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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조의 시, 통회·사랑·만남·평안의 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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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군

1941년 경남 남해 출생. 서울대학교(문학·법학)와 대학원을 마침. 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 문학박사. 세계 전통시인협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국제PEN한국본부 권익위원, 시(『새시대문학』, 1971), 평론(『시와시학』, 1983), 시조(『시조생활』, 1990) 등단. 평론집『다매체 시대 문학의 지평 열기』『문학 비평과 문예 창작론』, 시집『천년 그리움으로 떠 있는 섬』, 에세이집『시간과 영원을 위한 팡세』『선한이가당하는고통에대한묵상』, 고등학교『문 학』교과서 등 저서 20여 권이 있음. 조연현문학상, 한국비평문학상 등 수상.

책 제목 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10월 6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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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01.창작의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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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실마리
문학현상론적으로 김남조(1927∼2023) 시인의 위상은 한국 현대 시업 (詩業)의 정상에 자리해 왔다. 작가·작품·독자 간에 조성되는 소통의 역학 쪽에서 김남조의 시는 20세기 후반 폭발적 기대치를 과시한 바있 다. 시와 수필이 시너지 효과를 높이며 김남조 문학은 베스트셀러 행렬 의 현저한 깃발이었다.
김 시인은 첫 시집 『목숨』(1953)을 시작으로 마지막 시집 『사람아 사 람아』에 이르기까지 19권의 시집을 상재하며 1,000여 편의 시를 썼다. 『잠시 그리고 영원히』(1964)에서 『사랑후에남은사랑』(1999)에 이르는 수필집 13권, 콩트집『아름다운 사람』(1984)을 남겼다. 또한 일역 시집  『바람과 나무』(1985), 『바람세례』(1995), 『한국인시집』(구상·김광림과 공 저, 1998), 영역 시집『Selected Poems of Kim Namjo』(미국 코넬대학, 1993), 독역 시집『Windtaufe』(1996), 스페인어역 시집『Antologia Poetica』(2003)가있다. 『한국대표시인 101인 선집』(문학사상사, 2002), 『김남조시전집』(2004)이 엮인 바 있다. 학위 논문 7편과 일반 논문·평 설·대담록 등 82편이 쓰였다.
김남조 시인의 등단 이력은 특이하다. 광복되던 1948년 연합신문에 「잔상」, 서울대시보에「성숙」을 발표하였으나, 본격적인 문학 활동은 1953년 첫 시집『목숨』을 출간하면서 비롯되었다. 일제강점기의 억압 체제나 특정 문예지의 에콜(ecole) 의식에 구애되지 않고 상상의 자유를 향유하며 창작된 것이『목숨』의 시편들이었다. 
김남조 시론에서는 역사주의냐 분석주의냐의 비평적 논란은 사윌 수 밖에 없다. 김 시인은 가톨릭 신자이고, 모든 작품 활동 시공간의 알파 에서 오메가까지 시인의 시는 신앙 행위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출생했고, 일본 후쿠오카 규슈여고를 나왔으며, 일제 강점기 의 역사적 파란 속에서 부친을 여읜 것, 귀국하여 경성여자전문학교(일 제의 강압 속에서 개명된 이화여전)에 적을 두었다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문과(지금의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38년간 숙명여자대학교 국문과 교수(1955∼1993)로 봉직한 것 등이 그의 창작 활동과 무관할 수 없다. 김 시인의 문하에서 유명 시인 허영자, 신달자, 김윤희(숙대), 가톨릭 대녀(代女) 강은교(연세대)가 나왔고, 대학 동문인 시인 김후란 송윤숙 유 안진 유자효, 시조시인 유성규 박찬구 이석규, 소설가 이문열, 방송작 가 김광휘, 문학평론가 김은전 김윤식 김봉군 김재홍 이숭원 전영태 박 호영 등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극진했다.
김남조 시인의 사람에 대한 배려는 각별했다. 김 시인은 한 번 중요한 연분으로 만난 사람치고 데면데면 대한 적이 없었다. 이는 김 시인 이 섬기고 가꾼‘관계의 미학’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는 일상의 삶뿐 아니라 한국시인협회장(1984)이나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서도 ‘관계 미학의 도저한 품격’으로 작용했으리라 생각된다. 김 시인의 인간 관계를 굳이 소상히 밝히는 이유다. 이는 김남조 시인이 받은 서강대학교 명예문학박사, 제12차 서울시인대회 계관시인, 대한민국예술원상, 은관문화훈장 등이 한갓 장식적 허화(虛華)일 수 없다는 증언에 갈음되는 것이기도 하다.
김남조 시학의 특성 규정은 난제다. 흔히 ‘사랑과 기도의 시’로 뜻 매기려는 비평적 관점은 옳다. 문제는 그 속내의 진실과 연유를 밝히는 일에서 견강부회는 언어도단이다. 겸허한 접근 자세가 요청된다.
김남조 시인의 가족사에서 포착되는 특이 체험은 시 창작의 결정적 모티프일 수 있다. 죽음 체험이다. 김 시인의 4남매 중 세 분은 요절하고 본인만 홀로 생존했다. 두 할아버지 내외 네 분도 수년 사이에 별세했고, 작은 조부는 늦둥이 외아들이 일찍 가자 분사했다. 백부는 유복자 를 남기고 사망했으며, 그 아들은 20대에 내외가 죽고, 외아들마저 단명했다. 일본에서 사업을 하던 부친 김소도 공은 만주로 징집되어 별세한 터에, 김 시인의 육친은 신실한 가톨릭 신자인 모친 최순녀(묘비에는 최동향) 여사뿐이었다. 그런 모친도 1967년에 여의었고, 조각계의 거장 이었던 부군 김세중 교수(서울대)와도 사별했다. 김 시인에게는 너무 이른, 아픈 결별이었다.
이는 김남조 시의 주요 모티프가 목숨(생명)과 실존적 고독일 수밖에 없다는 논거다. 김 시인이 이 비극적 실존 앞에서 철석같이 의지한 것 은 놀랍게도‘바람’이었다. 시인에게, 지극히 ‘부드럽고 영혼에까지 불어와 닿는 바람’이야말로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환기하는 더없이 신실 한 존재였다(수필, 「바람에게 주는 말」).
김남조 시인은 사랑의 사도(使徒)다. 그의 사랑은 평면적인 가톨릭의 아가페적 사랑이었던가. 중세 가톨릭 수도자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성속(聖俗)을 넘나드는 절절한 사랑의 실화를 소재로 한 그의 수필「엘 로이즈의 편지」와 시 「나아드의 향유」가 주목을 끈다.
고심컨대 김남조 시의 특성은 다음 여섯 가지 관점에서 포착된다. 가설이다.

