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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까리

책 제목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당선작 발표 2026년 3월 1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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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_ 엄마(29살, 아들 하나만 데리고 오지에서 숨어 산다)|아들(9살, 선천성 심장병을 오래 앓고 있는데 생명이 위독하다)|영식(70살, 택시기사)|신부(40살, 교구의 명령으로 급하게 남수단에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타러 간다)|순희(35살, 지상파 방송기자, 특종기사를 써야 살아남는다)|철수(55살, 황금작물 종자를 키워 떼돈을 벌려는 은퇴인) *등장인물은 모두 이름이 아닌 손님이란 명칭으로 불린다.
때_ 아주 무더운 여름 하루.
장소_ 사람이 살지 않는 깊고 험한 백두대간 산속.
무대_ 무대는 방 안이 되었다 택시 안이 되었다 산길이 되었다 한다. 핀조명과 무대조명으로 장소가 구별된다.

 

#1. 방 안
캄캄한 무대. 엄마가 쪽문을 활짝 연다. 문을 연 만큼 무대가 밝아지고 움막 속 방 안이 보인다. 밝음의 한 가운데 이불을 덮고 아들이 누운 채 신음을 낸다. 방 안에는 가재도구 없다. 벽에 하얀 원피스 한 벌 걸려 있다. 아들 발치에 베낭과 맥가이버칼, 사과, 물통이 놓여 있다. 하얀 아이 옷이 개켜져 있다. 엄마, 급하게 방 안으로 들어온다. 손에 찌그러진 통 하나 들고 있다. 엄마는 피 묻은 옷을 벗는다. 바지춤에서 피 묻은 맥가이버칼을 꺼낸다. 벗은 옷으로 칼을 깨끗하게 닦는다. 피 묻은 옷은 이불과 함께 한쪽으로 뭉뚱그려 놓는다. 베낭 속에 개켜진 아들 옷을 잘 집어넣고 다른 편에 물병과 사과를 쑤셔 넣는다. 벽의 하얀 원피스를 꺼내 입는다. 칼을 브래지어 안으로 잘 집어넣는다. 엄마, 아들을 무릎 위로 안는다.

 

엄마     (웃으며) 다 끝났어. 병원 가자.
아들     (끙끙 앓는다) 병원?
엄마     갈 때까지 가보는 거야.
아들     어디만치 가?
엄마     택시 타면 금방 가. 조금만 참아.

 

엄마가 쑤셔 모아 놓은 이불뭉치 위로 찌그러진 통에 든 휘발유를 쏟아 뿌린다. 배낭을 앞에 맨 엄마, 아들을 일으킨다. 아들, 힘겹게 일어난다. 아들을 업고 문 밖으로 나간다. 방 안으로 성냥불을 켜서 던진다. 이불 위로 불이 확 붙는다.

 

엄마     이제, 정말 다 끝났어.

 

돌아서서 뛰어간다. 암전.

#2. 산길 위
핀조명과 무대조명으로 택시 안과 산길을 구별한다.
무대 밝아지면 무대 한 가운데에 택시가 서 있다. 노란 개인택시 셔츠를 입은 영식이 아들을 업고 낑낑거리며 들어온다. 엄마, 배낭을 메고 뒤따라온다. 영식, 택시 뒷문을 열고 아들을 좌석에 털석 내던지다시피 한다.

 

엄마     아이고, 좀좀 살살.
영식     이런 날벼락이 있나? 미리 말을 해야지. 택시두 못 들어가는 곳이라구.
엄마     그럼 누가 와유?
영식     낼모레, 내가 칠순이요. 나니까 산골짜기부터 애를 들쳐업고 기어올라왔지. 돼지골 움막에 혼자 서 있으니, 손님 하난지 알았지. 누가 산골짜기 밑에 애를 숨긴 줄 알았나.
엄마     (굽실) 참말루 고맙구먼유.
영식     근데, 아이가 몇 살이유?
엄마     태어난 지 아홉 해 지났어유.
영식     아홉 해? 아홉 살?
엄마     야.
영식     아홉 살 치곤 너무 가벼워. 종이짝 같아. 하긴, 내 나이엔 종이짝 하나두 겁나 무거운 법잉게.

 

엄마를 빤히 들여다보는 영식. 엄마는 영식의 눈길을 피한다.

 

영식     아니, 요새 세상에 어떻게 이런 오지에서 사남? 간첩두 아니구, 화전민두 아니구. 전기두 수도두 길두 없는 디서. (엄마에게 얼굴 들이대며) 혹시 뭐 켕기는 거 있소? 죄 짓고 숨었소?

 

영식, 운전석에 들어가 앉는다. 그제사 뒷좌석으로 들어가 앉는 엄마, 아들을 무릎 위로 안는다. 영식, 땀을 연신 닦으며 휴대폰을 조작한다.

 

엄마     안 가는감유?
영식     길을 찾아야 가지유우∼.
엄마     아이가 많이 아파유.
영식     옴메? 휴대폰 죽어 뿌렀네? 밧데리 나갔나?

 

영식, 택시에서 나가 이리저리 다니며 핸드폰 조작한다. 영식, 택시 위로 올라간다. 휴대폰 조작한다. 영식, 운전석에 앉아서 운전대 위로 핸드폰을 집어 던진다. 영식, 네비를 조작한다. 네비 찌지직거린다.

 

영식     별게 속 터지게 하네. 휴대폰도 먹통, 네비두 먹통.
엄마     지가 지름길 알아유.
영식     아침부터 여우에 홀렸나?
엄마     제발, 빨리, 좀….
영식     젠장. 오늘 사람 잘 만난 줄 아슈.

 

영식이, 시동을 걸면 차가 움직인다. 갑자기 브레이크 밟고 엄마와 아들, 앞으로 쏟아진다.

