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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꿈, 잃어버린 고향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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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원

아동문학가

책 제목 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8월 6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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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8월-01.창작의산실_남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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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길에 들어선 지도 어느덧 오십 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는 좋은 시 한 편을 쓰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한 편의 작품이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삶을 조금이라도 밝힐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돌이켜 보면, 내 문학의 출발점은 고향 강원도 정선 문래리의 산과 들, 계곡과 숲, 이웃 사람들의 사랑이었다. 그래서 내 작품에는 자연과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자연은 단순히 풍경을 묘사하기 위한 외적인 자연이 아니라, 할머니의 사랑처럼 사람의 삶과 마음을 이어주는 따뜻한 자연이다. 꽃은 사람의 마음이 되고, 바람은 희망이 되며, 나무는 기다림이었다. 이렇게 고향의 자연과 사람들은 나를 시인으로 성장시켜 주었다. 이런 내 문학이 더욱 확장되고 깊이를 더하는 계기는 강릉 왕산의 방터골 삶이었다.
강릉시 왕산면 방터골에서 15년이라는 세월을 살며 흙을 일구고 집필에 매진하였다. 호미를 쥐고 직접 농사를 지으며 흙의 정직함을 배웠고, 땅속에서 꿈틀거리는 작은 지렁이나 이름 모를 벌레들과도 마치 오랜 이웃처럼 다정하게 눈을 맞추며 지냈다. 내 손끝으로 전해지던 벌레들의 미세한 움직임, 여름이면 집 옆으로 시원하고 힘차게 흐르던 개울물 소리는 내 시의 정겨운 가락을 돋우어 주는 자연의 장단이 되었다.
유년의 고향 문래리(골지리)가 동심의 씨앗을 뿌려주었다면, 방터골에서 땀 흘리며 흙과 생명을 만난 15년은 그 씨앗을 문학의 숲으로 키워낸 성숙함의 시간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시와 시조, 동시를 함께 써 왔다. 시의 장르라는 것이 내용을 담는 그릇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시와 동시, 시조집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18권의 시집을 냈다. 그리고 이번에 또 시집 한 권을 내려고 한다. 제목은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은 시들’이다. 시 쓰는 일과 삶이 둘이 아니란 것을 알았기에 시집의 제목도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은 시들’이다.
작품은 화려한 기교보다 진정성이 오래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오랜 창작 생활을 통해 배웠다. 특히 동시는 내 문학의 중심에 있었다. 어린이를 위한 문학은 어린이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글이 아니라 어린이와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글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작은 돌멩이 하나에도 우주를 담고, 개미 한 마리에게도 이름을 불러 준다. 내가 방터골에서 벌레들과 교감했던 것처럼, 그 순수한 시선을 잃지 않는 것이 동시를 쓰는 사람의 가장 큰 소임이라고 믿었다.

 

문학을 하면서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씩 변하였다. 젊은 시절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겼다면 지금은 자연 속에 담긴 시간과 생명의 깊이를 더 오래 바라보게 된다. 한 그루의 나무를 보아도 그 나무가 견뎌 온 계절을 먼저 생각하고, 들꽃 한 송이를 보아도 그 작은 생명이 피어나기까지의 시간을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최근의 작품들은 이전보다 조금 더 담담하고 조금 더 깊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문학 활동을 하며 얻은 또 하나의 소중한 자산은 사람이다. 작품은 혼자 쓰지만 문학은 함께 만들어 간다는 사실을 여러 문학단체 활동을 통해 깨달았다. 후배 문인들과 작품을 나누고,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책을 만들고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은 또 다른 배움이었다. 혼자만의 성취보다 함께 성장하는 기쁨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창작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특별한 영감을 기다리기보다 일상의 작은 삶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아침 산책길에 만난 들꽃, 학교 담장 아래 핀 민들레, 아이들의 웃음소리, 계절을 알리는 새소리, 사람들의 따뜻한 배려…. 그런 평범한 일상이 한 편의 시가 되곤 한다. 시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앞으로의 작품은 자연을 더욱 깊이 들여다보고, 사람의 마음을 더욱 따뜻하게 보듬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다. 어린이들에게는 꿈과 상상력을, 어른들에게는 잊고 지낸 순수와 위로를 전하는 작품을 쓰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문학에는 끝이 없다. 한 권의 책을 펴내면 또 다른 시작이 기다리고, 한 편의 시를 완성하면 또 다른 소재가 찾아온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첫 작품을 쓰던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는다. 설렘과 두려움을 함께 품고 한 줄 한 줄 써 내려갈 때가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돌아보면 내 작품은 화려한 변신을 추구하기보다 한길을 걸어왔다. 자연에서 출발한 창작 활동이었지만 현재는 사람과 생명을 향한 따뜻한 시선에 닿아 있다. 그 길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앞으로도 그 길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조금 더 낮은 마음으로, 조금 더 깊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어린이와 어른 모두의 마음에 오래 남는 언어로 시를 쓰고 싶다. 그것이 지금의 내가 도달한 자리이며 앞으로도 계속 걸어갈 문학의 길이라고 믿는다.
국정교과서에 수록되었던 동시 「산골 버스」라는 작품도 있지만 나의 글쓰기는 결코 멈추지 않는 산골 버스와 같다. 굽이진 산길을 돌고 돌아 마침내 넓은 벌판에 이르듯 나의 작품 또한 모든 이의 마음을 위로하는 동심의 숲으로 확장되고 있다. 남은 생의 여정 동안에도 나는 내 문학의 영원한 영토인 정선 문래리의 서정과 할머니의 사랑, 그리고 왕산 방터골의 물소리를 기억하며, 어린이에게는 맑은 꿈을 어른들에게는 잃어버린 마음의 고향을 되찾아주는 정성스러운 글을 행복한 마음으로 적어 갈 것이다.

 

 

[남진원]
1977년 『아동문예』(동시), 1980년 『월간문학』(시조), 1983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시), 1996년 『문예한국』(문학평론) 당선. 동시집 『싸리울』 『가을바람과 풀꽃, 그리움에게』 『산골에서 보내온 동시』 등, 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넘치는 목숨으로 와서』 『장자의 하늘』 등, 시조집 『내 인생 밭을 매면』 『쇠장수 강영감님』. 한국문인협회 강원특별자치도 지회장·강원아동문학회장·강원시조시인협회 회장 역임. 한국문학상·한정동아동문학상·강원아동문학상·한국불교아동문학상·한국동시문학상·강원문학상·강원시조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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