김남조 시학의 변곡점
시인의 미학적 행로는 삶의 충격과 정신사적 성숙 과정에서 변곡점을 맞이하게 마련이다. 김남조 시인은 스스로 고 변곡점을 제7시집『설 일(雪日)』(1976)로 잡은 적이 있다. 미숙했으나, 이후에는‘자신의 목소리’로 시를 쓸 수 있었다고 고백하였다. 모친과 사별한 때다.
비평계 일각에서는 제5시집『풍림(楓林)의음악』(1963)을 변곡점에 놓기도 한다. ‘넘치는 자기애가 빚는 고립·지배·우월의 어조(tone)’에사 로잡혔던 초기 시와는 달리, 이후에는‘사랑과 구원의 승화를 지향하며, 그 지주는 긍정에서 오는 충만한 화평’이라고 본다. 또 한 번의 변 곡점은 제12시집 『바람세례』(1988)다. ‘사랑의 상실감과 회한이 절절히 사무치는’시편들이다. 부군 김세중 교수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인한 상실감과 관련된다(김은전, 「정념의 시인」).
김남조 시인의 만년 시편들은 다분히 주지적 경향을 띤다. 1960년대 중반의「겨울 바다」에서 구사되었던 주지적 기법이 만년의 시집『귀중한 오늘』(2007) 이후 본격화한다.

절제된 아어와 참신한 비유·고도의 상징 표상
김남조 시는 기원의 어조를 띤다. 그것은 시기에 따라 다소 변이된 양상을 보이나, 화자(話者)의 특성은 대체로 한결같다. 절제된 시어, 수정빛 투명 이미지 등이 김남조 시를 비범케 한다. 영혼의 기갈(飢渴), 고독과 인고(忍苦), 죄의 통회, 비극적 실존 의식, 희망의 수사학, 고난의 역설적 감동과 축복, 적요(寂寥)와 평안의 시상(詩想) 등이 김남조 시학의 특성 요목이다.
김남조는 생래적 시인이다. 시인 자신이 시의 실체다. 그의 시어는 경이롭게도 그의 일상어와 같은 층위에 있다. 그의 일상어를 시어로 치 환함에도 그가 구사하는 시어는 충전도(充電度)가높다. 그의 시뿐아니라 산문 문체도 극히 간결하다. 그의 방대한 분량의 수필도 본질상 시다. 필요 불가결한 문맥이 아닌 한번다한 수식어를 절제한다. 제8시집 『사랑 초서(草書)』는 그 전형이다.