 

영식     떠나기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갑시다.
엄마     (경계) 뭐유?
영식     가는 길에 혹시라도 택시 탈 손님 나타나면 무조건 태울 거요.
엄마     (돈 꺼내) 여기 택시비, 십만 원 더 보태 오십만 원 미리 드릴게유.
영식     (핏대 올리며) 어느 미친 놈이 꼴랑 오십만 원 받고 아침부터 길도 없는데 와서 애 들쳐업어 나르고, 쌩고생을 혀?
엄마     오십만 원이? 꼴랑?
영식     역지사지! 손님 같으면 하겠수?
엄마     (옷을 벗으며)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줄게유. 원하는 대로 다.
영식     이 아줌씨가…. 사람을 뭘로 보는 거야? 애 보는 앞에서.
엄마     다른 손님, 절대 안 돼유!
영식     글씨, 여기까지 온 기름값은 제쳐두고라도. 산길에 빵꾸 난 타이어 갈아 낄 돈은 빼야 할 거 아뇨. 아스팔트두 아니고 이런 울퉁불퉁 산길인 줄 누가 알았누?
엄마     기사님, 제발! 우리 아이 좀 살려주세유.
영식     하긴, 핸드폰두 먹통인 산속에 어떤 미친놈이 있겠냐? 제길! 완전 재수 옴붙었다 오늘. (가래 긁어 뱉는다)

 

택시 부르릉거리며 떠난다. 차창으로 산속 풍경이 지나간다. 영식, 테이프 켜면 찌지직거리며 트로트가 나온다. 영식이 따라 흥얼거린다.

 

영식     (땀 닦으며) 비가 오려나. 푹푹 찐다. 산속인데 더 덥냐? 에어컨두 고장났나? (에어컨 두드리다 앞을 유심히 본다) 뭐야? 처녀귀신인가?
엄마     (잔뜩 긴장해서 앞을 보면)
영식     손님이다! 태웁니다.
엄마     안 돼유!
영식     걱정 마쇼. 귀신 아니니.
엄마     (필사적으로 핸들 잡으며) 그냥 가유!
영식     어허! 핸들 잡은 운전사 맘이요.
엄마     (안절부절) 안 돼유.
영식     일분! 딱 일분!
엄마     후, 회, 할, 거, 야!
영식     아이고, 그 고운 얼굴 좀 핍시다. 무서버라.

 

핀조명 켜지면 등산복 조끼를 걸치고 목에 카메라를 맨 순희가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있다. 배낭과 텐트 가방과 카메라 가방이 그 옆에 놓여 있다. 순희, 조끼를 벗어 나뭇가지에 걸고 수건으로 몸의 땀을 닦는다. 흙투성이 등산화를 벗어 던지고 발을 주무른다.

 

순희     (둘러보며) 밤새 산속을 헤맸는데. 제자리 빙빙 도는 거 같아.

 

순희, 쩔뚝거리며 일어나 이리저리 핸드폰을 들어 조정한다. 맥이 풀린다.

 

순희     너두 죽고(핸드폰, 바지 주머니에 넣고) 내 특종… (주저앉는다. 하품) 너무 졸려. 배고파.

 

순희, 나무 등걸에 기대어 눈을 감는다. 사이.
택시 소리 들린다. 순희, 긴가민가 귀를 기울인다. 택시 클랙슨 소리.

 

순희     하늘아 무너져라! 솟아날 구멍 있다. 여기! 여기!

 

순희, 손을 번쩍 들고 펄쩍펄쩍 뛴다. 택시가 서는 소리. 핀조명 꺼지고 택시가 보인다. 영식이 문 열고 와서 가방들을 들어준다. 순희, 이제 살았다 두 손을 들어 하늘을 보고 절한다. 무대 어두워지고 핀조명에 조끼가 비쳐지다 꺼진다. 앞좌석에 앉은 순희. 차 부르릉거리며 떠난다. 차창으로 산속 풍경 지나간다.

 

순희     아, 냄새. (창문 연다)
영식     문 닫아요. 에어컨 틀었어요.
순희     여기 돼지 탔어요?

 

희, 코를 막고 문을 닫는다. 엄마는 되도록 멀리 떨어져 앉는다.

 

순희     (엄마에 관심없이) 기사님, 젤 빨리 부산 가는 길 아세요? (시계 보며) 지금 10시. 12시 안에만 도착해라!
영식     이차는 서울 갑니다.
순희     부산 안 가요?
영식     지금 서울 부산 가립니까? 이 첩첩산중에서? 태워 줄 때 무조건 타고 보는 거지!
순희     부산 가면 택시비 두 배 더!
엄마     지가 먼저유… 서울요!
영식     숨 넘어가네. (순희 보며) 손님, 나 안 왔음 어쩔 뻔했수?
순희     일 분 일 초가 급해요.
영식     (엄마 보며) 이래봬두 이 몸은 의리파요. 돈에 안 흔들려.
순희     (발 동동 구르며) 12시, 데드타임.
영식     뭐요?
순희     (자기 생각에 빠져) 얼른 얼른 가라.
영식     쟤도 맛이 갔네, 갔어.
아들     (기어들어가는 소리) 어디만치 왔어요?
순희     깜짝이야!

 

엄마, 수건으로 아들의 얼굴을 닦는다. 순희, 그제사 아들과 엄마를 의식하고 돌아본다.

 

영식     택시기사 삼십 년 동안 북한 빼놓고 안 가본 데 없는데 호랑이 나올 거 같이 험한 곳 첨 봤수. 우리나라 남한 땅에 이런 데가 있다니. 그나저나 이런 델, (순희 보며) 처자 혼자 같은데. 왜 왔수? 금광 찾는 거두 아닐 테구….
순희     (의미있게 엄마 본다) 저요?
엄마     (시선을 피한다) …….
영식     요새 여자들 하여튼 대단혀. 혼자 호랑이나 다닐 산속을 헤매지 않나, 젊은 새댁이 길도 없는 산골짝에서 아들이랑 달랑 혼자 사는 거 보면.
엄마     언능 가세유.
순희     아참! 내 특종! 아! 내 특종?
영식     기자요?
순희     네, 지상파 티비 기자!
영식     테레비에도 나와요?
엄마     (얼굴을 더 조아린 채 외면한다)
순희     뉴스 특종 취재하러 왔다가 길을 잃었어요.
영식     쯧쯔, 기자들두 할 짓이 아니다.
순희     이번 특종 터지지 않으면 난 짤려요. 아, 이럴 게 아니라 (핸드폰 켜며) 기사님, 차 안에서 와이파이 돼죠?
영식     네비도 죽고, 핸드폰도 먹통이요.
순희     도대체 여기가 어디야? (엄마와 아들을 구미 당기게 본다)

 

순희, 핸드폰에 쓰기 시작한다. 아들, 깊은 숨소리를 내면서 괴로워한다. 엄마는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있다.

