을 내주었고 한동안 큰오빠는 나타나지 않았다.
반년 후, 큰오빠는 빤지르르한 행색으로 나타났다. 큰오빠가 차린 사업장은 ‘바다이야기’였다. 처음에는 횟집인 줄 알았다. 큰오빠가 고기를 풀어 돈을 버는 일이라고 에둘러 말했기 때문이다. 고래가 어떻고 상어가 어떻고…, 용어가 상호와 맞았기에 나도 그러려니 여겼다. 나중에 그것이 화면에 고기의 종류를 맞추는 사행성 게임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나는 엄마에게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뉴스에서 하도 떠들어대면서 엄마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하필이면 도박장이라는 걸 알고 나서 엄마는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바다이야기’로 사회가 시끄러웠다. 게임에 빠져 쪽박을 찬 사람들의 이야기가 연일 보도되었다. 뱃사람 아무개는 얼마를 탕진했고 직장인 누구는 하룻밤 사이에 월급을 날렸다는 소문이 들렸다. 엄마는 큰오빠에게 찾아가 손해 봐도 좋으니 당장 문을 닫으라고 애원했다. 그렇다고 그만둘 큰오빠가 아니었다. 결국, 큰오빠는 끝까지 문을 닫지 않다가 피해자들이 고소했다. 큰오빠는 법정구속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엄마는 생선가게의 문을 닫고, 피해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합의금을 준 덕택에 큰오빠는 선고유예를 받았다.
엄마가 동맥질환으로 입원한 후 남매가 모였다. 엄마를 돌보는 일은 막내인 나와 작은오빠가 맡기로 정했다. 하지만 생선가게가 문제였다. 작은오빠나 나나 직장을 그만두고 생선장사를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큰오빠가 나섰다. 정신 차리고 가업을 이어보겠다고 했다. 새장가도 들겠다는 포부도 내비쳤다. 큰오빠가 안정될 수 있다면 생선가게는 큰오빠에게 양보할 생각이었다. 가족들이 화목하게 지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엄마가 확보한 단골손님이 많았다. 다져놓은 바닥에서 손님과 거래처 관리만 잘해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었다. 돈맛을 본 큰오빠는 한동안 칼을 손에 놓지 않았다. 주먹을 휘두르던 손으로 생선을 고르고 배를 가르고 토막 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얼마 가지 않아 큰오빠는 종업원을 들여 가게를 맡겼다. 수입차를 뽑아 여자들을 태우고 돌아다녔다. 그런 큰오빠를 주변 상인들은 곱게 보지 않았다. 제 어미가 평생 이룬 가게를 한순간에 말아먹는다며 혀를 찼다.
몸이 조금 나아지자 엄마는 다시 생선가게 문을 열었다. 소일 삼는다고 말했지만,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한 번 무너진 몸에 병마가 들었고, 그 독하다는 방사능 치료도 은밀하게 증식하는 병을 몰아내지 못했다.
큰오빠는 생선가게를 다시 맡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대신 엄마의 재산에 집착을 보였다. 부동산은 생선가게와 지금 사는 아파트가 전부였다. 은행에 상당한 금액이 예치되었다고 추정하면서도 아무도 그 내용을 몰랐다. 오빠는 무슨 수단을 쓰더라도 금고를 열어보려고 틈을 노렸다. 금고 안에 상속 포기각서가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큰오빠가 몇 차례 받아 간 금액이 낱낱이 적혀 있다. 그것은 빚만 수두룩한 오빠의 인생계산서와 같았다.
큰오빠가 가고 병원을 나섰다. 멀미가 나는 듯 속이 메슥거렸다. 시내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바닷가로 차를 돌렸다. 절벽과 갯바위가 어우러진 해안은 풍광이 빼어나 드라이브하기 좋은 코스다. 마음이 답답할 때 이 길을 달리면 가슴이 탁 트였는데, 자꾸만 눈물이 풍경을 가렸다.
곧장 엄마의 생선가게로 달렸다. 엄마가 있어야 할 곳에 엄마가 없는 풍경은 낯설었다. 엄마는 이 자리에서 칼로 생선을 다듬었다. 살아 있는 것을 죽이고 죽은 것을 동강 내는 직업이었다. 칼, 도마, 피, 비린내, 듣기만 해도 섬뜩한 것들이 엄마와 한몸이었다. 엄마도 한때는 벌레 한 마리만 보아도 기겁했던 여자였을 것이다. 그런 엄마가 펄떡펄떡 살아 숨 쉬는 생선을 단칼에 동강 내고 있었다.