말은 잔모래/ 물결에 쓸리는/ 돌의 포말(泡沫)/ 말로선 못 가는 수평선에/ 이름으로 못부를/ 한 사람 있다

수식어가 극도로 절제된「사랑 초서 8」이다. 현란하고 수다스러운 말 잔치가 아닌, 선불교에서 말하는 ‘기어(綺語)의죄’에서 사뭇 자유로운 원초적 시어들의 한 떨기다. 이는 김남조의 시어가 본질상 아어(雅語)의 정화(精華)인 것과 무관치 않다. ‘청유릿빛 새맑은 눈물’(「눈물」), ‘생금 보다 귀한 아침 햇살’(「아침 은총」), ‘잠든 솔숲에 머문 달빛’‘제 빛에 요요히 눈부신’(「연가」), ‘돌틈에서 치솟는 청옥빛 샘물’(「찬미의 샘물」),
‘백목련의 숲’(「그대들 눈길을」) 등은 김남조 시의 보편적 아어다.  또 ‘요요히’‘영글어서’(「가을 햇볕에」), ‘즈믄 마음’‘불내음 서리는 눈발’(「뜨거운 눈발」) 등 김남조 시인의 우리 고유어 구사력은 놀랍다. 일본 규슈여고에 수학하는 등 모(국)어 수련의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를 놓친 그의 언어 유창성은 범상한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탁월한 한자 조합력을 과시한다. ‘연야(宴夜)의약봉(約逢)’(「기다 리는 밤」), ‘혼백의 금선(琴線)’(「환호」), ‘지애(地愛)의 마음’(「돌사람」), ‘무구(無垢)한촉지(觸知)’(「축원」), ‘설목(雪木)’(「찬미의 강물」) 등의 조어력은 절륜의 경지를 가늠한다.
김남조 시의 담론 표출 효과를 증폭시키는 다른 한 요인은 참신한 비 유다. 비유는 시인과 독자가 공유하는 시적 상상력의 공감 영역을 확보 하는 유추적 직관으로 이루어진다. 김남조 시의 비유는 이질적 사물이 나 상황의‘폭력적 결합’으로 조성되는 모더니즘 시법과는 다른 차원에서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의 기법을 구사한다. ‘동녀(童女) 같은 통곡’(「낙엽」), ‘수정같은체념’‘호호 광야(浩浩曠野)의바람같은허심 (虛心)’(「허심」), ‘황제의 항서(降書) 같은 무거운 비애’(「정념의 기」), ‘얼 마든지 울고 싶은/ 해일 같은 날에’(「해일 같은 날에」) 등에서 볼 수 있듯 이, 그의 비유는 참신하고 다양하다. 죽음 체험, 통고(痛苦)와비원(悲 願), 달밤의 서정, 투명한 체념, 바람 이미지, 놀빛의 미감(美感), 허허론 마음자리, 평안과 기쁨, 묵중한 비애, 통한의 극한 등이 다양한 상관물로써 표출된다.
김남조 시의 범상한 독자들은 종종 그‘차갑고 핏기 사윈, 정결한 비정성(非情性)’을 탓하기도 한다. 그것은 이 시인의 고결, 투명하며 안온한 품격의 외면에만 착목하는 일상적 독자들이 그‘견고하고 차가운 수정빛 금속성 비유의 표상’만을 절대시하는 속단이다. 심오한 독자들 은 그 내면에 다단·격렬한 파란과 희로애락의 체험 항목들이 치열하게 소용돌이치고 있음을 체득하게 될 것이다.
김남조 시의 자아는 허다한 통고 체험을 삭이고 또 삭여 승화된 정수 (精髓)를 표상화한다. 기쁨과 화평과 구원을 향하여 보채고 부대끼고 절하는 아픈 실존과의 대면을 투시함으로써만 김남조 시의 실체에 직핍해 들 수 있을 것이다.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 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의불물이랑위에/ 불붙어있었네// 나를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 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겨울 바 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김남조 시인의 대표작「겨울 바다」다. 이 시의 아름다움은 탄탄한 주 제 의식과 함께, 그것을 형상화시킨 상징 표상의 탁월성에서 찾을 수 있다(오세영, 「사랑의 플라토니즘과 구원」).
이시의원형상징(archetypal symbol)은 현실적 절망과 기도에 의한 구 원의 표상에 수렴된다. 시의 자아는‘황량·삭막한’겨울 바다에서‘미 지의 새’와의 만남에 실패한다. 겨울 바다에서 대면하는 것은 매운 겨 울 바람, 저녁놀, 차디찬 파도, 허무·죽음·절대 고독뿐이다. 고통·고 뇌를 견디고 또 견딘 인고의 적층(積層)이 깊은 바다에 기둥을 이룬 시 간들. 이제 절절히 기도의 문을 열 수 있는 영혼이기를 간구(懇求)한다. 바다(물)의 원형 상징은 죽음과 부활(절망과 소망),   불은 열 정·정 화 (淨 化)·생 명 력·복·재 생·순 결·징 벌 ,  눈물은 불을 품은 물의 상징표 상이다. 바람은 우주의 숨기운, 삶의 역동성, 자유, 파괴, 무상(無常), 시련, 가변성, 허무, 영감, 죽음, 혁명의 원형 상징이다. 여기서는 ‘매운 해풍’ 이므로 부정적인 상징 표상이다. 새는 영혼의 매개체다. 우리 근현대시 사상 굴지의 명작이다.