 

엄마     조금만 살살 가유. 아들이 흔들려유.
순희     차가 흔들려 쓸 수가 없어요.

 

순희, 신음하는 아들을 슬쩍 보고 마치 병균이 옮기는 듯 최대한 떨어져 앉는다.

 

영식     맘대루 됩니까? 길이 그런 걸. 가만, (눈을 비빈다) 쩌기, 사람 맞죠?
순희     (본다) 남자?
영식     (순희에게) 손님이면 태웁니다.
엄마     택시, 지가 제일 먼저 불렀어유.
영식     지금, 누가 먼저 부른 게 대수요? 빨리 가는 게 문제지.
순희     안 돼요. 태우지 말아요. 무장강도 같아. 이 산속에.
영식     손님은 첨에 처녀귀신인 줄 알았수.
엄마     아들 죽어유. 그냥 가유.
영식     우리 아버지 어머니 두 양반 다 치매 걸려서 들어가는 돈이 새는 물독에 물 붓기요. 좋은 일 한 번 더 합시다.
순희     손님이 싫다는데.
영식     아, 여자들끼리 뒷좌석 앉으면 앞좌석 비는구먼.
순희     마감까지 가야 하는데 뒷감당하실 거예요?
영식     손님 뒷감당을 내가 왜? 빡빡하긴. 그냥 갑니다.

 

암전.
핀조명이 등산복 차림의 철수를 비춘다. 철수는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들고 배낭을 메고 있다. 온몸은 흙투성이. 산을 굴러 내려온 것처럼 입성이 험하다. 많이 지쳐 있다. 택시 소리 나면 반가워 박스를 꼭 안은 채 길 가운데로 나와 막아 선다.

 

영식     (소리) 죽으려구 환장했소? 비켜요!

 

경적 소리 요란하게 울린다. 철수, 그 자리에 벌러덩 눕는다.

 

철수     죽어두 못 비켜!

 

경적 소리 소란하게 울리고. 핀조명 꺼지고 택시 조명 켜지면 철수가 앞좌석에 앉았다. 그의 무릎 위에 아이스박스를 소중히 얹어 놓았다. 뒷좌석에는 순희가 엄마와 아들 옆에 앉았다. 서로 차창 밖만 바라본다. 영식은 상자를 만지려 한다. 철수가 얼른 못 만지게 피한다.

 

영식     어이쿠, 신주단지 같습니다.
철수     신주단지에 비교합니까?
아들     (힘없이) 어디만치 왔어요?

 

모두, 아들을 쳐다본다.

 

엄마     (아들의 땀을 닦는다) 아가, 조금만 참아.
영식     저 아이 덕에 이 차 얻어 탄 줄 아쇼. 손님두 목적지까지 무조건 오십만 원입니다. 요금은.
철수     땅끝 해남까지 최대한 빨리 가야 합니다. 일 초가 바빠요.
영식     어젯밤 뭔 꿈을 꿨지? 오늘 손님들은 정신병자들 같아. 나도 미치겠다.
아들     (칭얼대듯) 어디만치 왔어요?
엄마     (영식에게) 우리 아들 책임질 거예유?
영식     (펄쩍 뛰며) 환장하겄네? 내가 왜 책임을 져?
엄마     그냥, 빨리 가지구 했잖아유?

 

아들이 힘겹게 호흡하면 엄마가 아들을 꼭 안는다.

 

영식     밟습니다. 팍팍.

 

차 엔진 소리 요란하다.

 

순희     (핸드폰 본다) 이상하다. 아직 안 터지지? 여기가 어디지?

 

창밖을 내다보는 순희, 머리를 갸웃거린다. 철수, 흔들리는 차에서 상자가 최대한 흔들리지 않도록 신경 써서 잡는다.

 

철수     운전 살살, 안 흔들리게.
영식     그 안에 금이요?
철수     금보다 더 귀한 거.
영식     세상에 금보다 더 귀한 거 있소?
철수     금을 만들어 줄 거.
영식     그게 뭐요? 나두 좀 가르쳐 주소.
철수     이름하여 황금 작물 종자!
영식     심봤다 그런 거요?
철수     심봤다는 운이지만 이건 사업입니다. 벤처 사업. 빨리 가서 옮겨 심어야 합니다. 아주 까다로와요. 종자가. 더워도 안 되고 추워도 안 되고, 해풍이 불어야 하고. 물이 많아두 안 되고 없어두 안 되고.
영식     임금보다 더하네. 내사 이 나이에 내 몸 가누기도 귀찮은데 안 하고 말겠소.
철수     근데 이게 금을 준단 말이오.
순희     그런 거 우리 텔레비전에서 특집 다큐로 방송한 적 있는데. 진시황의 불노초가 전설이 아니다. 정말 그런 가치가 있어요?
철수     두 말 하면 잔소리. 만병통치약.
엄마     (눈이 번쩍 뜨인다) 심장병두 나아요?
철수     백혈병, 췌장암, 말기암. 다 나아요. 까짓 심장병이야 아이들 장난이지.
엄마     (달려들 듯) 얼만데요?
철수     이 양반들이. 내가 입성이 험하니까 우습게 보는 모양인데. 이거 동네 약국처럼 쉽게 사고파는 거 아니요. 돈으로 매길 수 없지. 열매와 뿌리에서 약이 병아리 오줌뿐이 안 나오니. 부르는 게 값이요.
영식     허허, 왠지 구린내가 나.
순희     노인정이나 노인 복지회관에서 저런 걸 팔구 노인들 전 재산 다 사기 당하구. 그런 거 아닌가?
철수     평생 금융업을 하다 은퇴하고 귀농했소. 이걸 하려구 퇴직금과 전 재산을 다 걸었지. 왜정 때 일본놈이 우리나라에서 훔쳐간 종자를 일본 산 속 다 뒤져가며 겨우 찾았어. 태백산 깊은 곳에 삼 년 동안 이식시켰소. 올해 처음으로 번식을 성공시킨 종자요.
영식     호오! 그럴 듯해.
철수     이거 특허받아 상장 올리면 게임 오바야. 흐흐흐. 봐요 봐. 상자 밖으로 뿜어 나오는 빛, 황금빛.