다섯 평 남짓한 가게 구석구석에 잡다한 물품이 흩어져 있다. 말라붙은 도마가 널브러져 있고 녹이 슬어 더는 쓸 수 없는 크고 작은 칼들이 구석에 나뒹굴었다. 탁자에는 ‘고등어 한 손 6천 원’이라고 쓰인 골판지가 얹혀 있다. 선반 위에서 배불뚝이 텔레비전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나를 내려다보았다. 먼지가 쌓여 가는 배경과 생기를 잃은 소품들, 주연이 빠진 무대는 그대로 멈춘 채 온기조차 잃었다. 기둥에 걸린 낡은 녹음기에서 금방이라도 노래가 흘러나올 것 같았다. 엄마는 이미자 노래를 좋아했다. 재생 단추를 누르니 이미자 골든디스크가 돌아갔다. 카세트가 테이프를 씹어먹거나 늘어지면 나는 새 테이프를 사다 주곤 했다. 이미자의 노래는 하도 들었기에 나도 끝까지 부를 정도였다.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데 이웃집 가게 아주머니가 다가와 내 어깨를 어루만졌다.
“엄마는 치료 잘 받고 계시나?”
“다시 돌아오시기는 힘들 것 같아요.”
“쯧쯧, 노인네 이날 이때까지 비린내만 맡다가…, 우짜노.”
가게 아주머니는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나는 마음이 아려 눈시울이 붉어졌다.
엄마가 주는 용돈에는 가끔 비린내가 났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내 몸에도 비린내가 날 것 같았다. 어린 나는 연필 한 자루를 사고 잔돈으로 바꾸었다. 공무원 아빠를 둔 친구나 하얀 와이셔츠에 양복 입은 아빠를 둔 친구가 무척 부러웠다.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그랬다. 교육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는 학비나 용돈을 통장으로 받았는데도 비린내가 나는 것 같았다.
“이게 다 운명이다.”
나는 운명을 믿지 않았다. 세상과 부딪칠수록 삶을 좌우하는 어떤 힘이 부분적으로 작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것, 엄마가 칼을 든 것은 자식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었겠지만 그것도 숙명인지 모른다. 모성이 숙명이 된다는 사실을 깨우칠 무렵 나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내가 선생이 된 것은 사람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직업을 가지라는 엄마의 뜻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선생이라고 해서 자신의 앞길을 가르칠 수 없었다. 결혼하고 나서 행복이 언제까지 갈 줄 알았다. 그런데 나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상수일 것 같았던 남편이 변수가 될 줄이야. 끝내 나는 어린 딸을 데리고 집을 나와 원룸을 얻었다.
딸이 난파되자 제일 먼저 구명조끼를 던진 사람은 엄마였다. 선생의 월급으로 내 딸 하나는 키울 수 있지만, 엄마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탕아가 되어 돌아온 큰오빠도 받아들인 엄마였기에 나 하나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식들을 다 출가시키고 홀로 사는 엄마가 안쓰럽기도 해서 엄마 집으로 들어갔다.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작은오빠였다. 내 위치를 묻고는 상의할 게 있다며 근처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다. 얼떨결에 그러자고 약속하고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또 무슨 말로 속을 뒤집어놓을지.
카페에 들어가니 작은오빠가 먼저 와 있었다. 주문한 녹차가 나오도록 작은오빠는 말을 하지 않고 내 눈치를 본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은오빠가 녹차 한 모금을 마시고, 말을 했다.
“금고를 열어야 하지 않나. 엄마 살아 계실 때 정리하게.”
작은오빠는 대기업에 근무했다. 부장으로 승진했을 때 엄마는 시장 점포마다 떡을 돌리며 자랑했다.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고 한다지만, 엄마에게는 세상에 당당하게 내놓을 수 있는 자식이었다. 수입 의류 전문점을 운영하는 올케 또한 수입이 괜찮기에 작은오빠는 남매 가운데 형편이 제일 나았다.
“작은오빠는 지금도 배가 고프나?”