경계선의 실존, 사랑의 역설적 변증
김남조의 시적 자아는 경계선 이미지(borderline image)로 표상화한다. 현존과 비현존의 실존적 자아이다. 그는 “유계(幽界)의 창과/ 현실의 창 문 사이// 한 자루 촛불을 밝혀/ 제탁에 두듯이// ……/ 아아, 혼신의 통 곡으로 당신을 부름이여.”(「어두운 이마」)라 노래한다. 그러나 현실로 회 귀한 순간 시의 자아는 통곡과 절규의 몸부림을 보인다. 이것은 키르케 고르적 종교적 실존 이전의 체험과 깊이 관련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 음 시에 그 단서가 있다.

바람은 찢어진 피리 소리/ 하섧은 파적(破笛)의 울음이 아니고야/ 바람은 분명 찢어진 피리// 나도 바람처럼 울던 날을 가졌더랍니다/ 달밤에 벗 은 맨몸과도 같이/ 염치 없고도 어쩔 수 없는 회상(「이 바람 속에」

이런 피어린 회상은 그의 체험 목록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학창 시절 존경했던 두 은사의 죽음과 월북, 그 원인이 된 히로시마 원폭 투 하와 6·25전쟁 등은 위기와 결별의 아픈 체험이다. 6·25전쟁은 동기 (同氣)의 주검을 매장하는‘죽음 체험’을 강요한 가혹한 폭력이었다. 영 육 성장의 지주(支柱)였던 모친과 조소계(彫塑界)의 거장이던 부군 김세 중 교수와의 영결 등은 김남조 시인 개인사에 각인된 세속사적 통고(痛 苦) 체험의 주요 목록이다.
김남조 시인은 천상의 자아가 승한 영감의 예술가다. 그가 때론 노작 (勞作)의 혈투로 밤을 밝힌 바 있으나, 그것은 영감에 찬 천상적 자아의 상상력에 따른 추스림일 뿐, 시상의 본질을 좌우할‘조작’과는 먼 거리 에 있다. 그의 세속사는 초절(超絶)의 꿈, 수직적 초월의 초시공을 지향 하며, 상상의 날개를 펼치고 높이를 가늠하며 비상의 기세를 눅이지 않는다. 그의 시에 부단히 갈구·사랑·이별·죽음의 서사 모티프가 응축, 표출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A〕진실로 이별키 보담은/ 진실로 이별키 보담은/ 깨물어 차라리 피를 흘리는게 좋았다
〔B〕누구 가랑잎 아닌 사람이 없고/ 누구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없고/ 불붙은 서울에서/ 금방 오므려 연꽃처럼 죽어 갈 지구를 붙잡고/ 살면서 배운 가장 욕심 없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C〕살아 계신 예수여/ 지금 저희 심령은 춥고 허전함에서/ 촌여(寸餘) 의 견딤이 더 있을 수 없사오니/ 통렬한 이토록의 아픔을/ 굽어 살피시옵고/ 영 어둡지 않을 생명의 불빛으로/ 전쟁과 병과 고독과 가난을 순히 다스리며 살게 하소서

시A와B는첫시집『목숨』(1953)에실린「별리(別離)」와「 목 숨 」, C는 시선집『너를 위하여』(1998)의「 기 도 」다. 6·25전쟁이 준 ‘죽음 체험’에 서 연유한 시편들이다. 김남조 시의 주제가 사랑, 이별, 죽음 체험과 그로부터의 구원을 위한 갈구의 기도임이 아프게 다가오는 상황이다.
김남조 시인의 천부적 시재와 개인사의 체험이 융화된 사랑, 이별과 수직적 초월의 상상력은 지상의 적거 천사(謫去天使)가 드리는 비원(悲 願)과 간구(懇求), 기도에로 수렴된다. 그리고 이 시인의 사랑이 왜 끝없는 갈구의 표적이며, 그것이 세속에선 자주 성취 직전의 좌절 곧 로맨 틱 아이러니(romantic irony)인가를 독자는 비로소 알게 된다. 그는“사랑하면/ 우물 곁에 목말라 죽는/ 그녀 된다.”(「사랑 초서」1)고 노래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세속에서의 갈구와 기원을 멈추지 않는다. 목숨 같은 사랑과 좌절 체험, 처녀 시절 천장에 붙였다가 불사르고 만 천성도(天星 圖)의 연상을 그리는 열모(熱慕)에 그의 시적 자아는 목 탄다. 시인의 에로스가 에로스임에 그치지 못할 곡진한 연유다. 천상을 지향하는 사람임으로써다. 그의 시에서 별은 그러기에 불멸의 사랑으로서 구원(救援) 의 표상이다. 시「별이 가져온 것」은 과거·현재·미래의 선조적(線條的) 연속선상의 수평적 자아가 ‘별’표상을 향한 수직적 초월과 기도의 자아를 만나 중생(重生)할 모티프를 감지케 한다.

