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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살아 있는 창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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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호

아동문학가

책 제목 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9월 6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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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호 작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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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니 산이 밤새 뿜어낸 입김처럼 집 주위로 안개가 자욱하다. 안개 사이로 어른거리는 꽃과 나무들, 밝은 날 느끼지 못했던 풍광이 다양하고 몽환적이다. 갖가지 사물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

자연은 ‘살아 있는 책’이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서재가 창작실이라면, 철 따라 새로운 모습과 얘기를 들려주는 자연 또한 살아 있는 창작실이다.
내가 창작을 위해 머무는 집은 대구 근교 팔공산 서북 자락에 있는 산골이다. 집은 물론 생활 공간과 주위에 있는 산과 들, 개울도 내게는 창작실이다.
이곳에는 흙과 돌로 지은 작은 흙방이 하나 있다. 나는 틈만 나면 이곳에 와 흙냄새를 맡으며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명상도 한다. 그런데 이 흙집은 나만의 집이 아니다. 벌레들도 함께 산다. 다시 말하면 벌레들의 집도 되는 것이다. 흙벽 틈에는 여러 종류의 벌레들이 알을 낳아 자라고, 겨울나기 하는 성충들이 벽틈에 들어가 추위를 피하기도 한다. 어느 땐 돈벌레나 지네들이 이불 속에 몰래 들어와 함께 자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나 스멀스멀 기는 벌레들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그렇다. 나의 살아 있는 창작실에는 주인이 따로 없다. 모두가 주인이며, 각자의 고유한 영역을 가진 주체자이다. 이곳에는 식물이 자라고 멧돼지, 토끼, 고라니가 드나들며 땅속에는 두더지가 살고 있다. 갖가지 텃새와 곤충들은 물론 무생물도 함께 자리잡고 있다. 모든 것이 살아 있는 책이며 창작의 공간이다. 이처럼 자연은 작품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곳이다.

취사용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 초가을 선선한 기운을 느끼며 산을 오른다. 숲은 깊고 그윽하다. 봄, 여름과는 또 다른 정취가 있다. 봄 산이 들떠 있다면 여름 산은 오만하고 가을산은 화려한 비움을 보여주고 있다. 그 비움은 쓸쓸함을 뛰어넘어 나를 깊은 성찰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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