 

철수, 자랑스럽게 상자를 그들 앞으로 조금 열어 보인다. 상자 틈으로 황금빛이 뿜어 나온다.

 

순희     어디 한번 뚜껑 열어 봐요.
철수     미쳤소? 이 한증막에 다 죽이려구?
엄마     선상님, 우리 아이, 쪼금이라도 안 될까유? 제발!
철수     (헛웃음) 안 돼요
엄마     아이가 많이 아파유. 조금만이라두.
철수     글쎄, 아직 초기 단계라 안 된다구요.
엄마     그럼, 그 황금빛만이라도 아이가 조금 볼 수 있게… (상자에 손을 댄다)
철수     (거칠게 손을 밀치며) 부정 타게. 이 여자가 미쳤나?

 

엄마, 아들을 좌석에 기대어 앉힌다. 철수를 노려보다 덮치듯 상자를 빼앗는다. 철수, 놀라서 상자를 움켜안고 엄마와 몸싸움을 한다. 차가 크게 흔들린다.

 

영식     낭떠러지! 앉아. 낭떠러지! 가만! 가만.
순희     내 카메라! (놓치지 않게 꼭 안는다)
아들     (괴롭게) 엄마….

 

철수, 상자를 빼앗아 앞으로 돌아앉는다. 순희가 한심하듯 엄마를 본다. 아들은 문 쪽으로 힘을 못 주고 구겨져 있다. 차가 선다. 영식, 창밖을 내다보며 안도의 숨과 함께 가슴을 쓸어 내린다.

 

영식     미쳤어? 둘 다?
철수     미친 건 내가 아니라 저 여자지. 어디 감히! 재수없게!
순희     얼른 갑시다. 빨리 내리고 싶어. 이 차에서.

 

영식, 다시 시동 걸고 차 떠난다. 엄마, 브래지어에서 칼을 빼들고 철수의 뒤로 상자를 내리찍는다. 모두들 깜짝 놀란다. 철수, 어안이 벙벙하며 엄마, 다시 칼을 빼들려고 한다. 철수가 칼을 빼들고 뒤돌아 엄마를 찌르려 한다. 엄마가 칼을 막는다. 잽싸게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순희. 아들은 차 구석에 쪼그라들어 있다. 영식, 급브레이크를 잡는다. 차가 앞으로 크게 쏠리며 모두들 앞으로 고꾸라진다. 철수가 칼을 떨어뜨리고 넘어진다. 엄마가 얼른 칼을 줍는다.

 

영식     (엄마에게 손을 내밀고) 내놔!
엄마     …….
영식     아들 데리고 내릴 거야? 칼을 줄 거야?
엄마     (아들을 안는다)

 

순희, 엄마 손에서 칼을 뺏어 영식에게 준다. 영식이 밖으로 버리려 한다.

 

엄마     안 돼! 버리지 마!
영식     (뒤돌아보며) 뭐야? 당신!
순희     당신 지금 살인미수죄야!

 

모두들 엄마를 쏘아본다. 엄마, 막다른 골목에 몰린 듯 눈에서 광채 나고 아들을 있는 힘을 다해 껴안고 있다. 아들의 신음 소리만 들린다. 갑자기 로만 칼라 셔츠에 검은 양복을 입은 신부가 운전석 창문으로 얼굴 들이밀고 경적을 요란하게 누른다. 영식이 기겁을 해 놀라 일어나다 천장에 머리를 박는다. 모두들 놀란다.

 

신부     (헉헉거리며) 제발! 나 좀 태워주세요.
영식     다, 당신, 누구요?
신부     저쪽 절벽 모퉁이부터 뛰어 왔어요. 태워달라구 소리소리 지르는 데. 아무도 안 보고. 차가 심하게 흔들리다 갑자기 서길래 죽어라 뛰어 왔어요. 제발 태워 주세요.
엄마     이리 와서 타세요.
영식     웬일이요. 안 된다고 펄쩍 뛰더니만.
신부     고맙습니다.
영식     짐은 트렁크 안에 두세요.
신부     우산만 들고 탈게요. 자꾸 잃어버려서.

 

신부가 트렁크 안에 가방을 두고 우산을 든 채 엄마 옆 좌석에 앉는다. 엄마는 아들을 끌어당기고 순희 쪽으로 붙는다. 순희는 살이 닿을까 문 쪽으로 바짝 붙어 앉는다. 엄마 곁에 찡겨 앉은 신부는 아들의 다리를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놓는다. 차 다시 움직인다. 영식, 창을 내린다.

 

영식     창문 좀 잠깐 엽니다. (새로운 공기를 들이마시고 다시 운전 시작)

 

신부, 사람들에게 돌아가며 인사한다.

 

아들     (신부의 손을 잡고) 어디만치 왔어요?
신부     아들입니까?
엄마     (고개 끄덕)
영식     저 손님이 아들 병원 데려가려구 날 오지 산속까지 불러서 왔다우. 병원 가는 길이라 누이 좋구 매부 좋구 모두 같이 타게 된 겁니다.
철수     누이 좋구 매부 좋구 좋아하네. (엄마를 노려보며) 살인마.
영식     그만, 그만. 조용히 갑시다. 제발. 신부님두 타셨는데.
신부     감사합니다.
순희     신부님은 어째서 산속에 혼자 헤매셨어요?
신부     헤맨 게 아니라 큰길가 버스 타러 가는 길입니다.
철수     엥? 여기 길 잘 아세요?
신부     서울 가는 버스는 큰길 나가서 타야 하는데. 하루에 한 번 지나가는 버스라 그거 놓치면 클나서. 시간은 없고 가끔 지나가는 차들이 있으면 얻어 타려고 나왔습니다.
순희     여기 지리를 잘 아시겠네요?
신부     제가 아프리카에서 오래 살다 와서 여기 지리는 잘 모르고. 조금 더 나가면 버스 다니는 큰길이 나온다고 하길래 쭉 걸었어요.
순희     큰길 나가면 인터넷도 터지고, 휴대폰도 터지겠네요.
영식     신부님은 어디까지 가시나요?
신부     인천공항이요. 내일 새벽 비행기로 남수단으로 가야 해서요. 
순희     낼 새벽이요?
철수     (무심히 시계 보며) 그때까지 공항까지 도착하려나?
영식     고속도로만 타면 됩니다.
신부     아들이 많이 아픕니까?
엄마     선천성 심장병입니다.
철수     보아하니 아직 한창 젊은 나이 같은데 애 아빠는 없수?
엄마     …….
철수     (탐색하듯) 말투로는 산속 사람 같지는 않고, 혹시 무슨 엄청난 사연을 숨기고 있는 거 아닌가?
영식     암만 해도 충청도는 아닌 거 같구.
순희     촉이 와.

