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7월 6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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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우리가 머물고 있는 사회와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소통하며 살고 있다. 인생과 일상의 모든 사물을 사랑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시는 처음부터 쓸 수가 없다. 시는 내가 걸어온 인생길의 발자취이고 나의 삶 그 자체다. 시를 쓰며 여생을 일거리처럼 살고 있는 것이 나의 삶이기에 인생은 즐겁다.
철철 끓는 쇳물도/ 빨갛게 달아오른 인고의 터널을 지나야/ 무서운 힘, 강철로 굳어지고/ 혼 깊은 불씨 한덩이/ 춥고 어두움 속에 남모르게 싹 터/ 불붙은 가슴 아침해로 떠오르나.
—「사랑의 言語·10」 전문
인간은 누구에게나 이상향을 그리는 마음이 있고 회향(回鄕) 의식이 있다. 그것은 주로 유년의 삶과 관계가 깊다. 시의 내용에는 그리움으로 가득하고 돌아간 땅에서의 삶에 대한 소망과 꿈으로 나타난다. 시 자체가 나 자신의 알몸으로 시인의 꿈과 그리움을 말해 주고 있다.
아내는 달걀 장사 사모님/ 나는 수박 장수 선생님/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양계장 집 아줌마 좀/ 도와주며 살고 싶다며 몇 번 거들더니/ 아내는 아파트 통로의 달걀 장사 사모님이 되었고/ 트럭 운전수와 눈 맞아 도회지로 줄행랑친/ 수박밭 며느리의 홀시어머니 사정이 하딱해서/ 스무나문 통 남짓 사다가 인심 좀 썼더니/ 그 이튿날부터 나는 수박 장수 선생님이라는/ 또 하나의 직함을 달고 다니게 되었다.
—「달걀 장사 사모님」 부분
나 자신의 일을 직접 다루기보다는 타인의 일이나 사회적인 일을 다루면서 그 사이에 자신의 정서를 끼워 넣는 식으로 전개하기 때문에 시인과 시가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시는 서정적인 면이 강하다고 본다. 시의 서정성은 운율 의식과 결합하면서 힘을 발휘한다. 시는 한마디로 독자들이 이해하기가 쉬우며 진실, 소박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너무 단조로워 보이기도 하다. 설익은 기교를 과대 포장하여 돋보이게 한다든지, 장황하게 너스레로 호들갑을 떨지는 않는다.
용돈을 쓰듯/ 많이도 써버렸다/ 반은 썼을까/ 그 이상을 썼을지도/ 남은 생애(生涯)/ 존졸이 써봐야 할 텐데/ 누가 보태 줄 것도 아니고/ 누가 잘못 썼다고/ 나무랄 것도 아니고/ 인생은 용돈
—「인생론(人生論)」 전문
인생론이란 사람마다 각자 다른 지표가 있을 터이다. 그 인생론의 지표가 용돈과 같다. 반쯤 써버렸을 것 같은 인생이란 용돈, 잘못 썼어도 잘 썼어도 그 용돈이란 인생이 줄거나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라는 게 그렇다. 아무리 긴 시간도 방탕하게 살다 보면 지나간 줄 모르는 것이고, 뜻있고 알차게 써도 모자라는 게 시간이다. 우리들 삶에 주어진 시간이란 용돈은 천금일 수도 있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제까지 말짱하던 대낮이/ 아침부터 어둑어둑 물들어오고/ 사람들의 폐속에서/ 심장과 머리통까지 붉은 먼지가/ 핏줄에 업혀 핑핑 돌아가고 있으니/ 숨쉬기 힘든 공화국에 태어난/ 간난아기가 빨강 오줌똥 싸며/ 어른으로 커갈까 참 걱정이다.
—「미세먼지 공화국」 부분
앞으로 시의 영역을 무욕과 관조의 폭으로 확장해 가며 현실 문제를 더 많이 포용하고 문명 추구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상실 기능의 인간성 문제, 환경문제 등 현대적 맥락의 주제들을 밀착해서 시를 쓰려 한다. 문명에 오염된 현대의 길을 가면서 헤쳐야 할 가시숲을 외면할 수는 없다. 폭력, 부패, 기아, 전쟁, 분단, 그리고 악습의 사회문제 등 시인의 시적 에스프리는 변용의 터널을 거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인생의 수입과 지출은/ 고희를 막 넘기고 나서야/ 어느 정도 셈할 듯도 한데/ 여생의 잔고는 통 알 수 없네// 흐른 물은 다시 역류하지 않고/ 지난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데/ 추억의 카펫을 뒤밟아 가보면/ 세월 속에 떠밀리어 떠나는 길// 저축한 시간의 용돈이 앞으로/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만/ 아침에 일어나 항상 확인하고/ 잠자리에 들면서 기도드릴 뿐.
—「인생 통장」 전문
우리가 산다는 것은 현실의 문제다. 골라서 살 수도 없는 것이다. 내가 현실의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닌 순간순간 현실이 나에게로 오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힘들어도 현실을 벗어날 수 없기에 순간순간 충실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후반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나 자신의 인생을 촘촘히 들여다보며 지나온 날들도 회개하고 반성하면서 함부로 대하지 않고 소중하게 다루어 좋은 시 쓰며 여생을 보람 있고 착실하게 보내야겠다는 마음의 다짐을 해본다.
[전민]
본명 전병기. <새여울시문학> 창립동인(1971년). 월간 『시문학』 등단(1985). 시집 『소원의 종』 『사랑의 빛』 등 15권, 칼럼집 『남은 생애 존졸이 써봐야 할 턴데』. 호서문학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역임. 현재 국제계관시인연합한국본부 이사장,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대전문학상, 대일비호대상, 대전시인상, 대전시문화상, 문학시대대상, 한국현대시인상, 박종화문학상, 올해의시문학작품상, 호서문학상 등 수상.