〔D〕당신에게선 손발에 못 박는 소리/ 아슴히 들립니다/ 사랑하는 분이 / 눈앞에서 못 박혀 죽으신 후/ 당신 몸은 못 박는 소리와 그 메아리들의/ 소리 사당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건/ 고통입니다/ 고통의 반복 앞 에 서는/ 율연한 공포입니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E〕당신처럼 저희도/ 여러 번 남자를 사랑했습니다/ 당신처럼 저희도 일곱 마귀가 들어/ 일곱 가지 굿판을 벌입니다// 당신은 옥합의 향유를/ 거룩한 분의 두 발에 따르고/ 눈물에 적신 머릿단으로/ 공들여 오래오래 닦았습니다/ 저희도 그 비슷이는 했습니다

D와 E는 제14시집에 실린「막달라 마리아」4와 5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가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치유받은 특별한 이방 여인이 다. 신약 성서에 6군데나 등장하는 그리스도의 결정적 증인이다. 부활 하신 예수께서 맨 먼저 보이신 인물도 막달라 마리아다(『마가복음』, 16:9). 옥합을 깨뜨려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부어 머릿단으로 닦는 결곡한 신심(信心)을 김남조 시인은 자아상(自我像)에 극적으로 오버랩 시킨다. 시인의 본명(세례명)이 막달라 마리아인 것을. 더 말해 무엇 하랴.
에로스를 곡진히 삭이고 또 삭인 아가페의 사랑. 김남조 높은 시정신 의정화(精華)다. 끊임없이 못 박히는 고통, 가장 큰 사랑의 역설이다. 추악한 것의 내면의 성스러움, 성스러운 것 내면의 추악성을 그린 프랑수와 모리아크와 조르주 베르나노스를 소환하는 국면이다. 고통을 통 한 구원의 신비를 증거하는 성덕(聖德)의 표상 말이다. 

고독과 인고의 자아상, 관계와 만남의 시학
김남조 시의 자아는 고독하다. 김 시인은 병약했다. 폐결핵으로 신음 하기도 했다. 부친과 동기의 죽음까지 더하여 생명의 열기에 신음했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고뇌, 슬픔, 사랑, 갈등의 회오리에 휩쓸렸다. 6·25 전쟁이라는 민족적 시련과 함께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하 지 않을 수 없었다. 전란으로 황폐해진 조국 산하, 피란민의 물결과 생존을 위한 몸부림,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생명에 대한 본능적 집착과 절박성이 절규와 기도로 표출되었다. 시집『목숨』은 이런 절박성이 빚어낸 생의 절규였다.

이제 나 다시는 너 없이 살기를/ 원치 않으마/ 진실로 모든 잘못은/ 너를 돌려 놓고 살려던 데서 빚어졌거니/ 네 이름은 고독/ 내 오랜 뉘우침이 / 네 앞에 와서 머무노니

담담한 초기 시「고독」이다. 고독은 외려 ‘나’와 ‘ 너 ’의 관계항을 부각한다. 하늘 아래 육친이래야 모친과 시인, 이 지극히 단출한 가족뿐, ‘홀로’를 감당할 수 없는 고독한 존재를 구제하는 것은‘더불어’다. 
김남조 시인은 사람에게 도저했다. 연분 지은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극진했다. 그에는 시인이 ‘베풂’의 손길과 마음결의 소통으로 엮은 아름다운‘관계의 미학’이 영글었다.

폭풍이 온다 목숨들 모두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한 장의 점괘, 지축은 처절한 오한, 또 무참한 진통

포성이 하늘을 뚫어 놓았다
석류알처럼 흩어지는 살점들, 여기 죽음이란 이름의 분주한 쓰임이 있고 사람이 부른 전쟁의 야만이 있느니

긴 제목의 시「다시 한번 너의 목가(牧歌), 내 그리운 요람의 노래를」 이다. 김남조 시인이‘원색적 언어’로‘정열에 휩쓸려 든’초기 시다. 산문적 원심력이 우세한 작품이다. 이 원색적 절규는 6·25전쟁기 시인 의 절박한 심경이 증험인양 선연하기에 소중하다.

죽은 얼굴이 아닌/ 분명 잠자는 얼굴인데/ 흰 상보(喪褓)를 씌워 둔다/ 그의 얼굴이 아닌/ 너의 얼굴도 아닌/ 내 얼굴인데// 패전을 고하는 백기 (白旗),/ 유서의 여백이나/ 조화(弔花)의 흰 빛 같은/ 그처럼 철이 든 순백 의 그 상보를/ 여기 씌워 두자는 거다

역시 초기 시「얼굴」이다. 죽음 표상과 의미를 자아화하는, 불가항력 적인 반생명적 횡포 앞에 투항하고 마는 체념이 아프다.
부군 김세중 교수가 선종한 후에 김남조 시인은 수개월간 절필했다. ‘칼날 위에 맨몸을 던지듯이 잔혹한 ’실존적 체험을 감내해야 했다.