내가 찜부럭을 부리자 작은오빠의 눈빛이 허공을 배회하다가 탁자 위로 떨어졌다. 괜히 말을 꺼냈다는 표정으로 가느다란 한숨을 쉬었다. 녹차로 입을 헹군 작은오빠가 다시 입을 열었다. 숨겼던 속내인지 큰오빠를 빌미로 말을 에둘렀다.
“형이 무슨 사고라도 칠까 걱정돼서 그래.”
“나는 반대야. 엄마가 살아 계시는데 우리가 무슨 권리로….”
상속 이야기만 나오면 내 감정은 고슴도치가 되었다. 하나는 대놓고 드러내고 또 하나는 넌지시 비치고, 언젠가는 나도 참견할 일이지만 그것도 때가 있는 법이었다. 한 배에서 나왔지만, 마음은 이익에 따라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미리 준비하는 게….”
다시 건네는 말을 매정하게 팽개치고 밖으로 나왔다. 또 속이 메스꺼웠다.
집에서 학교와 병원을 오가는 생활이 보름 더 이어졌다. 그만큼 엄마의 병세는 악화하였다. 간암 말기는 석 달 넘기기가 어렵지만, 의지에 따라 더 살 수도 있다는데, 고빗사위를 몇 번 넘긴 엄마는 그마저도 놓아버렸다. 그저 잠결에 염라대왕 앞에 서면 좋겠다고 넋두리했다. 당신이 하루라도 빨리 떠나야 자식이 고생을 덜한다는 마음뿐이었다. 몸을 뒤척이다가 자정이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아침부터 머리가 멍했다. 하얀 배 한 척이 잔상으로 남은 것으로 보아 무슨 꿈을 꾼 것 같았다. 엄마에게 필요한 물품을 챙기는데 휴대전화 진동음이 울렸다. 작은오빠였다. 엄마의 호흡이 가빠졌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가는 중이란다. 촌각을 다툰다고 했다. 다리가 후들거려 운전을 못할 것 같았다. 지갑만 챙겨 집을 뛰쳐나와 택시를 잡았다.
“S병원이요. 기사님 급해요. 엄마가 곧 돌아가실 것 같아요.”
기사는 알겠다는 듯 비상깜빡이를 켰다. 출근 시간이라 도로에는 차가 밀렸다. 기지를 발휘한 운전기사가 차선을 넘나들고 손짓으로 양보를 받아내며 이리저리 빠져나갔다. 째깍째깍 비상깜빡이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택시가 달릴수록 마음이 더 초조해졌다.
병실 문을 열었다. 작은오빠가 엄마의 손을 잡고 흐느끼고 있었다. 엄마의 손에는 체온이 남아 있었다. 더는 느낄 수 없는 엄마의 맥박, 그동안 참았던 울음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사시랑이 같은 엄마 손을 쓰다듬었다. 칼에 베인 흉터가 앙상한 손 여기저기 드러났다. 일그러진 엄지손톱에 손가락의 굴곡은 제각각이었다. 휘고 구부러지고 굳고, 한 번도 매니큐어를 발라보지 못한 손에 엄마의 거친 삶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엄마가 남긴 말 없나.”
“내가 도착했을 때도 이미 의식이 없어서…, 그냥 엄마 고맙다고, 다 잊고 좋은 데 가시라고만….”
심장박동기 그래프는 수평을 그리고 있었다. 상승도 추락도 굴곡도 없이.
장례는 절차대로 진행되었다. 엄마와 끈이 이어진 사람들이 한두 분씩 다녀갔다. 누군가가 그랬다, 곡소리와 울음소리가 끊긴다고. 하지만 알고 보니 장례식은 산 자를 위한 의식이었다. 마른 눈물로, 한두 마디 헌사로 그간의 정을 간단히 털어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냉정한 현실의 논리에서 내 엄마라고 해서 특별하지는 않았다.
머릿속에서 많은 낱말이 부유했다. 이별, 별리, 전별, 송별, 전송, 헤어짐과 보냄의 수사들은 하나로 묶는 낱말이 있었다. 내가 친구 어머니를 조문하고 돌아서서 잊어버린 것처럼, 깊은 것 같지만 아주 얕은, 무거운 것 같지만 너무나 가벼운, 회자정리였다. 산 자도 죽은 자도 가벼워지는 것이 죽음이었다. 육신까지 내려놓고 가벼워진 엄마는 임시로 오어사 봉안당에 안치되었다.