 

엄마,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려고 신부의 우산을 들어 보인다.

 

엄마     남수단 사람들은 흑인이에요?
신부     아프리카니까.
엄마     내 아들보다 더 가난해요?
신부     …….
엄마     내 아들보다 더 불쌍해요?
철수     적어도 죄짓고 숨어살지는 않지. 깜둥이들은.
영식     기자라구 했죠?
순희     그런데요?
영식     특종거리 하나 줄까?
순희     이 산속에서 특종이?
영식     우리 택시 안 사람들.
엄마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뜬다)
영식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명. 백두대간 오지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 어때요? 신부님? 특종감 맞죠?
신부     허허, 저에 대해선 쓸 말이 없는데.
순희     (입맛 다시며) 우선 사진 먼저 찍고.

 

좁아서 사진 찍기 힘들어도 순희는 온몸을 비틀어가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철수는 상자를 드러내 보인다. 영식은 브이자를 보이고 신부는 그냥 편하게 웃는다. 순희가 엄마를 찍으려 하면 엄마는 아이를 꼭 안은 채 얼굴을 파묻는다. 엄마의 얼굴에 순희가 핸드폰 들이댄다.

 

순희     이거 기사 채택되면 모두들에게 초상권 보낼게요.

 

엄마가 잽싸게 순희의 핸드폰을 빼앗아 창밖으로 던진다. 모두 벙 찐 얼굴로 엄마를 본다.

 

순희     우왁 내 핸폰. 보물. (창밖으로 얼굴 내밀며) 차 세워. 세워.
엄마     (독기 서린 목소리) 그냥 가!
철수     싫다면 찍지 말지.
영식     그렇다구 버려? 남의 것을?

 

엄마가 온몸을 바짝 세운다. 독사 같은 모습이다. 아들, 발작적으로 기침을 한다.

 

신부     나 땜에 불편하지? 미안해. 발 뻗어. 내 위로.
철수     혹시 결핵이면 내 황금작물 종자, 클났다.
순희     (울먹이며) 어떡해, 내 핸폰. 그거 없으면 난 죽어.

 

차의 시동이 나가는 소리.

 

영식     차가 갤갤거린다. 사람이 너무 많아.
철수     에어컨은?
영식     벌써 껐지. 모두들 나가 밀어야겠습니다. 뒤에서. 저기 보이는 앞 언덕 워낙 고바이져 차가 뻗겠어요.
신부     제가 밀겠습니다. (나간다)
순희     저두요. 핸드폰 찾아야 해. (나간다)
영식     (철수에게) 손님두 나가쇼.
철수     (상자 부여잡고) 난 안 돼요.
영식     누가 그거 안 훔쳐 가요. 여기 두고 밀어요. 나가서.

 

철수가 상자를 들고 나가서 선다. 무대 조명 어두워지고 핀조명은 밀고 있는 신부와 헤집고 핸드폰을 찾는 순희를 비춘다.

 

신부     더요?
영식     (소리) 조금만 더!
신부     (순희에게) 같이 밀어요.
순희     (다급해서) 잠깐만요.

 

순희, 한 구석에서 옷을 내리고 볼일을 본다. 신부, 식겁을 하고 외면한다. 끙끙거리며 혼자 택시를 미는 신부. 순희, 신부 곁으로 온다.

 

순희     아랫배 터져서 죽는 줄 알았네. 몇 시간을 참았는지.
신부     찾았어요? 핸폰?
순희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죠.
영식     (소리) 한 번만, 더요!
신부     (죽을 힘으로 민다) 됐어요?

 

신부, 더워서 헉헉거리며 로만칼라를 뺀다. 땀을 셔츠 끝으로 닦는다. 핀조명 꺼지면 엄마 옆 좌석에 가 앉는 신부. 순희가 얼른 신부 곁으로 가서 앉는다. 얼결에 옆으로 밀리는 신부, 엄마와 아들. 신부, 로만칼라를 다시 끼려고 하면 순희, 로만칼러를 못 끼게 한다.

 

영식     얼만큼 더 가면 버스길입니까?
신부     글쎄, 잘 모르겠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엄마     (깊은 한숨)
영식     (엄마 보며) 할 수 없잖아요. 정 그러면 고속도로까지 가서 다른 차 갈아 타든지.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니잖아요.

 

신부와 순희는 좌석 뒤에 머리를 대고 지쳐 있다. 엄마는 눈을 감고 있다.

 

순희     (시계를 본다. 철수에게) 아까 몇 시에 타셨지요?
철수     12시.
순희     내 시계가 섰나?
철수     (시계를 본다) 신부님, 시계 찼어요?
신부     지금 2십니다.
순희     아니, 이 안에서 4시간을 보냈단 말야? 어쩐지 방광이 터지더라.
철수     난 두 시간을? 기사 양반, 어떻게 된 거요? 지금 우리 뺑뺑이 돌려 요금 부풀리는 거 아니요?
순희     열 시에 차를 탔는데. 말두 안 돼. 아직도 산속인 거? 강원도 땅이 그렇게 넓어요? 벌써 부산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에요.

 

창밖이 어두워지며 소낙비가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들     (갑자기 날카롭게 크게) 어디만치 왔어요?
철수     아니, 그 아이는 그 말뿐이 몰라요?
순희     (귀 막으며) 저 소리 미치겠다.
엄마     (표독스럽게) 아픈 아이를 가지고 왜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요.
영식     돌리긴 누가 돌려요. 길 따라 열심히 가고 있었구요.
철수     내가 탄 시각은 정확하게 열두 시. 내 시계는 고장 안 나. 명품이라구.
순희     (밖을 내다보며) 잠깐, 차 세워요.

