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0월 6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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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를 써서 등단한 지 앞서 말한 대로 내년 희년을 앞에 두고 있다. 25년이란 세월을 시를 쓰기 위한 준비 기간, 즉 습작기로 보냈고 등단 이후 50여 년 시를 써왔으니 75년간을 시와 함께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만큼 써왔으면 시에 대해서는 도사가 될 법도 한데 이게 웬일인지 나는 갈수록 시 쓰는 게 어렵기만 하다.
나는 ‘별과 사랑의 시인’이라는 별호를 받을 만큼 하늘의 별을 많이 처다보며 살아왔다. 별은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먼저 가서 영혼이 빛나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별은 나에게 완전한 이데아이고 사랑이며 영원한 생명으로 표상된다. 그러므로 나의 시집은 『그대는 별로 뜨고』 『마음속에 뜬 별』 『바다에 뜬 별』 『그대는 나의 가장 소중한 별』 『별무리』 등 별이 들어간 시와 시집이 많았다.
이 중에서 첫 시집 『그대는 별로 뜨고』는 남편 양영재 장로가 연대 영문과 교수였고 차기 연세대 총장으로 물망에 오른 상태에서 연세춘추주간, 상담소 소장, 인문학회 간사 등 과중한 일로 과로로 쓰러져 허망하게 하늘나라로 떠나간 지 1년 후에 슬픔을 딛고 써낸 시편들이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주어 의외로 많이 팔려서 베스트셀러 영광을 몇 년간 누리게 되어 생활비를 해결하기도 했다. 그 후 딸이 아빠를 이어 교수가 되겠다는 소원대로 유학을 보내놓고 겨를없이 앞만 보고 달려야 했다. 나에겐 시와 신앙이라는 양 수레바퀴가 있어서 견인해 나갔다. 낮에는 방송과 강의로 때를 거르며 정신없이 뛰었고, 밤에는 원고와 씨름하며 밤을 하얗게 새웠다.
이때 극동방송에서 <하나되게 하소서>를 공부영 아나운서와 공동 진행하는 중에, 기독교방송에서 <새롭게 하소서>를 고은아 권사의 사임으로 내가 스카웃되어 진행을 맡았다. 하나님 은혜였다. 극동방송에서는 봉사였지만 기독교방송에서는 적잖은 월급을 주어서 딸 유학비에 큰 도움이 되었다.
방학 중에는 딸에게 가서 2달 동안 LA복음방송 6개월분 현지 <새롭게 하소서>를 녹음해 놓고 오고, 한국에 와서는 또 2개월 녹음해 놓고 미국에 가기를 하면서 수필집 『사랑 하나 별이 되어』를 펴내고 시집 『지금 우리는 사랑에 서툴지만』 『지난날 그리움을 황혼처럼 풀어 놓고』를 펴냈는데, 후자 시집으로 1993년 기독교문화 대상을 받고, 1995년 『마음속에 뜬 별』로 윤동주문학상 본상을 받았다. 이런 상들이 슬픔과 외로움에 빠져 있던 지친 나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다.
나는 생떼같은 남편을 날벼락처럼 잃고 그 슬픔을 빠져나오는 데 10년도 넘게 걸렸다. 신앙은 나의 길잡이가 되어 주었고 시는 나를 살아 있도록 밀어주는 힘이 되었다. 나의 영적 멘토가 되어 주셨던 정진경 목사님께서 나를 슬픔에서 건져내기 위해서 내게 큰 사명을 안겨주셨다.
“앞으로 다가오는 21세기는 문화의 시대가 올 것이니 기독교예총을 설립해서 기독교 문화가 세속문화를 선도해 가는 아름다운 기독문화를 창출해 나가야 한다”고 역설하시면서 총재 곽선희 목사, 이사장 김삼환 목사, 회장 김소엽을 세우고 사역을 맡겨주셨다. 그 뜻을 유언처럼 받들고 총력질주해서 여기까지 달려왔다.
봄에는 국민일보와 공동주최로 신춘문예 신앙시 공모를 해왔고, 늦가을에는 CTS TV와 공동주최로 대한민국기독예술대상 시상식을 하면서 곁눈질할 겨를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덧 남의 나이 같은 고희에 접어들었다.