저녁에 가족이 다 모였다. 큰일을 함께 치른 피붙이답지 않게 분위기가 서먹했다. 어차피 대화의 귀착점은 금고였다. 큰오빠의 성화가 귀찮아서 금고를 열기로 했다. 그런데 열쇠를 찾고 비밀번호를 알아야 했다.
“열쇠는 내가 가지고 있다. 엄마가 맡겼어.”
작은오빠는 낡은 색동주머니에서 금고 열쇠를 꺼내놓았다.
“그럼, 비밀번호는….”
큰오빠가 나를 보았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비밀번호는 큰오빠 생일이야.”
혼자서는 열지 못하게 엄마가 단속한 것이다. 제우스의 상자를 여는 판도라의 기분이 이럴까. 금고 안에는 엄마만의 비밀이 있고, 그것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지 못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내게도 금고 안을 보여주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극적인 무언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기왕이면 살면서 차마 말 못한 것들과 꼭 이야기할 것들을 기록한 비망록 한 권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보다 엄마의 냄새가 밴 물건이 더 오래 남을 테니까.
작은오빠가 열쇠를 돌리고 손잡이를 잡았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오만원권 한 뭉치와 인감도장과 통장, 등기부등본 그리고 조그마한 보석상자가 위층에 놓여 있었다. 몇 개나 되는 통장에는 예상보다 많은 금액이 찍혀 있었다. 거기에 보험증서까지….
“생각보다 많네. 이 정도면 우리 노후는 걱정 없겠다.”
유산이 다 드러나고, 상속 포기각서가 나오지 않았다. 큰오빠의 표정이 밝아졌다. 작은오빠의 얼굴에 불안감이 감돌았다.
“이제 상속을 논의해야 안 되겠나.”
큰오빠가 당장이라도 정하자고 서둘렀다. 법정 비율이 불만인 듯, 자신은 맏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지분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가 시작될 것 같았다. 큰오빠가 억지를 부리면 서로 멱살을 잡는 불상사까지 일어날까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이게 뭐지?”
보석상자에서 작은오빠가 작고 노란 봉투를 꺼냈다. 열어보니 회색 USB 하나가 들어 있었다. 엄마는 전자기기를 다룰 줄 모른다. 카드단말기를 사용하지 못해 생선을 팔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장부에 하루 매상도 겨우 기록하는 엄마가 컴퓨터 보조기억장치를 남기다니. 눈에 잘 띄는 노란 봉투에 담은 것으로 보아 작다고 가벼이 볼 물건이 아닌 것 같았다.
노트북에 USB 메모리를 꽂으니 동영상 파일이 있었다. 제목이 ‘이순례 여사 유언’이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큰오빠의 얼굴이 다시 굳어졌다. 플레이 버튼을 클릭했다. 제목이 뜨면서 단정한 한복을 입은 엄마가 의자에 앉아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옷고름을 한 번 만진 엄마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내 남길 말이 있어 이렇게 사진관 아저씨에게 부탁해서 사진을 찍는다. 동영상인가 뭔가 찍는다고 해서 연습했는데, 막상 말을 하려니 머리가 하얘진다. 재산 반은 정안사에 시주하거라. 남은 거에서 반절은 큰아들이 가지거라. 그걸로 새장가도 들고 동생들 잘 이끌어라. 그 반절은 둘째와 막내가 나누고, 막내는 착하고 나한테도 제일 잘해서 많이 줘야 하는데, 그 심성으로도 잘 살 거다. 서운해 말고…, 돈도 잘못 쓰면 비린내 나니 잘 써야 한다. 자세한 건 박수항 변호사 그 양반에게 가면 알려줄 게다.”
엄마가 오른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긴 숨을 거푸 쉬었다. 물 한 잔으로 입을 적신 엄마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내 평생 손에 피를 묻혔는데,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을 내가 대신했다고 생각했다. 죽거든 화장해서 오어지에 뿌리거라. 물고기밥이 되면 죽은 고기들에게 덜 미안하지 싶다.”
부처님 오신 날이면 엄마를 승용차에 태우고 절 세 군데를 돌았다. 포항 오어사와 밀양 만어사, 그리고 부산 범어사였다. 셋 다 ‘魚’자가 들어가는 절이었다. 보통 사람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으나 엄마의 삶에는 이름부터 각별한 절이었다.