 

영식, 차 세운다.

 

순희     저기, 내 쪼끼. 아까 차 타기 전에 벗어 놓은 거.

 

핀조명으로 나무에 걸쳐진 조끼를 보여준다.

 

순희     으아악, 내가 아까 탄 자리에 도로 왔어!
철수     그럼, 우리 제자리를 빙빙 돈 거야? 몇 시간 동안. 뭐야? 당신!

 

철수, 영식 멱살을 잡는다.

 

철수     당신들 짜고 고스톱 아냐?
영식     이 사람이 운전 중에. 죽고 싶어 환장했어?
철수     내 황금작물 빼돌리려구?
영식     무슨 개소리? 내가 어디 얼빠진 놈 노는 소리에 몇 시간을 돌아.
철수     얼빠지다니. 내 황금작물이?
신부     (시계 본다) 아무래도 시계가 이상해요. 아직도 2시라니.
영식     (핸드폰 열어 보면) 아침 7시에 태백에서 떠났고 9시. 아침. 돼지골 도착. 시계가 죽었어.

 

영식, 겁에 질려 핸드폰 다시 던진다. 다들 자신의 시계들을 본다. 전부 공포에 질리는 얼굴. 침묵. 서로 얼굴을 본다. 엄마, 입매를 굳게 다문다. 닥쳐 올 시간을 예감하고 받아들이는 표정이다.

 

영식     처음 떠날 때 당신, 후회한다고 하더니?
엄마     후후후 그랬지.
순희     난 마감까지 무조건 부산 가야 돼
철수     이 황금작물이 내 인생 전부야.
영식     신부님!
신부     (영문을 모르겠다)
아들     (뱃속에서 끌어내는 소리) 어디만치 왔어요? (뼛속까지 울리는 괴롭게, 젖먹던 힘까지 다해서 크게) 어디만치 왔어요!

 

택시가 급정거한다. 모두들, 아들을 본다. 아들, 호흡을 거칠게 하다 숨이 소리 나게 멎는다. 입에서 피가 쏟아진다.

 

엄마     아가, 아가.
아들     (죽어가는 소리)어, 디, 만, 치, 왔, 어, 요….

 

아들의 입에서 나오는 피를 엄마가 손으로 막으면서 품에 안는다. 신부 옷으로도 피가 많이 튀었다. 신부, 어쩔 줄 모르고 피를 닦는다. 순희가 피를 닦아 준다. 모두들 침묵, 아들과 엄마를 본다. 엄마, 아들을 꼭 안은 채 그대로 있다. 영식, 두 눈 감고 생각한다.

 

영식     (낮게, 천천히) 신부님, 그쪽으로 내리세요.
신부     ……?
영식     (순희에게) 손님두 내리구요!
순희     (겁에 질려) 왜요? 내가?
영식     내리라면 내려욧!!
철수     (상자를 들고 얼른 내린다)
영식     뭐해요? 빨리 내리지 않구!

 

신부와 순희가 내린다.

 

영식     (사이) 이러고 싶지 않지만, (엄마에게) 내려요.
엄마     …….
영식     내리라구.
엄마     …….
영식     안 내리면 내가 끌어내요.
엄마     …후후훗. (낮게) 내 칼 내놔! 그거 주면 내려.
영식     또 누굴 찌르려구.
엄마     그렇게 죽는 게 무서워? 무섭지. 무섭구말구.

 

차갑고 마르게 웃는 엄마, 주머니에서 돈을 꺼낸다. 돈은 피가 많이 묻어 있다. 돈을 영식에게 준다.

 

영식     (칼 주며) 필요 없어. 돈두 다 가져가.

 

칼을 받아 가슴에 넣은 엄마는 앉은 자리에 돈을 놔두고 아들을 안은 채 내린다. 내리는 것을 신부가 돕는다. 엄마와 아들이 없는 좌석에 돈만 덩그라니 있다.

 

영식     타세요. 얼른요!
신부     기사님!
영식     지금 안 타면 그냥 갑니다.
철수     일단 시키는 대로 하세요.
순희     신부님, 빨리.

 

순희가 신부를 밀어 넣는다. 순희 급하게 차에 탄다. 신부는 그 돈을 모아 앞좌석 팔걸이 위에 놓는다. 차가 급하게 시동 걸고 떠난다. 창밖으로 풍경이 휙휙 지나간다. 비가 쏟아진다. 모두 침묵. 무대 컴컴해지면 핀조명으로 엄마가 아들을 안은 채 비를 맞고 있는 모습을 비춘다.
핀조명 꺼지고 무대 환해지고.

 

신부     잠깐만요. 잠깐만 세워주세요.
순희     왜요? 여길 빨리 빠져나가야 해요.
철수     맞아. 그냥 갑시다.
신부     아까 아이가 어찌 되었는지만 확인하구요.
순희     (시계 보며) 아직두 10시예요.
철수     사람들이 그러는데. 태백산 어디는 육이오 때 몰살당한 빨치산 혼령들이 헤매면서 산 사람들 혼을 빼가는 데가 있다는데.

 

영식이 혼이 나간 것처럼 운전한다. 신부가 영식의 핸들을 잡는다.

 

신부     기사님! 제발!

 

순희, 혼이 나간 듯 주문을 외듯 말을 한다.

 

신부     얼른 그 자리로 가주세요.
영식     외길이라 차를 못 돌리고 후진해야 합니다.
신부     나가서 길을 볼까요?
영식     꼭 가야 합니까?
순희     마감이고 특종이고, 찬물에 샤워하고 얼음 탄 냉커피 마시면서 에어컨 틀어 놓고 자고 싶다.
철수     (상자 내려놓으며) 마누라가 못 가게 죽어라 말릴 때 들을걸. 황금작물이고 뭐고 그냥 마누라한테 가고 싶다.
영식     갑시다. 이 돈 도로 주러 갑시다.

 

영식, 돈을 거머쥐고 차를 후진한다. 비가 쏟아진다. 모두들 내리는 비만 쳐다본다. 신부, 로먼 컬러를 단정하게 목에 두른다. 암전.