이미자 선생이 내 고희문집에 글을 써 주시면서 세상에 나서 처음 써 본 글이라고 했고, 박인수 선생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이미자 선생은 그 전해에 가요등단 50주년 기념노래 <내 삶의 이유 있음은> 가사를 이미 써드렸기에 고마운 마음을 답사로 주신 것이다. 이를 인연으로 60주년 때도 가사를 부탁해서 <내 노래 내 사랑 그대에게> 작사를 해 드렸는데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할 때 이 곡을 끝으로 부를 때 울면서 부르셨다. <내 삶의 이유 있음은> 가요는 영탁 김혜신 김용진 등 많은 트롯 가수들이 불러 히트를 했다.
나의 시가 KBS 전속 작곡가인 이종식 작곡으로 100여 곡 이상 작곡되어 매년 작곡 발표회도 열었다. 한편 새찬송가 553장 <새해 아침 환히 밝았네>는 필자의 작사이고 여러 편이 성가곡으로 작곡되어 불리기도 한다.
세월은 갈수록 가속도가 붙었는가. 어언 70 넘고 나이가 들어가니 하늘을 쳐다보는 일보다 땅을 내려다보는 일이 많아졌다. 보일락 말락 피었다 지는 풀꽃들이 눈에 들어왔고, 그들의 부르짖음이나 아우성 같은 세미한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윤동주가 서시에서 노래했던 “모든 죽어 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시구가 가슴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죽어 가는 것, 시들어 가는 것, 쇄락해 가는 것들에 하나님 심장으로 긍휼함을 가지고 눈여겨보면서 그들의 세미한 음성을 시에 담았다. 그리고 낸 시집이 『풀잎의 노래』였다.
이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모든 사명감도 내려놓고 나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아끼고 아껴서 시 쓰기에 매진하고 싶다. 그래서 먼저 간 나의 사랑하는 남편의 ‘한 편의 시를 남겨도 좋으니 불후에 명작을 남기시오’ 했던 말을 유언처럼 받들고 푸시킨의 「삶」과 같은 시를 쓰게 해달라고 지금도 습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다.
그동안 무엇을 써왔는가 곰곰 생각해보니 하나의 중심 명제로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시는 영혼의 기도이며 그 깊은 영혼의 내면에서 길어 올린 영혼의 문자’라는 명제 아래 나의 시가 모여졌다. 이와 같은 견해를 가지고 시를 쓴 시인이 분명 있을 것 같기에 찾아보니 여러 분이 검색되었지만 조금씩은 다른 견해가 있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조지 허버트, 릴케, 타고르, 엘리엇의 시론과 공통점도 있었지만, 그들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통해 나의 시론이 어디에 서 있는가를 분명히 하는 것도 이 기회에 중요한 일인 것 같아서 알아보았다.
영혼의 문자-나의 시론의 기본
시는 영혼의 기도이다. 이미 400년 전 영국의 시인 조지 허버트(George Herbert)에게 시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였다. 그의 시에는 찬양뿐 아니라 의심과 갈등, 좌절과 회복 등 하나님과 영혼이 주고받는 대화에 가까운 기도였다. 기도시라는 형식은 있지만 나는 기도가 바로 시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시는 내면의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리는 것.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는 젊은 시인에게 끊임없이 자기 내부로 들어가라고 했다. 좋은 시는 단순한 감정의 즉흥적인 표출이 아니라 오랜 체험과 고독과 기억이 인간 내부에서 숙성된 뒤 비로소 태어나는 것이다.
시인은 자기 안에 있는 깊은 우물에 두레박을 내리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물의 표면에는 일상의 감정이 있지만 더 깊이 내려가면 기억, 상처, 사랑, 죽음, 그리움, 신앙, 존재의 근원 같은 것들이 있다. 시인은 거기까지 두레박을 내려 한 방울의 언어를 길어 올리는 것이다. 그 언어가 ‘영혼의 문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에게는 기도가 필요하고 깊은 묵상이 필요한 것이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Rabindranath Tagore)에게 시는 개인의 내면에만 갇혀 있지 않다. 인간의 영혼은 자연과 우주, 사랑과 신적인 존재를 향해 열려 있다. 그래서 한 개인의 노래가 어느 순간 인류 보편의 노래가 된다.