생명은 추운 몸으로 온다/ 벌거벗고 언 땅에 꽂혀 자라는/ 초록의 겨울 보리/ 생명의 어머니도 먼 곳에서 추운 몸으로 왔다/ 진실도/ 부서지고 불 에 타면서 온다/ 버려지고 피 흘리면서 온다// 겨울 나무들을 보라/ 추위 의 면돗날로 제 몸을 다듬는다/ (중략)// 금 가고 일그러진 걸/ 사랑할 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아니다/ 상한 살을 헤집고/ 입맞출 줄 모르는 이는 친 구가 아니다

제9시집 『동행』에 실린「생명」이다. 「겨울 바다」에서 제시되었던 ‘인고의 물기둥’을 여기서 보게 된다. ‘관계의 미학’은 아프디아픈 인고(忍苦), 만만찮은 통고 체험을 요구한다. 치유와 위로, 사랑의 시간을 위하여, 김 시인은 당신의 시가‘내면의 혼돈이요 울음이며, 외면에서 지켜보는 냉엄한 눈길’속에 있다고 했다.
이 시집 후기에서 김 시인은 말했다. 삶은 모든 걸 담고 흐르는 범선 이며, 죽음마저도 삶에 이어진 종착지라 했다. 그는 동행자를 주는 은 총, “이웃이 있음으로 하여 추위의 위안과 구원이 이미 주어졌다고 믿을 만하다”는 것이다. 신의 은총을 정점으로 한‘나와 너’의동행, 참만남이 아닌가. ‘봉별(逢別)과 생사도 초월하는’동행의 축복 말이다.

〔F〕나무와 나무 그림자/ 나무는 그림자를 굽어보고/ 그림자는 나무를 올려다본다/ 밤이 되어도/ 비가 와도/ 그림자 거기 있다/ 나무는 안다
〔G〕작은 새 하나/ 가녀린 나뭇가지 위에/ 미동 없이 머문다/ 얼음처럼 깨질 듯한 냉기를 뼛속까지 견디며/ 서로 측은하여/ 함께 있자 했는가

시 F는「나무와 그림자」, G는「새와 나무」다. 제17시집『심장이 아 프다』에 실렸다. 비통한 심정을 직설적으로 표출한 이 시집의 표제는 독자들에게 충격파를 던진다. 나무와 그림자, 새와 나무는‘관계의 시 학’속에서‘만남의 연분’을 맺는 존재들이다.
모든 존재의 비극은 분리(detachment)로 인해 빚어진다. 사람과 자연 의 분리, 사람끼리의 분리, 사람과 절대자(절대 가치)의 분리야말로 비극을 부른다. 김남조 시인이 니콰라과의 수도자 에르네스토 카르데날을 소환한 것은 감동적인 한‘사건’이다. 그는『침묵 속에 떠오르는 소리』 에서,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서로 사랑의 관계로 만나고 있다고 했다. 윤동주 시인이「태초의 아침」에서‘사랑은 뱀과 함께/ 독(毒)은 어린꽃과 함께’를 노래했듯이. 이 원초적 부조리도‘사랑 시학’으로 풀린다.

〔H〕하늘 밑 오직 한 사람 너를 지니고 싶음이라/ 설움과 아쉬움에 너를 지니고 싶음이라/ 아아 어느 세월에고/ 한 번은 있어 줄 거룩한 허용/ 눈 물 펑펑 쏟아지는 자비를 믿으며/ 다시는 나뉘지 말자/ 그리하여 이로부 터 우리들은/ 온갖 세상에 둘로서 살아 가자
〔I〕죽어 가는 사람이/ 거짓을 말하지 않듯이/ 나도 이 밤에 거짓말을 아니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더불어 내가 왔고/ 사랑하는 사람과 더불어 내가 못 간/ 그 한 가지 외엔/ 아무 설움도 보챈 일이 없습니다

H는 제2시집『나아드의 향유』의「 만 가 (輓歌)」, I는 제1시집『목숨』의 「합원(合願)」이다. 일찍이 김남조의 시적 자아는‘더불어의 관계 시학’ 을 설정하였음이 이에서 확인된다. 공동체 의식 말이다.

종이에 이름을 쓰면/ 그 사람은 파도치며 다가온다/ 아니다 그리 원했을 뿐이다/ 종이에 이름을 담으면/ 정직한 인격으로 출석하는 그들/ 그 중 몇 사람은/ 우주 여행 중이다.

제17시집『심장이 아프다』에 실린「성명 문서」다. ‘파도치며 다가오며 정직한 인격으로 출석하는 그들’과의‘더불어’의 삶, 만남의 시공이 다‘우주 여행 중’인 주변인들의 원심력에도 자유롭다. 모더니티를 띤 의사 진술(pseudo-statement) 기법이 낯설지 않다. 

죄와 통회의 자아
김남조 시의 자아는 죄 앞에 준열하다.