 

핀조명으로 엄마가 아들을 꼭 안은 채 앉아 있는 곳을 비춘다. 비에 흠뻑 젖어 있다. 핀조명 꺼지고 무대 환해지면 신부가 우산을 쓰고 다가가는데 아들의 얼굴이 옆으로 푹 떨어진다. 신부, 그 자리에 우뚝 선다. 엄마, 아들에게 귀를 기울이다 신부를 보고 웃는다.

 

엄마     아들이 어디만치 왔어요? 물어서 이제 다 왔어, 하고 대답해 주었어요.

 

신부가 엄마에게 우산을 씌워준다. 사람들이 차에서 천천히 나와 신부 뒤쪽에 선다.

 

엄마     비가 와서 아들이 깨끗해졌어요. 피두 다 씻겨내리구. 비가 그쳤으니 이제 새 옷으로 갈아 입혀야겠어요. 아들이 추우면 클나요. 선천성 심장병은 폐렴이 최악이래요.

 

엄마, 베낭에서 물통, 수건, 사과를 꺼낸다. 엄마, 수건으로 아들의 몸을 닦고 아들의 옷을 갈아입힌다. 그 행동이 매우 진지하다. 젖은 옷을 골짜기로 던진다.

 

엄마     돼지냄새 배인 옷은 이제 더 이상 안 입어도 돼. 아들.

 

엄마, 물통과 사과를 신부에게 준다.

 

엄마     목마르죠? 마셔요.

 

신부가 받아서 그대로 들고 있다.

 

엄마     아들은 병원에 갈 수가 없어요. 출생 신고도 안 하고 주민등록 번호도 없어요. 아들은 태어나면 안 될 아이였는데 그래도 태어났고. 구 년 동안 나한테는 내 목숨보다 더 소중했어요. 나에게 엄마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행복한 시간을 맛보게 해 주었어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병원 구경이라도 시켜 주면 웃으며 천당으로 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 뭐해요? 이리 와 앉아요. 우리 파티해요. 우리 아들을 위해서.

 

사람들 혼이 나간 듯 서 있다. 엄마 표정이 웃지만 차갑다.

 

엄마     오늘 아침에 돼지골 남자를 죽였어요. 그 남자에게 약초를 캐다 팔아 아들과 먹고 살았는데. 후후, 사실 약초만 팔았겠어요? 내 몸도 약초 속에 포함시키더군요. 그 남자가 어디서 듣고 왔는지 내 과거를 캐길래, 아까 당신들처럼. 더러운 과거 말하고 싶지 않아 그냥 죽여 버리고 그 남자 돈 다 털어서 택시비 했지요. 병원은 가야겠고, 에미가 더럽다고 자식까지 더러워지는 연좌제 그런 거는 천당에 없을 테고.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심장이 병에 걸려 혼자서는 움직이지 못했어요. (영식에게) 아까 우리 아들, 종이짝보다 가볍다고 했죠? 맞아요. 몸이 크지 못했어요. 하지만 이제 천국 가면 쑥 클 거예요. 그러니 다들 앉아요. 그리고 먹고 마셔요.

 

신부가 물을 마시고 순희에게 준다. 순희, 그제사 물통을 받아 벌컥거리며 마신다. 영식, 주춤거리다 사과를 한입 크게 베어 먹고 철수에게 준다. 철수, 하는 수 없이 베어 먹는다.

 

엄마     사과가 뭔 죄예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건 아담 이브 잘못이지. 내 아들이 뭔 죄예요. 구 년 동안 오늘처럼 많은 사람들 본 거 아들은 처음이에요. 아들은 세상에 엄마와 저만 사는 줄 알다, 죽는 날 첨으로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고맙죠. 아들 마지막 길을 외롭지 않게 배웅해 줘서. 사과뿐이 대접 못 해서 미안해요. 신부님, 아들 대신 에미인 제가 고백성사 해 볼게요.

 

영식, 순희, 철수가 돌아서 차로 가려 한다.

 

엄마     그냥 다 들어요. 별거 아니에요. 9년 전에 아이 아빠를 죽였어요, 내가. 아이 아빠는 제 직속 상관이었고 난 사회 초짜로 세상이 환하던 때였죠. 나는 국회의원이던 아이 아빠와 사랑에 빠져 이 아이를 가졌어요. 근데 아이 아빠가 나와 아이를 배신했어요. 국회의원과 보좌관, 어쩔 수 없다는 거 알았지만 그를 죽였어요, 뱃속의 아이를 거부해서. 엄마로서 용서할 수 없었죠. 돼지골에 와서 그이의 시체를 토막 내어 돼지 우리에 먹이로 던졌어요. 그 돼지들을 키우고 잡아서 아들에게 먹였어요. 건강하게 잘 자라라구.
순희     9년 전 신문에, 텔레비전에 크게 떠들었던 국회의원 미제 실종 사건?
엄마     흐흐흐, 그 범인이 바로 이 몸이올시다.

 

순희, 철수, 영식이 토악질을 한다. 신부, 우산을 떨어뜨린 채 서 있다. 엄마가 낄낄거린다.

 

엄마     아무도 오지 않는 산속으로 숨어 들어와 혼자 아이를 키웠어요. 시간은 그때부터 나에게 족쇄가 되어 멈췄어요. 암만 돼지피에 고기에 뼈를 푸욱 고아 먹여도 아이는 계속 아팠고, 언제나 어디 만치 왔느냐고 물었어요. 그래도 산이 우리를 살게 해 줬어요. 약초를 캐서 팔아 연명했고 (칼을 보여주며) 이 칼이 바로 내 남편이고 아이 아빠지요. 우리를 살게 해 주었으니까.

 

영식이 돈을 엄마 쪽으로 던진다. 돈이 흩어진다.

 

엄마     신부님, 구마경 해 달라고 부탁 안 해요. 난 귀신 아니고 악마도 아니고. 그냥 세상 잘못 만나 숨어 살던 죄뿐이 없어요. 이미 내 아들이 나의 모든 죄를 다 풀고 떠났으니까요. 내게 가장 귀중한 아들이 사라졌으니 다 끝난 거지요. (순희에게) 당신 카메라보다 더 귀중한 내 아들. (철수에게) 당신 황금 작물보다 더 귀중한 내 아들.
영식     그냥 갑시다.

 

사람들이 신부를 잡아 끈다.