개인의 아픔을 썼는데 다른 사람이 읽고 자기 아픔을 발견하고, 개인의 그리움을 썼는데 그것이 시대와 국경을 넘어 다른 사람의 그리움이 되는 것 바로 그 순간 개인의 언어가 ‘영혼의 문자’가 되는 것이다. 나는 개인의 감정이나 경험이 직설적 신앙고백이 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시는 감정의 토로만은 아니다. 여기에서 엘리엇(T.S. Eliot)이 중요해진다. 엘리엇은 시를 단순히 시인의 개성과 감정을 그대로 쏟아 놓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개인적인 감정은 전통과 언어, 형식이라는 용광로를 거치면서 개인을 넘어서는 작품으로 변형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 부분을 나는 전적으로 수용하며 여기에 역사성을 부여하고자 한다. 즉, 영혼에서 나온다고 해서 영혼의 모든 말이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영혼에서 길어 올린 것이 시적 언어의 절제와 형식의 정련을 거쳐야 비로소 시가 된다. 이것이 아주 중요하다.
이 패턴 위에 나는 역사성을 더했다. 왜냐하면 시인이란 역사적 통찰력을 가지지 않는다면 인류 보편적 가치에 다다를 수 없기 때문이다. 독일의 17세기 신학자요 철학자이며 시인인 휠레데릭 훨더린은 시인은 모름지기 제사장적 직분과 예언자적 직분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나는 시를 쓰면서 항상 이 말을 기억한다. 그리고 이 말을 시인의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시인은 제사장적’이란 말은 시인은 거룩하게 살아야 하고 독자에게 위안과 치유와 소망을 주는 시를 써야 한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또한 예언자적인 직분이란 예언을 하라는 뜻이 아니고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자이었듯이 그 시대의 아픔을 누구보다 통렬하게 민족과 함께 나누며 역사성을 가지고 시대적 사명을 다하라는 뜻이다. 작가는 시대의 아픔에서 끝나지 않고 시인은 그 민족이 나아갈 바른 길을 제시하고 희망의 길을 예시해야 한다. 여기서 그 모든 것 위에 시인은 무엇보다 시의 혼에 사랑이 더해져야 한다.
나는 무엇을 쓰는가? 이 엄청난 명제 앞에서 나의 시론을 한 문장으로 압축해 본다.
“시는 영혼의 기도이며, 존재의 가장 깊은 내면에 두레박을 내려 길어 올린 체험을 절제된 언어로 정련하여, 한 인간의 영혼에서 다른 인간의 영혼으로 건네는 영혼의 문자이다.”
나는 이러한 영혼의 문자를 남기려고 기도하며 시를 써왔다.
시는 나의 영혼에서 시작하지만 나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기도가 하늘을 향하듯 시는 타인의 영혼을 향한다. 그 영혼과 영혼 사이에 놓이는 가장 짧고도 깊은 다리가 사랑이며, 나는 그 사랑을 문자로 옮기는 일을 시라고 부른다. 그래서 사랑이 깃든 영혼의 문자를 영원히 남기고자 오늘도 간절히 기도한다.
[김소엽]
대전사범을 거쳐 이화여대 문리대 영어영문학과 및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을 나와 미국 MidWest대학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보성여고 교사, 육군사관학교 상담관, 호서대 교수를 거쳐 현재는 대전대학교 석좌교수. 1978년 『한국문학』에 「밤」 「방황」 등의 작품이 서정주 박재삼의 심사로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 현재, 대한민국기독문화예술총연합회 창립회장, 대한노인회 고문, 국제펜한국본부 고문, 대한민국우남기념사업회 이사장. 시집 『그대는 별로 뜨고』 『마음속에 뜬 별』 『풀잎의 노래』 등, 수필집 『사랑 하나 별이 되어』 『초록빛 생명』. 한국기독교 문화대상(1993), 윤동주 문학상 본상(1995), 제46회 한국문학상, 국제PEN문학상(2020)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