엄마가 옷고름으로 눈물을 닦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카메라가 엄마를 서서히 클로즈업했다. 엄마가 틀니를 드러내며 애써 웃었다.
큰오빠가 주먹 쥔 손을 부르르 떨다가 벌떡 일어나 뛰쳐나갔다. 벽에 뒤통수를 붙인 채 허공만 보던 작은오빠가 물었다.
“이 내용 알고 있었나?”
“아니, 열쇠를 작은오빠한테 준 줄도 몰랐고….”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고, 이것 때문에 불화가 생길까 걱정이다.”
큰오빠의 핸드폰이 꺼져 있었다. 변호사를 만나러 갔는지 아니면 무슨 일을 꾸미는지 알 수가 없었다. 큰오빠는 절에 시주하는 돈조차 아까워 어떤 구실을 대고 뒤집을지 모른다. 엄마의 유언을 따르지 않고 서로 법정 지분을 갖겠다고 우기면 삼 남매 사이에 메울 수 없는 골이 생길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삼우제 날 아침, 절에 갈 준비를 하는데 벨이 울렸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검은색 양복 윗도리에 색깔이 바랜 남색 바지를 입고 들어오는 큰오빠는 몰골이 더욱 초췌해 보였다. 이틀 동안 밥도 못 먹고 다녔는지 밥 두 공기를 단숨에 해치웠다. 허겁지겁 입 안으로 밥을 밀어 넣는 뒷모습은 영락없는 비렁뱅이였다.
“엄마 주머니에 큰오빠 사진이 있더라.”
내가 준 사진을 보다가 큰오빠는 눈물과 콧물이 섞인 채로 훌쩍거린다. 큰오빠가 엄마에게 안겨 활짝 웃는 어릴 때 사진이었다. 엄마가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수시로 보던 걸 내가 그걸 왜 보냐고 화를 냈던 기억이 난다.
“그러게, 살아계실 때 좀 자주 찾아오고 잘하지.”
“밥 굶고 다니지 말고 이제 가정 꾸려라. 그래야 돌아가신 엄마가 걱정을 덜하지.”
“누가 나 같은 놈한테 오겠나.”
나 같은 놈? 지금까지 큰오빠에게 자신을 낮추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스스로 느끼기는 했을지언정 제 입으로 내뱉을 큰오빠가 아니었다. 겉으로 호기를 부려서라도 약점을 감출 큰오빠였다.
정안사로 가는 산길에 줄줄이 연등이 내걸렸다. 절 곳곳에도 불자들의 소원이 적힌 연등을 밝혔다. 스님의 방으로 가자 스님은 연잎차를 내놓았다. 차를 마시는 동안 서로 말이 없었다. 침묵이 깨지면서 작은오빠가 스님에게 어머니의 유언을 말했다.
“재산 일부를 시주하신다는 말씀은 들었지만, 유골을 오어지에 뿌려 달라는 말씀은 없으셔서….”
“저희도 그저께 영상을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유골을 아무 곳에 뿌리는 것은 금지되어 있는데….”
눈을 감은 채 스님은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21개 염주가 스님의 손에서 한 바퀴 돌고, 묘안을 떠올린 듯 스님이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보살님의 소원이니…, 그러면 한 줌만 뿌리도록 합시다. 상징성 있는 의식이면 되지 않겠는지요.”
“예, 그렇게라도 하면 엄마도 좋아하실 겁니다.”
호수의 물빛도 더 짙어졌다. 진달래, 개나리, 수수꽃다리가 다녀간 산에 군데군데 아카시꽃이 피었다. 깊어 가는 봄날 숲도 더욱 무성해져 싱그러운 공기를 뿜어댔다. 살아 있는 것들은 저렇게 찬란해지는데, 슬픔에도 색깔이 있다면 푸른빛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산허리를 한참 걸어서야 인적이 없는 곳에 닿을 수 있었다. 예를 차리기 좋은 물가에 자리를 잡았다. 큰오빠가 유골을 찻숟가락만큼의 양을 한지에 싸서 종이배에 담았다. 그 위에 엄마의 혼백을 덮고 접이식 상 위에 올렸다. 함께 간략한 예를 갖춘 다음 큰오빠가 종이배를 물 위에 가만히 띄웠다.
“마하반야바라밀다….”