 

엄마     그냥 가면 당신들 여기서 한 발짝도 못 벗어나.
순희     (공포로 울기 시작한다)

 

엄마, 아들에게 귀를 기울인다. 말을 주고받는 모양새이다.

 

엄마     아들이 그러네. 그냥 고이 보내 주라고. 자기 장례식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선물이라고. 난 아들 말을 항상 가슴에 담고 살지. 아들이 나의 신이니까.
신부     뭘 어떻게 도우면 됩니까? 아들을 묻어 드릴까요? 우리랑 같이 병원에….
엄마     그냥 가만히 듣고 보고 있다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돼요. 당신들 마지막까지 감당할 맘은 없으니까. 어차피 가는 길이 달라 같이 데리고 갈 수도 없어.
영식     날이 곧 어두워질 거야. 비로 길이 진창이면 타이어 땜에 운전도 못해.
엄마     맞아. 여기라는 곳은 한번 들어오면 쉽게 못 나가는 데지. 십 분 후에 여기서 무조건 보이는 길을 따라 가. 그러면 불빛이 보일 거야.
철수     지금 갑시다.
엄마     안 돼. 정확하게 십 분 후에. 지금 그 사과랑 물 다 마셔. 파티에 왔으면 주인이 준 음식을 다 먹는 게 예의지.

 

사람들, 죽을상을 하면서 먹는다.

 

순희     십 분 후? 뭔데?
엄마     고백성사 끝날 때까지. 나도 내 아들만할 때 영세를 받았어요. 그때 엄마가 하얀 드레스를 입혀 주었어요. 세례명은 마리아. 내 아들 세례는 내가 직접 줬어요. 시냇물에서. 아들 세례명은 예수. 낄낄낄.

 

사람들, 모두 다시 토악질한다.

 

엄마     행복은 내 안에도 내 밖에도 없대. 바로 돼지 같은 당신 신한테만 있대. 낄낄, 당신이 믿는 그 못돼 처먹은 신한테 기도해 주세요. 신부님. 신부님, 여기 다시 돌아와 주신 것만 해도 당신은 할 일을 다 했어요. 부디 죄의식 없이 좋은 신부님 되세요. 그리고 가끔 생각나면 기도해 주세요. 낄낄낄. 빌어먹을, 요셉 없는 아들 예수와 그의 엄마 마리아, 나를 위해. 낄낄낄.

 

엄마, 아들을 안은 채 순식간에 골짜기로 몸을 날린다. 사람들, 멍하니 본다.

 

신부     안 돼!

 

사람들, 신부를 잡아 끈다. 신부가 그들을 뿌리치고 골짜기를 내려가려고 한다.

 

영식     위험해요. 비가 와서 골짜기가 무너져 내려요
철수     지문이나 족적이 남으면 공연히 머리 시끄러워요.
순희     여기서 우리 신발 자국도 다 없애야 해요. 오라가라 얼마나 귀찮게 하겠어요.
영식     어쩌겠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네요.
철수     우리는 모두 못 본 거고. 이 자리에 없는 거고. 밖에 나가서 우연히 만나지도 맙시다.
영식     산이 그들을 먹여 살렸으니 산이 다 알아서 덮어 줄 겁니다.
순희     신부님, 가세요.

 

신부, 계속 골짜기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사람들 억지로 신부를 끌고 택시 안으로 들어간다.
무대 어두워지고 핀조명으로 각자의 얼굴을 비춘다. 무거운 침묵. 신부, 로만 칼라를 벗는다. 모두들 굳은 표정으로 시계만 내려 보고 있다. 차츰 초침 소리가 크게 들린다. 차창 밖은 아주 어두워졌다. 멀리서 불빛이 택시 안으로 비춘다. 초침 소리가 점점 커진다. 모두들 시계를 본다.
모두들 시계가 간다.
순희, 지갑에서 돈을 모두 꺼내어 영식에게 준다.

 

순희     이래야만 집에 가서 발 뻗고 잘 거 같아요. 그 값이에요.
영식     그럼 나는?
순희     몰라요. 저 앞에 보이는 휴게소 앞에서 세워 주세요. 감사합니다.

 

순희, 짐을 들고 내린다. 철수, 주머니를 털어 돈을 모두 모아 영식에게 준다. 영식, 아무 말 없다. 철수, 영식의 운전대 위에 놓는다.

 

철수     저기 교차로 앞에서 세워 주시오. 우리는 오늘 만난 적이 없소.

 

철수, 찌그러진 박스 들고 내린다. 차 안에는 뒷좌석의 신부와 영식만 있다. 택시가 달린다. 영식은 노래를 튼다. <물레방아 인생> 나온다. 신부는 자는 것처럼 조용하다.

 

영식     신부님,
신부     (눈을 뜬다)
영식     공항, 다 왔습니다.
신부     나야말로 어디만치 왔나요? 어디로 가는 거죠? 남수단은 왜 가는 거죠?
영식     신부님이 모르는 걸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사이) 이거 가져가세요.

 

영식, 엄마의 피 묻은 돈을 철수와 순희에게서 받은 돈과 합쳐 신부에게 건넨다. 신부 받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 영식, 받으라고 재촉한다. 신부, 가만히 있는다.

 

영식     제발 이 돈을 다 가져가 주세요. 밤에 발 뻗고 자고 싶어요. 다른 사람 주든지 아프리카에 가지고 가든지 맘대로 하세요. (신부의 무릎 위에 돈을 놓는다)
신부     ……. (돈을 들고 내린다)

 

#3. 공항 길 위(밤)
네온사인 복잡한 거리. 돈을 들고 서 있는 신부를 비춘다. 차 떠나는 소리. 신부, 돈을 내려다보면서 그대로 서 있다. 비행기 굉음 소리. 자동차 소리, 음악 소리, 웃는 소리, 사람들 떠드는 소리 점점 커지고 시끄러워지고. 점점 조용해지고 어두워진다. 핀조명으로 신부 조명.

 

아들     (노래하듯 소리) 어디만치 왔어요?
엄마     (상냥하게 소리) 몰라도 돼. 내 아들.
신부     그래, 앞길은 몰라도 돼. 그냥 가는 거야. 멈추지 말고.

 

신부, 로만 컬러를 끼고 돈을 주머니에 넣는다.
천천히 핀조명 꺼진다. 막이 내린다.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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