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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호

아동문학가

책 제목 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9월 6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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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호 작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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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신문(1972)과 동아일보(1973)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고, 『현대시학』(1976)에 시가 추천되어 문단에 나왔다. 지금까지 16권의 동시집과 4권의 시집, 그 외 동화집, 어린이를 위한 수필집, 산문집 등을 출간했다.
그중에서 특히 관심을 가진 장르는 동시와 시다. 그런데 ‘나는 시를 이렇게 쓴다’라는 구체적인 창작론은 없다. 시적 영감이 떠오르면 쓴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시를 쓰겠다는 것은 심상을 일정한 틀에 가두는 것이라 마뜩잖다. 시적 영감은 본래 자유분방하고 예기치 못하다. 언제, 어디서 올지 모른다. 공간과 시간에 걸림이 없고, 어쩌면 벼락치듯 왔다가 간다. 그 순간에 잡지 못하면 영감은 사라진다.
지금까지 동시를 쓰면서 작품 경향은 몇 번의 변화가 있었다. 이것은 의도된 것이 아니라, 갇혀 있거나 고여 있는 것을 싫어하는 창작 성향 때문이다.

그동안 동시의 변화 과정을 작품집 중심으로 살펴본다. 나는 처음부터 ‘동시도 시’라는 주장을 펼쳐 왔다. 지금도 그러하다. 그래서인지 등단 초기인 1970년대에는 토속적이며 목가적인 소재에 관심이 많았으나 점차 추상적인 소재에 관심이 갔다. 예를 들면 빛 또는 잠과 같은 것이다. 1970년대 후반에는 이러한 성향의 작품을 모아 『빛과 잠』『하늘과 땅의 잠』을 연이어 출간하기도 했다. 수상작을 중심으로 작품의 변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연작 동시집 『빛과 잠』이 1976년 소년한국일보에서 제정한 ‘세종아동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이 동시는 시심이 동심보다 무게감이 있었다. 당시 심사위원인 김우종 문학평론가의 심사평은 다음과 같다.

하청호 씨의 동시집 『빛과 잠』 속에 있는 몇 편을 골라낸 이유는 첫째로 언어가 많이 세련되어 있고, 특수한 소재를 잘 처리해 나갔다. 그런 의미에서 딴 작가들의 경우보다는 자기 나름의 특이한 세계를 창조하고 동시에 새로운 발전을 시도한 창의성이 강하다.

그러면서 어린이 독자에게는 다소 난해하다고 했다. 당시의 동시는 주로 소재와 표현이 앞서 말한 자연 친화적이며, 특히 농촌의 힘든 삶을 서정적 동심으로 형상화했다. 그런데 동시집 『빛과 잠』에 수록된 다수의 작품은 추상적이거나 아동의 심적 변화를 다루었다. 그래서 동시의 난해성 문제를 촉발하여 ‘얻은 것은 시요, 잃은 것은 동심’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작품의 기조를 견지하면서도 조금씩 난해함을 극복하기 위해 애를 썼다. 독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었다. 10년 후인 1986년 그간의 결실인 동시집 『잡초 뽑기』를 출간하였다. 이 작품집은 제1회 ‘방정환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잡초 뽑기』는 소재를 추상적인 것에서 삶의 현장으로 시선을 돌린 것이다. 문무학 시인은 『잡초 뽑기』해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이제 빛과 잠, 하늘과 땅의 잠이라는 환상적 공간에서 유유(幽幽)하던 의식의 조종간을 고쳐잡고 고도를 낮추어 더욱 우리들 가깝게 풀밭까지 내려와 앉고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하청호 시인의 정제된 의식의 내면은 우리들 삶의 올과 결에 동심의 서정을 교직시키며 어린이들 곁으로이제가깝게가있다.