사람의 마음도 혈관들의 피륙인 걸/ 검은 손으로 잘라버린/ 내 죄를 어 이하리// 천길 벼랑에서 사람 하나 뛰어내리게 한 일/ 아니고/ 사람 하나 버려 두고/ 내가 뛰어내린 죄여// 아마도 백 번은/ 벼락 맞을 게야

제18시집『충만한 사랑』의「죄」다. 관계(만남) 파탄의 책임을 자아를 향해 아리게 묻는다. 

죄를 정화하며/ 사랑의 지혜를/ 촛불은 알 거야/ 죄와 사랑이 피와 살처럼 짝지워진/ 사람의 숙명을/ 촛불은 민망히 여길 거야

제19시집『동행』의「 촛불 」이다. 사람을 향한 수평적 관계와 절대자를 향한 수직적 관계가 교차하는 시공에 십자가가 있다. 진실된 만남과 온전한 사랑과 구원은 이 놀라운 좌표에서만 성취되는 기적이다. 그 길 이 결코 만만치 않기에 김남조 시인의 시적, 초월적 자아는 사막시편을 쓰며 막달라 마리아의 삶, 통회와 사랑의 행적을 좇는다.
초월과 구원은 욕망과 관념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성서는 인간 개체의 인류 보편적 죄성을 일깨우고, 참회의 영적 헌신을 요구한다. 그리스도교에서 하느님과 사람의 이런 만남은 편무 계약이 아닌 쌍무 계약 관계에 있다. 이 쌍무 계약은 시적 자아에게 자기 죄성의 시인과 참 회를 요구한다. 이에 긴요한 것이 자아를 향한 서릿발 같은 준열성이다.

가려거든 가자/ 천의 칼날을 딛고/ 만년설 뒤덮인 정상까지 가자/ 거기 서 너와 나 결투를 하자

시「 부 활 」이다. 현존의 자아가 구체적인 삶의 과정에서 범한 과오부터 인류로서의 원초적 죄에 이르기까지 어조가 극한적 준열성을 보인 다. 이육사의 ‘서릿발 칼날 진 그 위’가 사회적 자아의 극한이라면, 김남조 시의 경우는 자아의 실존적 극한이다.
김남조 시의 비의(秘義)는 신약 성서의 막달라 마리아에 있다. 그의 시적, 가톨릭적 자아는 그녀를 ‘죄와 통회(痛悔)’의 성녀로 보며, ‘애환 의두극점’과‘완미한 정점, 완미한 심연’을 그녀에게서 체득했다. 그 는 “내 허약한 문학혼의 아득한 지향을 이곳에 두고자 했다.”(「세 갈래 로쓰는나의자전에세이」)고 고백한 바 있다.
그의 작품 일체가 통회와 기도, 사랑의 시일 수밖에 없는 것은 필연이다.

긍 정·희 망·적 요·평 안 의 시 학
김남조 시인은 우리 사회 전반이 긍정에 굶주려 있으며, 이 시대 우리 문학이 희망의 수사학을 포기하고 있음을 늘 아파했다. 그의 시집『동 행』(1980), 『빛과 고요』(1983), 『바람세례』(1988), 『평안을 위하여』(1995), 『희망 학습』(1998), 『영혼과 가슴』(2004), 『귀중한 오늘』(2007), 『심장이 아프다』(2013) 등의 시편들은‘화해와 쉼과 위로 ’곧‘ 총체적으로 평안을 나누자는 제안’의 말씀이다. 초록의 신생을‘향일성 생명의 신앙’ (「봄」), ‘불로 태워도 못 죽는/ 존재의 자력(磁力)’을사랑(「촛불」)이라고 한 것은 이 같은 김남조 시학의 실현인 것이다. 한 시대의 ‘산소량을 측 정하는 존재’인 시인들마저 부정주의 일변도에 빠진다면, 정녕 누가 이 세상에 희망의 언어를 공급하겠는가 하는 것이 그의 시인관이다.
김남조 시인은 말한다. ‘삶은 세계와의 결혼’이며, 인간은 그 자신과 화해하고 점차 이를 확대하여 마침내 온 세계와 화친에 이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인간관, 세계관이며 사관(史觀)이다.
시인의 사명은‘영혼의 영토’가 아닌‘욕망과 소비의 영토에서 기형 적으로 성숙하는’이 시대 인류에게‘생명, 영혼, 존재의 불을 밝혀’보 이는 일이라고 김남조 시인은 말했다(『라 쁠륨』특집 대담, 1997. 6.). 역사 적 진보주의와 그 욕망 시학의 강박증, 낮과 밤만 있고 중성적인 저녁 문화가 소실된 현 문명사의 향방에 대하여 비판적이다. 그는‘쉼과 고요’와‘ 평 안 ’을 통하여서만 현대인이 이 시대 문명의 속도 지상주의적 병증에서 구제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관점은 르클레르크의『느림 의미학』에 맞닿아 있다.
김남조의 시「무명 영령은 말한다」「기적의 탑」「그 이름 선홍의 피 로」「조국」등은 콩트집『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이 역천적(逆天的) 문명사와의 응전, 공동체 의식의 형이상학적 실현에 귀결된다.