마침 바람이 알맞게 불었다. 바람에 실린 종이배가 잔잔한 물결과 함께 항해를 시작했다. 종이배는 비스듬히 가다가 원을 그리며 윤슬이 빛나는 곳에 정착했다.
“현생에서 전생의 업을 소멸하셨으니 이제 좋은 곳에 가실 겁니다.”
“고맙습니다 스님.”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라고 들어보셨을 겁니다. 우리네 인생에도 보존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업입니다. 업은 도덕적 힘인데, 다음 생에서 계급이나 기질 또는 성격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현생의 불평등은 업으로 설명됩니다.”
“그럼 현생은 전생의 결과물이군요.”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가 업이라는 하나의 끈으로 이어집니다. 이제부터라도 자신의 업을 잘 쌓으십시오.”
스님이 합장하고 먼저 자리를 떴다. 다들 자리를 뜨지 못하고 호수만 바라보았다.
큰오빠의 걸음이 유난히 무거웠다. 큰오빠의 뒷모습이 나약해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앞서가던 큰오빠가 둘레길 벤치에 앉았다. 벤치 위에 유골함을 놓고 다들 앉으라고 손짓했다.
“할 말이 있다.”
심경에 변화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한편으로는 시한폭탄처럼 또 무슨 말을 터트릴까 싶어 조바심이 들었다. 말없이 큰오빠의 행동을 지켜만 보았다. 큰오빠가 한숨을 내쉬고 혓바닥으로 입술을 적셨다.
“막내가 엄마에게 제일 잘했으니 내 몫을 가져라. 동생은 정년퇴직 얼마 안 남았는데, 조카들 시집 장가도 보내야 하니 나머지 가지고, 그리고 둘이 상의해서 나한테 장사 밑천 조금씩만 주면 가게 다시 열란다. 손에 피 안 묻히는 장사로 바꿨으면 한다.”
“오빠, 지금 생각하고 말하는 거야?”
“그래, 나는 엄마의 마음만 상속받으련다.”
의외였다. 큰오빠에게는 나올 수 없는 말이었다. 큰오빠가 여기에 와서 하룻밤 묵고 갔다고 스님이 귀띔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무소유를 실천할 큰오빠가 아니었다.
“스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스로 쌓은 업은 상속 포기가 안 된다고 하시던데,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듣지도 못하겠고, 화가 나서 대웅전에 들어 밤새도록 절을 했는데, 이제야 무슨 말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다들 얼굴만 마주 보았다.
“스님이 유골을 한 줌 뿌리라고 했는데 큰오빠는 왜 찻숟가락만큼 양을 종이배에 띄웠어?”
“엄마는 평생을 우리를 위해 억척같이 살았는데, 유골이라도 편히 쉬게 햇볕 좋은 곳에 묻어드리고 싶다.”
평소의 걸걸하던 큰오빠의 목소리가 아니라, 차분한 음성으로 말을 이어갔다.
“막내 손은 애들 가르치는 데 쓰이고…, 나는 주먹질만 하면서 악업을 쌓았으니, 내 손이 제일 천박하네.”
큰오빠는 두 주먹을 쥐었다가 펴기를 몇 번 반복하다가 두 손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큰오빠가 양복 안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빠른 속도로 왼쪽 손가락을 세게 내리쳤다. 잘린 왼쪽 손가락, 네 개가 벤치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작은오빠가 다급하게 119에 전화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심장이 벌렁거려 뜀박질했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둔기에 맞은 것처럼 현기증이 밀려왔다. 허둥지둥 입고 있던 검은 긴치마를 벗어 칼로 반을 잘랐다. 손가락들이 잘려 나간 부분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자른 치마로 손가락이 없는 왼손을 칭칭 몇 번을 감싸 세게 묶어주었다. 내 눈에는 유리구슬 같은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눈앞이 뿌예졌다.
벤치에 앉아 있는 큰오빠를 쳐다봤다. 저런 표정을 본 적이 없었다. 평온하고 고통도 없는 얼굴이었다. 큰오빠는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큰오빠는 일어서서 벤치 밑에 나동그라진 손가락, 네 개를 종이배를 향해 던졌다. 잘린 손가락의 피가 붉은 꽃처럼 피어나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물고기들이 몰려들었다. 종이배 주위로 붉은 꽃잎들이 넘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