그 후 『무릎학교』 『어머니의 등』을 출간하였다. 어느 정도 난해성을 극복했지만, 시의 품격은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2006년 나는 오래 봉직했던 교직을 정년퇴임하고 대구 근교 팔공산 서북 자락에 소박한 글방을 마련했다. 직접 농사를 짓고 꽃과 나무를 기르며, 변화하는 자연 속에서 때로는 아픔으로, 때로는 놀람의 심상을 동심에 담아냈다. 이때 얻은 작품들이 ‘윤석중문학상’을 수상한 동시집 『초록은 채워지는 빛깔이네』이다. 수록된 작품들은 얕은 감성을 건드리기보다 읽고 나면 여운이 남는 동시라 할 수 있다. 내게는 또 하나의 변화였다. 엄기원 심사위원장은 ‘시어에서 느껴지는 언어의 정갈함, 시적 묘사력이 돋보이는 동시의 전형을 보여주는 동시집이다. 다소 교과서적인 무거움은 있지만 시의 본질에 충실하였다’라고 말했다.
이 무렵 나의 동시는 다양함이었다. 독자들의 눈높이 맞는 상상력을 비롯하여, 자연의 내밀한 속성과 그에 따른 놀람을 형상화하였다. 특히 곱고 아름다운 시어가 아닌 살아 있는 입말을 과감하게 활용한 것도 이 시기의 특징이었다. 또 하나 역점을 둔 것은 잊히어진 옛말을 동시로 되살리는 일이다. 예를 들면 ‘발비’ ‘나비잠’ ‘에움길’ 같은 말이다. 이러한 작품들을 모아 동시집 『꽃비』를 출간했다.
2019년 ‘박홍근아동문학상’을 수상한 『말을 헹구다』는 지금까지의 동시 패턴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일상적인 삶과 사물에서 새로움과 재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주조로 한 체험적 서정을 형상화하였다. 그러나 생명 존중과 배려심에 역점을 둔 것은 생각의 변화였다. 당시 심사를 맡은 서석규 작가는 “동시 전체를 관류하는 풍부한 상상력과 철학적 사유, 그리고 생명의 고귀함, 배려와 나눔, 겸손의 가치를 가르쳐 주는 역작이라 할 수 있다”라고 했다.

최근에 출간한 작품집 『동시가 맛있다면 셰프들이 화를 낼까』는기존의 동시집과는 조금 다르다. 2023년 ‘우리나라 좋은 동시문학상’을 수상한 이 작품집에는 신화의 접목, 애니미즘적 발상, 우리 것의 천착, 서사가 있는 상상력 등의 변화를 시도한 것이다. 심사평을 쓴 이도환 아동문학평론가의 글을 통해 변화의 조짐을 볼 수 있다.
‘현재 우리의 동시가 추구하는 변화와 주제의 다양성이 뛰어난 작품’이라고 했다. ‘눈길을 끄는 작품은 대들보와 주춧돌이 서로를 배려해 완성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기와집이 아름다운 것은」, 백일홍을 그리스 신화에 비유한 환상을 환치한 놀라운 상상력의 「메두사」를 비롯하여 「엄마의 잠」 「말을 포개다」 등을 꼽을 수 있다’고 했다.

끝으로 급변하는 AI시대에 동시는 시대적 변화를 제대로 수용하고 있는가. 신세대 독자들의 사고와 감성에 뒤처지지는 않는가. 만약 그렇다면 독자와의 지적, 정서적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하는 것은 난제이다. 그뿐만 아니라 현실의 과감한 수용, 살아 있는 언어의 활용과 상상력을 최적화하는 일도 과제로 남는다. 나는 앞으로 이러한 제 문제에 도전하면서 동시의 외연을 넓히기 위한 것도 고민하고자 한다. 예를들면 신화와 민담, 우화를 개성적인 시각으로 접목하고, 성장에 따른 신체나 심리의 변화를 다룬 성장(成長) 동시와 같은 것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갇히거나 고여있는 것은 체질적으로 거부감을 느낀다. 나의 작품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는 나 자신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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