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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을 앞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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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엽

시인

책 제목 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0월 6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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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산실_김소엽_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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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당 서정주 선생님과 박재삼 선생님의 추천으로 문단에 등단한 지 금년이 꼭 49년이 되었으니 희년을 앞에 두고 있다고 하겠다. 희년이라면 일체 매었던 곳에서 풀려나와 값없이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는 은총의 해이다. 종은 주인에게서 풀려나고 내가 본래 가졌던 땅도 되찾고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서 해방과 자유를 다시금 찾아 떠나는 기쁨의 해이다.
이렇듯 희년을 앞두고 창작의 산실 원고 청탁을 받고 그동안 열심히 달려온 뒤를 돌아보며 무엇을 위해 무엇을 쓰고 살았는지 나에게 통렬하게 묻고 또 창작의 산실은 어디에 있었는지 진지하게 묻게 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창작의 산실은 글을 쓰는 장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작품을 만들기 위해 시간과 장소가 필요하지만 여기에서 의미하는 창작의 산실이란 뜻은 눈에 보이는 시간과 장소를 의미하기보다는 작품이 탄생되기까지의 모티브와 과정 등을 포함하는 말이라고 이해하고 나름대로 써보려고 한다.

 

나의 창작의 깊은 뿌리는 내 고향의 산과 들 강과 늙은 팽나무와 감나무 혹은 자운영꽃이나 유년 시절에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던 하늘과 별과 구름과 숲과 바람이었다. 즉 내 영혼에 때가 끼기 전에 내가 고향에서 바라보았던 자연이 내 시의 원천이 되었다. 그곳에는 내가 사랑하던 나의 유물들과 함께 나의 엄마 아빠가 계셨고 내가 행복했던 시절이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그 행복은 6·25전쟁으로 다 산산조각이 났다.
6·25전쟁은 엄마를 예수쟁이 미국놈 앞잡이로 몰아 죽게 만들고 우리는 고향을 떠나 대전으로 이사를 하게 되어 그곳에서 초중고를 마치게 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교내 백일장에서 장원을 하게 되면서 글에 내 외로움을 풀고 담임선생님이 나를 격려하기 위해서 하신 말씀 “김광자는 앞으로 훌륭한 시인이 될 것이다”는 그 한마디에 자존심을 되찾는 계기가 되었고, 대전사범에 진학하여 강소천 선생님이 서울에서 오셔서 상을 주시고 사진도 함께 찍었다. 이를 계기로 나는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외국문학을 많이 배워야 할 것 같아 초등학교 교사 부임을 사임하고 이대 영어영문학과를 택해서 진학하게 된다.
나는 그곳에서 국문학과 강의를 청강생으로 등록을 허가받아서 다 듣게 된다. 이어령 안수길 양명문 교수님 강의를 다 들으며 나의 꿈을 키워 나갔다. 이 시기에 함께 글을 썼던 문우가 천양희, 한 해 선배 안혜초 홍휘자였다. 그 시절 『녹원(綠苑)』이라는 문리대 잡지와 신문이 유일한 발표지였다. 나는 도서관 학생이라 불릴 정도로 밤 10시까지 도서관에서 살았다. 실력이 달려서 「일리아드」 「오디세이」 원서를 읽는데 한 페이지 단어만 찾는 데도 한 시간씩 걸렸다. 그런 어려운 작품을 나영균 교수님은 한사코 학생들에게 읽혔다. 나는 학과 공부뿐 아니라 훌륭한 시인이 되려면 적어도 세계 명작 정도는 다 읽어야 될 것 같아서 정음사에서 발행한 세계 명작을 1권부터 탐독하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양명문 선생님 댁에 찾아가서 개인지도를 받기도 했다. 그때 김자림 선생님은 극작가로 데뷔해서 바쁘게 지내셨고, 양 교수님은 시를 쓰려면 음악과 미술 영화 연극 등 모든 예술 부문에 걸쳐서 교양을 넓혀야 된다고 역설하셨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이랑 디쉐네 루네쌍스 가화다방을 찾았고 까페디아트르를 찾았다. 그 모든 것이 양명문 교수님 지도 덕분이었다. 대학 재학 당시 나는 한성기 선생님께서 『현대시학』에 나를 추천해 주시겠다고 하셨지만 고사했다. 어떻게 내가 ‘시인’이라는 훈장을 감히 선생님과 같이 달겠는가. 나는 나의 실력을 알기에 고사하고 대학을 졸업한 후 10년을 서정주 선생님 구상 선생님 박두진 선생님께 사사하고 1978년도에서야 『한국문학』 8월호에 등단했다. 등단 후 8년 만에 첫 시집 『그대는 별로 뜨고』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많이 알려졌다.
25년이라는 습작기를 거쳐서 등단했듯이 시도 다작이 아니고 굉장히 오래 다듬고 삭혀서 쓰다 보니 5, 6년 내지는 10년이 걸려서야 한 권씩밖에 못 내는 시인이 되었다. 그래봤자 별 볼일 없는 시를 쓴 것 같아서 독자에게 갈수록 부끄럽다.

 

나는 호서대 정년 후 곧바로 대전대에서 불러줘서 문창학부 석좌교수로 지금껏 봉직하고 있다. 모든 활동 무대가 서울인데 서울과 대전의 중간 지점인 천안에 거주하게 되어 시간과 물질과 에너지를 도로 위에 깔고 다닐 때가 많아 비효율적인 삶을 살고 있다. 시간이 아까워 흔들리는 차 안에서 책을 읽다 보니 시력이 많이 떨어져서 근자에는 아예 눈을 감고 시상을 떠올리며 시를 구상하기도 하고 이미지를 찾기도 한다. 어떤 시는 금방 영감이 주어져서 바로 쓰기도 하지만 대체로 오래 묵상하고 겨우 쓰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나의 문학의 산실이란 나 홀로 있는 시간이면 그 어디라도 창작의 산실이 되지만 주로 남들이 다 잠든 시간, 휴대폰까지도 잠든 시간에라야만 시와 내가 하나가 된다. 그 시간은 주로 밤 12시가 넘은 시간이다. 이런 것들이 습관이 되고 생활이 되다 보니 나는 완전히 야행성이 되었고, 아침에는 서울에 일찍 가는 일이 없는 한 늦게까지 자야만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나는 새벽기도를 나가는 성도님들을 존경한다. 나는 자정을 넘겨서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동시에 하루를 마친다. 홀로 있는 그 시간을 나는 즐기며 비로소 하나님 가까이에서 대화한다. 대지 위의 모든 것들이 잠든 그 속에서 오로지 나와 하나님만이 깨어 있을 때 나의 창작의 산실은 태동되는 것 같다.

 

 

 

[김소엽]
대전사범을 거쳐 이화여대 문리대 영어영문학과 및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을 나와 미국 MidWest대학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보성여고 교사, 육군사관학교 상담관, 호서대 교수를 거쳐 현재는 대전대학교 석좌교수. 1978년 『한국문학』에 「밤」 「방황」 등의 작품이 서정주 박재삼의 심사로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 현재, 대한민국기독문화예술총연합회 창립회장, 대한노인회 고문, 국제펜한국본부 고문, 대한민국우남기념사업회 이사장. 시집 『그대는 별로 뜨고』 『마음속에 뜬 별』 『풀잎의 노래』 등, 수필집 『사랑 하나 별이 되어』 『초록빛 생명』. 한국기독교 문화대상(1993), 윤동주 문학상 본상(1995), 제46회 한국문학상, 국제PEN문학상(2020)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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