적요와 휴식과 명상과 결별한 현대인에게 생명, 영혼, 존재의 불을 밝혀 주는 것이 김남조의 시다. 이를 위한 그의 간구(懇求)의 어조는 절절하다.

시대의 어려움 앞에 하역(荷役)의 허리를 구부리게 하옵시고 절절히 가슴치는 생명에의 예찬이 신선한 더운 피로 순환하게 하옵시며 더하여 예술과 자연을 마음껏 노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 이상으로 사랑한다 할 눈부심마저 곳곳에서 솟아나고 인류의 하늘에선 이 빛남의 별들을 수놓게 하여 주시옵소서

구약 성서『아가(雅歌)』의 상상력에 접맥되는 시「은총 안의 만남들 을」이다. 에로스가 아가페에 포용, 승화된 명징(明澄)한 순결의 극치, 그런 미질(美質)로‘만남의 은총’을 호소하는 시다.

사람의 사랑/ 끝날엔 혼자인 것/ 영혼도 혼자인 것/ 혼자서 크신 품안에 눈감는 것

시「저무는 날에」다. 평온한 순명(順命)의 신앙시다. 내면적 슬픔·고 독·목마름에서 비롯된 그의 시가 성인『김대건 신부』에서 정점을 보인 후 ‘신앙적 목마름’으로 완결지으려는 것이다.

작은 마무리
김남조는 기도와 사랑의 시인으로 통칭된다. 다만, 독자가 기도와 사랑의 연유와 미질(美質)의 특성 포착에 성공하기는 만만한 과제가 아니 다. 김 시인의 첫 시집『목숨』은 그의 시 쓰기가 생명과 죽음 문제 탐조의 실존적 명제에서 비롯되었음을 알린다. 이는 많은 피붙이들의 불가사의한 요절, 동족을 대량 학살한 6·25전쟁의 참상 등 김 시인의 개인 사, 민족사에서의 참담한‘죽음 체험’과 깊이 관련된다. 김남조 시인이 가톨릭 신앙, 사랑과 구원의 시학에 전생애를 봉헌할 수밖에 없었던 연유다.
김남조 시의 독자는 광범위하다. 그의 시가 수다한 그의 수필과 함께 당대의 베스트셀러의 기수가 되었던 이유다. 그는 교회시, 호교시처럼, 종교의 서술성과 개념이나 형식에 도취되거나 절대자를 물화(物化)한 신성 확인, 신의 해석적 탐색이나 신의 사유화야말로 신앙시의 위기를 불러오는 함정임을 아는 시인이다. ‘선(善)의포만상태’나‘성도적 모 습의 노출’은 실패작을 낳는다는 것이다. 세속의 독자에게서 흡인력을 잃기 때문이다. 인간적 목마름에 인식의 렌즈를 대고 보면, 사람의 측 은한 정황과 외로움과 사랑스러움이 보인다는 것, 사람에게는‘못다 부른 긴 악보의 찬미가’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서로 간에 아름다운 존재’라는 대긍정의 정신이 김남조 시학을 사랑·만남·희망과 평안의 경지로 견인하였다.
김남조 시는 시집『사랑 초서』에서 보듯 고결, 견고한 수정빛 표상에서 가장 빛난다. 인간과 세상의 암흑면을 폭로하기에 심신을 소모하는 리얼리스트들은 이에 분노한다. 편견이다. 그들은 김남조 시의 자아가 감당해 온 내면의 슬픔과 고난, 몸부림치는 분투의 시공들, ‘광야에서 구원을 비는 수도사의 모습’, 그 준열한 통고 체험(痛苦體驗)을 읽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남조의 시학은 고독과 비애, 영혼의 기갈, 인고(忍苦)의파란, 죄의 통회와 기도를 통하여 사람 개인과 공동체의 사랑, 긍정과 희망, 은총· 만남·구원에 도달하는 이 시대 고단한 우리들 삶에 고맙고 큰 위안 이다.
김남조 시인은 모윤숙 노천명과 현대 여성 시인을 잇는 징검다리요 빛나는 표상이었다. 그의 시는 우리 근대시사의 전통시, 리얼리즘시, 순수시, 모더니즘시의 유파적 강박성에서 자유로운, 에스프리의 신경 지를 열어 보인 공적을 남긴다. 김소월, 한용운과는 다른 차원의‘사랑 시’를 쓴 일도 오래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조국을 사랑했던 김남조 시인의 마지막 시는‘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를 네 번 반복한 <애국가>다.
정아·녕·석·범 ,  김시인의 1 녀 3 남 이각기 대학교수요 예술가로서 효창동‘김세중미술관’을 지키며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어 기쁘다. 김남조 시인이 천국 복을 누리실 줄 믿으며 삼가 평필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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